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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사 6 : 고전주의 시대(Classical Music)

젊은 베토벤이 빈을 찾아가 모차르트 앞에서 연주했고, 모차르트가 그 재능에 감탄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 유명한 만남을 뒷받침하는 동시대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서양음악사의 황금기로 불리는 고전주의 시대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통해 서양음악의 형식과 어법이 확립되고 크게 발전한 시기입니다. 만하임악파의 숨은 공로부터 이 유명한 만남의 진실까지, 고전주의 시대를 사실관계 중심으로 정리해 봅니다.

고전주의 시대 한눈에 보기
  • 시기: 바흐 사망(1750년)부터 18세기 중반~19세기 초, 정확한 종료 시점은 학자마다 견해 갈림
  • 배경: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쉽고 명확한 음악 선호, 제시부·전개부·재현부의 소나타 형식 확립
  • 만하임악파: 요한 슈타미츠가 이끈 크레센도·로켓 음형의 개척자, 소나타형식·4악장 교향곡 표준화에 기여
  • 빈 고전파 3인: 하이든(교향곡·현악 4중주), 모차르트(하이든 4중주 헌정), 베토벤(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 유명 전설: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1787년 만남은 뒷받침 기록이 없는 전설

고전주의 시대란 무엇인가, 계몽주의와 새로운 음악미학

서양음악사의 황금기로 불리는 고전주의 시대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통해 서양음악의 형식과 어법이 확립되고 크게 발전한 시기입니다. 이 시대를 고전주의라 부르는 가장 큰 이유는 음악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이 세 작곡가가 이 시기에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고전주의는 바흐가 사망한 1750년부터 시작됐다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모이지만, 정확히 언제 끝나는지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릅니다. 낭만주의 음악가인 슈만과 쇼팽이 태어난 1810년까지로 보는 견해도 있고, 베토벤이 사망한 1827년까지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이런 구체적인 후보 연도들이 학계에서 정식으로 맞붙는 논쟁이라기보다는 여러 음악사 서술에서 예시로 종종 언급되는 수준이라는 점은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체로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까지를 고전주의 시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고전주의 음악을 이해하려면 먼저 계몽주의를 이해해야 합니다. 계몽주의란 18세기 후반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유행한 문학, 철학, 문화적 사상으로, 전통적인 관습과 의례, 도덕에 대한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핵심이었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온갖 장식음으로 가득 찬 복잡한 음악 대신, 쉽고 간결하고 명확한 음악을 선호하는 흐름으로 이어졌습니다.

음악을 즐기는 대상도 일반 시민들로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하기 쉬운 선율 위주의 음악이 발전했습니다. 인쇄술의 발달로 악보의 대량 인쇄가 가능해졌고, 피아노 같은 악기의 보급도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만하임악파, 크레센도와 소나타형식의 개척자

고전주의 시대가 이룬 가장 큰 성과는 제시부, 전개부, 재현부로 구성되는 소나타 형식이 자리 잡으면서 소나타와 교향곡, 실내악 같은 다양한 장르가 탄생하거나 한층 완전한 형태로 발전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 틀은 이후 낭만주의 시대까지 기본 골격이 크게 바뀌지 않은 채 이어집니다.

이 소나타 형식과 근대적 교향곡의 틀을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독일 만하임 궁정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활동한 만하임악파입니다. 보헤미아 출신 작곡가 요한 슈타미츠가 이 악파의 아버지로 꼽힙니다. 이들은 오케스트라 전체가 서서히 소리를 키워 나가는 만하임 크레센도라는 다이내믹 기법을 개척했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어서 레오폴트 모차르트와 그의 아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음악사가 찰스 버니 모두 이를 극찬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빠르게 상승하는 아르페지오에 크레센도를 얹는 만하임 로켓이라는 음형도 이들의 발명품으로 꼽히며, 훗날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의 4악장이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만하임악파는 소나타 형식의 발전과, 미뉴에트를 3악장에 넣은 4악장 교향곡 표준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다만 이 시기 교향곡 양식을 다진 것이 만하임악파 하나만은 아니었고, 밀라노의 잠마르티니나 베를린의 C.P.E. 바흐 같은 다른 지역 음악가들도 비슷한 시기에 나란히 기여했습니다.

빈 고전파의 등장과 음악가의 사회적 지위 변화

고전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있는데, 이들을 빈 고전파 또는 제1빈악파라고도 부릅니다. 세 작곡가 모두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였던 빈은 유럽의 모든 민족과 문화가 모여드는 중심지였고, 귀족들이 음악가를 지원하고 즐기는 분위기 속에서 클래식 음악이 꽃을 피웠습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모습이 보이는 이미지입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출처: facartes.uniandes.edu.co)

이 시기 음악가들은 교회나 귀족에게 고용되던 관행에서 벗어나 점차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이든은 에스터하지 가문 궁정에서 하급 고용인 신분으로 출발했습니다. 1761년 계약서에는 그가 다른 하인들처럼 제복을 갖춰 입고 매일 대기실에서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고 명시돼 있으며, 다만 식사는 일반 하인이 아닌 '장교의 식탁'에서 할 수 있는 특권도 함께 규정돼 있었습니다. 이런 대우가 정확히 요리사나 정원사와 같은 등급이었는지는 계약 원문에 그런 구체적 비교가 나오지 않아 단정할 수 없습니다. 모차르트는 고용된 신분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베토벤은 특정 궁정이나 교회에 정식으로 고용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독립적인 프리랜서로 성공을 거뒀습니다.

하이든, 교향곡의 아버지라는 칭호의 진실

빈 고전파 3인 중 가장 먼저 태어난 하이든(1732~1809)은 104곡(오늘날 표준적으로 쓰이는 넘버링 기준)에 이르는 교향곡을 남기며 흔히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립니다(이후 새로 발굴된 두 곡까지 포함하면 106곡에 이릅니다). 다만 이 칭호는 그가 교향곡이라는 장르를 처음 발명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이든 이전에도 밀라노의 잠마르티니나 만하임악파처럼 초기 교향곡을 작곡한 세대가 이미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 애칭이 더 정당하게 따라붙을 수 있는 분야는 현악 4중주 쪽이라는 평가도 있을 만큼, 하이든의 진짜 공로는 소나타 형식과 관현악 편성법을 다듬고 현악 4중주라는 고전파 기악 양식을 완성해 모차르트와 베토벤에게 영향을 준 데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종합과 하이든과의 우정

모차르트(1756~1791)는 하이든을 파파 하이든이라 부르며 진심으로 존경했습니다. 1785년, 그는 하이든의 현악 4중주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여섯 곡의 4중주(오늘날 하이든 4중주라 불리는 작품군)를 완성해 다시 하이든에게 헌정했습니다. 이 악보의 서문에서 모차르트는 여섯 곡을 자신의 여섯 자녀에 비유하며, 하이든에게 이 자녀들의 아버지이자 안내자이자 친구가 되어 달라고 겸손하게 청했습니다. 하이든 역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를 진심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베토벤,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베토벤(1770~1827) 역시 하이든과 연결고리가 있었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그리 가깝지 않았다는 것이 여러 전기 작가의 설명입니다. 노년에 인기를 얻어 매우 분주했던 하이든이 학구열에 불타던 청년 베토벤의 기대를 충분히 채워 주지 못했다는 것인데, 작곡가 요한 밥티스트 솅크는 1830년 회고에서 베토벤이 하이든 몰래 자신에게 따로 대위법을 배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 회고 자체에 모순점이 있고 베토벤이 실제로 남긴 대위법 연습 기록과도 완전히 들어맞지 않아 학자들은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하이든이 1793년 말 이 사실을 실제로 알아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관계는 더 극적인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1787년 빈을 방문한 베토벤이 모차르트 앞에서 연주해 그를 감탄시켰다는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이 만남이 실제로 있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습니다. 베토벤이 그해 봄 빈에 약 2주간 머물렀다는 사실은 확인되지만, 모차르트와의 만남과 연주 장면 자체를 뒷받침하는 동시대 문서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즉 확인되는 사실은 짧은 빈 체류뿐이고, 극적인 만남의 세부는 문서화되지 않은 채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베토벤은 32개의 피아노 소나타와 9개의 교향곡, 그 밖에도 수많은 협주곡과 실내악 명곡을 통해 고전주의 음악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다듬고 완성한 고전주의 음악을 베토벤이 한층 더 발전시켜 낭만주의 음악으로까지 이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베토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 양쪽에 걸쳐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만하임악파는 정확히 무엇을 처음 만들었나요?

오케스트라 전체가 서서히 소리를 키우는 다이내믹 기법과, 빠르게 치솟는 아르페지오에 크레센도를 얹는 인상적인 음형을 개척한 것으로 꼽힙니다. 다만 초기 교향곡의 틀을 세운 무대가 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며, 잠마르티니 같은 이탈리아 쪽 흐름도 같은 시기에 나란히 존재했다는 점도 함께 알아 둘 만합니다.

Q. 하이든이 정말 교향곡을 처음 만든 사람인가요?

아닙니다. 하이든보다 앞서 이미 초기 형태의 교향곡을 쓴 작곡가들이 있었습니다. 다작과 형식적 완성도 덕분에 통상 이런 애칭으로 불릴 뿐이며, 오히려 그가 더 확실하게 개척자라 부를 만한 분야는 현악 4중주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Q. 모차르트가 하이든에게 헌정한 4중주는 어떤 작품인가요?

1785년 완성한 여섯 곡의 현악 4중주로, 하이든의 작품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악보 서문에서 모차르트는 이 곡들을 자신의 자녀에 빗대며 하이든에게 그들의 아버지이자 친구가 되어 달라고 청했을 만큼, 각별한 존경이 담긴 헌정이었습니다.

Q.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정말 만난 적이 있나요?

확실하지 않습니다. 십 대의 베토벤이 모차르트 앞에서 연주를 선보였고 그가 크게 감명받았다는 극적인 일화가 오랫동안 전해지지만, 이 만남과 연주 장면을 뒷받침하는 동시대 문서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확인 가능한 사실은 1787년 봄, 베토벤이 약 2주간 빈에 머물렀다는 것뿐이며, 나머지 극적인 세부는 문서화되지 않은 채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Q. 하이든과 베토벤의 사제관계는 왜 삐걱거렸나요?

명성을 얻어 바쁘게 지내던 하이든이 배움에 목말라 있던 청년 베토벤을 충분히 챙겨 주지 못했다는 설명이 여러 전기에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다만 이 구체적인 사정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1차 자료까지는 확인되지 않아, 통설로 전해지는 설명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안전합니다.

Q. 하이든은 정말 요리사나 정원사와 비슷한 신분이었나요?

1761년 계약서에 따르면 다른 하인들처럼 제복을 갖춰 입고 매일 지시를 기다려야 하는 하급 고용인 신분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식사는 하인이 아닌 '장교의 식탁'에서 할 수 있었고, 정확히 요리사나 정원사와 같은 등급이었는지는 계약 원문에 그런 구체적 비교가 없어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가 훗날 악단 전체를 책임지는 자리로 승진했다는 사실도 함께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Q. 고전주의 시대는 정확히 언제 끝났나요?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습니다. 슈만과 쇼팽이 태어난 1810년을 기점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베토벤이 눈을 감은 1827년까지 넣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구체적인 연도 비교가 학계의 공식 논쟁이라기보다 여러 서술에서 예시로 언급되는 수준이라, 큰 틀에서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 정도로 넉넉하게 잡아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댓글

  1. 구글 블로그 많이 활성화 되었네요. 서양 음악사 고전주의 시대 잘 읽었습니다. 음악과는 담을 쌓았지만 한번씩 글 읽어보는 재미가 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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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즘 너무 바빠서 포스팅하는 것이 쉽지 않네요. 그래도 틈나는대로 글도 수정하고 있구요. 방문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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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두 아들 키울 당시 녀석들 잠잘 때 틀어주려고 서양 클래식 많이 찾아 들려주곤 했죠. 덩달아 많은 작곡가와 음악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클래식 듣기가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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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님이시네요. 클래식 좋아하시는 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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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쇼팽의 야상곡 좋아하던 분이 계셨는데... 다시 만날 기회가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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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흥미로운 내용 잘 읽었어요. 덕분에 교양 수준이 높아진 착각에 빠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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