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 3] 아르스 안티쿠아와 아르스 노바: 중세 다성음악의 발전 완벽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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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사에서 옛 예술과 새로운 예술이라 불리는 두 시대가 있습니다. 12세기 중반 파리에서 싹튼 다성음악은 200년 남짓한 동안 리듬을 적는 방법과 성부를 쌓는 방법을 크게 바꿔 놓았습니다. 이 흐름을 후대 학자들은 아르스 안티쿠아와 아르스 노바라는 이름으로 구분했고, 그 경계에서 오르가눔과 모테트, 동형리듬과 세속 가곡이라는 서양음악의 굵직한 뼈대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시대 음악을 이해하는 열쇠는 하나입니다. 중세 다성음악에서 작곡가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기록에 남기 시작하고, 소리의 길이를 악보에 정확히 적는 방법이 발달하면서, 음악이 부르는 사람의 기억에서 적힌 악보로 옮겨 갔다는 것입니다. 아래의 인물과 형식은 모두 그 변화의 한 장면입니다.

아르스 안티쿠아·아르스 노바 한눈에 보기

  • 아르스 안티쿠아(12세기 중~13세기 말): 노트르담 악파 중심, 리듬 선법과 오르가눔·모테트 발달
  • 명칭의 진실: 두 용어 모두 시대 이름으로 쓴 것은 후대 학자들이 소급 적용한 분류어
  • 아르스 노바(14세기): 2분할 리듬의 공식화, 동형리듬 모테트, 세속 정형시 가곡 발달
  • 대표 인물: 레오냉·페로탱(노트르담 악파), 기욤 드 마쇼·필리프 드 비트리(아르스 노바)
  • 14세기 말: 아르스 수브틸리오르, 하트 모양 악보로 알려진 극단적으로 복잡한 리듬의 시기
  • 이탈리아: 트레첸토 음악(마드리갈·카치아·발라타), 대표 인물 프란체스코 란디니

아르스 안티쿠아 뜻과 시기

아르스 안티쿠아는 옛 예술이라는 뜻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이 지어지던 12세기 중엽부터 13세기 말까지의 다성음악을 가리킵니다. 다만 이 이름을 당대 작곡가들이 자기 음악을 이전 시대와 구분하려고 직접 붙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정확한 설명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훗날 학자들이 특정 양식을 가리키기 위해 소급해서 적용한 분류 용어에 가깝습니다. 중세에 이 표현을 그대로 쓴 인물로 요하네스 데 무리스가 꼽히지만, 그조차 지금처럼 넓은 시대 구분이 아니라 프랑코 폰 쾰른이 활동하던 13세기 후반의 좁은 시기만을 가리키는 데 그쳤습니다.

옛것과 새것을 가르는 감각 자체는 14세기 초에 이미 있었습니다. 리에주의 야코부스는 1320~30년대에 쓴 방대한 이론서 〈음악의 거울〉에서 프랑코와 페트루스 데 크루체 시대의 기법을 옹호하고, 새 기보법을 쓰는 당대 음악가들을 비판했습니다. 아르스 안티쿠아와 아르스 노바를 두 시대로 나란히 세우는 오늘날의 구도는 이런 논쟁을 근대 음악학이 시대 구분으로 넓힌 틀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기가 서양음악사의 분수령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다성음악 자체는 그보다 훨씬 앞서 9세기의 이론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가 선율에 4도나 5도 간격으로 나란히 움직이는 성부를 겹치는 방식이었고, 작곡이라기보다 노래하는 한 방법에 가까웠습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중심으로 활동한 음악가들은 이 오랜 관습을 훨씬 크고 복잡한 다성음악으로 키웠습니다. 다성음악을 지은 사람의 이름이 기록으로 남기 시작한 것도 이때입니다. 기존의 단선율 그레고리오 성가는 다성음악의 토대인 정선율(칸투스 피르무스)로 자리 잡았고, 음악은 2성부에서 3성부, 나아가 4성부까지 확장되어 갔습니다.

노트르담 악파, 레오냉과 페로탱의 오르가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음악가는 노트르담 악파의 레오냉과 페로탱입니다. 두 사람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전부 13세기 후반 파리에서 공부한 것으로 보이는 영국인 학생, 아노니무스 4세(Anonymous IV)의 기록에서 나옵니다. 그는 레오냉을 가장 뛰어난 오르가눔 작곡가로 부르며, 그가 미사와 성무일도에 쓸 오르가눔 큰 책, 곧 마그누스 리베르 오르가니를 지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페로탱이 그 책을 줄이고, 리듬이 또렷한 대목인 클라우술라를 더 낫게 새로 지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니 레오냉이 기초를 놓고 페로탱이 3성부·4성부로 넓혔다는 흔한 요약은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아노니무스 4세가 말한 페로탱의 일은 확장이라기보다 축약과 개작이었고, 4성부 곡은 그와 별도로 페로탱의 이름에 붙어 전해지는 작품입니다. 두 사람이 실존했고 노트르담 성당과 깊이 연관된 음악가였다는 큰 틀은 분명하지만, 누가 무엇을 언제 완성했는지는 사실상 한 사람의 증언에 기대고 있습니다. 레오냉을 같은 시기 파리에서 활동한 시인 레오니우스와 같은 인물로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페로탱의 4성부 오르가눔 〈비데룬트 옴네스〉와 〈세데룬트 프린키페스〉에는 연대를 짐작할 단서가 있습니다. 파리 주교 오도 드 쉴리는 1198년과 1199년의 규정에서, 성탄 시기에 벌어지던 소란한 가장 행사 대신 3성부나 4성부 오르가눔으로 전례를 장엄하게 치르라고 정했습니다. 그래서 〈비데룬트 옴네스〉는 1198년 성탄을, 〈세데룬트 프린키페스〉는 1199년 성 스테파노 축일을 위해 쓰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성가 한 음을 수십 초씩 길게 끄는 아래 성부 위로 세 성부가 같은 리듬 무늬를 주고받는 이 곡들은, 시간 감각이 지금의 음악과 많이 다릅니다.

무지카 엔키리아디스에 실린 오르가눔 Rex celi domine maris 기보
〈Rex celi domine maris〉가 실린 〈무지카 엔키리아디스〉. 9세기 후반의 이론서로, 노트르담 악파보다 300년 가까이 앞선다. 두 성부가 위아래로 나란히 적혀 있어, 성부를 겹쳐 부른다는 발상이 어떤 모습으로 기록됐는지 보여 준다.

노트르담 악파의 리듬은 3박자 계통의 리듬 선법이 중심이었습니다. 3이라는 수를 완전함과 연결하던 중세의 사고와 함께 설명되곤 합니다. 트로카에우스, 이암부스, 닥틸루스, 아나파에스트, 스폰데우스, 트리브라키스라는 6가지 패턴이 있었는데, 흔히 앞의 세 가지가 가장 널리 쓰였다고 소개되지만 이 역시 정확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1·2·3·5선법이 두루 쓰이는 가운데 1선법인 트로카에우스가 단연 많이 쓰였고, 4선법인 아나파에스트는 드물게 쓰였으며, 6선법인 트리브라키스는 주로 상성부에서만 나타났습니다. 화성은 완전협화음(1·4·5·8도)을 중심으로 하되, 부분적으로는 불협화음도 자유롭게 나타났습니다.

아르스 안티쿠아의 주요 장르와 리듬 선법

이 시기의 대표적인 악곡 형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노트르담 오르가눔(Organum): 성가를 아주 길게 늘인 아래 성부 위에서 상성부가 화려한 멜리스마를 부르는 양식입니다. 길게 붙잡고 있는 성부라는 뜻에서 아래 성부를 테노르라 불렀습니다.
  • 클라우술라(Clausula): 오르가눔 가운데 성가에 음표가 많은 대목을 떼어 내, 아래 성부도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이게 만든 부분입니다. 같은 대목을 갈아 끼울 수 있도록 따로 지어 두기도 했습니다.
  • 콘둑투스(Conductus): 모든 성부가 거의 같은 리듬으로 진행하며, 기존 성가를 차용하지 않고 테너 성부까지 새롭게 창작된 비전례적 음악입니다.
  • 모테트(Motet): 클라우술라의 윗성부에 새 가사를 붙이면서 독립된 악곡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름은 프랑스어로 단어를 뜻하는 모(mot)에서 유래했습니다. 테노르는 기존 성가에서 가져온 선율과 짧은 성가 텍스트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이후 윗성부마다 서로 다른 가사를 붙이는 곡이 늘어났고, 13세기 후반에는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한 곡 안에서 동시에 부르는 곡이 흔해졌습니다. 종교적인 가사와 사랑 노래가 한 곡 안에서 겹치기도 했습니다.
  • 호케트(Hoquet): 딸꾹질이라는 뜻으로, 한 성부가 쉬는 동안 다른 성부가 노래해 선율을 교대로 엮어 나가는 기법입니다.
  • 로타(Rota): 돌림노래 형식으로, 같은 선율을 여러 성부가 시차를 두고 따라 부르는 형태입니다.
  • 론델루스(Rondellus): 성부 교환 기법으로, 세 개의 선율을 각 성부가 순서를 바꾸어 부르는 방식입니다.

대표적 작곡가로는 노트르담 악파의 레오냉과 페로탱, 그리고 13세기 후반 모테트를 한층 발전시킨 페트루스 데 크루체가 있습니다.

성부가 늘고 리듬이 복잡해지면서 악보도 달라져야 했습니다. 단선율 성가는 음의 높낮이를 대략 보여 주는 네우마만으로 충분했지만, 여러 성부를 맞춰 부르려면 각 음이 얼마나 긴지를 적어야 했습니다. 13세기 후반 프랑코 폰 쾰른의 이론서가 음표 모양으로 길이를 나타내는 방법을 정리했고, 이것이 다음 세기 아르스 노바 기보법의 출발점이 됩니다.

아르스 노바 뜻, 그리고 그 이름의 진실

14세기에 접어들며 음악가들은 새로운 리듬과 기보법의 가능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당대 이론서에 아르스 노바, 곧 새로운 예술이라는 말이 나타났습니다. 이 말이 14세기 프랑스 음악 전체를 가리키는 시대 이름이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입니다. 이 명칭이 필리프 드 비트리가 쓴 동명의 논고에서 곧바로 나왔다고 단정적으로 소개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 이 이름은 요하네스 데 무리스가 1320년 무렵 쓴 저작과, 흔히 비트리의 글로 함께 묶이는 1322년 무렵의 다른 저작 모음에서 나란히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비트리 저작이라는 귀속 자체에도 음악학자 사라 풀러(Sarah Fuller)가 제기한 것을 비롯한 저자 논쟁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 명칭을 오늘날처럼 하나의 시대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굳힌 것은 원저작으로부터 600년 가까이 지난 1904년, 음악학자 요하네스 볼프에 의해서였습니다.

무엇이 새로웠는지는 비교적 분명합니다. 그전까지 정식 리듬은 한 박을 셋으로 나누는 3분할이었는데, 아르스 노바의 기보법은 둘로 나누는 2분할도 똑같이 정식으로 적을 수 있게 했습니다. 더 짧은 음표도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익숙한 2박자와 4박자 감각의 먼 뿌리를 여기서 찾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는 종교음악보다 세속음악이 크게 발전했으며, 복잡하고 다양한 리듬 분할이 가능해지면서 한층 자유로운 창작 음악이 자리 잡았습니다. 주요 선율의 역할은 최상성부인 칸투스로 옮겨 갔고, 테너는 기초를 담당했습니다. 화성적으로는 완전협화음 위주에서 벗어나 3도나 6도 같은 불완전협화음의 사용이 늘면서 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습니다. 이 시기 유행한 진행 중 하나가 란디니 종지입니다. 이끌음에서 곧바로 으뜸음으로 가지 않고 그 사이에 한 음을 끼워 넣어 완충하는 진행으로, 계이름으로 풀면 시에서 곧장 도로 가지 않고 라를 거쳐 도로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이 은근한 우회가 종지의 느낌을 한결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교황청의 경고

새 음악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자 교회는 경계했습니다. 이 무렵 교황청은 로마를 떠나 남프랑스 아비뇽에 있었습니다. 1309년부터 이어진 아비뇽 시대의 교황 요한 22세는 1324년 무렵 교령 〈독타 상크토룸 파트룸〉에서, 짧은 음표를 남발하고 호케트로 선율을 조각내며 윗성부에 세속어 노래를 얹는 바람에 성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꾸짖었습니다. 다만 축일에 성가 위로 8도·5도·4도 같은 협화음을 더하는 것까지 막지는 않았습니다. 금지 목록이 곧 당시 유행의 목록이었다는 점에서, 이 교령은 아르스 노바가 무엇이었는지를 거꾸로 보여 주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아르스 노바의 형식과 대표 작곡가

아르스 노바 시기의 주요 형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동형리듬 모테트(Isorhythmic Motet): 테너 성부에서 일정한 리듬 패턴인 탈레아와 선율 패턴인 콜로르를 반복해 곡의 구조를 통일시키는 고도의 기법이 확립되었습니다.
  • 프랑스의 세속 정형시 형식: 발라드, 론도, 비를레 등 반복되는 후렴구를 가진 다성 세속 가곡들이 유행했습니다. 최상성부에 노래 선율이 놓이고 하성부가 반주하는 짜임새가 특징입니다.

프랑스의 대표적 작곡가로는 기욤 드 마쇼와 필리프 드 비트리가 있습니다. 마쇼는 미사 통상문 다섯 곡 전체를 한 사람의 손으로 지어 남긴 것으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사례인 〈노트르담 미사〉를 남겼습니다. 1365년 이전에 쓴 이 곡에는 미사를 마치는 이테 미사 에스트까지 한 곡으로 들어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최초라기보다, 그 이전에도 여러 사람의 곡을 엮은 통상문 묶음은 있었지만 온전히 한 작곡가가 완성한 사례로는 이 작품이 가장 앞선다는 뜻입니다. 그런 묶음의 대표가 14세기 투르네 대성당에 전하는 투르네 미사로, 통상문 전체를 한 벌처럼 적어 둔 사본으로는 처음 확인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음악만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마쇼는 1300년 무렵 랭스 근처에서 태어나 1323년부터 보헤미아 왕 요한(룩셈부르크 백작)의 비서로 유럽 곳곳을 따라다녔고, 1337년 랭스 대성당의 참사회원이 되었습니다. 이름난 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말년에 랭스에서 자기 작품 전집 필사본을 만드는 일을 직접 챙겼습니다. 같은 세기 다른 작곡가들보다 훨씬 많은 곡이 그의 이름으로 남은 데에는 이 노력이 한몫했습니다. 1291년에 태어난 비트리는 프랑스 왕실과 아비뇽 교황청을 오간 성직자이자 외교관으로, 1351년 모 교구의 주교가 되었고 136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가 당대 으뜸가는 진리 탐구자라고 칭송한 인물입니다.

비트리는 당시 부패한 사회를 꼬집는 풍자시 로만 드 포벨과 연관된 초기 아르스 노바 모테트로 유명합니다. 다만 비트리가 이 풍자시에 자기 곡을 직접 수록한 것은 아닙니다. 1310년과 1314년에 나온 원작에, 1316년 무렵 샤이유 드 페스탱이라는 편집자가 방대한 분량을 덧붙이면서 여러 시기의 음악 삽입곡 167개를 함께 엮어 넣었는데, 그 가운데 비트리가 지은 것으로 여겨지는 곡들이 포함된 것입니다.

기욤 드 마쇼 운명의 치유 필사본 파리 국립도서관 Ms. fr. 1586
기욤 드 마쇼 〈운명의 치유〉 필사본(파리 국립도서관 Ms. fr. 1586). 마쇼의 작품을 모아 엮은 14세기 필사본 가운데 이른 것이다. 이 시기 작곡가로는 드물게 그의 작품이 온전한 묶음으로 전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아르스 수브틸리오르, 하트 모양의 악보

14세기 말에는 아르스 노바의 리듬 실험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음악이 나타났습니다. 20세기 음악학자 우르줄라 귄터가 더 섬세한 예술이라는 뜻으로 아르스 수브틸리오르라 이름 붙인 양식입니다. 파리와 아비뇽, 북스페인의 궁정이 중심이었고, 성부마다 박자가 어긋나고 리듬이 겹겹이 엇갈려 노래하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1378년 교회가 두 교황으로 갈라진 뒤 아비뇽에 남은 교황의 궁정도 이런 음악이 꽃핀 무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양식을 대표하는 악보가 샹티이 사본에 실린 보드 코르디에의 론도 〈Belle, bonne, sage〉입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이 곡은 오선 자체가 하트 모양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같은 작곡가의 〈Tout par compas〉는 이름 그대로 컴퍼스로 그린 둥근 오선에 적혀 있습니다. 악보가 소리를 적는 도구를 넘어 그 자체로 보는 작품이 된 것입니다.

이탈리아 트레첸토 음악

한편 14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와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세속음악이 발달했는데, 이를 트레첸토 음악이라 부릅니다. 정선율 기법이나 복잡한 동형리듬보다는 유려하고 화려한 선율의 흐름을 중시했습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세속 음악 형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마드리갈(Madrigal):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다성 형식 가운데 하나로, 통상 2성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보통 세 줄짜리 연 두세 개를 같은 음악으로 부른 뒤, 별도의 리토르넬로로 끝맺습니다. 16세기의 마드리갈과는 이름만 같은 별개의 형식입니다.
  • 카치아(Caccia): 사냥이라는 뜻으로, 상성부 둘이 캐논 형식으로 서로를 쫓아가는 구조가 핵심입니다.
  • 발라타(Ballata): 프랑스의 비를레와 구조가 비슷하며, 리프레사라는 후렴구가 맨 앞과 끝에 불렸습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프란체스코 란디니와 야코포 다 볼로냐가 있습니다. 란디니는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시력을 잃었지만, 1361년 피렌체의 산타 트리니타 수도원에 이어 1365년부터는 산 로렌초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습니다. 이후에도 1375년 무렵 세르비테 수도회의 오르간 제작과 조율에 자문으로 참여했고, 1379년에는 그 수도회의 모교회인 산티시마 아눈치아타의 새 오르간, 1387년에는 피렌체 대성당의 오르간 제작에도 참여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가 묻힌 산 로렌초 성당의 묘비에는 휴대용 오르간을 든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란디니는 트레첸토에서 가장 많은 곡을 남긴 작곡가입니다. 전해지는 것은 거의 모두 세속곡으로, 2성부 발라타 89곡과 3성부 발라타 42곡, 두 가지 판으로 전하는 9곡에 마드리갈 몇 곡이 더해집니다. 교회음악을 썼다는 기록은 있지만 악보는 남지 않았습니다. 이름에도 사연이 있어서, 그가 란디니 가문 사람이었다는 설은 오늘날 받아들여지지 않고 당대 기록 속 별명인 오르간의 프란체스코(Francesco degli Organi)로 부르는 학자가 많습니다.

아르스 안티쿠아 이전의 이야기는 음악의 기원과 고대 음악에서, 여기서 다진 다성음악의 문법이 이후 어떻게 펼쳐지는지는 르네상스 음악에서 이어집니다. 다음에 페로탱의 4성부 오르가눔을 듣는다면 아래에서 한 음을 끝없이 붙들고 있는 성가 성부를 먼저 찾아보십시오. 길게 붙들린 그 성부의 이름 테노르가 오늘날 테너라는 말의 출발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르스 안티쿠아라는 이름은 정말 13세기 작곡가들이 붙인 걸까요?

아닙니다. 이 시대를 살았던 작곡가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 뒤이은 세대의 이론가와 근대 음악학이 구분을 위해 소급 적용한 명칭에 가깝습니다. 중세 문헌에서 이 표현을 그대로 쓴 인물은 사실상 요하네스 데 무리스가 유일한데, 그마저도 프랑코 폰 쾰른이 활동하던 13세기 후반이라는 좁은 구간만 가리켰습니다.

Q. 리듬 선법 중 실제로 가장 많이 쓰인 것은 무엇인가요?

1선법(트로카에우스)입니다. 1·2·3·5선법이 골고루 쓰이는 가운데서도 1선법이 단연 많이 쓰였고, 반대로 4선법(아나파에스트)은 사용례가 드물었으며 6선법(트리브라키스)은 거의 윗성부에만 국한돼 쓰였습니다.

Q. 레오냉과 페로탱의 역할 분담은 확실한 사실인가요?

완전히 확정된 정설은 아닙니다. 두 사람에 관한 정보가 거의 전부 13세기 후반 이론가 아노니무스 4세의 기록 한 건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기록에 따르면 레오냉이 오르가눔 큰 책을 지었고, 페로탱은 그 책을 줄이고 클라우술라를 새로 지었습니다. 페로탱이 레오냉의 곡을 3성부·4성부로 넓혔다는 요약은 그 기록과도 조금 다릅니다.

Q. 아르스 노바라는 이름은 정말 필리프 드 비트리가 지은 걸까요?

단정할 수 없습니다. 요하네스 데 무리스가 1320년 무렵 남긴 저작과 통상 비트리의 것으로 묶이는 별도의 글 모음이 이 명칭의 뿌리로 나란히 거론되는데, 음악학자 사라 풀러(Sarah Fuller)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비트리 단독 저작이라는 전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처럼 하나의 시대 명칭으로 굳어진 것도 원저작보다 한참 뒤인 1904년, 요하네스 볼프에 의해서였습니다.

Q. 란디니 종지는 정확히 어떤 음 진행인가요?

계이름으로 풀면 시에서 도로 곧장 가지 않고 라를 한 번 거쳐 도로 이어지는 진행입니다. 이끌음에서 으뜸음으로 바로 뛰지 않고 중간에 한 음을 끼워 넣는 셈인데, 이 완충 효과 덕분에 종지가 한결 부드럽게 들려 트레첸토 음악가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습니다.

Q. 로만 드 포벨에 실린 아르스 노바 모테트는 비트리가 직접 수록한 걸까요?

아닙니다. 1316년 무렵 편집자 샤이유 드 페스탱이 기존 풍자시 텍스트를 대폭 확장하면서 여러 시대의 음악 삽입곡 167개를 함께 엮어 넣었을 뿐이고, 그 가운데 비트리 귀속 모테트 몇 곡이 포함돼 있는 것입니다.

Q. 마쇼의 노트르담 미사는 정말 최초의 다성 미사곡인가요?

무조건적인 최초는 아닙니다. 투르네 미사처럼 여러 작곡가의 곡을 모아 통상문 다섯 곡을 하나로 엮은 선례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한 명의 작곡가가 다섯 곡 전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완성한 사례로는 마쇼의 작품이 지금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경우입니다.

Q. 하트 모양 악보는 실제로 있나요?

있습니다.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 무렵의 작곡가 보드 코르디에가 사랑 노래 〈Belle, bonne, sage〉를 하트 모양의 오선에 적었고, 이 악보는 샹티이 사본에 전합니다. 아르스 수브틸리오르라 불리는 시기의 대표적인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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