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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사 3] 아르스 안티쿠아와 아르스 노바: 중세 다성음악의 발전 완벽 정리

서양음악사에서 '옛 예술'과 '새로운 예술'이라 불리는 두 시대가 있습니다. 12세기 중반 노트르담 대성당의 그늘 아래서 싹튼 다성음악은 200년에 걸쳐 리듬과 화성의 문법을 통째로 새로 썼습니다. 이 흐름을 후대 학자들은 아르스 안티쿠아와 아르스 노바라는 이름으로 구분했고, 그 경계에서 오르가눔과 모테트, 이소리듬과 세속 가곡이라는 서양음악의 굵직한 뼈대가 만들어졌습니다.

아르스 안티쿠아·아르스 노바 한눈에 보기
  • 아르스 안티쿠아(12세기 중~13세기 말): 노트르담 악파 중심, 리듬 선법과 오르가눔·모테트 발달
  • 명칭의 진실: 두 용어 모두 당대가 아니라 후대 학자들이 소급 적용한 분류어
  • 아르스 노바(14세기): 리듬 분할의 자유화, 이소리듬 모테트, 세속 정형시 가곡 발달
  • 대표 인물: 레오냉·페로탱(노트르담 악파), 기욤 드 마쇼·필리프 드 비트리(아르스 노바)
  • 이탈리아: 트레첸토 음악(마드리갈·카치아·발라타), 대표 인물 프란체스코 란디니

아르스 안티쿠아란 무엇인가

아르스 안티쿠아는 '옛 예술'이라는 뜻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이 지어지던 12세기 중엽부터 13세기 말까지의 다성음악을 가리킵니다. 다만 이 이름을 당대 작곡가들이 자기 음악을 이전 시대와 구분하려고 직접 붙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정확한 설명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훗날 학자들이 특정 양식을 가리키기 위해 소급해서 적용한 분류 용어에 가깝습니다. 중세에 이 표현을 실제로 사용한 인물로 요하네스 데 무리스가 꼽히지만, 그조차 지금처럼 넓은 시대 구분이 아니라 프랑코 폰 쾰른이 활동하던 13세기 후반의 좁은 시기만을 가리키는 데 그쳤습니다. 아르스 안티쿠아와 아르스 노바를 대비시키는 오늘날의 구도 자체가 주로 근대 이후 음악학에서 정착된 틀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기가 서양음악사의 분수령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중심으로 활동한 음악가들은 전례 없는 웅장함과 복잡성을 지닌 새로운 다성음악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때부터 오늘날 말하는 의미의 작곡가가 비로소 등장했고, 교회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다성음악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기존의 단선율 그레고리오 성가는 다성음악의 토대인 정선율로 자리 잡았고, 음악은 2성부에서 3성부, 나아가 4성부까지 확장되어 갔습니다.

노트르담 악파, 레오냉과 페로탱의 오르가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음악가는 노트르담 악파의 레오냉과 페로탱입니다. 레오냉이 오르가눔 모음집인 마그누스 리베르 오르가니의 상당 부분을 지었다는 점은 여러 문헌에서 대체로 받아들여집니다. 이어 페로탱이 이 곡들을 삼성부·사성부로 확장해 개정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지만, 이 구체적인 역할 분담은 사실 13세기 후반 영국 출신으로 추정되는 이론가 아노니무스 4세(Anonymous IV)가 남긴 기록 한 건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학계에서 완전히 합의된 정설은 아닙니다. 두 사람이 실존했고 노트르담 성당과 깊이 연관된 음악가였다는 큰 틀은 분명하지만, 정확히 누가 무엇을 언제 완성했는지는 여전히 신중하게 다뤄야 할 대목입니다.

당시에는 완전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당대의 3분할 관념과 연결되어 3박자 계통의 리듬 선법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트로카에우스, 이암부스, 닥틸루스, 아나파에스트, 스폰데우스, 트리브라키스라는 6가지 패턴이 있었는데, 흔히 앞의 세 가지가 가장 널리 쓰였다고 소개되지만 이 역시 정확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1·2·3·5선법이 두루 쓰이는 가운데 유독 1선법인 트로카에우스의 사용 빈도가 압도적으로 두드러졌고, 4선법인 아나파에스트는 드물게 쓰였으며, 6선법인 트리브라키스는 주로 상성부에서만 나타났습니다. 화성은 완전협화음(1·4·5·8도)을 중심으로 하되, 부분적으로는 불협화음도 자유롭게 나타났습니다.

아르스 안티쿠아의 주요 장르와 리듬 선법

이 시기의 대표적인 악곡 형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노트르담 오르가눔(Organum): 성 마샬 오르가눔의 영향을 받아, 테너 성부의 긴 지속음 위에서 상성부가 화려한 멜리스마를 부르는 양식입니다.
  • 콘둑투스(Conductus): 모든 성부가 거의 같은 리듬으로 진행하며, 기존 성가를 차용하지 않고 테너 성부까지 새롭게 창작된 비전례적 음악입니다.
  • 모테트(Motet): 다성음악의 특정 부분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면서 독립된 악곡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름은 프랑스어로 '단어'를 뜻하는 '모'에서 유래했습니다.
  • 호케트(Hoquet): 딸꾹질이라는 뜻으로, 한 성부가 쉬는 동안 다른 성부가 노래해 선율을 교대로 엮어 나가는 기법입니다.
  • 로타(Rota): 돌림노래 형식으로, 같은 선율을 여러 성부가 시차를 두고 따라 부르는 형태입니다.
  • 론델루스(Rondellus): 성부 교환 기법으로, 세 개의 선율을 각 성부가 순서를 바꾸어 부르는 방식입니다.

대표적 작곡가로는 노트르담 악파의 레오냉과 페로탱, 그리고 13세기 후반 모테트를 한층 발전시킨 페트루스 데 크루체가 있습니다.

아르스 노바로의 전환과 명칭의 진실

14세기에 접어들며 음악가들은 새로운 리듬과 기보법의 가능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13세기의 음악과 구분해 14세기 프랑스 음악을 '아르스 노바', 곧 새로운 예술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명칭이 필리프 드 비트리가 쓴 동명의 논고에서 곧바로 나왔다고 단정적으로 소개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 이 이름은 요하네스 데 무리스가 1320년 무렵 쓴 저작과, 흔히 비트리의 글로 함께 묶이는 다른 저작 모음에서 나란히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비트리 저작이라는 귀속 자체에도 음악학자 사라 풀러(Sarah Fuller)가 제기한 것을 비롯한 저자 논쟁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 명칭을 오늘날처럼 하나의 시대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굳힌 것은 원저작으로부터 600년 가까이 지난 1904년, 음악학자 요하네스 볼프에 의해서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종교음악보다 세속음악이 크게 발전했으며, 복잡하고 다양한 리듬 분할이 가능해지면서 한층 자유로운 창작 음악이 자리 잡았습니다. 주요 선율의 역할은 최상성부인 칸투스로 옮겨 갔고, 테너는 기초를 담당했습니다. 화성적으로는 완전협화음 위주에서 벗어나 3도나 6도 같은 불완전협화음의 사용이 늘면서 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습니다. 이 시기 유행한 진행 중 하나가 란디니 종지입니다. 이끌음음에서 곧바로 으뜸음으로 가지 않고 그 사이에 한 음을 끼워 넣어 완충하는 진행으로, 계이름으로 풀면 시에서 곧장 도로 가지 않고 라를 거쳐 도로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이 은근한 우회가 종지의 느낌을 한결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아르스 노바의 형식과 대표 작곡가

아르스 노바 시기의 주요 형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동형리듬 모테트(Isorhythmic Motet): 테너 성부에서 일정한 리듬 패턴인 '탈레아'와 선율 패턴인 '콜로르'를 반복해 곡의 구조를 통일시키는 고도의 기법이 확립되었습니다.
  • 프랑스의 세속 정형시 형식: 발라드, 론도, 비를레 등 반복되는 후렴구를 가진 다성 세속 가곡들이 유행했습니다. 최상성부에 아름다운 선율이 놓이고 하성부가 반주하는 짜임새가 특징입니다.

프랑스의 대표적 작곡가로는 기욤 드 마쇼와 필리프 드 비트리가 있습니다. 마쇼는 미사 통상문 다섯 곡 전체를 한 사람의 손으로 지어 남긴 것으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사례인 노트르담 미사를 남겼습니다. 무조건적인 최초라기보다, 그 이전에도 여러 사람이 나눠 맡아 짜깁기한 통상문 모음은 있었지만 온전히 한 작곡가가 완성한 사례로는 이 작품이 가장 앞선다는 뜻입니다. 비트리는 당시 부패한 사회를 꼬집는 풍자시 로만 드 포벨과 연관된 초기 아르스 노바 모테트로 유명합니다. 다만 비트리가 이 풍자시에 자기 곡을 직접 수록한 것은 아닙니다. 1316년에서 1317년 무렵 샤이유 드 페스탱이라는 편집자가 기존 텍스트에 방대한 분량을 덧붙이면서 여러 시기의 곡 백여 곡 이상을 함께 엮어 넣었는데, 그 가운데 비트리가 지은 것으로 여겨지는 곡들이 포함된 것입니다.

이탈리아 트레첸토 음악

한편 14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와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세속음악이 발달했는데, 이를 트레첸토 음악이라 부릅니다. 정선율 기법이나 복잡한 동형리듬보다는 유려하고 화려한 선율의 흐름을 중시했습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세속 음악 형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마드리갈(Madrigal):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다성 형식 가운데 하나로, 통상 2성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연을 리토르넬로로 끝맺는다는 설명이 음악사 문헌에 흔히 소개되지만, 이번 조사로 원 출처까지 직접 확인하지는 못해 전해지는 설명으로 남겨 둡니다.
  • 카치아(Caccia): '사냥'이라는 뜻으로, 상성부 둘이 캐논 형식으로 서로를 쫓아가는 구조가 핵심입니다. 가장 아래 성부가 가사 없이 악기로만 반주한다는 설명 역시 널리 통용되지만, 이번 조사로 직접 확증하지는 못해 참고로 남겨 둡니다.
  • 발라타(Ballata): 프랑스의 비를레와 구조가 비슷하며, '리프레사'라는 후렴구가 맨 앞과 끝에 불렸습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프란체스코 란디니와 야코포 다 볼로냐가 있습니다. 란디니는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시력을 잃었지만, 1361년 피렌체의 산타 트리니타 수도원에 이어 1365년부터는 산 로렌초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습니다. 이후에도 세르비테 수도회의 모교회인 산티시마 아눈치아타에서 1375년 오르간 조율, 1379년 신규 오르간 제작에 잇달아 자문으로 참여했고, 1387년에는 피렌체 대성당의 오르간 제작에도 참여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지금도 휴대용 오르간을 든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르스 안티쿠아라는 이름은 정말 14세기 작곡가들이 붙인 걸까요?

아닙니다. 이 시대를 살았던 작곡가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 뒤이은 세대의 이론가와 근대 음악학이 구분을 위해 소급 적용한 명칭에 가깝습니다. 중세 문헌에서 이 표현을 실제로 쓴 인물은 사실상 요하네스 데 무리스가 유일한데, 그마저도 프랑코 폰 쾰른이 활동하던 13세기 후반이라는 좁은 구간만 가리켰습니다.

Q. 리듬 선법 중 실제로 가장 많이 쓰인 것은 무엇인가요?

1선법(트로카에우스)입니다. 1·2·3·5선법이 골고루 쓰이는 가운데서도 1선법의 등장 빈도가 나머지를 압도했고, 반대로 4선법(아나파에스트)은 사용례가 드물었으며 6선법(트리브라키스)은 거의 윗성부에만 국한돼 쓰였습니다.

Q. 레오냉과 페로탱의 역할 분담은 확실한 사실인가요?

완전히 확정된 정설은 아닙니다. 레오냉이 마그누스 리베르 오르가니의 주요 부분을 지었다는 데는 이견이 적지만, 페로탱이 이를 삼성부·사성부로 개정했다는 서술은 13세기 후반 이론가 아노니무스 4세(Anonymous IV)가 남긴 단 한 건의 기록에 의존하는 것이라,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Q. 아르스 노바라는 이름은 정말 필리프 드 비트리가 지은 걸까요?

단정할 수 없습니다. 요하네스 데 무리스가 1320년 무렵 남긴 저작과 통상 비트리의 것으로 묶이는 별도의 글 모음이 이 명칭의 뿌리로 나란히 거론되는데, 음악학자 사라 풀러(Sarah Fuller)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비트리 단독 저작이라는 전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처럼 하나의 시대 명칭으로 굳어진 것도 원저작보다 한참 뒤인 1904년, 요하네스 볼프에 의해서였습니다.

Q. 란디니 종지는 정확히 어떤 음 진행인가요?

계이름으로 풀면 시에서 도로 곧장 가지 않고 라를 한 번 거쳐 도로 이어지는 진행입니다. 이끌음에서 으뜸음으로 바로 뛰지 않고 중간에 한 음을 끼워 넣는 셈인데, 이 완충 효과 덕분에 종지가 한결 부드럽게 들려 트레첸토 음악가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습니다.

Q. 로만 드 포벨에 실린 아르스 노바 모테트는 비트리가 직접 수록한 걸까요?

아닙니다. 1316~1317년 무렵 편집자 샤이유 드 페스탱이 기존 풍자시 텍스트를 대폭 확장하면서 여러 시대의 곡 백여 곡 이상을 함께 엮어 넣었을 뿐이고, 그 가운데 비트리 귀속 모테트 몇 곡이 포함돼 있는 것입니다.

Q. 마쇼의 노트르담 미사는 정말 최초의 다성 미사곡인가요?

무조건적인 최초는 아닙니다. 여러 작곡가가 몫을 나눠 지어 통상문 다섯 곡을 하나로 엮은 선례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한 명의 작곡가가 다섯 곡 전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완성한 사례로는 마쇼의 작품이 지금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경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