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요제프 하이든의 생애와 작품에 대하여 살펴보는 글이다.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은 당시 헝가리 영토이던 로라우에서 마차 수리공 아버지 밑의 12남매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집이 가난해 삼촌 집에 가서 살게 된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인 그는 1740년에 빈으로 상경해 슈테판 대성당의 소년 성가대에서 활동하다가 변성기가 오자 하이든은 공연전 친구의 머리를 자르고 쫓겨나게 된다. 미성의 소년들은 변성기가 오면 여지없이 쫓아내야 하는 관례가 있었다.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은 당시 헝가리 영토이던 로라우에서 마차 수리공 아버지 밑의 12남매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집이 가난해 삼촌 집에 가서 살게 된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인 그는 1740년에 빈으로 상경해 슈테판 대성당의 소년 성가대에서 활동하다가 변성기가 오자 하이든은 공연전 친구의 머리를 자르고 쫓겨나게 된다. 미성의 소년들은 변성기가 오면 여지없이 쫓아내야 하는 관례가 있었다.
그후 하이든은 거리의 악사 생활을 하며, 유명한 오페라 대본작가 메타스타시오의 집에서 하숙을 했다. 힘들고 고된 생활을 하던 하이든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1761년 형가리 대귀족인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정악단 부악장으로 취직한 것이다. 5년 후 악장이 사망하면서 자연스레 악장 자리를 물려받은 하이든은 30년 넘게 에스테르하지(Esterhazy) 가문을 위해 수많은 곡을 작곡했다. 이 시대는 명곡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늘 신곡만 무대에 올렸기에 하이든은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하이든은 일주일에 두 편의 교향곡을 제출해야 할 의무가 있었는데, 하이든은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창조적 음악가였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동시대의 작곡가보다 교향곡을 다양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빈에서 멀리 떨어져 최신 유행을 받지 않은 채 생활했기 때문에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입힐 수 있었던 것이다.
1790년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니콜라우스가 죽고 그 뒤를 안톤이 승계했는데. 그는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가 궁정악단을 해체해버리자 하이든은 악장이라는 직함만 남겨 둔 채 사실상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된다. 그때 영국의 음악 기획자 요한 잘로몬과의 만남을 제기로 1791년부터 1792년, 1794년부터 1795년에 런던에서 잇달아 연주회를 열어 신작 교향곡을 초연했다. 당시 콘서트는 지금과 달리 신곡만을 연주하는 자리였다.
1795년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주인이 바뀌게 되는데, 새로운 주인은은 궁정악단을 부활시키며 하이든을 궁정악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1804년까지 근무한 이후 빈에서 여생을 보냈는데, 1809년 나폴레옹이 빈을 침공하던 때 자택에서 77세 나이로 사망했다.
하이든은 고전주의 양식을 발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하이든의 엄청난 성과는 거의 모든 음악 장르에 걸쳐 있다. 특히 교향곡과 현악4중주라는 장르를 확립하였다. 104곡 이상의 교향곡을 작곡한 하이든의 교향곡에는 바로크, 전고전주의, 고전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적 요소가 전부 들어 있다. 교향곡에 나타난 하이든의 창작기법과 실험정신은 교향곡을 고전음악의 최고 위치에 올려 놓았고, 그를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게 했다. 그의 초기 교향곡은 우아함과 기지가 넘쳐, 듣는 이를 사로잡았다. 특히, 45번 고별 교향곡을 통해 에스테르하지 후작에게 궁정단원들이 탈진상태라 휴가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또한 놀람교향곡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세상을 떠난 후, 요한 잘로몬이 런던으로 하이든을 초청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하이든은 마지막 교향곡 104번을 비롯해 12곡의 교향곡을 썼다. 각 악기파트의 독립적이고 대등한 진행이 완성되어 악기 고유음색이 되살아난 교향곡들이었다.
또한 하이든은 특히 현악4중주 작곡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그가 남긴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현악4중주의 아버지/대가'라고 불리운다. 바이올린 2대, 비올라, 첼로로 이루어진 현악4중주 형식은 그가 음악적 주장을 전개하고 깊은 정서를 표현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지니고 있는 소리의 특징에 능통하고 이들 소리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화음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 그가 남긴 83개의 현악4중주는 장르 발전사의 일련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초기에는 디베르멘토나 세레나데와 유사했으나, 후기에는 이 장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데 비관습적 화성의 연결은 아주 은밀한 효과를 자아낸다.
그리고 하이든은 20개의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 장학퀴즈 오프닝 곡으로 사용된 트럼펫 협주곡은 론도형식으로 경쾌하고 밝은 느낌을 준다. 또한 원래 협주곡에서는 좀처럼 변주곡 형태를 쓰지 않는데, 오보에 협주곡 3악장에서는 변주곡 형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밖에도 하이든은 15개의 오페라, 12개의 미사곡, 47개의 건반소나타, 29개의 건반 트리오, 126개의 바리톤 트리오 등을 만들었다.
잘 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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