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해, 같은 중부 독일 땅에서 태어난 두 거장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독일을 떠나 이탈리아와 영국을 무대로 삼은 코스모폴리탄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평생 튀링겐과 작센의 좁은 땅을 벗어나지 않고 교회 음악의 한 봉우리를 세웠습니다. 한국에서 오래전부터 '음악의 아버지'라 불려 온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깊이 들여다봅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정작 작곡가보다 오르간 연주자이자 즉흥 연주의 대가로 더 유명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후 약 79년 동안 그의 음악은 공적 연주 레퍼토리의 중심에서는 물러나 있었지만, 일부 제자와 수집가,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필사본과 교육 자료로 이어졌습니다. 그를 다시 세상에 불러낸 것은 1829년 베를린에서 한 젊은 작곡가가 무대에 올린 한 편의 수난곡이었습니다.
| 본명 | Johann Sebastian Bach |
| 생몰 | 1685년 3월 31일 아이제나흐 — 1750년 7월 28일 라이프치히 (향년 65세) ※ 출생일 3월 31일은 오늘날 그레고리력 기준이며, 당시 현지에서 쓰던 구력으로는 3월 21일에 해당합니다. |
| 시대 | 후기 바로크 |
| 주요 장르 | 교회 칸타타 · 수난곡 · 오라토리오 · 건반악곡 · 협주곡 · 무반주 독주곡 (오페라 없음) |
| 작품 식별 | 바흐 작품 목록 Bach-Werke-Verzeichnis (BWV), 약 1,128곡 |
| 대표작 | [마태 수난곡] ·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 [B단조 미사] · [골드베르크 변주곡] (※ 카탈로그 기준 변동 가능) |
| 정본 자료 | Neue Bach-Ausgabe(NBA), Bach digital, Bach-Archiv Leipzig |
| 후기 바로크 음악을 집대성한 바흐의 모습(이미지 출처: christianitytoday.com) |
1. 바흐의 생애 — 음악 가문의 마지막 불꽃
바흐의 인생은 직책과 도시로 명확하게 나뉩니다. 음악적 재능이 발견된 아이제나흐·오르드루프 시기(1685~1703),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한 아른슈타트·뮐하우젠 시기(1703~1708),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도약한 바이마르 시기(1708~1717), 세속 기악의 절정을 이룬 쾨텐 시기(1717~1723), 그리고 평생의 마지막 무대가 된 라이프치히 시기(1723~1750)입니다. 헨델이 한 도시에서 다음 도시로 단절적으로 옮겨간 작곡가라면, 바흐는 한 직책에서 다음 직책으로 누적적으로 성장한 작곡가였습니다.
아이제나흐의 어린 시절과 음악 가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1685년 3월 31일, 독일 튀링겐의 작은 도시 아이제나흐(Eisenach)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현지에서 쓰던 구력으로는 3월 21일에 해당합니다. 바흐 가문은 16세기 이래 200년 넘게 수많은 연주자와 작곡가를 배출해 온 음악 가문이었고, 튀링겐 일대에서는 음악가를 곧잘 그냥 '바흐'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아버지 요한 암브로지우스 바흐는 시 음악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어린 아들에게 기초적인 바이올린과 음악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바흐의 유년기는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는 아홉 살 무렵 어머니를 잃고, 10세가 되기 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고아가 되었습니다. 이후 오르드루프(Ohrdruf)에 살고 있던 형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의 집으로 옮겨 생활하며, 교회 오르간 연주자였던 형에게서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이어갔습니다.
형 집에서 보낸 5년이 바흐의 음악 어법에 결정적이었던 이유는 단순히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형이 잠근 책장 안에 있던 남독일·북독일·프랑스·이탈리아 거장들의 악보를 어린 바흐가 달밤마다 몰래 꺼내 베껴 썼다는 일화가 첫 전기 작가 포르켈(Johann Nikolaus Forkel)의 1802년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이 시기에 바흐가 손으로 옮겨 적은 양식의 다양성이, 훗날 그가 한 곡 안에서 프랑스 서곡과 이탈리아 협주곡과 독일 푸가를 자유롭게 결합할 수 있게 한 근본 자원이었습니다.
바흐의 학습 열정은 평생 이어졌습니다. 1705년 아른슈타트 시기 그는 북독일 오르간 음악의 거장 디트리히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를 만나기 위해 뤼베크(Lübeck)까지 도보로 찾아갔습니다. 한국 자료에서는 흔히 이 일화를 '수백 km를 걸어간 여행'으로 소개하지만, 이 사건의 핵심은 거리보다 다른 데 있습니다. 바흐는 본래 4주 휴가를 받았지만 약 4개월 동안 돌아오지 않아, 1706년 2월 21일 아른슈타트 콘시스토리(교회 위원회)로부터 정식으로 문책을 받았습니다. 이 무단연장 사건의 회의록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가 음악적 욕구 앞에 직장의 규율을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1차 사료가 됩니다.
바이마르와 쾨텐 — 오르간의 거장에서 기악의 절정으로
바흐의 직업적 음악 인생은 그가 몸담았던 도시와 직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초기에는 아른슈타트(Arnstadt)와 뮐하우젠(Mühlhausen) 등지에서 오르간 연주자와 교회 음악가로 활동하며 오르간 작품에 집중했습니다. 이 시기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 BWV 565〉(작곡 시기는 학계 논쟁이 있음)와 같은 작품은 오늘날까지 오르간 레퍼토리의 핵심으로 남아 있습니다.
1708년 이후 바이마르(Weimar) 궁정에서 바흐는 궁정 오르가니스트이자 실내악 연주자로 활동하며 대위법 기법과 오르간 작곡을 정교하게 다듬었습니다. 이 시기 그는 비발디의 협주곡 악보를 입수해 직접 건반악기용으로 편곡하며 이탈리아식 리토르넬로 형식을 자기 어법에 흡수합니다. 후일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의 명료한 형식 감각은 이 학습의 직접적 결실이었습니다.
1717년 바흐는 쾨텐(Köthen) 공국의 궁정 악장(Kapellmeister)으로 초빙됩니다. 이 자리는 그의 작품 세계에 결정적 전환을 가져왔는데, 이유는 단순히 직급이 올라서가 아니라 고용주가 칼뱅파였기 때문입니다. 칼뱅파 궁정에서는 화려한 교회 음악이 거의 필요하지 않았고, 바흐는 그 시간을 모두 세속 기악곡에 쏟을 수 있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BWV 1046–1051),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BWV 1001–1006), 〈무반주 첼로 모음곡〉(BWV 1007–1012),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BWV 846–869)이 모두 이 6년 동안 탄생했습니다. 한 종교적 환경의 결핍이 어떻게 다른 장르의 황금기를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드문 사례입니다.
라이프치히 — 토마스 칸토르로서의 27년
1723년, 38세의 바흐는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Thomaskantor)로 임명되어 생애 마지막 27년을 이 도시에서 보냅니다. 흥미롭게도 라이프치히 시 의회는 바흐를 1순위로 지목하지 않았습니다. 1순위는 텔레만, 2순위는 그라우프너였고, 두 사람이 모두 거절한 끝에 바흐가 부임한 것이었습니다. 동시대 음악 시장이 바흐를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그는 토마스 학교의 음악 교육과 합창 지휘를 맡았을 뿐 아니라, 라이프치히 주요 교회 네 곳의 음악을 책임지는 도시 음악 감독 역할까지 수행해야 했습니다. 엄청난 업무량과 행정적 갈등 속에서도, 그는 거의 매 주일과 교회 절기에 맞추어 칸타타를 작곡하며 전례 음악의 새로운 표준을 세웠습니다. 부임 첫 5년 동안 작곡한 칸타타 사이클만 약 200곡에 이릅니다.
라이프치히 시기에 탄생한 〈마태 수난곡〉(BWV 244), 〈요한 수난곡〉(BWV 245),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BWV 248), 수많은 교회 칸타타와 〈B단조 미사〉(BWV 232)는 루터교 전통 위에서 인류 보편의 신앙과 고통, 희망을 노래하는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1730년대 이후 그는 전통적인 종교 칸타타 작곡을 점차 줄이고, 라이프치히의 '콜레기움 무지쿰(Collegium Musicum)' 운영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됩니다.
만년의 바흐는 건강 악화와 시력 문제에 시달리면서도 〈푸가의 기법〉(Die Kunst der Fuge, BWV 1080)과 〈음악의 헌정〉(BWV 1079) 같은 추상적인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지혜를 집대성했습니다. 흥미롭게도 〈푸가의 기법〉은 어떤 악기를 위한 작품인지 악보에 명시되지 않은 채 남아 있고, 마지막 콘트라푼크투스가 미완으로 끝납니다. 의도된 미완인지, 시력을 잃어가던 작곡가가 끝맺지 못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오늘까지도 학자들의 견해가 갈립니다. 1750년 7월 28일, 그는 65세의 나이로 라이프치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2. 바흐의 음악 세계 — 대위법의 정점
바흐는 바로크 시대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장르와 형식을 집대성하여 가장 높은 완성도에 이르게 한 작곡가입니다. 단 하나의 예외는 오페라였는데, 그는 평생 한 편의 오페라도 쓰지 않았습니다. 평생 오페라만 42편을 쓴 헨델과의 대비가 두 사람의 음악사적 위치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바흐의 진짜 영토는 여러 성부가 동시에 서로 다른 선율을 연주하면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대위법(counterpoint)이었고, 그 정점에 푸가(Fuga) 형식이 있습니다. 푸가는 하나의 주제가 여러 성부에서 차례로 등장하며 쫓고 쫓기는 듯 전개되는 형식으로, 라틴어 'fugare'(쫓아가다)에서 유래한 이름답게 긴장감과 논리적 구성이 특징입니다.
건반 음악 — 평균율과 골드베르크 변주곡
바흐의 건반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단연 〈평균율 클라비어곡집〉(Das Wohltemperierte Klavier, BWV 846–893)입니다. 1722년에 완성된 1권과 1740년대에 정리된 2권은 24개의 장조와 단조를 모두 망라한 48곡의 전주곡과 푸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흐는 이 작품의 서문에서 '잘 조율된 클라비어'를 언급하며, 다양한 조성으로 자유롭게 전조할 수 있는 조율법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한 가지 짚어두면, 한국 자료에서 흔히 '바흐가 평균율을 처음 발명했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평균율 조율 자체는 바흐 이전부터 이론가들 사이에서 논의되던 주제였고, 바흐가 한 일은 24개의 모든 조성으로 작품을 작곡하여 그 가능성을 음악적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wohltemperiert(잘 조율된)'라는 표현 자체도 오늘날의 12평균율과 정확히 같지는 않다는 견해가 현재 연구자들 사이에서 우세합니다.
말년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Variationen, BWV 988)은 하나의 아리아와 30개의 변주로 구성된 작품으로, 바흐의 상상력과 구조적 통찰, 기교적 난이도가 극대화된 걸작입니다. 단순한 베이스 선율에서 출발해 캐논, 춤곡, 토카타풍 변주 등 다양한 양식을 넘나들며, 마지막에 처음의 아리아로 돌아오는 구조는 마치 긴 영적 여정을 마치고 고향으로 귀환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기악과 실내악 — 브란덴부르크와 무반주 독주곡
쾨텐 시기에 작곡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Brandenburgische Konzerte, BWV 1046–1051)은 여섯 곡으로 이루어진 협주곡 모음입니다. 바흐는 1721년 이 작품을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크리스티안 루트비히에게 헌정했지만, 정작 그 궁정에서는 충분히 연주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변경백의 악단은 6번째 곡의 까다로운 비올라 다 감바 편성을 소화할 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 현재 연구자들의 추정입니다. 헌정 악보는 변경백 사후에야 다른 악보 더미와 함께 헐값에 매각될 뻔하다가 살아남았습니다.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BWV 1001–1006)와 〈무반주 첼로 모음곡〉(BWV 1007–1012)은 각각의 악기를 위한 독주 레퍼토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반주 없이 오로지 한 대의 악기로 다성적인 구조와 선율, 화성을 동시에 표현해야 하기에 연주자에게는 큰 도전이 되지만, 그만큼 깊은 성찰과 내면적 울림을 주는 음악이기도 합니다.
성악 음악 — 수난곡, 미사, 칸타타
바흐의 성악 작품은 루터교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단순한 교회 음악을 넘어 인류 보편의 물음과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마태 수난곡〉(St. Matthäus-Passion, BWV 244)은 마태복음 26~27장에 따른 예수의 수난 이야기를, 두 개의 합창단과 두 개의 오케스트라, 솔리스트, 복음사가(낭독자)를 통해 거대한 스케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베드로의 부인 장면에 이어지는 알토 아리아 'Erbarme dich(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에서 솔로 바이올린이 그려내는 흐느낌의 선율은 바흐 음악의 정서적 깊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B단조 미사〉(Messe in h-Moll, BWV 232)는 바흐가 여러 시기에 쓴 미사 악장을 모아 만년에 통합·정리한 작품으로, 가톨릭 미사 통상문 전체를 포괄하면서도 루터교적 신학과 바흐 특유의 대위법이 결합된 독특한 작품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루터교 작곡가가 왜 가톨릭식 라틴어 미사 통상문을 마지막 야심작으로 삼았는가입니다. 학자들은 이 작품을 특정 전례용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작곡 기법을 정리한 일종의 '음악적 유언'으로 해석합니다.
약 200곡이 현존하는 교회 칸타타는 교회력에 따른 설교와 성경 본문을 음악으로 해석한 것으로, 바흐의 신학적 깊이와 인간 이해, 그리고 일상의 신앙을 잘 보여줍니다.
3. 사후 79년의 침묵, 그리고 1829년의 부활
오늘날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워 보이는 '서양음악의 정점 바흐'라는 평가는 사실 19세기에 비교적 늦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바흐는 생전에 헨델, 텔레만 같은 동시대 작곡가들에 비해 작곡가로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주목을 받았고, 사후에는 새롭고 '자연스러운' 갈랑 양식과 고전주의 스타일에 밀려 공적 연주 레퍼토리의 중심에서는 물러나 있었습니다. 다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일부 제자와 아들들, 수집가와 음악가들 사이에서 필사본과 교육 자료로 이어졌습니다.
사후 침묵의 메커니즘은 단순했습니다. 바흐의 아들 세대(C. P. E. 바흐, J. C. 바흐)는 새 시대의 갈랑 양식이 청중에게 환영받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아버지의 어법을 학구적이고 구식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 결과 바흐 작품의 인쇄·연주 기회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그의 자필 악보는 가족 사이에 분산된 채 일부는 전쟁과 시간 속에 영구히 사라졌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서야 이른바 '바흐 르네상스'가 시작됩니다. 1802년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Johann Nikolaus Forkel)은 바흐의 첫 본격 전기를 출판하면서 "이 위대한 사람의 기억을 보존하는 것은 단순히 예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문제"라고까지 적었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829년 3월 11일, 20세의 펠릭스 멘델스존이 베를린 징아카데미에서 〈마태 수난곡〉을 부활 연주한 사건이었습니다. 바흐 사망 79년 만의 일이었고, 사실 이 공연은 원곡을 상당 부분 축약한 버전이었지만 그 효과는 폭발적이었습니다. 표는 매진됐고, 두 번째 공연이 추가됐으며, 이후 베를린의 다른 음악가들이 〈요한 수난곡〉과 다른 합창곡들을 차례로 무대에 올렸습니다.
BWV 카탈로그 자체도 이 부활의 산물입니다. 1850년 라이프치히에서 바흐 협회(Bach-Gesellschaft)가 결성되어 46권에 달하는 첫 전집 출판을 시작했고, 이 작업이 마무리된 1900년에 즈음하여 작품 전체에 통일된 번호를 부여할 필요가 제기되었습니다. 1950년 독일 음악학자 볼프강 슈미더(Wolfgang Schmieder)가 정리한 BWV(Bach-Werke-Verzeichnis) 카탈로그가 현재까지 표준으로 사용됩니다.
19세기 거장들의 헌사 중 가장 자주 인용되는 베토벤의 한마디 — "그는 Bach(시냇물)가 아니라 Meer(바다)라고 불렸어야 한다" — 의 출처는 베토벤이 1801년 4월 8일 라이프치히 호프마이스터 출판사에 보낸 편지입니다. 같은 편지에서 그는 "음악의 신성한 예술의 진정한 아버지"라고도 표현했습니다. 동시대성과 후대 평가의 비대칭이 빚어낸 한 단면입니다.
| 시기 | 도시·직책 | 대표 작품군 |
|---|---|---|
| 1685~1703 | 아이제나흐·오르드루프 | 유년·학습 시기 (작품 거의 없음) |
| 1703~1717 | 아른슈타트·뮐하우젠·바이마르 (오르가니스트) | 오르간 작품, 초기 칸타타, 〈토카타와 푸가 d단조〉 |
| 1717~1723 | 쾨텐 (궁정 악장, 칼뱅파 환경) |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무반주 첼로/바이올린〉, 〈평균율 1권〉 |
| 1723~1750 | 라이프치히 (토마스 칸토르) | 교회 칸타타 약 200곡, 〈마태 수난곡〉, 〈B단조 미사〉, 〈푸가의 기법〉 |
4. 꼭 들어봐야 할 바흐 대표 명곡
①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1권 1번 C장조 (BWV 846)
고요하게 흐르는 아르페지오로 시작하는 프렐류드와, 치밀한 대위법으로 구성된 푸가가 짝을 이루고 있는 곡입니다. 건반 악기를 배우는 이들에게는 거의 통과의례와도 같은 작품이지만, 단순한 연습곡을 넘어 조용한 기도와 같은 깊이를 지닌 음악입니다.
②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3번 G장조 (BWV 1048)
세 그룹의 현악기가 서로 얽히고 설키며 에너지 넘치는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작품입니다. 각 성부가 독립적인 선율을 연주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완벽한 구조를 형성하는, 바흐식 대위법의 기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③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BWV 1007)
첫 곡 프렐류드는 영화와 광고, 독주회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음악 중 하나입니다. 단 한 대의 첼로로 이토록 풍부한 화성과 공간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바흐의 상상력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모음곡은 19세기까지 거의 잊혀 있다가, 1890년 13세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바르셀로나의 한 헌책방에서 우연히 악보를 발견하고 평생 연구해 1936년 처음 전곡 녹음한 뒤 표준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④ 마태 수난곡 (BWV 244)
예수의 수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죄와 고통, 용서와 희망을 깊이 있게 묵상하게 만드는 대작입니다. 합창, 코랄, 아리아, 레치타티보가 정교하게 엮여 있으며, 연주 시간만 해도 약 3시간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처음 들으신다면 베드로의 부인 직후 이어지는 알토 아리아 'Erbarme dich(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부터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⑤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잔잔한 아리아와 30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듣는 이에게는 긴 여정 같은 시간을 선사합니다. 조용한 밤에 한 변주씩 천천히 감상해도 좋고,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서 들어도 좋습니다. 1955년과 1981년 글렌 굴드의 두 녹음은 같은 작품의 전혀 다른 두 얼굴을 들려주는 명연으로 자주 비교됩니다.
5. 바흐 주요 작품 목록
BWV 카탈로그 기준으로 바흐는 약 1,128곡을 남겼습니다. 아래는 입문 또는 감상 우선순위가 높은 장르별 대표곡 정리입니다.
건반 음악
| 작품 | BWV | 시기·특징 |
|---|---|---|
|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 846–869 | 1722 쾨텐 — 24개 조성의 음악적 증명 |
|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2권 | 870–893 | 1740년대 라이프치히 |
| 2·3성부 인벤션 | 772–801 | 1723 — 아들들을 위한 교육용 |
| 프랑스 모음곡 | 812–817 | 쾨텐 — 6곡 모음 |
| 영국 모음곡 | 806–811 | 쾨텐 — 6곡 모음 |
| 골드베르크 변주곡 | 988 | 1741 — 아리아와 30개 변주 |
| 이탈리아 협주곡 | 971 | 1735 — 하프시코드 한 대를 위한 협주곡 |
기악·협주곡
| 작품 | BWV | 시기·특징 |
|---|---|---|
|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 1046–1051 | 1721 헌정 — 6곡 모음, 다양한 편성 실험 |
| 관현악 모음곡 | 1066–1069 | 3번에 'G선상의 아리아' 포함 |
|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 1001–1006 | 1720 — 파르티타 2번에 '샤콘' |
| 무반주 첼로 모음곡 | 1007–1012 | 쾨텐 — 6곡 모음 |
| 바이올린 협주곡 | 1041, 1042, 1043 | 2대를 위한 d단조 협주곡 포함 |
성악·합창
| 작품 | BWV | 시기·특징 |
|---|---|---|
| 마태 수난곡 | 244 | 1727 — 1829년 멘델스존 부활 연주 |
| 요한 수난곡 | 245 | 1724 |
|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 248 | 1734 — 6부 연작 |
| B단조 미사 | 232 | 1749 완성 — 마지막 합창 야심작 |
| 마니피카트 | 243 | 1733 D장조 개정판 |
| 교회 칸타타 (대표) | 4, 80, 140, 147, 211 등 | 약 200곡 현존, BWV 211은 '커피 칸타타' |
오르간·말년의 추상 작품
| 작품 | BWV | 특징 |
|---|---|---|
| 토카타와 푸가 d단조 | 565 | 바흐 작곡 여부 학계 논쟁 있음 |
| 파사칼리아와 푸가 c단조 | 582 | 오르간 변주의 정점 |
| 음악의 헌정 | 1079 | 1747 — 프리드리히 대왕의 주제로 |
| 푸가의 기법 | 1080 | 미완 — 마지막 콘트라푼크투스 중단 |
자주 묻는 질문
Q. 바흐는 왜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나요?
한국에서 바흐는 오래전부터 '음악의 아버지'로 불려 왔습니다. 다만 이 표현은 영미·독일어권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별칭이라기보다, 한국과 일본식 음악 교육 문화 안에서 친숙하게 굳어진 표현으로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후기 바로크의 두 봉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음악사적 위상을 한국 청중에게 쉽게 전달하는 별칭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Q. 바흐와 헨델은 만난 적이 있나요?
같은 해(1685년) 같은 중부 독일 지역(아이제나흐와 할레)에서 태어났지만, 두 사람이 직접 만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바흐가 두 차례 헨델을 찾아가려 했으나 헨델이 마침 영국에 있거나 다른 도시로 떠난 뒤여서 어긋났다는 일화가 양측 자료에 함께 전해집니다.
Q. 바흐 음악은 왜 한동안 잊혔다가 다시 발견되었나요?
바흐가 1750년 사망한 직후부터 유럽 음악계는 '갈랑 양식'으로 빠르게 옮겨갔고, 바흐 본인의 아들들조차 아버지의 어법을 구식으로 여겼습니다. 다만 바흐가 완전히 잊힌 것은 아니며, 일부 제자와 수집가,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필사본과 교육 자료로 이어졌습니다. 1829년 3월 11일 베를린 징아카데미에서 20세의 펠릭스 멘델스존이 〈마태 수난곡〉을 부활 연주하면서 본격적인 '바흐 르네상스'가 시작되었습니다.
Q. 바흐 작품번호 BWV는 무엇인가요?
BWV는 'Bach-Werke-Verzeichnis(바흐 작품 목록)'의 약자로, 1950년 독일 음악학자 볼프강 슈미더가 정리한 카탈로그입니다. 작곡 연도순이 아니라 장르별로 번호를 부여한 점이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마태 수난곡〉은 BWV 244,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1번〉은 BWV 846,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은 BWV 1007입니다.
Q. 바흐 입문에 추천하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건반 작품으로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1번 C장조 BWV 846〉의 프렐류드와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의 아리아, 기악곡으로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 BWV 1048〉과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BWV 1007〉의 프렐류드, 성악곡으로는 〈마태 수난곡 BWV 244〉의 'Erbarme dich' 아리아가 입문에 적합합니다. 깊이 들어가려면 〈B단조 미사 BWV 232〉와 〈푸가의 기법 BWV 1080〉을 권합니다.
Q. 바흐의 가장 큰 음악사적 공헌은 무엇인가요?
바로크 시대의 거의 모든 장르(오페라 제외)와 형식을 집대성해 가장 높은 완성도로 끌어올린 점, 그리고 푸가와 대위법의 가능성을 〈평균율 클라비어곡집〉과 〈푸가의 기법〉을 통해 끝까지 밀어붙인 점입니다. 베토벤이 그를 '화성의 원조(Urvater der Harmonie)'라 부른 데서 보듯, 바흐의 어법은 후대 서양 음악 전체의 화성·구조 사고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바흐의 음악은 종종 '거대한 성당 건축'에 비유됩니다. 건축가가 수많은 돌과 재료를 계산해 쌓아 올려 웅장한 성당을 완성하듯, 바흐는 셀 수 없이 많은 선율과 화성, 리듬이라는 재료를 완벽한 논리와 질서 속에서 결합하여 하나의 음악적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 성전의 아름다움은 단지 기술적 완벽함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은 인간성과 종교적 정신, 특히 루터교 신앙에서 비롯됩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동시대인들이 알아본 것은 그의 일부였을 뿐이며, 그의 음악은 사후 79년 동안 공적 연주 레퍼토리의 중심에서 물러나 있다가 한 젊은 작곡가의 부활 연주에 의해 다시 넓은 청중 앞에 놓였습니다. 오늘 처음 바흐를 만나신다면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의 프렐류드와 〈평균율〉 1권 1번부터 시작해 보시고, 이미 그의 음악과 친숙하시다면 〈B단조 미사〉의 'Et incarnatus est'와 〈마태 수난곡〉의 'Erbarme dich'에서 그가 인간의 깊이를 어떻게 음악으로 옮겼는지 확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음악의 아버지가 바흐이군요! 솔직히 음악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후무입니다.아무튼 좋은 정보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마무리 잘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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