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1] 음악의 기원과 고대 음악: 피타고라스부터 그리스·로마 시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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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가 대장간을 지나다 망치 소리에서 화음의 비밀을 깨달았다는 이야기,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 유명한 일화는 실제 소리와 맞지 않는 전설입니다. 망치 이야기는 틀렸지만, 그 이야기가 가리키는 비율은 맞습니다. 그리고 그 비율은 이천 년 넘게 서양 음악의 음높이를 정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서양 음악사는 흔히 기보법이 자리 잡은 중세를 출발점으로 삼지만, 음악 그 자체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음악의 기원과 고대 신화 속 음악의 의미, 그리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음악 문화를 사실관계 중심으로 정리해 봅니다.

음악의 기원과 고대 음악 한눈에 보기

  • 기원: 가장 오래된 악기는 독일 남부 동굴에서 나온 3만 5천 년 이상 된 뼈 피리, 서양음악사는 기보법이 자리 잡은 중세를 학문적 기점으로 삼음
  • 신화: 제우스와 므네모시네의 딸 아홉 뮤즈가 관장한 예술 영역 무지케가 뮤직의 어원
  • 피타고라스: 현의 길이 비율과 협화음의 관계는 사실이나, 대장간 일화와 개인의 발견·증명은 후대의 전설
  • 그리스 이론: 테트라코드가 음계의 기본 단위, 도리아·프리기아 등 선법은 중세 교회선법과 이름만 같음
  • 남은 악보: 기원전 128년 무렵의 델포이 찬가, 1~2세기의 세이킬로스 비문
  • 로마: 군사·경기·연회의 실용적 쓰임이 두드러졌지만 네로처럼 진지한 음악 활동도 존재

음악의 기원, 인류와 함께 시작된 소리

음악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류의 등장과 궤를 같이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노래나 손뼉, 돌과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증거는 악기입니다.

그 증거가 독일 남부 슈바벤 지방의 동굴들에서 나왔습니다. 2008년 홀레 펠스 동굴에서 독수리 날개뼈로 만든 피리가 발굴됐고, 근처 동굴들에서는 매머드 상아를 깎아 만든 피리 조각도 나왔습니다. 이 피리들은 최소 3만 5천 년 전의 것이고, 2012년에는 가이센클뢰스터레 동굴의 피리 조각이 약 4만 2천 년 전까지 올라간다는 연대 측정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손가락 구멍을 뚫은 피리라는 점에서, 이 무렵 사람들이 이미 서로 다른 음높이를 골라 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사는 일반 역사와 마찬가지로 기록을 기준으로 출발점을 정합니다. 인류의 역사가 문자의 등장을 기준으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나뉘듯, 서양 음악사에서는 음을 기록하는 방법인 기보법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중세를 학문적 기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고대 신화 속의 음악, 신들의 권능

고대인들은 음악을 단순한 소리의 울림이 아니라 신들의 권능이 반영된 신성한 힘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최고신 제우스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와 아홉 밤을 함께 보내 아홉 명의 딸을 낳았고, 이들이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는 뮤즈 여신들입니다. 이 이야기는 기원전 700년 무렵의 시인 헤시오도스가 쓴 〈신통기〉의 첫머리에 그대로 나옵니다. 기억의 여신이 노래의 여신들을 낳았다는 설정은, 글로 적지 않던 시대에 시와 노래가 곧 공동체의 기억이었다는 사실과 겹쳐 읽히기도 합니다.

뮤즈 여신들이 관장하던 시, 노래, 무용 등의 예술 활동 영역을 통틀어 무지케라 불렀으며, 이것이 오늘날 뮤직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태양과 이성의 신 아폴론은 이 뮤즈들의 수호자이자 음악의 신으로 추앙받았습니다.

고대 이집트 네바문의 무덤 벽화에 그려진 음악가와 무용수
고대 이집트 관리 네바문의 무덤을 장식한 연회 벽화 속 악사와 무용수다. 기원전 1350년 무렵의 것으로 런던 대영박물관에 있다.

피타고라스의 음악 이론, 전설과 진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음악이 단지 듣는 즐거움을 위한 오락이 아니라 대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상을 상징하는 인물로 흔히 거론되는 사람이 수학자 피타고라스입니다. 그는 만물의 근원이 수라고 보았고, 현의 길이가 2:1일 때 옥타브, 3:2일 때 완전5도, 4:3일 때 완전4도의 협화음이 난다는 사실을 직접 발견해 과학적으로 증명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서사는 상당 부분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대장간 일화가 처음 적힌 곳

이 발견에 흔히 곁들여지는 것이 대장간 일화입니다. 피타고라스가 대장간을 지나다가 무게가 다른 망치들이 두드리는 소리에서 조화로운 비율을 알아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속 망치의 무게는 12, 9, 8, 6이었습니다. 12와 6은 2:1이니 옥타브, 12와 8은 3:2이니 5도, 12와 9는 4:3이니 4도라는 계산입니다. 계산은 깔끔하지만 실제 망치 소리는 이렇게 무게 비율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무게 비율 그대로 음정이 난다는 설명은 음향 법칙과 맞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기록 가운데 이 일화가 처음 나오는 것은 피타고라스가 세상을 뜨고 약 600년이 지난 1~2세기, 게라사 출신의 니코마코스가 쓴 화성학 입문서입니다. 이후 6세기 초 보에티우스가 자신의 저작 〈음악의 원리〉에서 망치를 다섯 개로 늘려 이 이야기를 다시 옮겨 실으면서 중세 내내 사실처럼 굳어져 널리 퍼졌습니다.

니코마코스의 글에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피타고라스가 집에 돌아와 같은 길이의 줄 네 가닥에 망치와 같은 무게의 추를 달아 보니 같은 화음이 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틀렸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힌 사람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아버지인 음악가 빈첸초 갈릴레이였습니다. 그는 16세기 후반, 줄에 매다는 무게로 5도를 얻으려면 3:2가 아니라 그 제곱인 9:4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비율은 누구의 것인가

더 근본적으로, 피타고라스 본인이 생전에 이 비율을 직접 발견하고 증명했다는 것 역시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피타고라스는 스스로 남긴 저술이 전혀 없으며, 이 업적이 실제로는 후대 피타고라스학파, 특히 필롤라오스처럼 피타고라스 사후에 활동한 후계 세대의 것이었을 가능성을 고전학자들도 지적합니다(필롤라오스는 피타고라스가 세상을 뜨고 20여 년 뒤에 태어나, 엄밀히는 직계 제자가 아닙니다). 다만 현의 길이 비율이 옥타브·완전5도·완전4도를 낸다는 사실 자체는 현악기에서 실제로 성립하는 정확한 관찰입니다. 정리하면 비율 자체는 사실이지만, 이를 피타고라스 개인이 대장간에서 착안해 과학적으로 증명했다는 서사는 후대에 덧붙여진 전설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 비율이 남긴 유산은 조율입니다. 3:2의 5도를 계속 쌓아 음을 정하는 방법을 피타고라스 음률이라 부르는데, 5도를 열두 번 쌓으면 출발음보다 일곱 옥타브 위의 음에 정확히 닿지 않고 반음의 4분의 1쯤 넘어섭니다. 이 작은 어긋남을 피타고라스 콤마라 부릅니다. 이 어긋남을 어떻게 나눠 감출지를 두고 고민한 끝에 나온 것이 훗날의 평균율입니다. 그 이야기는 바로크 음악에서 이어집니다. 고대인들은 이 수의 비율이 음악뿐 아니라 천체의 운행에도 들어 있다고 보았고, 플라톤의 〈국가〉 마지막 권에는 하늘의 고리마다 한 음씩 노래해 하나의 화음을 이룬다는 장면이 나옵니다.

고대 그리스의 음악 이론, 테트라코드와 선법

고대 그리스 음악 이론에는 오늘날과는 다른 독특한 기본 단위가 있었습니다. 현대 음악이 옥타브를 기준으로 음계를 짜는 것과 달리, 그리스인들은 네 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테트라코드를 음계 구성의 기본 단위로 삼았고, 옥타브도 두 개의 테트라코드와 온음 하나가 합쳐진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테트라코드의 바깥 두 음은 4도로 고정하고 안쪽 두 음을 움직였는데, 그 간격에 따라 온음계적인 것, 반음계적인 것, 반음보다 좁은 4분음을 쓰는 엔하모닉이라는 세 갈래(게누스)가 있었습니다.

이 테트라코드를 바탕으로 도리아, 프리기아, 리디아 같은 여러 선법 체계가 자리 잡았습니다. 다만 이 명칭들이 훗날 중세 교회선법에도 그대로 쓰이면서 혼동이 생기기 쉬운데, 이름만 같을 뿐 실제 음정 구조는 서로 다릅니다. 피아노 흰 건반으로 옮기면 그리스의 도리아 음계는 미에서 미까지인데, 중세 교회선법의 도리아는 레에서 레까지입니다. 중세 교회선법은 레·미·파·솔에서 끝나는 네 선법과, 그 각각을 4도 아래에서 시작하는 히포 선법 넷을 합한 여덟 개 체계였습니다. 중세 저술가들이 고대 그리스 이론을 후대에 옮기는 과정에서 원래의 체계와 다르게 적용하면서 생긴 결과로, 그리스 선법과 중세 교회선법은 이름만 물려받은 별개의 체계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악보가 남은 그리스 음악

그리스 음악은 이론만 남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인들은 글자 모양의 기호를 가사 위에 적어 음높이를 기록했고, 몇몇 곡이 돌에 새겨진 채 남았습니다. 1893년 프랑스 발굴단은 델포이에 있는 아테네인 보물창고의 남쪽 바깥벽에서 아폴론을 위한 찬가 두 곡을 찾아냈습니다. 최근 연구는 두 곡 모두 기원전 128년 아테네에서 델포이로 보낸 행렬 의식을 위해 지어졌다고 봅니다. 작곡자의 이름이 아테나이오스와 리메니오스로 함께 새겨져 있어, 작곡자 이름이 붙은 악보로는 아주 이른 예입니다.

완전한 형태로 남은 곡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세이킬로스의 비문입니다. 1~2세기 무렵 지금의 튀르키예 아이딘 지역에 세워진 대리석 기둥으로, 1883년 철도 공사 중에 발견됐고 지금은 코펜하겐의 덴마크 국립박물관에 있습니다. 짧은 노래 한 곡이 음표 기호와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새겨져 있는데, 가사는 이렇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빛나라, 조금도 슬퍼하지 마라, 삶은 잠깐이고 끝은 시간이 거두어 간다. 여러 연주자가 이 기호를 읽어 녹음해 두었기 때문에, 이천 년 전의 노래를 지금도 들어 볼 수 있습니다.

에토스 이론과 종합 예술로서의 무지케

고대 그리스에서 음악은 시민의 일상 전반에 깊이 스며 있었습니다. 종교 의식과 올림픽 같은 운동 경기, 축제와 비극 무대에서 음악은 빠질 수 없는 요소였습니다. 특히 음악이 인간의 성품과 도덕성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에토스 이론에 따라, 청소년의 도덕적 수양을 위한 필수 교육 과목으로 중요하게 다뤄졌습니다. 이 사상은 다몬의 생각을 이어받은 플라톤이 〈국가〉에서 각 선법의 적절한 쓰임을 논하며 체계화했고,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정치학〉에서 음악 교육과 성품의 관계를 상세히 다뤘습니다. 당시의 무지케는 소리만이 아니라 시와 무용, 연극이 하나로 통합된 종합 예술이었습니다.

플라톤의 기준은 꽤 구체적이었습니다. 그는 이상 국가에 용기를 길러 주는 도리아 선법과 절제를 길러 주는 프리기아 선법만 남기자고 했고, 악기도 리라와 키타라는 두되 아울로스는 들이지 말자고 했습니다. 두 악기는 소리부터 달랐습니다. 키타라는 아폴론의 악기로 여겨지던 큰 현악기이고, 아울로스는 흔히 피리로 옮기지만 실제로는 오늘날의 오보에처럼 겹리드를 물고 부는 관악기로, 두 대를 한꺼번에 불어 날카롭고 힘찬 소리를 냈습니다. 디오니소스 축제와 비극 합창을 이끈 것이 바로 이 아울로스였습니다.

고대 로마의 음악 문화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인 고대 로마인들도 음악을 널리 즐겼습니다. 로마 음악은 에트루리아와 그리스의 영향 속에서 자라났고, 그리스의 음악 이론과 음악가들도 로마로 활발히 유입되었습니다. 다만 철학적·교육적 가치를 중시했던 그리스인들과 달리, 로마인들에게 음악은 군사 행진의 사기를 북돋우거나 검투 경기와 전차 경기의 흥을 돋우고, 귀족의 호화로운 연회를 꾸미는 실용적인 도구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투바와 코르누 같은 금관악기는 신호 전달을 전담하는 병사가 따로 있을 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로마인들이 음악을 오락으로만 다룬 것은 아닙니다.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네로 황제는 당대 으뜸가는 키타라 가수 테르프누스에게 배우며 성악 훈련에 진지하게 매달렸습니다. 등을 대고 누워 가슴에 납판을 얹고, 목소리에 해롭다는 과일과 음식을 끊는 발성 관리법까지 동원했습니다. 60년에는 음악과 체육, 마술 세 부문으로 된 그리스식 경연 축제 네로니아를 만들어 5년마다 열기로 했고, 실제로 60년과 65년 두 차례 열렸습니다. 반란 소식이 들려온 68년에도 새로 고안된 수력 오르간들을 신하들에게 보여 주며 그 구조와 원리를 설명하는 데 하루를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공인되고 380년에 국교가 된 기독교 사회는, 극장과 연회의 음악을 멀리하며 반주 없이 부르는 단선율 노래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노래는 처음부터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로마에는 옛 로마 성가가, 밀라노에는 암브로시우스 성가가, 스페인에는 모사라베 성가가, 갈리아와 아일랜드·브리튼, 남이탈리아 베네벤토에도 저마다의 성가가 있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로마와 갈리아의 전통이 8~9세기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 합쳐져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모습으로 정리·정착됩니다.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 성가는 그 뒤에도 따로 살아남아 지금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그 성가가 미사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는 [서양음악사2] 미사의 기원과 전례 구조에서, 그 위에 성부를 쌓아 올린 이야기는 [서양음악사 3] 아르스 안티쿠아와 아르스 노바에서 이어집니다.

음악은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 표현에서 출발해 신화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 종교적 숭고함과 맞물리며 고대 문명 속에서 발전해 왔습니다. 다만 그 발전의 서사에는 대장간 일화처럼 후대에 덧붙여진 전설도 적지 않으며, 이를 가려내는 일 역시 고대 음악을 이해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세이킬로스의 노래를 한 번 찾아 들어 보십시오. 망치 이야기 없이도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음악이 어떤 선율이었는지, 그 짧은 노래가 먼저 들려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피타고라스가 대장간에서 망치 소리를 듣고 음악 비율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인가요?

널리 퍼진 이야기지만 실제 소리와 맞지 않는 전설입니다. 망치 소리는 무게 비율을 그대로 따르지 않으므로, 무게 비율 그대로 음높이가 난다는 설명은 실제 음향 법칙과 어긋납니다. 남아 있는 기록 가운데 이 일화를 처음 적은 니코마코스가 피타고라스보다 600년쯤 늦은 1~2세기 사람이라는 점도 신빙성을 떨어뜨립니다.

Q. 현의 길이 비율로 협화음이 난다는 사실 자체는 틀린 건가요?

비율 자체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 발견자로 알려진 인물 쪽입니다. 피타고라스는 글을 전혀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정작 이 원리를 처음 밝혀낸 사람이 그 자신인지 아니면 필롤라오스 등 뒤에 등장한 후계 학파인지조차 확실치 않습니다. 물리 현상으로서는 지금도 맞는 비율이지만, 오늘날 피아노는 평균율로 조율하기 때문에 5도를 이 비율보다 아주 조금 좁게 맞춥니다.

Q. 그리스 선법과 중세 교회선법 이름이 같은데 왜 서로 다른가요?

명칭만 그대로 물려받았을 뿐 실제 내용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중세 저술가들이 고대 그리스의 선법 이름을 가져다 쓰면서 정작 음정 구조까지 그대로 옮기지는 못했고, 그 결과 그리스의 도리아는 미에서 미까지, 중세의 도리아는 레에서 레까지인 식으로 이름은 같지만 속은 다른 두 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Q. 에토스 이론은 누가 체계화했나요?

다몬의 사상을 이어받은 플라톤이 〈국가〉에서 각 선법이 인간 성품에 미치는 영향을 논하며 이론을 체계화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정치학〉에서 음악 교육의 중요성을 다뤘습니다. 이 사상 덕분에 음악은 그리스 청소년 교육의 핵심 과목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Q. 로마 음악은 정말 향락적인 용도로만 쓰였나요?

그렇게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확실히 군사 신호나 검투 경기, 연회의 흥을 돋우는 실용적 쓰임이 두드러졌지만, 네로 황제처럼 혹독한 발성 관리법까지 동원하며 성악에 진지하게 매달리고 직접 음악 경연 축제를 만든 사례도 있어 향락 일변도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Q. 본문 속 네바문 벽화는 어디에 소장되어 있나요?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집트 테베 서안의 한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기원전 1350년 무렵 활동한 관리 네바문의 무덤을 장식했던 연회 장면 벽화의 일부입니다.

Q. 무지케(Mousike)라는 말은 정확히 어디서 유래했나요?

그리스 신화 속 아홉 뮤즈 여신이 관장하던 시·노래·무용 등 예술 활동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이 형태를 바꿔 오늘날 영어 뮤직(Music)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Q. 지금 들어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노래는 무엇인가요?

완전한 형태로 남은 곡으로는 1~2세기 무렵의 세이킬로스 비문에 새겨진 노래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힙니다. 그보다 앞선 델포이 찬가나 고대 근동의 악보도 있지만 조각으로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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