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18세 때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해 음악과 철학을 공부했고, 1832년에는 직접 대본을 써 오페라 결혼식을 발표했으며 교향곡도 작곡했다. 1833년에는 뷔르츠부르크에서 합창을 가르쳤고, 프랑스 구원 오페라와 독일 낭만 오페라의 창작에 주력했다. 1836년에는 미나 플라너라는 여배우를 만나 결혼했으나 나중에 이혼하고, 친구인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 재혼을 했다.
바그너는 원래 음악가가꿈아니라 극작가가 꿈이었기 때문에 음악, 내용, 극, 연기, 무대가 어우러진 총체예술작품을 만들고 싶어 했다. 바그너는 교향곡, 피아노 소나타, 현악 4중주 같은 다양한 편성의 작품을 고루 쓴 음악가들과 달리 일평생 음악극이라는 한 장르에만 주력한 음악가이자 극작가이며 연출가였다. 그래서 바그너는 이를 위하여 오페라의 음악뿐만 아니라 대본, 무대장치를 스스로 만들었고 오케스트라는 아래에 있고 연주자만 보이는 극장 구조도 직접 고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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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가 설계한 바이로이트 오페라하우스 단면도 |
바그너의 초기 오페라는 전통적인 낭만 오페라의 유형을 따랐다. 일부만 남아있는 그의 첫 작품 [결혼]과 1833년에 작곡한 [요정], 1834년에 작곡한 [금지된 사랑], 전설적인 내용의 [방랑하는 네델란드인]도 베버의 양식을 따른 낭만 오페라이다. [연애금지]는 독일 낭만 오페라이지만 도니제티의 영향이 나타난다. 바그너는 이 작품에서 순환동기를 사용해 회상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앞으로 있을 그의 음악극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라이트모티브의 출연을 연상케 해준다. [탄호이저]는 그랜드 오페라적인 요소를 독일 낭만 오페라에 혼합한 작품이다. [탄호이저]에서 바그너는 낭독체적인 아리오소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개념은 베버의 오페라 [오이리안테]에서도 발견되지만 바그너 음악의 새로운 특징이기도 하다. 낭독체적인 노래는 그의 후기 오페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며 바그너는 이러한 형태의 음악을 대화체 노래라고 불렀다. 리스트의 지휘로 바이마르에서 초연한 [로엔그린]은 독일 낭만 오페라의 마지막 작품이자 바그너의 음악극을 예견해주는 작품이다.
한편, 바그너는 그동안의 낭만 오페라 대신 음악극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음악극은 레치타티보, 아리아, 중창, 합창 등 각각의 분리된 음악의 구성요소로 전개하는 오페라와 달리 음악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이 연속성은 라이트모티프를 통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된다. 라이트모티프는 끊이지 않는 선율, 극의 내용에 따라 일관되게 적용되는 조성, 고정적인 악기의 사용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하여 작품 속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바그너가 사용한 관현악적 음색, 주제와 동기의 진행, 화성과 조성 등은 19세기 후기 음악에 변화를 가져왔고 20세기 음악의 출현을 앞당겼다. 특히 조성 처리와 반음계주의는 복합조성 내지는 무조성에 접근하여 20세기의 12음열주의, 범조성, 무조음악의 탄생에 기초가 되었다. 1883년에 생을 마감한 바그너의 음악사적 공헌은 종합 예술작품으로서의 오페라 음악극을 창시하여 오페라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오페라에 사용된 다양한 기법이 20세기 새로운 음악 사조의 출현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