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가 끝날 때 사제 또는 부제는 라틴어로 이테 미사 에스트(Ite, missa est)라고 말합니다. 우리말로는 흔히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파견의 말로 옮깁니다. 그런데 이 말이 처음부터 그런 뜻이었는지, 그리고 미사라는 이름 자체가 어디서 왔는지는 따로 물어야 할 문제입니다.
서양 음악에서 미사가 오래 남은 이유는 그 안에 되풀이해 쓸 수 있는 다섯 조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다섯 조각은 처음부터 한 벌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상크투스는 고대 성찬기도 전통에 이미 나타나고, 키리에·글로리아·아뉴스데이·크레도는 로마 전례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자리를 잡았고, 그렇게 모인 다섯 곡이 나중에 작곡가들의 악보의 틀이 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 순서를 따라갑니다.
- 어원: 라틴어 미시오(missio)의 후기형에서 온 말, 뜻은 파견이 아니라 해산
- 통상문(5개): 키리에·글로리아·크레도·상크투스·아뉴스데이, 가사가 대체로 정해져 되풀이되는 부분(글로리아와 크레도는 날에 따라 빠짐)
- 고유문: 입당송·봉헌송 등 전례력에 따라 매번 바뀌는 부분
- 초기 기록: 디다케와 유스티누스가 빵 나눔·감사·주일 모임의 뼈대를 적어 두었다
- 통상문이 모인 시기: 상크투스 4세기 성찬기도에 이미 보임, 키리에 6세기 말 이전, 글로리아 6세기 초, 아뉴스데이 7세기 말, 크레도 1014년(로마 기준)
- 현대의 예: 1985년 바티칸에서 열린 카라얀 지휘 모차르트 대관식 미사
미사(Missa)라는 말의 어원
미사(Missa)는 라틴어 미시오(missio)의 후기형 명사입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보내다라는 뜻의 미테레(mittere) 계열이지만, 그렇다고 이 말이 파견을 뜻한 것은 아닙니다. 뜻은 해산이었습니다. 예배가 끝났으니 자리를 뜨라는 통보입니다.
이 말은 원래 교회 밖에서 쓰이던 실무 표현이었습니다. 재판이나 절차가 끝나 사람들을 돌려보낼 때 쓰는 상투구였습니다. 6세기 초의 주교 비엔의 아비투스는 교회와 궁정과 법정에서 사람들을 물릴 때 해산이 선포된다고 적었습니다. 같은 말이 세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쓰였다는 뜻입니다.
이 말이 전례 용어로 쓰인 이른 사례는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가 386년 누이에게 보낸 서한에서 나옵니다. 그는 자리를 지키며 미사를 드리기 시작했다고 적었습니다. 세속의 해산 선언이 이렇게 예배의 이름으로 옮겨 온 셈입니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파견의 풀이는 이 말이 본래 담고 있던 뜻과는 다릅니다.
초기 교회에서의 미사
미사라는 라틴어 이름이 자리 잡기 전에 이 모임은 무엇이라 불렸을까요. 1세기 말에서 2세기 사이의 기록이 그 이름들을 직접 알려 줍니다.
디다케는 주의 날 모임을 이렇게 적습니다. 모여서 빵을 떼고, 잘못을 고백한 뒤 감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를 제사라고 부릅니다. 빵 나눔과 감사와 제사라는 세 가지 이름이 한 문장 안에 함께 놓여 있는 셈입니다. 같은 문헌의 다른 대목은 아예 그 항목의 제목을 감사, 곧 에우카리스티아로 달아 두었습니다.
2세기 중엽 로마에서 글을 쓴 유스티누스는 더 분명하게 적었습니다. 그는 나누는 음식을 두고 우리 가운데서는 이것을 에우카리스티아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감사라는 뜻입니다. 이름을 밝히고 그 이름의 뜻까지 함께 적어 둔 셈입니다.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이름들의 존재입니다. 어느 이름이 먼저였고 어떤 순서로 자리를 물려주었는지까지는 이 두 문헌이 말해 주지 않습니다. 다만 미사라는 이름이 붙기 훨씬 전부터 이 모임을 부르는 말이 여럿이었고, 그 말들이 빵 나눔과 감사, 제사라는 모임의 성격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 미사를 드리는 장면이다. |
미사의 노래, 그레고리오 성가라는 이름
미사에서 부르던 노래는 오랫동안 반주 없는 한 줄의 선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레고리오 성가라고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에 붙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재위 590~604)가 이 노래들을 직접 지었다는 이야기는 전승입니다. 그의 전기를 쓴 요한 부제는 872년 무렵의 글에서, 그레고리우스가 여러 조각을 엮어 성가집을 편찬했다는 정도로만 적었습니다. 성령의 비둘기가 귓가에서 선율을 불러 주는 그림은 그 뒤에 굳어진 모습입니다.
지금 학계가 대체로 받아들이는 설명은 다릅니다. 8~9세기 카롤링거 왕조가 로마의 전례를 들여오면서 로마의 성가와 갈리아 지방의 성가가 섞였고, 그 결과물이 그레고리오 성가라는 이름으로 퍼졌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실제로는 8세기 초의 교황 그레고리우스 2세(재위 715~731)를 가리켰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다만 이 무렵 성가대 학교인 스콜라 칸토룸이 그레고리우스 2세 때 처음 세워졌다는 설명은 근거가 약합니다. 7세기 말의 로마 전례 규범서에 이미 스콜라가 키리에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노래는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1963년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헌장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로마 전례에 고유한 노래로 보고 으뜸 자리를 주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시작 예식과 말씀의 전례
미사의 전반부는 신자들이 함께 모여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고, 성경 말씀을 듣고 응답하는 시간입니다.
이 앞부분의 뼈대는 2세기 기록에 이미 나타납니다. 유스티누스는 주일에 도시와 시골에 사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는 동안 사도들의 회고록이나 예언자들의 글을 읽는다고 했습니다. 낭독이 끝나면 인도하는 이가 말로 가르치고 권하며, 그다음 모두 함께 일어나 기도한다고 적었습니다. 읽고, 풀어 주고, 함께 기도하는 세 걸음입니다.
서양 음악사에서 중요한 것은 이 가운데 통상문입니다. 매번 되풀이되는 이 부분이 다성음악 작곡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 입당송(Introitus) · 고유문
- 키리에(Kyrie, 자비송) · 통상문
- 글로리아(Gloria, 대영광송) · 통상문
- 층계송(Graduale) 또는 알렐루야(Alleluia) · 고유문
- 부속송(Sequentia) · 고유문
- 크레도(Credo,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 통상문
통상문이라고 해서 모든 미사에 다섯 곡이 다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로마 미사 규정을 보면 대영광송은 대림 시기와 사순 시기를 뺀 주일과 대축일·축일에, 신경은 주일과 대축일에 바칩니다. 평일 미사에서는 두 곡이 빠지는 날이 많습니다.
성찬의 전례 순서
성찬의 전례는 미사의 핵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신자들은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고 감사와 찬미를 드린 뒤 성체를 나눕니다.
- 봉헌송(Offertorium) · 고유문
- 감사송(Praefatio) · 고유문
- 상크투스(Sanctus, 거룩하시도다) · 통상문
- 아뉴스데이(Agnus Dei, 하느님의 어린양) · 통상문
- 영성체송(Communio) · 고유문
- 파견(Ite, missa est 또는 Benedicamus Domino)
마지막 줄의 두 문구는 경우에 따라 갈렸습니다. 1960년에 공포된 새 루브리카가 1961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기 전에는, 대영광송을 부르지 않는 미사에서 이테 미사 에스트 대신 베네디카무스 도미노, 곧 주님을 찬미합시다를 쓰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이 짧은 파견 문구도 중세 이래 성가집에서는 통상문 묶음에 함께 실렸고, 아래에서 볼 마쇼의 미사곡에도 한 곡으로 들어 있습니다.
미사 통상문과 초기 다성음악의 만남
다섯 곡이 미사에 들어온 순서
다섯 통상문은 같은 날 한꺼번에 생기지 않았습니다. 문헌에 남은 흔적을 시대 순으로 놓으면 수백 년에 걸친 누적이 보입니다.
- 상크투스: 다섯 가운데 가장 이릅니다. 4세기 후반의 『사도 헌장』 8권 12장은 성찬기도 가운데 회중이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하도록 적고 있습니다. 지금도 감사송 바로 뒤, 성찬기도의 한 부분으로 이어집니다.
- 키리에: 그리스어 기도문이 라틴 미사에 남은 것입니다. 6세기 말 그레고리우스 1세는 로마에서는 그리스인처럼 모두 함께 외치지 않고 성직자가 부르면 회중이 받으며, 그리스인에게 없는 크리스테 엘레이손도 같은 횟수로 부른다고 편지에 적었습니다.
- 글로리아: 교황 연대기 『리베르 폰티피칼리스』는 교황 심마쿠스(재위 498~514)가 이 찬가를 주일과 순교자 축일에 부르게 했다고 전합니다.
- 아뉴스데이: 같은 연대기는 교황 세르지우스 1세(재위 687~701)가 이 노래를 로마 미사에 들였다고 적습니다. 시리아계 교황이 동방의 관습을 들여온 것으로 봅니다.
- 크레도: 가장 늦습니다. 스페인과 프랑크 왕국에서 먼저 미사 중에 부르던 신경을 로마가 미사에 받아들인 것은 1014년입니다.
이렇게 모인 다섯 곡은 대체로 가사가 정해진 통상문이어서, 한 번 곡을 붙여 두면 여러 전례일에 되풀이해 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실용적인 이유가 작곡가들이 유독 통상문을 대규모 음악의 재료로 삼게 된 배경으로 보이지만, 이 점을 직접 언급한 문헌까지는 확인하지 못해 합리적인 추정으로 남겨 둡니다.
한 사람이 쓴 미사곡
한 사람이 통상문 다섯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작곡한 이른 사례로는 기욤 드 마쇼의 〈노트르담 미사〉가 꼽힙니다. 1365년 이전에 쓴 이 곡은 다섯 곡에 이테 미사 에스트까지 더해 여섯 곡으로 되어 있습니다. 해산을 알리는 그 짧은 문구까지 음악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 작품이 왜 그렇게 꼽히는지, 그 이전의 통상문 모음과는 무엇이 다른지는 [서양음악사 3] 아르스 안티쿠아와 아르스 노바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다성 미사곡이 화려해지자 교회는 제동을 걸기도 했습니다. 트렌트 공의회는 1562년 미사 거행에 관한 교령에서 음탕하거나 불순한 것이 섞인 음악을 교회에서 몰아내라고 정했습니다. 이 결정 이후의 이야기는 르네상스 음악으로 이어집니다.
죽은 이를 위한 미사도 같은 뼈대 위에 서 있습니다. 위령 미사는 입당송의 첫 말 레퀴엠 에테르남(영원한 안식을)에서 레퀴엠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기쁨을 노래하는 대영광송과 신경이 빠지는 대신 고유문이 달라집니다. 이 형식으로 쓴 가장 유명한 곡에 얽힌 이야기는 모차르트 레퀴엠, 어디까지가 모차르트인가에서 다뤘습니다.
실제 미사 영상 예시, 모차르트 대관식 미사
1985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바오로 대축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이 미사에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Missa in C, K.317)를 연주했습니다. UPI 보도에 따르면 추기경과 외교관 등 약 1만 명이 참석했고 약 30개국에 생중계됐습니다. 연주회장이 아니라 실제 미사 안에서 연주된 것이라, 미사곡이 본래 전례 속의 노래였다는 점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기록입니다.
그런데 대관식이라는 별칭은 이 곡이 처음 울린 자리에서 온 이름이 아닙니다. 모차르트는 1779년 3월 23일 잘츠부르크에서 이 곡을 마쳤고, 초연은 그해 4월 부활 축일 가운데 하루로 봅니다. 별칭은 쾨헬 목록 초판에도 이미 실려 있지만, 초연에서 나온 이름은 아닌 것으로 봅니다. 1791년과 1792년 대관식에서 이 곡이 연주됐다는 설명이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확정된 연주 기록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모차르테움의 쾨헬 목록은 대관식 미사라는 이름이 모차르트 생전에는 확인되지 않으며, 가장 이른 확인 사례를 1806년 자료로 봅니다.
다음에 미사곡을 들을 때는 키리에·글로리아·크레도·상크투스·아뉴스데이 다섯을 짚어 보십시오. 앞의 두 절에서 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각 곡이 미사에 들어온 시기가 수백 년씩 떨어져 있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한 작곡가가 이 다섯을 하나의 음악으로 묶으려 한 시도가 왜 따로 기록될 만한 일인지 들리기 시작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미사(Missa)라는 이름의 어원은 무엇인가요?
라틴어 미시오(missio)의 후기형 명사입니다. 파견이 아니라 해산을 뜻했고, 원래는 재판이나 절차가 끝나 사람들을 돌려보낼 때 쓰던 실무 표현이었습니다. 전례 용어로 쓰인 이른 사례로는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가 386년에 쓴 서한이 꼽힙니다.
Q. 이테 미사 에스트는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인가요?
널리 그렇게 알려져 있지만, 이 문구가 본래 담고 있던 뜻은 예배가 끝났다는 알림입니다. 사명을 안고 세상으로 나아가라는 풀이는 그 본래 뜻과는 다른 이해입니다.
Q. 통상문과 고유문은 어떻게 다른가요?
통상문은 가사가 대체로 정해져 미사마다 되풀이되는 부분이고, 고유문은 그날의 전례력에 맞춰 가사가 바뀌는 부분입니다. 키리에·글로리아·크레도·상크투스·아뉴스데이 다섯 곡이 통상문이며, 작곡가들이 미사곡을 쓸 때 붙잡은 것이 이 다섯입니다. 다만 글로리아와 크레도는 날에 따라 빠집니다.
Q. 미사는 어떤 순서로 진행되나요?
크게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나뉩니다. 앞부분에서는 자비를 구하고 성경을 읽고 응답하며, 뒷부분에서는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고 감사를 드린 뒤 성체를 나눕니다. 읽고 풀어 주고 함께 기도하는 앞부분의 뼈대는 이미 2세기 기록에 나타납니다.
Q. 그레고리오 성가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만들었나요?
그렇게 전해지지만 전승입니다. 그의 9세기 전기도 여러 조각을 엮어 성가집을 편찬했다는 정도로만 적었고, 지금은 8~9세기 카롤링거 시대에 로마와 갈리아의 성가가 섞여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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