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 1921〜1992는 음악사에서 탱고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은 작곡가이자 반도네온(Bandoneon) 연주가이다.
피아졸라는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온 후손의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선천적으로 오른쪽 다리가 뒤틀린 장애가 있었다. 4년후 가족이 뉴욕으로 이주하여 뉴욕에서 자라났다. 거기서 자라면서 피아노도 배우고 재즈와 바흐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아버지 노니노(Nonino)는 피아졸라가 아홉 살일 때 전당포에서 반도네온을 19달러에 사주었는데 피아졸라는 그후 반도네온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열세 살 때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탱고 음악의 가수 가르델(Carlos Gardel)을 만났는데 그는 피아졸라의 재능을 알아 보고 자신의 밴드와 같이 공연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연주여행을 못하게 했는데 그때 비행기 사고로 가르델 밴드 전원이 사망하였다.
1937년 미국에 대공황이 몰려오자 피아졸라의 가족은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갔다. 피아졸라는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살고 있던 세계적 피아니스트 아서 루빈스타인을 위해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한 후 그를 찾아갔다. 루빈스타인의 소개로 피아졸라는 아르헨티나의 클래식 작곡가 히나스테라(Alberto Ginstera)에게 음악이론을 배우게 된다.
1944년 피아졸라는 가수 프란시스코 피오렌티노의 악단을 이끌다 2년 뒤에 자신의 악단을 만들어 전통적인 탱고를 연주하였다. 그러나 이 악단은 1949년 해체되었고 피아졸라는 탱고를 떠나 좀더 정제된 음악 형태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그는 스트라빈스키, 바르토크, 라벨 등 작곡가의 음악을 열심히 공부할 뿐만 아니라 미국식 재즈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의 작곡 역량을 다듬는데 전력을 다했다.
1953년 젊은 작곡가 대회에서 1위를 한 피아졸라는 장학금을 받아 이듬해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음악 교육자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r)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 블랑제는 클래식보다 대중음악 쭉에서 파아졸라의 재능을 발견하고, 탱고를 그만두지 말고 재즈와 클래식 연구를 통해 탱고의 형태를 재생시켜 보라고 권유했다.
1955년 귀국 후 피아졸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작곡과 연주에 힘을 기울이지만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해 1958년 뉴욕으로 건너갔다. 뉴욕에서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담은곡인 <아디오스 노니노 Adios Nonino>를 발표했다. 그러나 뉴욕에서도 주목을 받지 못해 1960년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퀀텟 누에보 탱고(Quinteto Nuevo Tango)을 결성했다. 이후 피아졸라는 자신의 탱고를 새로운 탱고, ‘누에보 뱅고’(Nuevo Tango)라고 부르며 기존의 탱고와는 다른 독창적인 뱅고의 시대를 열었다.
그의 새로운 탱고 음악은 전통 탱고의 요소에 재즈, 클래식 음악에서 받은 영향이 덧붙여진 것이었다. 그의 새로운 음악은 젊은 청중을 사로잡았으나, 전통적인 탱고 리듬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탕구애로(Tanguero, 탱고 팬을 지칭)부터 노여움을 사기도 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 아르헨티나의 군사 정부가 그의 음악을 너무 진보적이라고 비난했으나 결과적으로는 피아졸라에게 새로운 청중을 얻게 해주었다.
1942년 결혼한 피아졸라에게는 아들과 딸을 얻었다. 아들 다니엘은 아버지처럼 탱고 음악인이 되었고, 딸 디아나는 아버지의 자서전을 여러 권 썼다. 그의 아내는 피아졸라에게 인생의 모든 것을 바친 현모 양처였지만 1960년대 피아졸라는 가족을 떠나 집을 나갔다. 여러 명의 가수들과 염문을 뿌리면서 그들을 위해 노래를 작곡했으며, 1968년에는 오페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마리아>를 작곡하였다.
1970년대에는 그의 두 번째 부인과 같이 파리로 가서 프랑스에 살면서 연주 생활을 하고 유럽에서도 유명해졌다. 마침 유럽에서 탱고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피아졸라의 누에보 탱고도 관심을 받게 되었다. 19892년 작곡하여 크로노스 4중주단이 발표한 피아졸라의 작품집 <다섯 개의 탱고 센세이션 Five Tango Sensation>은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피아졸라를 탱고의 황제로 만들었다.
1990년에는 파리에서 뇌졸중에 걸려 의식을 잃었으며 2년 후 아르헨티나에서 71세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피아졸라는 일생을 탱고 클럽과 탱고 연주장에서 보냈지만 약 3,000을 작곡하였으며 약 500곡을 녹음하였다. 그의 대표 작품은 <아디오스 노니노>, <리베르 탱고 Liber tango>. <탱고의 역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