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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래식 잡학사전] 클래식 작품 번호 읽는 법 — Op·No·K·BWV 한눈에 정리

    클래식 잡학 사전
    작품 번호 한눈에 보기
    • Op.(오푸스, Opus): ‘작품’을 뜻하는 라틴어 — 작곡가·출판사가 출판한 순서대로 매기는 묶음 번호
    • No.(넘버, Number): 같은 Op. 묶음 안에서 곡을 구분하는 세부 순서 번호
    • 비유하면 Op.는 앨범 번호, No.는 그 앨범 속 트랙 번호
    • 모차르트 K., 바흐 BWV, 슈베르트 D., 비발디 RV는 후대 학자가 따로 정리한 고유 작품번호

    클래식 음악에 갓 입문한 분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거대한 장벽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암호같이 길고 복잡한 제목’입니다. 대중음악처럼 ‘밤편지’, ‘Dynamite’ 같이 예쁜 제목이 있으면 좋으련만, 클래식 곡들은 《피아노 소나타 14번 올림다단조, Op.27 No.2》처럼 복잡한 기호와 숫자로 뒤덮여 있습니다.

    도대체 곡 뒤에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Op.No.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늘은 알아두면 클래식 감상이 두 배로 재미있어지는 ‘클래식 작품 번호 읽는 법’을 명쾌하게 정리해 드립니다.

    작품 번호의 기본, Op.와 No.

    Op.는 라틴어로 ‘작품(Work)’을 뜻하는 단어인 오푸스(Opus)의 약자입니다. 보통 작곡가나 악보 출판사가 곡을 세상에 출판할 때 1번부터 차례대로 번호를 매깁니다. 베토벤의 Op.1은 그가 작품번호를 붙일 만하다고 여긴 첫 출판 작품집입니다. (그 전에도 WoO 63 같은 초기작이 출판됐지만 베토벤은 여기에 작품번호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Opus의 복수형은 ‘오페라(Opera)’입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짧은 소품곡들을 한 곡씩 따로 출판하면 인쇄비가 많이 들었기 때문에, 여러 곡을 하나로 묶어서 하나의 Op. 번호로 출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때 하나의 묶음 안에 들어있는 여러 곡을 구분하기 위해 붙이는 번호가 바로 No.(Number)입니다.

    예를 들어, 《쇼팽 야상곡 Op.9 No.2》라는 제목을 해독해 볼까요? 이는 쇼팽의 작품번호 9번에 해당하는 야상곡집(Op.9) 안에서 두 번째 수록곡(No.2)이라는 뜻입니다.

    작품 번호 Op. 27 No. 2가 새겨진 베토벤의 오래된 악보 표지
    베토벤의 작품 번호 Op.27 No.2가 새겨진 악보

    주의할 점, Op.의 함정

    💡 Op. 번호가 빠를수록 젊은 시절에 작곡한 곡일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Op. 번호는 ‘작곡한 순서’가 아니라 ‘출판한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곡을 20대 때 작곡해두고 서랍 속에 묵혀두었다가 50대가 되어서야 출판사에 넘겼다면, 그 곡은 아주 늦은 Op. 번호를 받게 됩니다. 반대로 사후에 유족들이 미발표 초기작을 긁어모아 출판하면서 제일 마지막 번호를 붙여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Op. 번호만 보고 작곡가의 음악적 성숙도를 완벽하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모차르트와 바흐는 왜 Op.를 안 쓸까

    베토벤, 쇼팽, 브람스 같은 작곡가들은 출판 기록이 비교적 잘 남아있어 Op.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모차르트나 바흐처럼 너무 옛날 사람이거나, 평생 방대한 양의 곡을 작곡하여 출판사가 번호를 매길 엄두도 내지 못한 천재들은 어떨까요? 이들의 흩어진 악보를 후대의 집념 어린 학자들이 평생을 바쳐 새롭게 정리했습니다. 이렇게 정리된 것이 ‘고유 작품 번호’입니다. 어떤 것은 정리한 학자의 이름을 따고(모차르트 K.=쾨헬, 슈베르트 D.=도이치, 비발디 RV=리옴), 어떤 것은 목록 자체의 이름을 땁니다(바흐 BWV=Bach-Werke-Verzeichnis, 곧 ‘바흐 작품 목록’).

    • 모차르트 (K. 또는 KV): 법학을 공부하고 식물학·광물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학자 루트비히 폰 쾨헬(Köchel)이 모차르트의 600여 곡을 ‘작곡한 연도순’으로 정리한 번호입니다. 모차르트의 곡 뒤에 K.가 붙어있으면 쾨헬 번호라고 읽습니다.
    • J.S. 바흐 (BWV): 독일의 음악학자 볼프강 슈미더(Wolfgang Schmieder)가 정리했습니다. 바흐가 남긴 현존 작품은 1,000곡가량인데(BWV 목록에는 소실작·진위가 의심되는 곡·나중에 덧붙인 보충 번호까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연도순으로 정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칸타타는 칸타타끼리, 오르간 곡은 오르간 곡끼리 ‘장르별(주제별)’로 묶어 번호를 매겼습니다. (Bach-Werke-Verzeichnis, 바흐 작품 목록의 약자입니다.)
    • 슈베르트 (D.): 오토 에리히 도이치(Otto Erich Deutsch)가 정리한 도이치 번호입니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 역시 평생 많은 곡을 남겼으나 살아생전 출판된 곡이 많지 않아 Op. 번호가 엉망이었고, 이를 도이치가 ‘연대기순’으로 재정리했습니다.
    • 비발디 (RV): 덴마크 음악학자 페테르 리옴(Peter Ryom)이 비발디의 방대한 곡을 정리한 리옴 번호입니다.
    모차르트의 “A Very Little Night Music”, the Serenade in C K 648를 보여주는 CD 앞표지
    모차르트의 K.648을 보여주는 CD 앞표지 (출처: deutschegrammophon.com)

    마치며, 암호 해독의 즐거움

    자, 이제 실전 연습을 해볼까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올림다단조 “월광”, Op.27 No.2

    이 긴 제목은 ‘통용되는 피아노 소나타 제14번이고, 올림다단조(C#단조) 조성이며, 후대에 「월광」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작품번호 27번 묶음의 두 번째 곡(No.2)’이라는 뜻입니다. 다만 ‘제14번’은 작곡 순서가 아니라 통용되는 소나타 번호라는 점만 기억해 두면 됩니다.

    클래식 음악의 제목은 지루한 암호가 아니라, 그 곡이 세상에 태어나 우리에게 도달하기까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친절한 명찰’입니다. 이제 작품 번호의 의미를 알게 되셨으니, 연주회 팸플릿이나 음반을 고르실 때 숨겨진 정보들을 해독하는 새로운 즐거움을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 서곡과 연주회용 서곡의 차이점: 알기 쉬운 클래식 용어 가이드

      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서곡(Overture)’이라는 용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에는 ‘서곡(Overture)’과 ‘연주회용 서곡(Concert Overture)’이라는 두 가지 형식이 있다. 두 가지 모두 단일 악장으로 구성된 관현악곡이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음악만으로는 구분이 어려울 수 있으나, 그 목적과 내용 면에서 명확히 다르다.

      

    서곡과 연주회용 서곡의 공통점 : 단일 악장의 관현악곡

      두 형식의 가장 큰 공통점은 교향곡과 같이 여러 악장으로 나뉘지 않는, 단일 악장 구성의 오케스트라 음악이라는 점이다. 교향곡이나 협주곡처럼 여러 악장으로 구성되지 않고, 특정 공연의 시작을 알리거나 청중의 분위기를 집중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서곡과 연주회용 서곡의 차이라는 문구를 보여주는 이미지
      

    서곡 (Overture): 극음악을 위한 도입부

      ‘서곡’은 오페라, 발레, 연극과 같은 극음악의 본편이 시작되기 전에 연주되는 음악이다. 이는 이어질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암시하고 작품의 주요 선율을 미리 제시함으로써 관객의 기대감을 높이는, 일종의 ‘예고편’과 같은 기능을 한다. 따라서 서곡의 연주가 끝나면 성악가나 무용수가 등장하는 본 무대가 이어진다. 본편의 내용을 따라가므로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고 구조가 명확한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 비제의 <카르멘> 서곡,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 등이 있다.

     

    연주회용 서곡(Concert Overture) : 독립된 관현악 작품

      ‘연주회용 서곡’은 특정 극을 전제로 하지 않고,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독립적인 연주회용 작품으로 작곡된 음악이다. 이 형식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으며, 작곡가들은 문학 작품, 역사적 사건, 자연 풍광 등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서사나 묘사를 담은 관현악곡을 창작했다. 독립적인 작품으로서 작곡가의 음악적 상상력이 자유롭게 발휘되므로 길이가 비교적 길고 형식이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서곡,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 차이콥스키의 <1812 서곡> 등이 있다. 이들은 서곡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연주회를 위한 독립적인 음악으로 작곡되었다.

      연주회용 서곡은 특히 19세기 낭만주의 시기에 활발히 작곡되었으며, 현재도 오케스트라의 정기 연주회에서 첫 곡으로 자주 연주된다.

     서곡과 연주회용 서곡의 차이를 도표로 보여주는 이미지

      요약하자면, ‘서곡’은 다른 극음악에 종속된 도입부의 성격을 가지는 반면, ‘연주회용 서곡’은 그 자체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독립된 기악 작품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인지하고 음악을 감상할 때, 각 작품의 성격과 의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 애드센스 무효 트래픽, Clicky로 실시간 파악하기(Clicky 설정 및 사용법)

    방문자를 추적하는 도구로 Statcounter를 소개해 드렸는데, 오늘은 좀더 강력한 기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 Clicky의 설정과 사용법을 포스팅하고자 한다.

    1. Clicky란?

    Clicky는 실시간 웹 분석 도구로, 블로그 방문자 데이터를 추적하고 분석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특히 애드센스 무효트래픽 이슈를 실시간으로 가장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간결한 인터페이스 또한 큰 장점이다.

    clicky의 첫화면을 보여주는 이미지

    2. Clicky vs. Statcounter

    – 실시간 확인: Statcounter는 정확한 IP 제공이 강점이라면, Clicky는 실시간 접속 확인이 가능

    – 다중 사이트 관리: Clicky는 프로 요금제(월 $9.99) 하나로 10개 사이트에서 하루 30,000 페이지뷰를 관리 가능 (연간 결제 시 33% 할인)

    clicky 요금제를 보여주는 이미지

    – 사용자 데이터 커스터마이징: 원하는 정보를 직관적으로 설정하고 한 페이지에서 여러 사이트의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음

    – 첫번째 방문자 식별 용이: 첫번째 방문이란 표시 문구(이전 방문 기록이 있으면 표시)

    – 단점: IP 표시 형식이 익숙하지 않은 형태로(:30ac:4cbd 등) 표시되기도 하여 불편할 수 있음

    3. 계정 생성 및 사이트 등록

    clicky 계정 생성을 보여주는 이미지

    – 계정 생성

    언어 : 영어(한국어 지원안됨)

    이름 : 실명보다 영문 이름 권장

    이메일, 사용자 이름(알파벳과 숫자만 가능), 비밀번호를 설정

    약관 동의 체크후 등록 버튼 클릭

    clicky연결 사이트 설정을 보여주는 이미지

    – Clicky와 연결할 사이트 정보 입력

    도메인 이름과 닉네임(한글 가능) 입력

    언어: 이미지에 보이는 것처럼 디폴트

    시간 설정: 24시간제 또는 12시간제

    타임존: 서울은 없으므로 “Tokyo” 선택

    서머타임(DST): 한국은 사용하지 않으므로 “Off”

    Submit을 클릭

    – 그 다음 화면에서 Affiliate Badge 비활성화 (사이트 하단에 배지가 보이지 않게 설정)

    Affiliate Badge 설정을 보여주는 이미지

    4. 트래킹 코드 설치 방법

    박스에 있는 빨간 코드를 복사하여 html 편집기에 붙여넣기를 하면 된다.

    – 티스토리 :

    → 관리자 모드 > 스킨 편집 > HTML 편집

    → 상단의 <head> 바로 아래에 코드 붙여 넣고 저장하기

    티스토리 편집기 삽입을 보여주는 이미지

    – 블로그스팟(Blogger):

    → 테마 > HTML 편집 > </body> 위에 있는 줄에 코드 삽입하고 저장하기

    다시 Clicky로 돌아가서 “Verify tracking code” 클릭 → 정상 설치 여부 확인

    정상적으로 설정되었으면 아래와 같은 메시지가 뜬다.

    크랙킹 설정 성공을 보여주는 이미지

    이제 Clicky를 사용할 준비가 모두 끝났다.

    만일 여러 사이트에서 사용하려면 “Add new site”를 클릭한 후 위에서 했던 설정을 반복하면 된다.

    5. Clicky 대시보드 살펴보기

    만일 3개의 사이트에서 사용하도록 설정했다면 아래 이미지처럼 보일 것이다(세번째 사이트는 제목만 보임).

    대시보드 설정을 보여주는 이미지

    Your websites: 전체 사이트의 목록 및 종합 데이터

    방문자(유니크 방문자는 여러 번 방문해도 한 번만 계산하는 방식), 몇 페이지를 보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음. 이런 데이터는 빨간 밑줄 친 부분을 클릭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설정 가능

    첫번째 사이트의 노란 별표는 즐겨찾기를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빨간 동그라미 왼쪽에 “1”라는 숫자는 현재 사이트에 접속한 숫자를 보여준다. 두번째 사이트와 세번째 사이트는 접속자가 없기 때문에 “0”으로 표시되어 있다.

    Reports : 방문자 수, 페이지뷰 등 핵심 데이터 확인

    Spy: 현재 사이트에 접속 중인 사용자의 활동(접속 시각, 페이지, 위치 등)

    Big screen: 대형 화면 모드로 실시간 모니터링

    Prefs: 사이트를 설정 관리

    개인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은 Reports를 클릭하여 Visitors를 파악하는 것이다. 맨 왼쪽에 초록색 원은 현재 사이트에 접속하고 있는 방문자이다.

    clicky 실시간 방문자 표시를 보여주는 이미지

    실용적인 팁!

    화면을 다크모드로 해야 가독성이 좋아진다.

    방문자에게 태그를 달아 관리할 수 있는데, 프로 사용자의 경우 2,000개 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Affiliate 프로그램 안내

    참고로 Clicky는 Affiliate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하지만 지급 조건은 조금 까다로운 편이다. 아래의 링크를 클릭 후 30일 내에 가입해야 하며, 누적 커미션이 $10 이상일 때 페이팔로만 지급 가능하다.

    Clicky 공식 사이트로 이동

    이상으로 Clicky를 설정하고 사용하는 법을 알아보았다. 하나의 사이트를 운영한다면 Statcounter의 프리미엄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실시간적으로 방문자를 파악하기를 원하거나 여러 사이트를 운영하는 경우라면 Clicky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다음 포스팅에는 마지막으로 Yandex Metrica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 애드센스 무효 트래픽? Statcounter로 IP 주소 추적(Statcounter 설정 및 사용법)

    무효 트래픽을 추적하는 데 있어, 필자가 가장 유용하다고 느낀 도구는 Statcounter와 Clicky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 중 Statcounter에 대해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StatCounter의 대표적인 장점

    – 산뜻하고 깔끔한 디자인

    – IP 주소 파악

    SUMMARY를 보여주는 이미지
    IP 주소를 보여주는 이미지

    Statcounter 왼쪽 메뉴(6가지)

    – SUMMARY: 사이트 요약 정보 제공

    – PAGES: 유입된 페이지, 인기 페이지, 이탈 페이지 분석

    – TRAFFIC SOURCE: 유입 경로

    – HEATMAPS: 방문자 행동 분석 (히트맵)

    – RECENT ACTIVITY: 거의 실시간에 가까운 방문 기록

    – REPORTS: 다양한 분석 리포트 기능

    이 중 IP 주소 파악과 관련된 핵심 기능은 ‘RECENT ACTIVITY’이다. 방문자의 IP 주소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유입 시각, 접속 페이지, IP 주소, 통신사, 지역, 사용 디바이스 등 상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StatCounter 가입 및 설치 방법

    1. 계정 만들기

    상단의 “Try it for FREE” 버튼 클릭

    이름(실명 X), 이메일, 사용자명, 비밀번호 입력

    동의 체크 후 “Create Account” 클릭

    계정 만들기를 보여주는 이미지

    2. 사이트 추가 (Add Project)

    사이트 주소 입력

    프로젝트 이름(예: 내 티스토리 블로그) 작성

    이메일 리포트: 매일(daily) 수신 설정 권장

    카운터/버튼은 ‘보이지 않게’ 설정

    플랫폼 체크 후 설치 단계로 이동

    사이트 추가를 보여주는 이미지

    3. 설치 코드 삽입

    – 블로그스팟과 워드프레스의 사용자의 경우 “70 platforms”를 누를 것

    – 블로그스팟의 경우 “Blogger”를 선택

    Statcounter 설치 코드(블로그스팟)를 보여주는 이미지

    – 티스토리 사용자의 경우 “Default Installation”을 클릭

    Statcounter 설치 코드(티스토리)를 보여주는 이미지

    4. 추적 코드 복사

    화면에 보이는 “Copy to clipboard”를 클릭

    티스토리 :

    → 관리자 모드 > 스킨 편집 > HTML 편집

    → 맨 아래 </body> 바로 위에 코드 붙여넣기

    Statcounter 코드를 티스토리 편집기에 삽입한 것을 보여주는 이미지

    블로그스팟(Blogger):

    → 테마 > HTML 편집 > </body> 위에 코드 삽입

    → 일부 스킨은 코드 수정이 필요할 수 있음 (필자는 ChatGPT의 도움을 받음)

    5. 설치 확인

    Statcounter로 돌아가 “Verify Installation” 클릭

    설치가 완료되면 즉시 방문자 추적 시작됨

    Statcounter 설치 확인을 보여주는 이미지

    무료/유료 요금제 차이

    – 무료 요금제 (Basic):

    최근 500개의 페이지뷰만 저장되고, 그 이전 데이터는 자동 삭제

    대용량 방문 사이트에서는 다소 제약적(IP 태깅, 리포트 엑셀 다운로드, 데일리 리포트 등 제한)

    – 유료 요금제:

    Premium 플랜: 월 16유로 (약 25,000원)

    레코딩 제외 시: 월 7유로 (약 1만 원 수준)

    → 녹화 기능은 Yandex Metrica로 대체하면 현명한 선택

    연간 결제 시 10% 할인 제공, 매월 자동 결제됨

    Statcounter 요금제를 보여주는 이미지

    [2026년 7월 재검토 기록] 위 요금제 내용은 이 글을 쓴 2025년 5월 기준이다. 2026년 7월 현재 Statcounter는 요금 체계를 개편하여, 세션 수 구간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고 화면 녹화(세션 리플레이)는 별도 추가 상품으로 분리되었다. 따라서 위에 적힌 금액은 현재와 다를 수 있으므로 결제 전에 공식 요금제 페이지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다만 연간 결제 시 10% 할인은 지금도 동일하다.

    실용적인 팁!

    수상한 IP 감지 시 IP 옆 태그 버튼을 눌러 라벨 지정 및 경고 설정 가능

    직관적인 UI를 갖춘 Statcounter는 IP 추적 기능에 초점을 맞출 경우 가장 추천할 만한 도구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Statcounter보다 더 실시간성과 효율성이 뛰어난 Clicky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 애드센스 무효 트래픽 막는 IP 추적 도구 BEST 3

    애드센스 블로그 운영자에게는 무효트래픽은 큰 골칫거리다. 포스팅하는 것도 버거운데 무효트래픽에 대응하는 것은 너무 힘겹게 느껴진다. 이러한 고민을 덜어드리기 위해, 오늘은 무효트래픽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문자 추적 도구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방문자 추적 도구란?

    웹사이트 방문자 추적 도구는 사이트에 방문한 사용자의 행동, 접속 경로, 위치, IP 등을 분석할 수 있는 서비스이다. 대표적인 도구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Statcounter, Yandex Metrica, Clicky, Matomo(구 Piwik), Visitor Analytics, Plausible, Google Analytics 4 등등

    이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구글 애널리틱스이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 이슈로 인해 IP추적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사용하기 복잡할 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분석 기능도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구글 애널리틱스를 제외한 나머지 중에서 블로그 운영자에게 적합한 몇 가지 대안을 소개하고자 한다.

    * 참고 : 아래에 소개하는 도구들은 공통적으로 모두 한국어 인터페이스를 지원하지 않으며, 한 달 정도의 일정 범위 내에서 무료 이용 가능하다.

    방문자 추적 도구 추천을 보여주는 이미지

    1. Statcounter

    장점: 인터페이스가 직관적이고 IP 확인이 쉬움, 세션 리플레이(화면 녹화 가능)

    무료: 하루 500 페이지뷰까지 기록 가능

    공식 사이트 이동

    2. Yandex Metrica

    장점: 무료! 그럼에도 세션 리플레이(화면녹화 가능)와 스크롤맵 제공

    일정 비율의 샘플링이 아닌 전수 분석

    단점: 러시아 서버 기반이라 프라이버시 우려 있음

    다른 것들보다 페이지뷰가 적게 잡히는 경향이 있음

    공식 사이트 이동

    3. Clicky

    장점: 가장 심플하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실시간 접속자 확인 가능

    무료: 3개의 도메인 사용이 가능하며 하루 3,000 페이지뷰까지 기록 가능(데이터는 자동으로 30일간 보관)

    공식 사이트 이동

    4. Visitor Analytics

    장점: 화면 녹화 가능

    실시간 업데이트를 5초 단위까지 가능

    무료: 제약이 많음(월간 방문자수의 최대 400회 페이지)

    공식 사이트 이동

    [2026년 7월 재검토 기록] 위 네 도구의 이름과 무료 한도는 이 글을 쓴 2025년 5월 기준이다. 2026년 7월에 다시 확인한 결과 달라진 점은 다음과 같다. Visitor Analytics는 TWIPLA로 이름이 바뀌었다(무료 월 400 페이지뷰는 그대로다). Clicky 무료 요금제는 도메인 3개가 아니라 사이트 1개까지 지원한다(하루 3,000 페이지뷰와 30일 보관은 그대로다). Yandex Metrica는 지금도 무료이며 세션 리플레이와 히트맵을 포함한다. 다만 Statcounter의 무료 한도는 공식 요금제 페이지와 도움말의 설명이 서로 달라 이 글에서는 단정하지 않는다. 요금제는 수시로 바뀌므로 가입 전에 각 공식 페이지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 추천 조합 ***

    Clicky (무료) 또는 Statcounter (무료) + Yandex Metrica (무료)

    Clicky (유료) + Statcounter (무료) + Yandex Metrica (무료)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두번째 조합이다.

    Clicky는 실시간성과 직관성이 좋고, Statcounter는 깔끔한 인터페이스와 IP 주소 파악이 강점이고, Yandex Metrica는 고급 분석 기능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장점이다.

    Statcounter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Statcounter 설정 및 사용

    Clicky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Clicky 설정 및 사용

    단순 IP 추적용 도구로는 아래의 도구를 추천한다.

    https://ip-api.com — 위치, ISP, 호스트 정보 등

    https://www.abuseipdb.com/ — 악성 IP 신고 및 검색

    https://ipinfo.io/ — 정밀 IP 정보 API 제공

    무효 트래픽으로부터 블로그를 지키기 위한 첫걸음은 정확한 분석이다. 위에서 소개한 도구들을 활용하여 방문자의 패턴을 파악하고, 수상한 활동을 조기에 차단하여 소중한 블로그를 보호할 수 있기를 바란다.

  • [클래식 상식] 커튼콜과 앙코르의 차이점: 뜻, 유래, 파바로티 기네스 기록

    클래식 감상 가이드

    💡 30초 요약: 커튼콜과 앙코르

    • 커튼콜(Curtain Call): 공연 종료 후, 연주자와 관객이 박수와 인사로 서로에게 ‘감사’를 전하는 시간.
    • 앙코르(Encore): 쏟아지는 커튼콜에 화답하여 연주자가 관객에게 선사하는 ‘추가 연주(선물)’.
    • 두 가지 모두 무대와 객석 사이의 엄격한 벽을 허물고, 특별한 교감과 소통을 나누는 클래식 공연의 백미입니다.

    클래식 공연이나 뮤지컬을 보러 가면, 마지막 곡이 끝나고 막이 내린 뒤에도 관객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내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대 뒤로 사라졌던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다시 나와 인사를 하고, 때로는 깜짝 연주를 들려주기도 하죠. 우리는 이를 커튼콜(Curtain Call)앙코르(Encore)라고 부릅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히 다른 이 두 가지 용어의 기원과 차이점을 재미있는 역사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 감사의 인사: 커튼콜(Curtain Call)의 기원

    커튼콜은 문자 그대로 “막(Curtain)이 내린 뒤, 관객의 박수가 연주자를 다시 무대로 부른다(Call)”는 뜻입니다.

    그 초기 형태는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연극 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이 관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던 관습이 그 시작으로 여겨집니다. 이후 17~18세기 유럽에서 오페라와 연극이 대중화되면서, 인기 있는 배우나 성악가가 등장할 때 관객들이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문화가 굳건히 형성되었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커튼콜’이라는 용어가 정식으로 정착되었고, 극장의 막이 오르내리며 연주자가 반복해서 나와 인사하는 현대적인 형태의 커튼콜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엄격했던 무대와 객석 사이의 제4의 벽이 허물어지고, 예술가와 대중이 인간적인 유대감을 나누는 가장 따뜻한 순간입니다.

    2. “다시 한번!”: 앙코르(Encore)의 기원과 발전

    앙코르(Encore)는 프랑스어로 ‘다시’ 또는 ‘또 한 번’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재미있게도 정작 프랑스인들은 앙코르 대신 라틴어인 ‘비쓰(Bis, 두 번)’를 외칩니다.)

    앙코르의 유래에 대해서는 고대 로마에서 시 낭독자가 관객들의 환호에 응답해 같은 구절을 반복했던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설과, 열광적인 검투사 경기에서 패배자를 살려주거나 재대결을 요구하던 관습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본격적인 앙코르 문화는 바로크 시대 오페라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특정 아리아가 너무 아름다워 큰 인기를 얻으면, 관객들이 극 진행을 멈추고 “앙코르!”를 외치며 즉석에서 다시 불러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18세기 후반에는 이 앙코르 요청이 너무 빈번해져서 공연 시간이 끝없이 길어지자, 일부 극장에서는 앙코르 금지령을 내리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앙코르는 결국 연주자와 관객 간의 뗄 수 없는 소통 방식으로 자리 잡았고, 20세기 이후 클래식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뮤지컬 등 모든 장르의 공연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하이라이트가 되었습니다.

    앙코르 금지령의 실제 사례 — 1786년 빈

    앙코르 금지령은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날짜가 남아 있는 사건입니다. 1786년 5월 1일 빈 부르크테아터에서 모차르트가 직접 지휘해 초연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대성공이었는데, 관객들이 마음에 드는 대목마다 앙코르를 요구하는 바람에 공연이 한없이 늘어졌습니다. 초연 무대에서만 여러 곡이 반복됐고, 이어진 공연에서는 매일 밤 앙코르가 이어져 어떤 날은 거의 오페라 두 편에 맞먹는 길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참다못한 황제 요제프 2세는 같은 달 5월 9일, 중창(앙상블) 곡은 앙코르로 반복하지 못하도록 하는 칙령을 내립니다. 즉 독창 아리아 정도는 몰라도 여럿이 부르는 대목까지 다시 부르지는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재미있는 뒷이야기도 있습니다. 대본을 쓴 다 폰테의 기록에 따르면, 정작 그 금지령을 내린 황제 본인이 어느 이중창을 다시 듣고 싶어 앞장서서 앙코르를 청했다고 합니다. 규칙을 만든 사람도 좋은 음악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3. 커튼콜과 앙코르, 무엇이 다를까?

    단어로 살펴보는 커튼콜과 앙코르의 차이를 보여주는 이미지
    커튼콜과 앙코르, 그 의미의 차이점

    두 단어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명확한 선후 관계와 차이가 있습니다.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은 연주에 보답하기 위해 박수와 환호를 보냅니다. 지휘자나 연주자는 인사를 하고 무대 뒤로 퇴장하죠. 하지만 박수가 끊이지 않으면 이에 화답하기 위해 연주자가 또다시 무대에 등장하여 인사를 꾸벅합니다. 이 인사 행위 자체가 바로 ‘커튼콜’입니다.

    몇 번의 커튼콜이 반복되면서 관객들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면, 지휘자나 연주자는 감동에 보답하기 위해 악기를 다시 들고 추가 공연을 선사합니다. 이 음악적 보답 행위가 바로 ‘앙코르’입니다. 즉, 커튼콜(인사)을 많이 받다 보면 앙코르(추가 연주)가 탄생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앙코르로는 방금 연주했던 곡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다시 연주하거나, 공식 프로그램에 없던 짧고 대중적인 소품곡을 연주하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즉흥적으로 앙코르가 이루어졌지만, 현대의 클래식 연주자들은 대부분 앙코르곡을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해 둡니다. 그날 몇 번의 커튼콜을 받았고, 어떤 앙코르곡이 나왔는지가 그날 공연의 대성공 유무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합니다.

    공연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다른 용어들이 헷갈린다면 오페라 용어 정리를 함께 보셔도 좋습니다.

    4. 역사상 가장 위대한 커튼콜 기록 (기네스북)

    그렇다면 음악회 역사상 가장 많은 커튼콜을 받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세계 3대 테너 중 한 명이었던 전설적인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입니다.

    1988년 2월 24일, 독일 베를린 오페라하우스(도이체 오퍼 베를린)에서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무대가 열렸습니다. 주인공 ‘네모리노’ 역을 맡아 그 유명한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열창한 파바로티의 목소리에 청중들은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감동의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청중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무려 1시간 7분 동안이나 기립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날 파바로티는 끊임없는 환호에 답하기 위해 무대 뒤에서 무려 165번이나 무대로 걸어 나와 커튼콜 인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의 이 엄청난 커튼콜 횟수는 기네스북에 ‘가장 많은 커튼콜’ 기록으로 등재되었으며, 이 전설적인 기록은 클래식 역사상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에 클래식 공연장을 찾게 된다면, 마지막 연주가 끝난 후 아낌 없는 박수로 열렬한 커튼콜을 보내보세요. 연주자가 미소와 함께 준비해 둔 비밀스러운 앙코르 선물이 여러분의 귓가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 [지휘자 시리즈] 프롤로그: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진짜 필요한 걸까? 지휘봉의 역사와 해석의 비밀

    지휘자 시리즈: 프롤로그

    오늘날 콘서트홀에서 지휘자가 단상 위에 올라 지휘봉을 휘두르는 모습은 너무나 당연한 풍경입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어차피 악보대로 연주할 텐데, 오케스트라에 지휘자가 진짜 필요한 걸까?”라며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처럼 지휘자 없이 단원들의 협의만으로 음악을 만들어가는 세계적인 앙상블도 존재하니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거대해질수록 지휘자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지휘자는 단순히 메트로놈처럼 박자만 젓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악기 그룹의 음향 밸런스를 조율하고, 오케스트라라는 수백 명짜리 거대한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 없는 음향 건축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지휘자의 위상과 지휘봉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그 흥미로운 진화의 여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1. 지휘봉의 비극적인 탄생: 바닥을 치던 시절

    19세기 이전 지휘자의 주된 역할은 연주자 여럿이 어긋나지 않게 ‘시작’을 알리고 ‘박자’를 맞추는 기능적인 통제에 머물렀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에서 기원한 ‘키로노미(Cheironomy, 손으로 선율의 움직임을 지시하는 법)’가 중세 그레고리오 성가로 이어졌지만, 이것은 다성음악이 아닌 단선율 음악에서나 가능한 방식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점차 틀을 갖추던 17세기, 프랑스 궁정 작곡가 장 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는 아주 끔찍한 사고로 목숨을 잃습니다. 륄리는 종종 직접 지휘대에 섰는데, 당시 그가 사용한 지휘봉은 성가대라는 양 떼를 인도하는 목자임을 상징하는 크고 무겁고 기다란 지팡이였습니다.

    💡 [심화 분석] 왜 당시에는 그토록 크고 무거운 지팡이를 썼을까요?

    이는 ‘청각적 한계’ 때문입니다. 당시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앙상블 훈련도가 낮아 눈(시각)으로 박자를 맞추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휘자가 지팡이로 바닥을 ‘쿵쿵’ 내리쳐서 명확한 ‘청각적 비트’를 주어야만 수십 명이 박자를 맞출 수 있었습니다.

    사고가 난 날은 1687년 1월 8일, 루이 14세의 병 회복을 감사하는 〈테 데움〉을 연주하던 자리였습니다. 륄리는 열정적으로 바닥을 치며 지휘하다가 뾰족한 지팡이 끝으로 자신의 발가락을 강하게 찔렀고, 상처가 곪아 괴저로 번졌습니다. 의사들이 거듭 절단을 권했지만 륄리는 끝내 거부했습니다. 한쪽 발을 잃으면 더는 자기 작품을 지휘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결국 괴저가 온몸으로 퍼져 그해 3월 22일 세상을 떠납니다. 음악사에서 가장 기구한 산재 사고입니다.

    2. 침묵의 리더십, 현대 지휘법의 시작

    18세기에 접어들며 화성음악과 오페라가 발달하자, 오케스트라의 편성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졌습니다. 여러 성부가 얽히는 복잡한 다이내믹 속에서 지팡이로 바닥을 치는 소음은 음악 감상을 심각하게 방해했습니다. 이제 ‘청각적 통제’에서 ‘시각적 통제’로 진화해야만 했습니다.

    작곡가 글룩(Gluck)은 직접 연주에 동참하던 관행(쳄발로 연주나 제1바이올린 악장이 지휘를 겸함)에서 벗어나, 오케스트라 정면에서 템포와 강약을 통제하는 독립적인 지휘 역할을 정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휘에 사용된 다양한 지휘봉들을 보여주는 이미지
    다양한 지휘봉들 (출처: metmuseum.org)

    그리고 마침내 지금과 같은 하얗고 가벼운 ‘나무 지휘봉(Baton)’이 등장합니다. 1817년 칼 마리아 폰 베버는 종이를 둘둘 말아 쥐고 지휘했고, 루이 슈포어는 1820년 런던에서 무대가 너무 넓어 단원들에게 잘 보이도록 지휘봉을 썼다고 기록했습니다.

    베버가 드레스덴 오페라 감독으로 부임한 해가 바로 1817년입니다. 그는 피아노석이나 악장석에서 이끌던 관행을 버리고 무대 정면에 서서 굵은 지휘봉을 가운데 쥐고 지휘했으며, 모든 단원이 자기 동작을 볼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 자리 배치까지 바꿨습니다. 슈포어는 1820년 2월 런던 필하모닉 협회와 다섯 달짜리 계약을 맺고 영국에서 처음으로 지휘봉을 든 인물이 되었는데, 협회 이사진은 이 낯선 광경에 경악한 반면 단원들은 큐가 훨씬 잘 보인다며 반겼다고 전합니다.

    이 지휘봉을 사용하여 오케스트라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곡의 능동적 해석’을 제시한 최초의 인물이 바로 펠릭스 멘델스존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멘델스존은 1829년 무렵부터 지휘봉 사용을 널리 퍼뜨렸고, 무엇보다 ‘지휘자’라는 독립된 역할 자체를 확립한 결정적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이후 엑토르 베를리오즈와 리하르트 바그너를 거쳐, 한스 폰 뷜로(베를린 필 상임)에 이르러 악기 연주나 작곡을 겸하지 않고 오로지 ‘지휘’라는 행위 자체만 전담하는 최초의 직업적 지휘자가 탄생하게 됩니다. 뷜로가 베를린 필하모닉의 초대 상임 지휘자로 재임한 기간은 1887년부터 1892년까지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글 : 멘델스존의 생애와 작품(음악)]

    [함께 읽으면 좋을 글 : 지휘자 멘델스존]

    3. 해석의 마법: 토스카니니 vs 푸르트벵글러

    단원들 앞에 선 지휘자는 곡의 해석에 관한 모든 실권을 쥡니다. 같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라도, 지휘대에 누가 서느냐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소리 질감과 연주 시간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지휘계의 영원한 두 양대 산맥, 이탈리아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독일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남긴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녹음을 비교해 보면 연주 시간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토스카니니가 1952년 NBC 심포니와 남긴 연주는 약 29분 36초인데, 푸르트벵글러의 느린 연주들과 견주면 6분 가까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다만 이 숫자는 어느 녹음을 고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함께 기억해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푸르트벵글러 한 사람만 해도 5번 녹음을 열두어 종 남겼고, 그 안에서도 빠른 것과 느린 것의 편차가 큽니다. (보통 30분대 곡에서 6분 차이는 엄청난 이질감을 줍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글 : [지휘자 시리즈]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 악보 그대로가 지휘자의 가장 큰 자유인 이유]

    [함께 읽으면 좋을 글 : [지휘자 시리즈]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 불명확한 지휘봉이 역사상 가장 강렬한 베토벤을 만든 이유]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요? 토스카니니는 객관주의자였습니다.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히 재현하기 위해 악보에 기록된 박자와 악상 기호를 수학적으로 철저하게 지키며, 군더더기 없이 절도 있고 빠른 템포로 몰아붙였습니다. 반면 푸르트벵글러는 주관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악보의 잉크 너머에 숨겨진 감정을 꺼내기 위해, 때와 장소에 따라 템포를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이는 ‘루바토(Rubato)’를 극한으로 구사하며 거대하고 철학적인 유기체를 창조했습니다.

    두 사람의 사이는 실제로 험악했습니다. 처음에는 경쟁 관계였다가 나치 독일을 대하는 태도가 갈리면서 깊은 반목으로 굳어졌고, 토스카니니는 푸르트벵글러가 나치 치하 독일에서 지휘를 계속한 것을 강하게 문제 삼았습니다. 다만 두 사람이 서로 마주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23년에 이미 만난 적이 있고, 1931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는 둘 다 지휘대에 섰으며, 전후에는 푸르트벵글러의 전시 행적을 놓고 직접 만나 언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1936년 토스카니니는 뉴욕 필하모닉 이사회에 자신의 후임으로 푸르트벵글러를 추천했습니다. 미움과 인정이 뒤엉킨, 단순한 적대만은 아닌 관계였던 셈입니다.

    이 두 해석의 차이를 음반으로 더 파고들고 싶다면 베토벤 교향곡 5번 명반 비교를 함께 보셔도 좋습니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정확하고 빠르며 군더더기 없이 뼈대를 드러내는 객관적 해석.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베토벤 5번 교향곡 영상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자신만의 깊은 철학과 거대한 템포 변형을 동반하는 주관적 해석.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베토벤 5번 교향곡 영상

    (이미지를 클릭하면 유튜브에서 각 거장의 극명한 해석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다채로운 마에스트로의 세계

    보통 대규모 교향곡을 완벽하게 지휘하기 위해서는 두꺼운 총보(Score)에서 각 악기의 화성, 진입 타이밍, 음향적 밸런스를 수학적으로 모두 해독해 내야 합니다. 지휘자는 이를 수개월 연구하고 리허설을 통해 100명의 단원을 설득해야 하죠.

    지휘봉을 쥐는 방식도 거장마다 개성이 넘칩니다. 일본의 오자와 세이지는 지휘봉 없이 맨손으로 부드러운 선을 그려내고, 러시아의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이쑤시개처럼 짧은 지휘봉을 미세하게 떱니다. 한국의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본인의 손에 맞게 나무를 직접 깎아 만든 지휘봉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외에도 리허설 내내 발을 구르며 춤을 추듯 카리스마를 뿜어낸 레너드 번스타인, 온화하고 서정적인 설득력으로 악단을 품은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악기를 연주합니다.

    이러한 마에스트로들은 직책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상임 지휘자(Chief Conductor/Music Director)는 오케스트라와 장기 계약을 맺고 단원 채용, 프로그램 기획 등 악단의 행정과 음악적 색깔을 책임지는 ‘선장’입니다. 반면 객원 지휘자(Guest Conductor)는 일회성으로 초청되어 신선한 자극을 주고 떠나는 ‘화려한 손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지휘자 시리즈]에서는 륄리의 지팡이가 진화하여 탄생한 위대한 명지휘자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들이 남긴 불멸의 명반 속 비밀스러운 해석의 차이를 한 명씩 깊이 있게 탐구해 보겠습니다. 이미 공개된 편으로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카를로스 클라이버 편이 있습니다.

  •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생각해 보았던 내 글의 경제적 가치

      블로그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내가 가족의 권유로 지난 2월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취미생활이었던 클래식을 정리해 볼 겸 광고를 달면 수익도 얻을 수 있다는 말로 난생 처음 블로그 운영자가 된 것이다. 생각해보니 오늘이 만 6개월이 지났다.  


      며칠 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포스팅하는 것을 경제적인 관점으로 생각해 본 것이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작성하는 것이 주식투자의 원금이라는 생각…. 


      국민의 5% 정도가 클래식을 듣는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클래식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다. 그래서 조회수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조회수가 안나오는데 많은 수입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작성하는 글은 배당주의 원금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배당주는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지만 정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는 것처럼, 클래식에 관한 글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배당금과 같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안정적인 수익은 아니라 들쑥날쑥하다는 단점이 있다.


    배당주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출처 : finance.yahoo.com


      하지만 장점도 있다. 배당주의 경우 주가가 낮아져 원금에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데, 포스팅한 글은 절대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배당주와 달리 포스팅한 글들은 손실이 나지 않아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블로그에 글을 작성하는 것은 단순히 경제논리로만 생각할 수 없다. 글을 작성하는데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 글을 작성하는데 3시간만을 잡아도 최저시급을 적용하면, 2023년 최저시급 9620원 * 3시간을 하면 28860원이 나온다. 지금과 같은 유입수로는 투자한 금액을 회수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임에도 계속 글을 작성하는 것은 이유가 무엇일까? 훗날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아니다!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포스팅을 하는 것이다.


     전에 음악만 감상하다가 이렇게 블로그를 운영하니 생각지 못한 좋은 점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글로 작성하다보니 음악가들이나 작품에 대하여 보다 깊이 있게 공부하게 되었다. 단편적이었던 것이 보다 체계적으로 알아가는 느낌도 많다. 이러한 공부를 통해 음악을 감상할 때도 전보다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는 경제논리를 떠나 클래식에 대하여 좋은 글을 꾸준히 작성하여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 바그너파 vs 브람스파, 어느 쪽이 승리했을까

    클래식 도서를 읽다 보면 유럽 음악계가 브람스파와 바그너파로 양분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이 글은 그 갈등에서 어느 쪽이 승자인지를 내 나름대로 살펴보려고 쓴 글이다. 다만 책에서 읽은 자극적인 일화 몇 가지를 이번에 직접 다시 찾아보니, 사실과 다르거나 근거가 불분명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글은 원래 알고 있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확인한 만큼만 정리했다.

    브람스와 바그너는 19세기 후반 베토벤을 계승한 독일 음악의 양대 산맥이다. 바그너는 독일 오페라의 전통을 이어받아 음악극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혁신을 일으켰고, 브람스는 독일 기악곡의 전통적인 형식을 지키면서도 낭만적인 표현을 더해 독일 낭만주의 기악 음악의 정점에 도달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이 음악적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처음부터 서로를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서로의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고, 상대의 음악성을 인정하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브람스와 바그너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이미지
    브람스와 바그너의 모습

    애초에는 앙숙이 아니었다

    내가 원래 읽었던 이야기는 이랬다. 바그너가 브람스의 공연을 보고 나서 낡은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혹평했고, 이에 앙심을 품은 브람스가 평론가 한슬릭에게 바그너의 여성 편력을 흘렸으며, 바그너는 다시 브람스가 결혼도 못 한 것이 성기능 문제 때문이라고 되받아치면서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찾아보니, 이 이야기는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두 사람이 갈라선 진짜 계기

    실제 기록에 가장 가까운 갈등의 시작은 따로 있었다. 1860년, 브람스는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과 함께 리스트와 바그너로 대표되는 신독일악파의 영향력을 비판하는 선언문을 작성했다. 그런데 이 선언문이 완성되기도 전에 내용이 언론에 새어 나갔고, 서명자가 몇 명뿐인 어설픈 초안 상태로 공개되어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 사건 이후 브람스는 공개적인 발언을 자제했지만, 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릭이 보수적 진영을 대표해 바그너 쪽 평론가들과 지면 싸움을 이어 갔다. 즉 애초에 갈등에 불을 붙인 것은 두 작곡가의 사적인 다툼이 아니라, 신독일악파를 둘러싼 음악적 노선 차이와 그것을 부풀린 평론가들의 지면 전쟁이었다는 것이 실제에 더 가까운 그림이다.

    이 갈등이 계속되면서 두 사람에 대한 지지자들이 각각 파벌을 이루어 반대편을 비난하는 분위기로 커졌고, 그렇게 유럽 음악계가 바그너파와 브람스파로 나뉘어 다투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소문으로 부풀려진 이야기들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세 가지 자극적인 일화를 하나씩 다시 확인해 보았다.

    첫째, 바그너가 브람스의 공연을 보고 낡은 형식에 갇혔다고 혹평했다는 이야기는, 실제로는 좀 더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사실로 확인되었다. 1876년 11월 4일 카를스루에에서 브람스 교향곡 1번이 초연된 뒤, 바그너는 이 곡을 두고 오래된 형식으로도 그것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오면 아직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겉으로는 칭찬처럼 들리지만, 자신과 리스트가 이미 낡았다고 선언한 형식에 브람스가 여전히 매달려 있다는 뜻을 담은 빈정거림에 가까웠다. 원래 알려진 것처럼 특정 공연을 본 직후의 노골적인 험담이라기보다는, 브람스의 대표작을 향한 바그너 특유의 비꼬는 논평이었던 셈이다.

    둘째, 브람스가 바그너의 여성 편력을 한슬릭에게 흘렸다는 이야기는 이번 조사에서 이를 뒷받침할 1차 자료를 찾지 못했다. 다만 방향이 반대인 비슷한 소문은 확인된다. 바그너 쪽에서 브람스가 드보르자크에게 선물 받은 사냥용 활로 길고양이를 잡아 죽이고 다닌다는 소문을 퍼뜨렸다는 이야기가 여러 자료에 등장한다. 즉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양쪽 진영이 서로에 대한 뒷소문을 주고받았다는 정황 자체는 신빙성이 있다.

    셋째, 바그너가 브람스의 독신을 성기능 문제로 조롱했다는 이야기는 이번 검증에서 가장 근거가 약했다. 찾아보니 이와 비슷한 표현은 철학자 니체가 브람스의 음악을 두고 무능력의 우울, 결핍에서 창작한다고 평한 대목에서 나온 것에 가까웠다. 이는 브람스 개인의 성적 능력을 겨눈 말이 아니라, 그의 음악이 풍요가 아니라 결핍에서 나온다는 예술적 비유였다. 바그너 본인이 이런 말을 했다는 근거는 찾지 못했다. 아마도 니체의 비유가 세월이 흐르며 바그너의 발언으로 잘못 옮겨진 것이 아닐까 싶다. 근거가 확인되지 않는 만큼 이번 글에서는 이 주장을 신뢰할 수 없는 이야기로 판단해 지운다.

    1876년, 상징적으로 겹친 해

    브람스파와 바그너파의 대립에서 1876년은 상징성이 크다. 브람스는 무려 21년, 1855년부터 구상하고 다듬어 온 교향곡 1번을 이 해 11월 4일 카를스루에에서 초연했다. 같은 해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바그너는 자신이 직접 설계한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4부작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 전곡을 처음으로 무대에 올렸다. 두 사람이 평생을 바친 필생의 역작이 같은 해에, 불과 몇 달 간격을 두고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래서 승자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두 파벌 중 어느 쪽이 승리한 것일까. 나는 이 결말이 궁금했는데, 정작 책에서는 이 내용을 다루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굳이 한쪽 편을 들어 다른 한쪽을 깎아내릴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음악이 흘러간 양상으로 보면 승자는 바그너파 쪽에 가까워 보인다. 전통적인 형식을 벗어나 자유롭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흐름은 음악뿐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나타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그너가 살아 있을 때는 바그너파가 더 우세했다고 한다.

    하지만 바그너 사후에는 상황이 뒤바뀌어 브람스파가 더 힘을 얻었다. 다만 구스타프 말러가 브람스를 좋아하는 척했을 뿐 사실은 싫어했다는 이야기는, 이번에 찾아보니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말러는 브람스의 음악을 즐기기보다는 그 완성도를 존경하는 쪽에 가까웠다는 것이 좀 더 확인 가능한 설명이었다. 위선이라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끌리지는 않지만 실력만은 인정하는 복잡한 태도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이 시기 브람스파의 영향력이 상당했다는 점은 여러 기록에서 확인된다.

    지금도 브람스와 바그너 둘 다 세계적인 작곡가로 인정받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음악 분야에서 각자 큰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사실 승자를 가리기 어려운 것 같다. 음악적 성향이 달랐을 뿐, 두 사람 모두 지금까지 남는 유산을 남겼다.

    바그너와 다른 라이벌들

    사족을 붙이자면, 바그너는 브람스 말고도 다른 작곡가들과 불편한 관계였다. 멘델스존과의 경우는 개인적인 감정싸움이라기보다 훨씬 무거운 사안이다. 바그너는 1850년 유대인 음악이라는 논고를 익명으로 발표해 이미 세상을 떠난 멘델스존과 마이어베어를 겨냥해 그들의 음악이 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진정한 예술적 열정이 없다고 주장했고, 1869년에는 자신의 실명으로 이 글을 확장해 다시 펴냈다. 이 논고는 오늘날 독일 반유대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료로 취급된다. 단순히 사이가 나빴다는 말로는 담기지 않는, 훨씬 심각한 문제였던 셈이다.

    이탈리아의 동갑내기 작곡가 베르디와의 관계는 다른 방향으로 흥미롭다. 두 사람은 평생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편지를 주고받은 기록도 없다. 그런데도 바그너는 베르디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조차 못 견뎌 했다고 전해지는 반면, 베르디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보고 이보다 더 놀랍고 경외로운 무대는 없었다고 평하는 등 오히려 바그너의 음악에 진지한 관심을 보였다. 서로 다른 나라, 다른 언어로 오페라를 썼던 두 사람의 경쟁은 실제로는 만난 적도 없는 일방적인 무관심과, 뜻밖의 존중이 뒤섞인 관계였다.

    바그너의 성격에 대해서는 평론가들이 음악적으로는 대단한 업적을 남겼지만 비판에 예민하고 뒤끝이 길며 자기중심적이었다는 평가를 남기기도 한다. 이런 성격이 그가 여러 사람과 불화를 겪은 배경 중 하나였을 것이다.

    마무리

    이번에 다시 찾아보면서 느낀 것은, 자극적인 소문일수록 오히려 출처가 허술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반면 실제로 확인되는 사실들, 이를테면 1876년의 우연한 겹침이나 바그너의 빈정거리는 칭찬 같은 것들이 오히려 더 흥미로웠다. 어느 쪽이 승자인지는 여전히 답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근거가 있는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를 구분해서 남기고 싶었다.

    자주 묻는 질문

    Q. 바그너파와 브람스파는 왜 갈라졌나?

    1860년 브람스와 요제프 요아힘이 리스트, 바그너로 대표되는 신독일악파를 비판하는 선언문을 작성했고, 이것이 언론에 새어 나가 조롱받으면서 갈등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이후 대립은 두 작곡가 개인의 감정싸움이라기보다 평론가 한슬릭과 바그너 진영 평론가들 사이의 언론전 양상으로 커졌습니다.

    Q. 바그너가 브람스에게 성기능 문제를 언급하며 조롱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인가?

    확인되지 않습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은 니체가 브람스의 음악을 두고 남긴 무능력의 우울, 결핍에서 창작한다는 비유적 평가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며, 이것이 바그너 본인의 발언으로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 개정에서는 근거가 확인되지 않아 이 주장을 삭제했습니다.

    Q. 브람스가 바그너의 여성 편력을 한슬릭에게 흘렸다는 이야기는 사실인가?

    이를 뒷받침하는 1차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바그너 쪽에서 브람스가 사냥용 활로 길고양이를 죽이고 다닌다는 소문을 퍼뜨렸다는 이야기는 여러 자료에서 확인되어, 양측이 서로에 대한 뒷소문을 주고받았다는 정황 자체는 신빙성이 있습니다.

    Q. 1876년이 왜 상징적인 해인가?

    브람스가 21년에 걸쳐 완성한 교향곡 1번이 1876년 11월 4일 카를스루에에서 초연되었고, 같은 해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전곡이 자신이 설계한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필생의 역작이 같은 해에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Q. 바그너파와 브람스파, 결국 승자는 누구인가?

    음악사적으로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바그너가 살아 있을 때는 그의 새로운 음악극 형식이 더 큰 화제를 모았지만, 사후에는 브람스의 형식미를 따르는 흐름도 힘을 얻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이후 세대에 깊은 영향을 남겼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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