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에서 수 없이 들었고 앞으로도 들게 될 음악을 소개하는 것이 왠지 불필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곡 전체의 연주 시간이 5분 정도인데, 사람들이 이중 단지 30초 남짓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필자 역시 오랫동안 결혼식을 마친 신랑과 신부가 함께 첫 행진 할 때 사용되는 부분만 알고 있었다. 이 곡이 어떻게 결혼식용 음악으로 사용되게 되었는지를 책을 통해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얼마 전, 대한민국의 새로운 출발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 곡이 듣고 싶어졌다. 아바도(Abbado)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를 들었을 때, 결혼식장에서 듣던 것과 차원이 다른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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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서곡에서 극음악으로
이 곡은 멘델스존(Mendelssohn, 1809-1847)이 17세였던 1826년,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을 읽고 감명을 받아 작곡한 연주회용 서곡이다. 6월 24일로 세례 요한의 탄생 대축일로, 유럽에서는 이 전날 밤을 “한여름 밤”이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1년 중 밤이 가장 짧은 시기로, 그 밤에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미신이 있다. 세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은 그러한 미신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희곡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멘델스존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로부터 국왕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공연되는 연극 〈한여름 밤의 꿈〉에 사용할 음악을 의뢰받았다. 그는 17세에 써놓은 서곡과 함께 12곡의 음악을 더 작곡하여 총 13곡으로 구성된 극음악을 완성하였다. 오늘날에는 서곡, 스케르초, 결혼 행진곡 등이 자주 연주된다. 이 중에서도 〈한여름 밤의 꿈〉의 아홉 번째 곡인 ‘결혼 행진곡 Wedding March’이 가장 유명하다. 영주의 성 안에서 결혼할 때 연주되는 환희에 찬 행진곡으로, 경쾌하고 강렬한 트럼펫이 팡파르를 힘차게 연주한다.
결혼식 음악이 된 사연
이 곡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결혼식용 음악이 된 것은 영국의 빅토리아 공주 때문이다. 빅토리아 공주는 1858년 1월 25일 자신과 프로이센 프레데릭 윌리엄 왕자와의 결혼식을 위해 직접 곡을 선택했다. 평소 바그너와 멘델스존의 열렬한 팬이었던 공주는 퇴장곡으로는 멘델스존의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 중 ‘결혼 행진곡’을 선택했다. 신부가 입장할 때 울린 곡은 오랫동안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Lohengrin〉 중 3막 ‘혼례의 합창’으로 알려져 왔는데, 당일 기록은 그렇지 않다. 그날 예식 음악을 책임진 채플 로열 수석 오르간 주자 조지 스마트가 남긴 기록에는, 12시 35분에 신부 행렬이 예배당에 들어섰고 그때 악대가 연주한 것은 헨델의 〈유다스 마카베우스〉에 나오는 행진곡이었다고 적혀 있다. 로엔그린의 음악도 그날 울리기는 했다. 자리가 예식이 아니라 저녁에 열린 축하 음악회였을 뿐이다. 그 후 두 곡은 유럽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결혼식 음악이 되었다.
작곡가 슈만은 이 곡을 듣고 “요정이 연주하는 곡이 아닌가!”하며 감탄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결혼 행진곡〉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곡이지만 멘델스존이 작곡했다는 것을 잘 모른다고 한다. 연주회장에서 앙코르곡으로 연주하면 관객들이 놀람과 반가움의 탄성이 터진다고 한다.
무대 위에서 이 곡이 놓인 자리
극음악에서 이 곡에 붙은 아홉 번째라는 번호는 단순한 순번이 아니라 자리를 가리킨다. 4막이 끝나고 5막이 시작되기 전, 막과 막 사이를 잇는 간주곡의 자리다. 다장조에 알레그로 비바체, 4분의 4박자로 되어 있다.
그 자리에 희곡이 무엇을 두었는지를 보면, 이 음악이 왜 그렇게 들뜬 소리로 시작하는지가 조금 더 분명해진다. 4막에서 테세우스는 숲에 잠들어 있던 젊은이들을 발견하고, 이 짝들은 영원히 맺어질 것이라며 자기 혼례에 함께 올리라고 명한다. 그리고 5막의 막이 오르면 세 쌍의 혼례는 이미 끝나 있다. 예식 자체는 무대에서 한 번도 보이지 않는다. 관객이 보지 못한 그 결혼식을 대신 채워 주는 것이 바로 이 행진곡이다.
세 쌍 가운데 두 쌍은 사람이 맺어 준 짝이 아니다. 숲에서 퍽이 사람을 잘못 알아보고 라이샌더의 눈에 꽃즙을 발랐고, 오베론은 그것을 바로잡겠다며 디미트리우스의 눈에도 같은 즙을 발랐다. 그런데 뒤에 오베론이 되돌리라고 시킨 것은 라이샌더 한 사람뿐이다. 디미트리우스의 눈에서 그 즙을 거두는 대목은 희곡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는 마법이 걸린 채로 헬레나와 나란히 예식에 들어가고, 이 행진곡은 그 결혼식에 붙은 음악이다.
극이 끝날 무렵 오베론과 티타니아는 신방으로 몰려가 그 자리를 축복한다. 여기서 태어날 아이들은 언제나 복될 것이며 세 쌍 모두 사랑에 늘 진실하리라고, 요정들이 노래하며 극을 닫는다. 요정의 장난으로 맺어진 혼례를 요정이 다시 축복하는 셈이다. 결혼식장에서 30초만 듣고 지나치기에는, 이 음악이 원래 서 있던 자리가 꽤 짓궂고 그만큼 재미있다.
1858년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 결혼식이 열린 곳은 세인트제임스 궁이고, 신랑은 뒷날 프리드리히 3세가 되는 프로이센의 왕자였다. 스마트는 신부 입장 때 사이드 드럼까지 곁들였다고 적어 두었다. 결혼 행진곡이 그날 예식의 마지막에 연주된 것은 따로 기록에 남아 있다. 1947년에 퍼시 숄스는 그 일을 두고, 이후 줄곧 이어져 온 결혼 관습에 왕실이 승인을 내준 셈이라고 적었다.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가 함께 걸어 나올 때 이 곡이 흐르는 오늘의 풍경은, 정확히 그 자리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고 1858년이 이 곡이 결혼식에서 처음 울린 날은 아니다. 그보다 열한 해 앞선 1847년 6월 2일, 잉글랜드 데번의 티버턴에 있는 세인트피터 교회에서 도러시 캐루와 톰 대니얼이 결혼할 때 오르간 주자 새뮤얼 레이가 이 곡을 연주한 것이 지금까지 확인된 가장 이른 사례로 알려져 있다. 멘델스존이 세상을 떠나기 다섯 달 전이다. 그러니까 왕실 결혼식이 한 일은 발명이 아니라 승인에 가깝다. 있기는 있었으나 아무도 따라 하지 않던 선택을, 온 유럽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한 번 해 보인 것이다.
그 뒤로 이 곡이 얼마나 퍼졌는지는 악보 출판 기록에 남아 있다. 1892년부터 1903년 사이 독일어권에서 나온 판본만 세어도 51종이다. 베토벤·쇼팽·멘델스존·슈베르트·슈만의 작품 가운데 판본이 가장 많이 나온 곡들을 뽑아 놓은 표에서, 멘델스존 쪽 맨 앞자리가 이 결혼 행진곡이다. 무대 음악으로 쓰인 한 곡이 반세기 만에 집집마다 놓인 악보가 되었다는 뜻이다.
교회가 이 곡을 꺼려 온 내력
정작 교회 안에서는 이 음악이 오래 환영받지 못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 결혼식에서 이 곡을 쓰지 말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1938년에는 미국 클리블랜드의 한 개신교 목사가 예식에서 로엔그린의 행진곡을 쓰지 못하게 했고, 같은 해 헝가리 페예르바르 교구의 주교는 두 결혼행진곡을 함께 금했다. 1952년에는 미국 성공회의 교회음악 합동위원회가 교회 결혼식용 음악을 다룬 소책자를 내면서 이 곡들을 문제 삼았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둘 다 극장에서 나온 세속 음악이라는 것, 그리고 로엔그린의 경우 오페라 안에서 그 결혼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1955년에는 시카고와 뉴욕의 로마 가톨릭 대교구가 두 행진곡을 예식에서 금했다.
반론도 곧 나왔다. 대신 쓰라고 제시된 곡들 상당수도 순전히 연주회장에서 온 세속 음악이고, 두 행진곡은 혼인 예식의 본문과 함께 쓰이는 것이 아니라 식이 시작되기 전과 끝난 뒤에 놓이는 음악일 뿐이라는 지적이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971년 4월의 일이다. 바티칸 경신성성이 회보에서 두 결혼행진곡과 헨델의 라르고, 구노의 아베 마리아를 세속 음악으로 보아 교회 결혼식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답한 것이 신문에 실렸다. 영국 신문들은 이것이 규정이 아니라 지침이라고 선을 그었고, 바티칸도 곧 직접 금지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래서 교회가 이 곡을 금지했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금지한 곳이 있었고, 권고에 그친 곳이 있었으며, 그 권고가 얼마나 지켜졌는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세속 음악이라는 지적 자체는 사실을 짚은 것이었다. 이 곡은 애초에 교회를 위해 쓰인 적이 없다. 아테네를 배경으로 한 희극에서, 요정이 개입해 맺어진 혼례를 위해, 무대 뒤에서 울리라고 쓴 음악이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 두 행진곡의 인기 자체가 눈에 띄게 식었다는 관찰이 나오고, 요즘은 이런 논란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곡 전체를 들어 보기
결혼식장에서 이 곡을 많이 들어봤다고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한 번은 오케스트라 연주로 감상해 보시기를 권한다. 유튜브에 올라온 아바도의 연주는 3분 정도로 곡 전체를 감상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가장 훌륭한 연주 중 하나라고 생각되어 링크를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