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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레퀴엠, 어디까지가 모차르트인가

곡 한눈에 보기 •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작품번호·조성: K.626, d단조 • 작곡: 1791년, 미완성으로 남음 • 위촉: 프란츠 안톤 폰 발제크 슈투파흐 백작, 보수 50두카트 • 자필 악보: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소장, 납품 악보와 작업 악보 두 권 • 통용 완성본: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 1792년 완성. 초판은 1800년 라이프치히 목차 위촉자에게 건네진 악보에는 1792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남긴 것은 노래와 베이스, 그리고 밑그림입니다 …

[지휘자 시리즈]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 같은 연주는 두 번 없다고 믿은 지휘자

인물 한눈에 보기 • 한 줄 정의: 녹음을 거부하고 오직 실황의 순간만을 믿은 지휘자 • 생몰: 1912년 6월 28일 ~ 1996년 8월 14일 • 국적·주 활동지: 루마니아 출생, 독일(베를린·뮌헨) 중심 활동 • 핵심 자리: 베를린필하모닉 상임지휘자 1945~1952, 뮌헨필하모닉 수석지휘자 1979~1996 • 대표 실황: 브루크너 교향곡 7번(베를린필, 1992년 복귀 공연), 브람스 교향곡 전곡(뮌헨필) 첼리비다케 시작하기 좋은  • 처음이라면: 뮌헨필하모닉과 남긴 브루크너 교향곡 7번 실황 목차 …

바흐가 불면증 백작을 위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썼다는 이야기, 사실일까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BWV 988)에는 잘 알려진 사연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밤마다 불면에 시달리던 카이절링 백작을 위해, 바흐가 이 곡을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게 확정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통째로 지어낸 것으로 보기에는, 세 사람이 실제로 서로를 알고 있었습니다. 재판에 오른 통설 포르켈은 이렇게 전합니다. 러시아 대사 카이절링 백작(Hermann Carl von Keyserlingk)이 불면증을 달래기 위해, 전속 연주자였던 소년 골드베르크에게 연주시킬 곡을 바흐에게 위촉했다. 곡을 받은 백작은 크게 만…

안토니오 살리에리, 모차르트를 죽이지 않은 궁정악장

1823년 가을, 정신이 무너져 가던 일흔세 살의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병상에서 자신이 모차르트 를 죽였다고 중얼거렸습니다. 이 말이 소문으로 퍼져 나가면서, 빈 궁정을 반세기 가까이 지킨 이 작곡가는 이후 이백 년 동안 질투에 눈이 멀어 천재를 파멸시킨 악당으로 기억되게 됩니다. 그런데 그를 실제로 간병한 하인도, 의사도 그런 자백을 들은 적이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정신이 맑을 때의 살리에리 자신도 이 소문을 여러 차례 부인했습니다. 살리에리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이 한마디의 헛소문 뒤에 가려져 있습니다. 인물 한눈에 보기 • 한 줄 …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혹평자의 장례식에서 완성되다

말러는 자신을 혹평한 사람의 장례식에서, 그 사람이 남긴 것으로 자기 교향곡의 마지막 조각을 완성했습니다. 툴리오 세라핀이나 스승과의 훈훈한 일화가 아니라, 등을 돌렸던 비평가의 죽음이 실마리가 된 셈입니다. 교향곡 2번 '부활'은 이렇게 6년에 걸쳐, 서로 다른 시기에 조각조각 완성된 곡입니다. 1악장이 던지는 질문 "왜 사는가, 왜 고통받는가"에 5악장이 답하기까지, 말러 자신도 그 답을 찾는 데 6년이 걸린 셈입니다. 작품 한눈에 보기 •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대 위의 작곡가

1943년 11월 14일 오후, 뉴욕 카네기홀. 스물다섯 살의 부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그날 아침까지 무대에 설 계획이 없었습니다. 객원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독감으로 쓰러졌고, 대신할 지휘자를 구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리허설은커녕 발터와 짧은 대화를 나눌 시간뿐이었습니다. 번스타인은 그날 오후 악보만 들고 무대에 올라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했습니다. 이 공연은 CBS 라디오로 전국에 중계됐고, 다음 날 뉴욕타임스는 1면에 이 소식을 실었습니다. 무명의 부지휘자가 하루 만에 미국을 대표할 지휘자로 떠오른 순간이었습니다. 인물 한눈에 보기 • 한…

마리아 칼라스, 벨칸토를 되살린 목소리의 생애

1949년 1월,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 마리아 칼라스는 여드레 전 바그너의 발퀴레 에서 무장한 여전사 브륀힐데를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청교도인들의 엘비라를 부르기로 했던 소프라노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졌고, 대신할 가수를 구하지 못한 극장은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에게 매달렸습니다. 세라핀이 떠올린 이름은 바로 며칠 전 브륀힐데를 부른 칼라스였습니다. 무겁고 육중한 바그너의 여신에서 가볍고 섬세한 벨리니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그것도 엿새 만에 옮겨 가라는 요구였습니다. 1월 19일, 칼라스는 그 자리에 섰고 성공적으로 청교도인들 의 엘비라를 불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