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해설, 작곡가가 직접 써 넣은 제목과 5번이라는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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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11월 중순, 뉴욕의 한 커피하우스에서 지휘자 안톤 자이들이 드보르자크에게 새 교향곡을 뉴욕 필하모닉 연주회에 올리게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 자이들은 12월 15일 무렵 연주하겠으니 총보를 되도록 빨리 보내 달라고 알려 왔습니다. 그날 저녁, 조수 요제프 코바르지크가 총보를 들고 나서기 직전에 드보르자크가 표제면에 「신세계로부터」라는 말을 써 넣었습니다. 코바르지크의 회고에 따르면 그 전까지 표제면에는 「교향곡 e단조」라고만 적혀 있었습니다.

이 교향곡에는 이름이 여럿 붙어 있습니다. 작곡가가 마지막 순간에 써 넣은 제목이 있고, 첫 출판 악보에 찍힌 「5번」이라는 번호가 있고, 2악장 선율에 나중에 붙은 노래 제목 〈Goin’ Home〉이 있습니다. 이 글은 그 이름들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작곡가가 직접 남긴 말과 뒤에 덧붙은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지를 가려 가며 곡을 따라갑니다.

〈교향곡 9번 e단조 「신세계로부터」〉 작품 95(B.178)는 안토닌 드보르자크(드보르작, 1841~1904)가 1893년 1월 10일부터 5월 24일까지 뉴욕에서 쓴 곡입니다. 작품 95는 1894년 베를린의 짐로크 초판에 찍힌 작품 번호이고, B.178은 체코 음악학자 야르밀 부르크하우저가 정리한 작품 목록의 번호입니다. 초연은 1893년 12월 16일 뉴욕 카네기홀에서 안톤 자이들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협회가 맡았습니다. 네 악장으로 되어 있고 연주 시간은 약 41분입니다. 피콜로 1대와 플루트 2대, 오보에 2대, 잉글리시 호른 1대, 클라리넷 2대, 바순 2대, 호른 4대, 트럼펫 2대, 트롬본 3대, 튜바 1대, 팀파니, 트라이앵글, 심벌즈와 현악이 나옵니다. 드보르자크가 1892년 가을 원장으로 부임한 뉴욕 국립음악원 시절의 사정은 드보르자크의 생애를 다룬 글에서 다루었습니다.

뉴욕에서 쓴 넉 달

이 교향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뉴욕에서 쓰였습니다. 드보르자크가 미국 내륙으로 처음 여행을 떠난 것은 곡을 다 쓴 뒤인 그해 6월이었습니다.

코바르지크의 회고에 따르면 3월 말 드보르자크는 여름을 보내러 보헤미아로 떠나기로 한 5월 15일까지 곡을 끝내기는 도저히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귀국을 미룰지, 아이들을 미국으로 부를지 아내와 오래 의논한 끝에 아이들을 부르기로 했고, 여름은 아이오와의 스필빌에서 보내기로 정했습니다. 아이들은 5월 23일 브레멘에서 배에 올랐고, 드보르자크가 곡을 끝낸 5월 24일에 영국 사우샘프턴에 닿았습니다. 그래서 총보 끝에는 「오전 9시」라는 메모 옆에 「아이들이 사우샘프턴에 도착, 오후 1시 33분 전보 도착」이라는 메모가 하나 더 붙어 있습니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자필 총보 첫 쪽, 왼쪽에 악기 이름과 Adagio 지시가 손글씨로 적혀 있다
안토닌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자필 총보 첫 쪽, 1893년, 위키미디어 커먼즈, 퍼블릭 도메인이다. 위쪽에 「Sinfonie (E moll)」, 왼쪽 악기 이름 옆에 1악장 서주의 빠르기 「Adagio」가 적혀 있다.

스필빌에 도착한 첫날 오후, 드보르자크는 코바르지크에게 총보를 건네며 방학 동안 필사본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128쪽이니 하루 네 쪽씩 베끼면 한 달이면 끝나고 방학도 금방 지나갈 걸세.」 날마다 「네 쪽」이라고 보고하던 코바르지크가 하루는 열여섯 쪽을 베꼈다고 하자, 드보르자크는 방학에 무슨 짓이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고 합니다. 스필빌의 여름 이야기는 생애 글로 미루고, 여기서는 곡이 이미 뉴욕에서 끝나 있었다는 것만 기억해 두면 됩니다.

신세계로부터라는 제목

제목을 왜 그렇게 붙였는지는 작곡가가 직접 설명했습니다. 1894년 6월 12일, 런던의 친구 프란체스코 버거에게 보낸 영어 편지에서 드보르자크는 「이 교향곡을 신세계로부터라고 부른 것은 그것이 내가 미국에서 쓴 맨 첫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적었습니다. 같은 편지에서 그는 이 나라의 영향, 곧 흑인과 인디언과 아일랜드 사람들의 민요 같은 것의 영향이 보일 것이라고 하면서도 「나 자신을 비평하지는 않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자필 총보 표제면, 위쪽에 체코어와 영어로 신세계로부터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안토닌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자필 총보 표제면, 1893년, 팩시밀리판 수록, 위키미디어 커먼즈, 퍼블릭 도메인이다. 맨 위에 체코어 「Z nového světa」와 그 아래 영어 「From the new world」가 따옴표에 묶여 적혀 있다. 코바르지크가 회고한 그 저녁에 써 넣은 제목이다.

국내 책 가운데에는 이 제목을 국립음악원 설립자 재닛 서버가 제안했다고 쓴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기록은 찾지 못했습니다. 남아 있는 기록이 말하는 것은 작곡가가 총보를 보내기 직전에 직접 써 넣었다는 것, 그리고 미국에서 쓴 첫 작품이라서 그렇게 불렀다는 것 두 가지입니다.

드보르자크가 들은 노래

드보르자크는 뉴욕에 온 첫 몇 달 동안 흑인 노래를 접했습니다. 가장 분명한 통로는 국립음악원의 장학생이었던 흑인 성악가 해리 T. 버레이였습니다. 드보르자크는 교향곡을 쓰기 전에 버레이를 여러 차례 만났고, 자주 집으로 불러 흑인 노래를 불러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 무렵 미국 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미국 흑인의 선율 속에서 위대하고 고귀한 음악 학파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발견한다」고 말해 미국과 유럽 신문에서 큰 논쟁을 불렀습니다.

그러면 이 교향곡에 흑인 노래나 인디언 노래가 그대로 들어 있을까요. 드보르자크는 『뉴욕 헤럴드』 인터뷰에서 「내가 새 교향곡에서 재현하려 한 것은 흑인과 인디언 선율의 정신일 뿐이다. 그 선율 가운데 어느 것도 실제로 쓰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1900년 2월, 베를린에서 이 곡을 지휘할 오스카르 네드발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더 세게 말했습니다. 곡 해설을 보내니 「내가 인디언과 미국의 동기를 썼다는 헛소리는 빼시오. 거짓말입니다! 나는 그저 이 미국 민족 선율의 정신으로 쓰려 했을 뿐입니다!」 초연 다음 날 『뉴욕 타임스』 평도 「한 경우를 빼고는」 기존 선율을 전혀 쓰지 않았다고 적었는데, 그 한 경우가 무엇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원주민 음악은 사정이 더 불분명합니다. 이 곡이 원주민 음악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말이 흔히 돌지만, 작곡 전에 드보르자크가 그 음악을 어디서 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1879년 8월 프라하에서 이로쿼이족 일행이 열흘 동안 춤과 노래를 선보였는데, 드보르자크가 그 공연을 보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드보르자크 자신은 초연 전날의 『뉴욕 헤럴드』 인터뷰에서 친구에게서 받은 인디언 선율 몇 곡을 꼼꼼히 공부했다고 말했습니다. 뉴욕에서 버펄로 빌의 서부극 공연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2022년 음악학자 데이비드 베버리지의 조사로 1894년 봄, 곧 교향곡을 쓰고 나서 약 1년 뒤의 일로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이 곡에서 귀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인용된 노래가 아니라 특징입니다. 장음계에서 넷째 음과 일곱째 음을 뺀 다섯 음으로 된 5음 음계, 약한 박에 힘을 주어 박자를 비트는 당김음, 점이 붙어 튀는 리듬이 곳곳에 나옵니다. 이 곡을 미국 음악으로 들을지 보헤미아 음악으로 들을지를 둘러싼 이야기는 뉴욕 시절 드보르자크의 지갑 사정을 다룬 글에서 이어 읽을 수 있습니다.

네 악장을 듣는 길

이 교향곡을 처음 듣는다면 한 가지만 붙들고 가도 충분합니다. 앞 악장에서 들은 주제가 뒤 악장의 중요한 자리에서 다시 나온다는 점입니다.

1악장, 느린 서주와 세 개의 주제

1악장은 느린 서주(Adagio)로 시작합니다. 드보르자크는 이 서주 전체를 「가능하면 길게 끌어서」 연주하라고 지시했는데. 빨라지면(Allegro molto) 첫 주제가 나오고, 그 머리의 팡파르 같은 짧은 악구는 뒤의 모든 악장에서 중요한 자리마다 다시 나타납니다. 이 악구를 기억해 두는 것이 이 곡 전체를 따라가는 열쇠입니다. 둘째 주제는 단조로 좁은 음역에서 맴돌다가, 다시 나올 때는 성격이 바뀌어 체코의 폴카처럼 들립니다. 셋째로 나오는 종결 주제는 서정적인 선율인데, 흑인 영가 〈Swing Low, Sweet Chariot〉과 선율 윤곽과 리듬이 닮았다는 데 대부분의 음악학자가 동의합니다. 재현부에서는 둘째 주제와 종결 주제가 반음 높여 돌아오고, 코다에서는 첫 주제가 관현악 전체 위로 금관에서 솟아오릅니다.

2악장 Largo, 잉글리시 호른의 노래

2악장은 관악기들의 화음으로 열립니다. 클라리넷과 바순, 호른, 트럼펫, 트롬본, 튜바가 아주 여리게(ppp) 시작해 잠깐 세졌다가 다시 잦아듭니다. 첫 화음은 E장조입니다. 여섯 마디의 화음이 지나가면 약음기를 낀 현악 위로 잉글리시 호른(오보에보다 낮고 어두운 소리를 내는 목관악기)이 혼자 긴 선율을 부릅니다. 이 선율은 처음에 클라리넷에 맡겨져 있었는데, 작곡가가 나중에 악기를 바꾸었습니다. 잉글리시 호른의 음색이 버레이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가운데 부분은 c♯단조로 넘어가고, 낮은 현이 일정하게 현을 튕기는 위에서 장송 행진곡 같은 흐름이 이어집니다. 그 뒤 C♯장조로 밝아지며 빨라지는 구간의 절정에서 라르고 주제와 1악장의 첫 주제, 1악장의 종결 주제가 한꺼번에 울립니다. 악장은 처음 주제가 여리게 돌아오고, 맨 끝에 첫머리의 화음이 다시 나오며 닫힙니다.

이 악장이 롱펠로의 서사시 〈하이어워사의 노래〉에서 하이어워사의 아내 미네하하를 숲에 묻는 장면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1919년에 나온 카테르지나 에밍게로바의 책에 출처를 밝히지 않은 미국 신문 기사를 근거로 간접적으로 전할 뿐이고, 이 문제를 자세히 조사한 음악학자 마이클 베커먼은 관련 기사 어디에서도 그런 내용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작곡가가 직접 그렇게 말했다고 확인되지는 않습니다. 베커먼은 라르고 주제를 하이어워사와 미네하하가 넓은 평원을 건너는 장면에, 가운데 부분을 미네하하의 장례 장면에 견주어 해석합니다.

3악장 Scherzo, 인디언들이 춤추는 잔치

3악장은 첫 박부터 목관과 호른, 팀파니, 트라이앵글, 현악이 한꺼번에 세게(f) 터지며 시작합니다. 이 악장에 대해서는 작곡가 자신의 말이 남아 있습니다. 『뉴욕 헤럴드』 인터뷰에서 그는 새 교향곡의 스케르초가 〈하이어워사의 노래〉에서 인디언들이 춤추는 잔치 장면에서 착상되었다고 했습니다. 베커먼은 그 장면을 하이어워사의 결혼 잔치에서 마법사 파우푹키위스가 추는 격렬한 춤으로 봅니다. 몰아치던 리듬은 가운데 부분(트리오)에서 갑자기 성격을 바꿉니다. 체코 음악학자 오타카르 쇼우레크는 이 대목을 체코 민속 춤곡과 닮은 선율이라고 했습니다. 악장 끝 코다의 정점에서는 1악장의 종결 주제가 다시 들립니다.

4악장 Allegro con fuoco, 앞의 악장들이 모이는 곳

마지막 악장의 첫 주제는 처음부터 금관이 힘차게 내놓습니다. 중간의 전개 부분에서는 2악장과 3악장과 4악장의 주제가 한데 엮여 동시에 울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재현부는 짧게 줄어 있고, 그 뒤에 오는 코다는 교향곡의 핵심 주제들을 모두 다시 불러오며, 2악장 첫머리의 화음도 크고 장대한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곡은 E장조로 끝납니다. 마지막 관악 화음은 길게 늘여 끌다가 점점 여려져 아주 여리게(ppp) 사라지는데, 현악은 그보다 먼저 소리를 끊습니다. 큰 소리로 끝날 것 같은 곡이 관악기의 긴 여운으로 끝난다는 것을 마지막에 들어 보십시오.

카네기홀 초연과 유럽의 첫 연주

초연은 기다림 속에서 열렸습니다. 반년 전 흑인 선율에 관한 작곡가의 발언이 논쟁을 일으킨 뒤였고, 뉴욕 신문들은 초연 전부터 이 곡에 관한 기사를 실으며 주제 일부를 악보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관례대로 초연 전날인 12월 15일 오후에 공개 총연습이 열렸습니다. 그날은 비가 많이 왔는데도 정오부터 카네기홀을 따라 표를 사려는 긴 줄이 늘어섰고 총연습 표는 모두 팔렸습니다. 드보르자크와 가족은 초연 전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예법이라 이날은 가지 않았습니다.

12월 16일 초연에 참석한 아들 오타카르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1악장이 끝나자 청중이 예상 밖으로 오래 박수를 쳤고, 라르고가 끝나자 아버지가 지휘대에 나와 인사할 때까지 연주회를 이어 가게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드보르자크 자신은 출판사 짐로크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박스석에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어찌나 오래 박수를 치는지 박스석에서 왕처럼 답례해야 했습니다(웃지 마십시오!)」라고 적었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 명예박사 가운과 모자를 쓴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흑백 사진
케임브리지 대학 명예박사 가운을 입은 안토닌 드보르자크, 1891년, 흑백 사진, 촬영자 미상, 위키미디어 커먼즈, 퍼블릭 도메인이다. 미국으로 떠나기 한 해 전의 모습이다. 촬영 연도와 장소는 커먼즈 설명을 따랐다.

유럽에서는 1894년 6월 21일 런던에서 처음 연주되었습니다. 2절의 버거 편지는 바로 이 런던 연주를 앞두고 쓴 것으로, 드보르자크는 그 편지에 첫 연주에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고 적었습니다. 체코 청중은 1894년 7월 20일 카를로비바리에서 처음 이 곡을 들었고, 프라하 초연은 1894년 10월 13일 국민극장에서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열렸습니다.

한때 5번이었던 이유

1894년 짐로크가 펴낸 첫 총보의 표제면에는 「Symphonie (No 5, E moll)」, 곧 교향곡 5번 e단조라고 인쇄되어 있습니다. 아홉 번째 교향곡이 왜 5번이 되었는지는 드보르자크 교향곡들이 언제 출판되었는지를 보면 풀립니다.

1번부터 4번까지 네 곡은 모두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출판되었습니다. 3번이 1911년, 4번이 1912년, 2번이 1959년, 1번이 1961년입니다. 드보르자크 생전에 출판된 교향곡은 다섯 곡이고, 순서는 6번(1881년), 7번(1885년), 5번(1888년), 8번(1892년, 런던의 노벨로), 그리고 9번(1894년)입니다. 6번과 7번, 5번, 9번은 짐로크가 펴냈습니다. 그러니 9번은 생전에 다섯 번째로 출판된 교향곡이었고, 그 순서대로 「5번」이라는 번호를 달고 나온 것입니다. 작곡가 자신은 셈이 달랐습니다. 앞에서 본 자필 총보 표제면에는 그의 손으로 「Číslo 8」(8번)이라고도 적혀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지금의 5번은 오랫동안 「3번」으로 여겨졌습니다.

오늘날에는 아홉 곡을 작곡한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 이 곡을 9번이라 부릅니다. 오래된 음반이나 악보에서 「5번 신세계」라는 표기를 보더라도 같은 곡입니다.

라르고가 〈Goin’ Home〉이 되기까지

2악장의 잉글리시 호른 선율은 곧 큰 인기를 얻어 여러 기악 편곡과 노래 편곡을 낳았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Goin’ Home〉(고잉 홈)입니다.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은 국립음악원 시절 드보르자크의 미국인 제자였던 윌리엄 암스 피셔(1861~1948)이고, 만든 해는 교향곡 초연으로부터 29년 뒤인 1922년입니다.

피셔는 그 경위를 이렇게 남겼습니다. 「음악가로서 나는 위대한 작곡가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편곡을 의심의 눈으로 보는 편이다. 1922년 여름 어느 날 누군가 내 앞에 라르고의 피아노 편곡을 놓았을 때, 나는 그저 옛 생각에 그것을 쳐 보았다. 그런데 치는 동안 머릿속에 저절로 말이 떠올랐다. 「Goin’ home, I’m goin’ home.」 나는 그것을 적어 집으로 가져갔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다듬었다.」

그러니 순서는 분명합니다. 교향곡의 선율이 먼저 있었고, 노래 가사는 29년 뒤에 붙었습니다. 이 선율을 흑인 영가에서 가져왔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지만, 드보르자크는 앞에서 본 것처럼 기존 선율을 쓰지 않았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다음에 이 곡을 들을 때는 1악장 첫 주제 머리의 팡파르 악구와 2악장 첫머리의 화음을 기억해 두십시오. 둘 다 마지막 악장에서 다시 나옵니다.

녹음 기록

  • 이스트반 케르테스 지휘, 빈 필하모닉, 1961년, 데카(Decca)
  •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뉴욕 필하모닉, 1962년, 소니(Sony)
  • 라파엘 쿠벨릭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1972년, 도이치 그라모폰(DG)

자주 묻는 질문

연주 시간과 악장 구성

네 악장 전체가 약 41분입니다. 1악장 Adagio, Allegro molto(느린 서주 뒤 매우 빠르게), 2악장 Largo(아주 느리고 폭넓게), 3악장 Scherzo, Molto vivace(매우 생기 있게), 4악장 Allegro con fuoco(불같이 빠르게)로 되어 있습니다.

드보르자크의 마지막 교향곡인지

그렇습니다. 1번부터 8번까지는 모두 그 전에 쓴 곡이고, 9번 뒤로 드보르자크는 교향곡을 더 쓰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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