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위대한 음악가 차이콥스키의 삶과 그의 남긴 작품을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발레음악, 피아노 작품 등을 간략하게 기록한 글이다.
1840년에 태어난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는 어린 시절 서유럽 음악과 접촉하면서 음악에 몰입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공무원이 되었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두고 1863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하여 루빈스타인에게 작곡을 배웠다. 음악원을 졸업한 차이콥스키는 1866년에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설립한 모스크바 음악원의 이론 선생으로 임용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난다.
이후 차이콥스키는 1878년에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직을 사임할 때까지 주옥같은 걸작들을 작곡하게 된다. 환상서곡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실질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작곡가로서의 위치를 굳히게 된다. 1876년 말 부유한 미망인 폰 메크 부인을 알게 된다. 메크 부인은 음악을 몹시 사랑해서 차이콥스키에게 14년 동안이나 경제적 후원을 해주어 차이콥스키가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 후 차이콥스키는 외국으로 몸을 피해 작곡을 계속했고 그때부터 음악원 교수직도 사임하고 1년 중 절반은 외국에서 절반은 러시아 별장에서 보내는 생활을 했다.
![]() |
차이콥스키의 모습 (출처 : aso.org) |
차이콥스키는 평생 우울했던 사람이다. 14세 때 어머니가 사망하자 오랫동안 모성애에 대한 갈증에 시달렸고, 내성적인 성격에 사람들과 교제를 어려워했으며, 동성애자라는 수군거림을 듣지 않기 위해 1877년 여제자였던 밀류코바의 끈질긴 구혼에 마지못해 결혼했으나 9주일 만에 파탄에 이르게 되었다.
차이콥스키는 1983년 교향곡 비창을 초연한 후 9일 만에 급사했다. 사인은 오랫동안 콜레라 감염으로 알려져 왔는데, 동성애자로서의 스캔들이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 비소를 마시고 자살했다는 것이 부검결과 밝혀졌다.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의 죽음은 비극적이었다.
차이콥스키의 첫 교향곡은 겨울의 꿈으로 알려진 4악장 형식의 곡이었다. 그가 배웠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은 서구화를 지향했기 때문에 차이콥스키 역시 이러한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런데도 그의 음악에는 전통적인 러시아 민속적 선율이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예를 들어, 그의 제2번 교향곡의 2악장과 4악장에서 우크라이나 민요가 주제로 사용되었으며, 제4번 교향곡의 피날레에서도 ‘들꽃 속에 서 있는 자작나무’라는 러시아 민요가 제2주제로 삽입된다. 제5번 교향곡은 순환기법을 사용하면서 1악장과 3악장에 왈츠를 삽입하고 있다. 교향곡 6번 비창은 메크 부인이 갑자가 후원을 끊고 사라지면서 절망에 빠졌을 때 작고한 것이다. 표제처럼 1, 4악장이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이고 2악장은 러시아의 민속 박자인 4분의 5박자에 왈츠를 붙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실내악곡으로는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내림 나단조,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현을 위한 세레나데 C 장조,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제2악장에 안단테 칸타빌레가 들어있는 현악 4중주곡 제1번, 피아노 3중주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 등은 모두 주옥 같은 작품이다.
차이콥스키의 발레음악 가운데는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등이 유명하다. 특히 [백조의 호수]는 장대한 짜임새와 다채로운 음악으로 발레음악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평가 받고 있다.
피아노 음악으로는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이 가장 유명한데, 독주곡으로 그와 같이 커다란 성공을 거둔 작품은 없다. 피아노곡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2곡의 소나타가 있고, 그 외에는 주로 성격소품 곡이 있다. 유명한 것은 1월부터 12월까지를 제목으로 하여 12개의 모음곡으로 되어 있는 사계 모음곡, 그리고 둠카가 있다. 일반적으로 차이콥스키 음악은 러시아적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유럽 양식에 가까워서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종종 선율이 주제 발전에 적합하지 못하고 재료를 발전시키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