림스키코르사코프 〈세헤라자데〉, 작곡가는 이 주제가 술탄이라고 쓴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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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을 틀면 곡 이름 아래로 네 줄이 따라 나옵니다. 바다와 신드바드의 배, 칼렌다르 왕자의 환상적인 이야기, 왕자와 공주, 바그다드의 축제. 많은 분이 이 네 줄을 길잡이 삼아 듣습니다. 지금 파도 소리가 나오는구나, 이제 배가 부서지는구나 하고 그림을 맞춰 가며 듣는 방식입니다. 연주회 프로그램에도 음반 뒷면에도 그렇게 적혀 있으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 제목을 붙인 사람이 나중에 그것을 지웠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자서전에 그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왜 지웠는지도 적어 두었고, 그러면서도 곡 이름만은 〈세헤라자데〉로 남겨 두었습니다. 지운 것과 남긴 것 사이에 이 곡을 듣는 다른 길이 하나 있습니다.

이 글이 작곡가의 자서전과 악보에서 확인한 것은 셋입니다. 첫째, 작곡가는 각 악장 앞의 표제를 나중 판에서 지웠다고 적었고, 곡 이름과 전체 이야기는 남겼습니다. 둘째, 독주 바이올린이 세헤라자데를 그린다는 것은 통설이 아니라 작곡가 본인이 쓴 말입니다. 셋째, 널리 퍼진 저음 유니슨은 술탄이라는 설명을 그는 쓰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 손으로 반례를 들었습니다.

지워진 악장 제목

작곡가가 내린 결정은 사실 두 번이었고, 서로 다른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네 악장에 프렐류드, 발라드, 아다지오, 피날레라는 음악 형식의 이름을 붙일 생각을 했습니다. 이 이름들은 결국 붙지 않았습니다. 동료 작곡가 랴도프를 비롯한 주변의 조언을 따랐다고 그는 적었습니다. 그와 별개로, 바다와 신드바드의 배, 칼렌다르 이야기 같은 이야기 쪽 표제는 악보에 붙어 있었는데, 나중 판을 낼 때 그것들을 없앴다고 했습니다. 애초에 붙이지 않은 것과 붙였다가 지운 것, 두 가지가 다른 시점의 다른 판단입니다.

발렌틴 세로프가 1898년에 그린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초상
발렌틴 세로프,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초상〉, 1898년. 작곡가가 자서전을 끝내기 여덟 해 전의 얼굴이다.

이유도 본인이 밝혀 두었습니다. 자기 작품에서 너무 분명한 줄거리를 찾으려 드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가 지운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없앤 것은 각 악장 앞에 붙은 표제이지 곡 전체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훗날 출판사 벨랴예프의 승인을 받아 나온 판에는 술탄 샤흐리아르와 세헤라자데의 이야기가 독일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세 언어로 나란히 실려 있습니다. 곡 이름도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이야기를 거둬들인 일이 아니라, 어느 소리가 어느 장면인지 하나씩 못박는 일을 그만둔 것에 가깝습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목소리

그렇다고 이 곡에 확실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작곡가가 분명한 말로 정해 둔 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독주 바이올린입니다.

1908년 옐레나 므로좁스카야가 찍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초상 사진
옐레나 므로좁스카야가 찍은 초상 사진이다. 세상을 떠난 해에 찍었고 위쪽에 작곡가의 친필 헌사와 서명이 있다.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1악장과 2악장과 4악장의 짧은 서두, 그리고 3악장 가운데의 사이 대목이 독주 바이올린을 위해 쓰였고, 그것들이 세헤라자데 자신을 그린다고 말입니다. 무서운 술탄에게 자기의 신기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줄을 더 붙였습니다. 4악장 맨 끝의 맺음도 같은 뜻을 지닌다고요. 헤아려 보면 네 악장 모두에 그 목소리가 들어오고, 4악장에는 서두와 맨 끝 두 번 나옵니다. 곡의 처음과 마지막을 그 목소리가 잡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로 꿰는 실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그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구별해 두어야 합니다. 작곡가가 정한 것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입니다. 이야기 속 인물마다 소리를 하나씩 붙이는 일이 아닙니다. 화자를 정하는 것과 등장인물 명부를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고, 그는 앞의 것만 했습니다. 이 구별을 잡고 있으면 다음 절부터가 훨씬 편해집니다.

그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도 악보에 적혀 있습니다. 독주 바이올린 혼자가 아니라 하프가 받쳐 줍니다. 현을 뜯어 화음을 놓아 주면 그 위로 바이올린이 자유롭게 읊습니다. 반주라기보다 이야기가 시작될 때 등 뒤에서 켜지는 등불에 가깝습니다. 선율 자체도 장조나 단조로 딱 떨어지지 않고 옛 선법 쪽으로 기울어 있어서, 해설서들은 이 대목의 이국적인 느낌을 그 점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듣는 실무의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면, 이 독주는 협연자를 따로 부르지 않습니다. 아래에 적은 세 녹음에서는 모두 그 악단의 악장, 곧 제1바이올린 자리의 수석 연주자가 켰습니다. 손님이 와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악단 안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 말하기 시작하는 셈입니다.

자리를 옮겨 다니는 소리들

화자가 정해져 있으니 나머지 소리들도 각각 누구인지 정해져 있으리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작곡가가 직접 짚은 것은 정반대입니다. 그는 자기 곡에서 같은 소리가 전혀 다른 자리로 옮겨 다니는 예를 세 가지 들었습니다.

첫째, 약음기를 낀 트롬본과 트럼펫의 날카로운 팡파르입니다. 약음기는 금관 나팔 끝에 끼워 소리를 줄이고 색을 바꾸는 장치인데, 이것을 끼면 소리가 눌린 채 쇳빛으로 날카로워집니다. 이 팡파르가 2악장 칼렌다르 이야기에 처음 나오고, 4악장에서 배가 부서지는 대목에 다시 나옵니다. 작곡가는 두 장면이 서로 아무 관계가 없는데도 그렇다고 적었습니다.

둘째, 2악장 칼렌다르 이야기의 주요 선율과 3악장 공주의 선율이 4악장 바그다드 축제에서 곁주제(중심 선율 옆에 딸려 나오는 보조 선율)로 되돌아옵니다. 축제의 소용돌이 안에서 모습을 바꾸고 속도를 얻어 다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천일야화의 이야기들 어디에도 이 인물들이 축제에 나왔다는 말은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원작에 없는 조합을 자기가 만들었다는 것을 스스로 밝힌 셈입니다.

이것은 앞뒤가 어긋난 일이 아닙니다. 그가 소재로 삼은 것은 천일야화의 한 편이 아니라 서로 이어지지 않는 낱낱의 삽화와 그림들이라고 본인이 적었습니다. 이야기끼리는 남남인데 소리로는 묶여 있는 상태, 그것이 이 곡의 짜임입니다. 작곡가 자신도 이 곡을 두고 주제와 동기가 공통되어 단단히 묶인 네 악장짜리 모음곡이라고 적었습니다. 작곡가는 자기가 만들고 싶었던 것을 만화경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통이 조금 돌아갈 때마다 같은 유리 조각들이 전혀 다른 무늬로 다시 놓이는 그 장난감 말입니다.

소리가 이렇게 자리를 옮겨 다닐 수 있는 데에는 기법 쪽 사정도 있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현악기에서 조심스럽게 다루는 개방현을 거리낌 없이 썼고, 현을 손가락으로 뜯거나 살짝 눌러 배음만 울리게 하는 주법을 자주 불러냈습니다. 같은 현악기라도 켜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빛깔이 나오게 만든 것입니다. 목관과 금관도 반주로만 두지 않고 앞에 내세웠습니다. 악기를 가락 맡는 쪽과 화성 받치는 쪽으로 나누어 쓰던 당시의 관습에서 벗어난 자리입니다.

그는 자기가 쓴 관현악법 책에 관현악법이란 가르침을 받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뒷세대는 그의 악보에서 그것을 배웠습니다. 라벨과 드뷔시와 스트라빈스키가 그 목록에 들어갑니다.

작곡가가 못박지 않은 것

이제 곡의 맨 첫머리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목관과 금관과 현악기가 한 덩어리로 같은 선율을 함께 내는 대목입니다. 다만 모두가 같은 높이로 내는 것이 아닙니다. 바이올린부터 콘트라베이스까지, 그리고 클라리넷과 바순과 금관이 여러 옥타브에 걸쳐 같은 가락을 겹쳐 냅니다. 위아래로 두껍게 깔리니 굵고 짧고 위압적으로 들립니다. 우리말과 영어 해설 거의 어디에서나 이 소리를 술탄이라고 설명합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세헤라자데라면 이쪽은 술탄이겠거니 하는 짝이 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작곡가는 그렇게 쓰지 않았습니다. 그가 쓴 말은 세헤라자데의 무서운 남편을 그리는 듯한 악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는 듯하다는 유보를 그대로 달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문장에서 자기 손으로 반례를 들었습니다. 그 악구가 2악장 칼렌다르 이야기 안에도 재료로 나오는데, 거기서는 술탄 샤흐리아르를 말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앞에는 총론까지 적혀 있습니다. 내 모음곡에서 라이트모티프를 찾는 것은 헛일이라고요. 라이트모티프란 특정 인물이나 관념에 늘 붙어 다니는 고정된 선율을 말합니다. 그는 자기 곡의 라이트모티프처럼 보이는 것들이 대개 순전히 음악적인 재료일 뿐이며, 나올 때마다 다른 빛 아래 놓여 다른 결을 그리고 다른 정조를 낸다고 썼습니다.

그러니 이 곡에서 확실한 것과 확실하지 않은 것의 선은 이렇게 그어집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목소리는 작곡가가 정했습니다. 나머지 소리들이 누구인가는 정하지 않았고, 정하지 말라고 적어 두기까지 했습니다. 첫머리의 그 유니슨을 무서운 남편의 기척으로 들으시는 것은 좋습니다. 작곡가 자신이 그렇게 들리도록 썼다고 했으니까요. 다만 그 소리가 뒤에서 다시 나올 때 매번 같은 사람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면, 곡이 실제로 하는 일을 놓치게 됩니다.

처음 들을 때의 순서

전곡은 약 45분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따라가기 부담스러우시면 소리가 크게 바뀌는 자리만 먼저 짚어 보셔도 됩니다.

1악장은 크고 장중하게 시작합니다. 악보 첫머리에 적힌 말도 넓고 장엄하게입니다. 그런데 그 큰 소리가 얼마 못 가 뚝 끊기고, 혼자 말하듯 자유롭게 읊는 독주 바이올린으로 바뀝니다. 악보에는 이 대목에 낭송조라는 지시가 붙어 있습니다. 세게 선언하는 소리와 혼자 이야기하는 소리, 이 두 종류가 곡의 재료 전부라고 해도 될 만큼 뚜렷하게 맞물립니다. 작곡가는 이 악장을 바다와 신드바드의 배라고 적었습니다.

2악장도 낭송조로 조용히 시작해 점점 빨라지고, 그러다 앞에서 말한 약음기 낀 금관의 팡파르가 끼어듭니다. 3악장은 네 악장 가운데 가장 느리게 노래하는 악장입니다. 4악장은 빠르게 몰아가다가 큰 충돌이 지나간 뒤, 맨 처음의 그 말투로 돌아와 조용히 맺습니다. 악보 마지막 쪽에도 느리게와 낭송조가 다시 적혀 있습니다. 화음도 어두운 쪽에서 밝은 쪽으로 옮겨 가 마무리됩니다. 이 마지막 자리는 놓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곡이 끝나는 방식이 곧 이 곡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45분 동안 온갖 것이 지나갔는데, 마지막에 남는 것은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 한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작곡가는 2악장과 4악장에 각각 칼렌다르 왕자의 환상적인 이야기, 바그다드의 축제와 부서지는 배라고 적었습니다. 3악장은 왕자와 공주입니다. 이 그림들을 떠올리며 들으셔도 좋습니다. 다만 그가 남기고 싶어 한 것은 장면 하나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이것이 어떤 한 사람이 들려주는 여러 이야기라는 인상이었다는 점만 기억해 두시면 됩니다.

서로 다르게 들리는 세 녹음

같은 악보인데 인상이 꽤 달라지는 녹음 셋을 골랐습니다. 아래 차이는 음반 해설과 평문에서 되풀이되는 지적을 정리한 것입니다.

  • 키릴 콘드라신 지휘,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 독주 헤르만 크레버스, 필립스, 1979년 암스테르담 녹음. 셋 중 가장 나중 녹음이고 울림이 가장 넓게 퍼집니다. 독주 바이올린의 선이 굵고 또렷하게 잡힙니다.
  • 프리츠 라이너 지휘, 시카고 심포니, 독주 시드니 하스, 알시에이 LSC-2446, 1960년 시카고 녹음. 빠르고 윤곽이 딱딱 끊깁니다. 금관이 앞으로 나와 소리의 선명함이 먼저 들립니다.
  • 토머스 비첨 지휘, 로열 필하모닉, 독주 스티븐 스타릭, 이엠아이, 1957년 런던 킹스웨이 홀 녹음. 가장 느긋하게 노래하는 쪽입니다. 전곡이 45분 41초이고, 3악장을 특히 느리게 끌고 갑니다.

이 세 녹음에서 독주 바이올린은 모두 그 악단의 악장이 켰습니다. 크레버스, 하스, 스타릭이 각각 그 자리였습니다. 같은 선율인데 누가 켜느냐에 따라 이야기하는 사람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을 견주어 들어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은 남았다

악장 제목을 지운 사람이 왜 곡 이름은 〈세헤라자데〉로 두었을까요. 이것도 자서전에 답이 있습니다.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그 이름과 천일야화라는 제목에 누구나 동방과 동화 속 기적을 떠올린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가 중요합니다. 음악적 서술의 몇몇 세부가, 이 모두가 어떤 한 사람의 여러 이야기임을 넌지시 일러 준다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우리에게는 세헤라자데로 나타나고, 그는 그 이야기들로 자기의 무서운 남편을 붙들어 둔 사람이라고 그는 적었습니다.

그가 바란 것도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듣는 사람이 이 곡을 잇달아 연주되는 네 개의 곡으로 듣지 않기를 바랐다고 했습니다. 표제를 지운 것과 이름을 남긴 것은 그러니까 한 가지 판단의 양면입니다. 장면마다 이름표를 다는 일은 그만두되, 이것이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라는 사실만은 남겨 두고 싶었던 것입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디에서 이 소리들을 배웠는지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생애와 음악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다시 틀 때 달라지는 것

이 곡은 소리가 화려해서 다른 자리에도 자주 불려 나왔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2008-09 시즌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에 이 곡을 썼을 때 처음 들으신 분도 많을 것입니다. 그때는 아마 빠르고 넓게 몰아치는 대목이 먼저 귀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제 한 번 더 트실 때는 다른 것을 들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곡 맨 앞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처음 입을 여는 순간과, 45분 뒤 마지막에 같은 악기가 다시 혼자 남는 순간입니다. 그 사이에 바다도 있고 축제도 있고 부서지는 배도 있지만, 작곡가가 확실하게 정해 둔 것은 그 목소리 하나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소리들은 자리를 옮겨 다니며 매번 다른 것을 가리켰습니다. 그러니 두 번째로 들으실 때의 질문은 저 소리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저 소리가 이번에는 어디에 와 있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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