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e Here to Get Search Results !

체코 음악의 아버지 스메타나(Bedřich, Smetana)의 생애와 음악

 체코의 작곡가, 지휘자, 비평가 그리고 체코 음악의 아버지로 알려진 베드르지히 스메타나(Bedřich, Smetana, 1824-1884)의 생애와 음악을 살펴보자고 한다.

 

  스메타나는 당시 오스트리아 지배를 받고 있었던 체코의 프라하 동쪽에 위치한 소도시 리토미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맥주 조장을 운영하는 여유 있는 집안의 가장이였으며 음악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음악가였다. 스메타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4살이 되었을 때부터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6살 때에는 지역 학생 음악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만큼 음악적 재능이 있었다.

 

  1834년 노이하우스를 시작으로 이글라우, 도이치 브로드, 1839년 프라하의 김나지움에서 학교를 다녔으나 잘 적응하지는 못했다. 16세 학교를 그만둔 스메타나는 친구들과 함께 연주할 소품곡을 직접 편곡하고 피아노곡을 작곡하였는데,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는 진정성이 있었다. 그가 일기에 썻듯 하나님의 은총과 도움으로 프란츠 리스트의 기법과 모차르트의 작곡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되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스메타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미지입니다.
스메타나의 모습

 

  1884년 프라하의 가장 유명한 음악학교의 원장인 프로크슈(Joseph Proksch)에게 작곡을 배우게 되는데, 이는 스메타나가 작곡가로서 발전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1848년 스메타나는 주정부에 음악학원 설립 인가를 신청하지만 재정이 부족하게 되자 당시 젊은 예술가를 후원했던 리스트에게 편지를 보내 400길더를 빌려줄 것과 자신의 악보를 출판할 수 있도록 출판사를 소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리스트는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은 거절하지만, 스메타나를 격려하며 출판사를 소개해주는 것을 계기로 스메타나의 리스트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이 커지게 되었다. 그해 음악학원 설립이 승인이 되자 스메타나는 첫사랑이 카타리나(Kateřina Smetanová, 1827-1859)와 결혼을 하여 네 딸을 낳았지만 그중 세 딸은 어려서 사망했하였다.

 

  혁명 실패 후의 가혹한 억압이 시작되자 스메타나는 1856년부터 스웨덴의 예테보리에 5년간 머물게 된다. 18594월 휴가를 보내기 위해 보헤미아로 가는 길에, 혹독한 날씨로 인해 폐결핵을 앓고 있던 아내가 사망하게 된다. 186036세의 스메타나는 베티나 페르디난디와 재혼하였지만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다.

 

  오스트리아 정부의 탄압이 느슨해지자 다시 체코의 독립운동이 활발해지자 스메타나는 1861년 귀국길에 올랐다. 프라하에 당도한 그는 애국심을 고취하는 곡들을 작곡하며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단숨에 체코의 대표 작곡가로 발돋움했다.

 

  1862년 체코슬로바키아 국민극장의 전신인 임시극장이 프라하에 건립되자 이 극장을 위해 1866년 발표한 민족주의 오페라 <팔려간 신부>를 공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이 가극장의 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프라하에  위치한 스메타나 박물관을 볼 수 있는 이미지입니다.
프라하에 있는 스메타나 박물관

  6곡의 교향시로 이루어진 <나의 조국>1872년에서 1879년까지 만들어진 모음곡으로 청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체코의 독립을 바라는 절절한 마음을 담아 완성한 곡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제2몰다우는 매우 인기가 있다. 남보헤미아의 숲에서 흘러나와 프라하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몰다우강이 마침내 엘베강과 만나는 모습을 환상적으로 그려내며 애국심을 표현했다.

 

  스메타나는 체코의 국민 음악가로서 명성이 자자했지만 개인적인 불행이 찾아왔다. 매독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지휘자 자리에서 쫓겨나듯 물러나야 했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청력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모든 공적 활동을 중지하고 프라하 근교에서 머무는 동안에도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계속되었다. 그의 대표작 <나의 조국>을 완성하고, 자신의 삶의 자서전적인 현악 4중주 <나의 생애로부터> 등을 작곡하였다.

 

  우울증과 정신적 불안에 시달리던 스메타나는 프라하의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1884년 생을 마감하였다. 스메타나의 서거일인 512일에는 매년 5월에 체코에서 '프라하의 봄' 음악제가 열리는데, <나의 조국>을 연주하면서 음악제의 막이 오른다.

 

  낭만주의 시대에 살았던 스메타나는 낭만적인 색채뿐만 아니라 민속적인 소재와 민속적인 선율을 사용하여 독특한 음악적 특징을 형성하였다. 그래서 국제적으로는 드보르자크가 더 알려졌으나 체코에서는 스메타나가 가장 존경받는 음악가로 남아 있다.

댓글 쓰기

0 댓글
* Please Don't Spam Here. All the Comments are Reviewed by Admin.

본문 상단 광고

본문 하단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