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낭만주의 오페라의 전성시대를 열고, '음악극(Musikdrama)'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시한 거장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의 생애와 작품, 그리고 음악사적 업적을 간략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불안한 유년기와 음악적 각성
1813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바그너는 생부가 누구인지에 대한 출생의 비밀이 얽혀 있는 등 다소 불안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웠으나 큰 재능을 보이지 못했고, 오히려 문학과 연극 분야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15세 때 게반트하우스 연주회에서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고 엄청난 감동을 받아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하다가 토마스 교회의 음악감독에게 작곡법을 정식으로 배우며 피아노 소나타, 환상곡, 서곡, 교향곡 등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18세에는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해 음악과 철학을 공부했으며, 1832년에는 직접 대본을 쓴 첫 오페라 《결혼》의 작곡을 시도하기도 했다. 1833년 뷔르츠부르크 극장의 합창 지휘자로 일하며 프랑스의 '구출 오페라(Rescue opera)'와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 양식을 흡수하며 창작의 기반을 다졌다. 사생활 면에서는 여배우 미나 플라너와 결혼했으나 순탄치 않아 이혼하게 되고, 훗날 절친한 동료였던 프란츠 리스트의 딸 코지마(Cosima)와 재혼하게 된다.
'총체 예술'의 창시와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
바그너는 본래 극작가를 꿈꿨기 때문에, 시(대본), 음악, 연기, 무대 미술이 완벽하게 하나로 융합된 '총체 예술(Gesamtkunstwerk)'을 이상향으로 삼았다. 교향곡, 실내악 등 다양한 장르를 골고루 남긴 다른 작곡가들과 달리, 바그너는 일평생 '오페라(음악극)'라는 한 장르에만 집요하게 주력했다. 그는 남의 대본에 곡만 붙이던 기존 관행을 깨고, 자신이 직접 대본을 쓰고 작곡과 무대 연출까지 모두 총괄했다.
게르만 신화와 초자연적인 영웅 전설을 소재로 한 그의 음악극은 관객에게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다. 그는 자신의 웅장한 작품을 이상적으로 상연하기 위해, 오케스트라 피트를 무대 아래로 깊숙이 숨겨 연주자의 모습이 관객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도록 설계한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을 직접 고안하여 건립했다. 그 결과 바그너는 '바그네리안(Wagnerian)'이라 불리는 열성 추종자들을 거느리며 당대 음악계의 절대적인 군주로 군림했다.
낭만 오페라에서 '음악극'으로의 진화
바그너의 초기작인 《요정》, 《연애 금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베버의 영향을 받은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의 틀을 따랐다. 이후 그랜드 오페라 요소를 가미한 《탄호이저》와 낭독체적 아리오소를 광범위하게 사용한 《로엔그린》을 거치며 점차 자신만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중기 이후 바그너는 번호로 나뉘어 끊어지던 기존의 오페라 방식을 버리고 '음악극(Musikdrama)'이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경계를 허물고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이 끊기지 않고 흐르는 '무한 선율(Unendliche Melodie)'을 도입했다. 또한, 극 중의 특정 인물, 사물, 감정을 상징하는 짧은 선율인 '주도 동기(Leitmotif, 라이트모티프)'를 오케스트라 전반에 거미줄처럼 엮어 넣어 음악과 극의 연속성을 완벽하게 일치시켰다.
바그너의 주요 걸작들
-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세 켈트족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비극적 사랑 이야기다. 해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극단적인 반음계주의(트리스탄 화음)를 사용하여 현대 음악의 문을 연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1868년에 완성된 바그너의 유일한 희극 오페라다. 독일의 민족주의적 자긍심이 짙게 배어 있어 국가적 행사나 축제 때 빈번하게 연주된다.
- 《니벨룽겐의 반지》: 1853년부터 1874년까지 무려 20여 년에 걸쳐 완성한 바그너 예술의 최고봉이다.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 대작은 서막인 <라인의 황금>과 본편 3부작(<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구성되어 총 4일에 걸쳐 연속 상연되도록 기획되었다.
- 《파르지팔 (Parsifal)》: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으로 성배 전설과 희생을 통한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기독교와 불교적 철학이 혼합된 짙은 종교적 신비주의를 띠며, 바그너 스스로 '무대신성축전극'이라 명명했다.
음악사적 공헌과 20세기 음악으로의 교두보
바그너가 구사한 압도적인 관현악적 음색, 주도 동기의 치밀한 전개, 그리고 전통적인 화성학의 규칙을 무너뜨리는 극단적인 반음계주의는 19세기 후기 서양 음악사에 거대한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특히 그가 시도한 조성의 파괴는 후배 작곡가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어, 20세기의 무조성 음악(Atonal music)과 12음 기법이 탄생하는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다.
1883년 베네치아에서 생을 마감한 바그너의 가장 위대한 공헌은, 단순한 귀의 즐거움을 넘어서 모든 예술 장르가 통합된 '총체 예술작품(음악극)'을 창시하여 오페라 역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거대한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