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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사 5] 바로크 음악의 특징과 역사: 오페라부터 기악곡까지 완벽 정리

피렌체의 한 저택에 모인 인문학자와 음악가들이 고대 그리스 비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 불렸을 것이라 믿고 새로운 가창 양식을 궁리했습니다. 이 믿음에서 출발한 실험이 훗날 오페라라는 장르를 낳았습니다. 바로크 시대는 오페라, 오라토리오, 칸타타 같은 성악 양식과 협주곡, 소나타, 무곡 모음곡, 푸가 같은 기악 형식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오늘날 우리가 쓰는 장조와 단조 체계가 자리 잡은 서양음악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기입니다.

바로크 음악 한눈에 보기
  • 시기: 1600년부터 1750년경(J.S. 바흐 사망)까지, 이탈리아에서 시작
  • 오페라 탄생: 피렌체 카메라타의 모노디 실험에서 시작,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1607)가 예술형식으로 완성
  • 기악의 발달: 통주저음·조성체계 확립, 코렐리와 비발디가 협주곡을 표준화
  • 성악 3대 장르: 오페라·오라토리오(헨델)·칸타타(바흐)
  • 정점: 같은 해 태어났지만 평생 만나지 못한 바흐와 헨델

바로크 음악의 탄생과 특징

바로크라는 말의 어원은 사실 하나로 못박기 어렵습니다. 흔히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바로코에서 나왔다고 소개되지만, 이는 여러 학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몽테뉴가 기괴하고 쓸데없이 복잡하다는 뜻으로 썼던 중세 스콜라 논리학 용어 바로코에서 나왔다는 설, 화가 페데리코 바로치의 이름에서 나왔다는 설도 함께 거론됩니다. 다만 처음에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기괴하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다는 점은 여러 설이 공통적으로 짚는 대목입니다. 이 부정적 평가는 1855년 역사가 야콥 부르크하르트가 바로크 예술가들이 디테일을 경멸하고 남용했다고 혹평하며 이어지다가, 1888년 하인리히 뵐플린이 저서 르네상스와 바로크에서 이 시대 특유의 극적이고 표현적인 양식을 정색하고 다루면서 비로소 정당한 예술사조로 재평가받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1600년부터 1750년경,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사망 연도까지 지속된 바로크 시대는 웅장한 규모, 화려한 장식, 대비를 통한 극적인 긴장감을 특징으로 합니다.

통주저음과 조성 체계의 확립

바로크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다소 과장되더라도 생생하게 표현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새롭고 화려한 화성과 복잡한 음률이 발달했습니다. 음악 형식과 양식 면에서도 확고한 흐름이 형성되었는데, 대표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대조와 긴장감: 성악 대 기악, 독주 대 합주, 소규모 대 대규모 합주처럼 서로 대조되는 음향 매체를 교대로 배치해 극적인 긴장감을 추구했습니다.
  • 바소 콘티누오(통주저음): 베이스 파트를 첼로, 바순 같은 저음 악기와 쳄발로, 오르간 같은 화음 악기로 보강해 음악의 뼈대를 튼튼히 다졌습니다. 악보에는 베이스 음표 아래에 숫자만 적어 넣는 숫자 저음 기보법을 썼고, 연주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화음을 즉흥적으로 채워 넣으며 연주 기량을 뽐냈습니다.
  • 조성 체계 확립: 기존의 복잡한 선법에서 벗어나 장조와 단조를 쓰는 조성 체계가 확립되었습니다. 1722년 장 필립 라모는 화성론을 저술해 근음저음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며 현대 화성학의 기초를 세웠고, 이 책 덕분에 훗날 음악의 뉴턴이라 불리게 됩니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즐기는 연주자들
바로크 시대의 음악 연주 모습(출처: biograview.com)

기악 음악의 눈부신 발달과 협주곡의 완성

17세기에 들어서며 악기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음악가들은 악기 고유의 음색과 성능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창조적 욕구를 채워 줄 정교한 명기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아마티, 과르네리, 스트라디바리 같은 명장들이 최고의 바이올린을 만들어내면서 현악기가 기악음악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건반악기로는 쳄발로, 클라비코드, 오르간이 널리 쓰였습니다. 목관악기인 오보에, 바순, 플루트가 점차 개량되어 쓰인 반면 리코더는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펫, 호른, 트롬본 같은 금관악기도 대규모 합주에 힘을 보탰고, 1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실내악과 오케스트라의 구분이 정형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기악 양식으로는 협주곡, 소나타, 무곡 모음곡이 유행했고 이를 전개하는 핵심 기법으로 푸가가 널리 쓰였습니다. 무곡 모음곡은 같은 조성의 짧고 대조적인 춤곡들(알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지그 등)을 엮어 연주했습니다. 화음을 반복하는 샤콘느, 베이스 라인을 반복하는 파사칼리아, 일정한 음형을 음높이만 바꿔 반복하는 동형진행 같은 독특한 바로크적 변주 기법도 만개했습니다.

협주곡이라는 장르가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다듬어진 데는 두 사람의 공이 특히 큽니다. 아르칸젤로 코렐리는 독주 악기군과 합주 악기군을 대비시키는 콘체르토 그로소를 직접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정교하게 다듬어 후대가 따를 표준적인 모델로 완성했고, 트리오 소나타라는 장르 자체도 그의 손을 거쳐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안토니오 비발디는 이 흐름을 이어받아 독주 협주곡을 널리 통용되는 관용어법으로 완성했는데, 빠름과 느림, 빠름을 오가는 3악장 구성과 주제가 되풀이해 돌아오는 리토르넬로 형식이 흔히 그의 손에서 정착된 것으로 이야기됩니다. 그는 사계가 포함된 화성과 창의의 시도를 비롯해 500곡이 넘는 협주곡을 남겼습니다.

개신교 회중 찬송가인 코랄 선율을 바탕으로 한 코랄 전주곡은 바로크 오르간 음악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페라의 탄생, 피렌체 카메라타에서 몬테베르디까지

선율 하나에 단순한 화음 반주가 따르는 모노디라는 혁신적인 가창 스타일이 등장하면서, 장소와 목적에 따라 세 가지 거대한 성악 장르가 비슷한 시기에 발전했습니다. 이 모노디를 낳은 것이 1570년대 후반 피렌체에서 조반니 데 바르디 백작의 저택에 모인 인문학자, 음악가, 시인들의 모임, 이른바 피렌체 카메라타입니다. 갈릴레오의 아버지인 빈첸초 갈릴레이, 줄리오 카치니, 오타비오 리누치니, 야코포 페리 등이 이 모임에 드나들었습니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 비극이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 불렸을 것이라 믿었고, 당대 복잡한 다성음악이 가사의 정서를 흐리게 만든다고 비판하며 선율과 단순한 반주만으로 가사를 또렷이 전달하는 양식을 고안했습니다. 다만 카메라타가 오페라를 직접 작곡한 것은 아니며, 이들이 다져 놓은 양식적 토대 위에서 페리와 리누치니가 오페라라는 장르를 실제로 탄생시켰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이탈리아어로 작품이라는 뜻을 지닌 오페라는 일상, 신화, 역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의상, 연기, 무대장치, 무용 등 표현 가능한 모든 요소를 동원하는 대규모 종합 무대 예술입니다. 1598년에 작곡된 자코포 페리의 다프네가 최초의 오페라로 알려져 있으나 악보가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는 카치니와 페리가 각각 작곡한 에우리디체입니다.

이 초기 오페라들이 걸음마 단계였다면, 오페라를 하나의 완성된 예술 형식으로 끌어올린 첫 걸작은 1607년 만토바에서 초연된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입니다. 오르페오는 최초의 오페라는 아니지만, 오늘날까지 정기적으로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꼽힙니다. 이전까지 실험적 수준에 머물렀던 오페라라는 장르에 당대 음악이 지닌 모든 자원을 온전히 쏟아부은 첫 시도라는 점에서,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는 오페라사의 진정한 분수령으로 평가받습니다.

오라토리오와 칸타타, 성악 장르의 확립

오라토리오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기도실(오라토리)에 모여 성경을 읽고 기도하던 모임에서 유래했습니다. 종교적인 줄거리를 독창, 중창, 합창,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대규모 서사적 악곡입니다. 음악 구성은 오페라와 비슷하지만 연기, 의상, 무대장치가 없으며 합창의 비중이 훨씬 큽니다. 특히 해설자가 등장해 극의 진행을 설명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초기에는 라틴어 오라토리오가 중심이었으나 점차 자국어로 불리는 오라토리오가 대세가 되었습니다. 카리시미(예프타, 요나), 스카를라티(최초의 살인), 텔레만 등을 거쳐, 조지 프레드릭 헨델에 이르러 오라토리오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헨델의 메시아와 이스라엘인은 이 장르의 영원한 걸작입니다.

이탈리아어 노래하다에서 유래한 칸타타는 독창, 중창, 합창과 기악 반주로 이루어진 다악장 형식의 성악곡입니다. 오라토리오에 비해 규모가 작아 해설자가 없으며 독창(아리아)이 중시됩니다. 내용에 따라 귀족의 결혼이나 탄생을 축하하는 세속 칸타타와 예배용으로 쓰인 교회 칸타타로 나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A. 스카를라티가 800곡이 넘는 세속 칸타타를 남기며 정점에 달했고, 독일에서는 코랄 멜로디를 바탕으로 한 교회 칸타타가 발전했습니다. 독일 칸타타는 북스테후데, 텔레만을 거쳐 200여 곡이 넘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교회 칸타타를 통해 음악사적 최고봉에 올랐습니다.

후기 바로크의 정점, 바흐와 헨델

바로크 음악을 빛낸 위대한 작곡가로는 몬테베르디, 카리시미, A. 스카를라티, 쿠프랭, 라모, 퍼셀, 북스테후데, 파헬벨, 텔레만이 있지만, 이 시대 음악을 정점으로 끌어올린 두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조지 프레드릭 헨델입니다. 둘은 공교롭게도 1685년 같은 해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평생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1719년 바흐가 쾨텐에서 헨델이 머물던 할레까지 35킬로미터를 직접 찾아갔지만 헨델은 이미 떠난 뒤였고, 이후에도 만남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정점을 대표하는 방식은 서로 달랐습니다. 바흐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나 푸가의 기법처럼 종교음악과 대위법의 정교함으로 후기 바로크의 극한을 보여 줬습니다. 헨델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같은 대중적인 극음악으로 이탈리아 오페라를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영국식 오라토리오라는 장르를 새로 만들어 냈습니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성취가 나란히 놓이면서, 바로크 음악은 비로소 하나의 시대를 완성하고 곧 이어질 고전주의로 자리를 넘겨주게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바로크라는 말은 정말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에서 온 건가요?

그건 여러 학설 가운데 하나일 뿐, 확정된 정설은 아닙니다. 몽테뉴가 억지스럽고 쓸데없이 복잡하다는 뜻으로 썼던 스콜라 논리학 용어 '바로코'에서 나왔다는 설도 힘을 얻고 있고, 화가 페데리코 바로치의 이름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어감으로 쓰이던 이 말은 1855년 야콥 부르크하르트가 혹평했지만, 1888년 하인리히 뵐플린이 재평가하면서 정당한 예술사조로 자리 잡았습니다.

Q. 피렌체 카메라타가 오페라를 만든 건가요?

정확히는 오페라의 씨앗을 뿌린 쪽에 가깝습니다. 조반니 데 바르디 백작의 저택에 모이던 이 인문학자·음악가 모임은 고대 그리스 비극이 노래로 불렸다고 믿고, 복잡한 다성음악이 가사를 흐린다고 여겨 단순한 반주 위에 선율 하나를 얹는 모노디 양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양식적 토대를 실제 오페라로 완성한 것은 카메라타 자체가 아니라, 이 모임에 드나들던 작곡가 야코포 페리와 시인 오타비오 리누치니였습니다.

Q.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가 최초의 오페라인가요?

아닙니다. 최초의 오페라는 그보다 9년 앞선 1598년 페리의 다프네지만, 지금은 악보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 악보는 1600년 페리·카치니의 에우리디체입니다. 오르페오(1607)가 갖는 진짜 의미는 최초라는 데 있지 않고, 아직 실험 단계에 머물던 이 장르에 당대 음악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완성도 높은 예술로 끌어올린 첫 사례이자, 지금까지도 무대에 꾸준히 오르는 오페라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라는 데 있습니다.

Q. 코렐리와 비발디는 협주곡이라는 형식을 처음 만든 사람들인가요?

발명자라기보다는 완성자에 가깝습니다. 코렐리는 독주군과 합주군을 대비시키는 콘체르토 그로소뿐 아니라 트리오 소나타까지 정교하게 다듬어 후대가 따를 본보기로 만들었고, 비발디는 독주 협주곡을 하나의 관용어법으로 통합해 완성했습니다. 빠르고 느리고 빠른 3악장 리토르넬로 짜임새가 비발디의 손에서 표준으로 굳어졌다는 이야기가 흔히 따라붙지만, 이는 통념으로 전해지는 설명이지 1차 자료로 확정된 사실은 아닙니다.

Q. 바흐와 헨델은 실제로 만난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1685년 같은 해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두 사람의 인생은 끝내 겹치지 않았습니다. 1719년 바흐가 쾨텐에서 할레까지 35킬로미터를 직접 찾아간 적이 있지만 헨델은 이미 자리를 비운 뒤였고, 이후 다시 시도한 만남도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Q. 오라토리오와 오페라는 어떻게 다른가요?

음악을 짜는 방식 자체는 비슷하지만, 오라토리오에는 무대장치나 의상, 연기가 없고 합창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야기를 이어 주는 해설자가 등장한다는 점도 차이입니다. 애초에 기도 모임에서 출발한 만큼 종교적인 줄거리를 다루는 경우가 많았고, 이후 헨델의 손을 거쳐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완성됐습니다.

Q. 통주저음은 정확히 어떤 원리로 연주됐나요?

악보에는 저음 선율 음표만 적혀 있고, 그 아래 숫자로 화음을 암시해 두는 방식이었습니다. 연주자는 이 숫자를 보고 어떤 화음을 채워 넣을지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판단해야 했습니다. 정해진 답이 없다 보니 연주자의 즉흥 감각과 기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