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these first

Latest on the blog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생애와 작품, 누에보 탱고를 만든 반도네온 혁명가

인물 한눈에 보기
• 인물: 아스토르 피아졸라 (Astor Piazzolla, 1921~1992)
• 출생: 1921년 3월 11일,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
• 주 악기: 반도네온
• 음악 언어: 누에보 탱고(nuevo tango). 탱고의 리듬 위에 클래식의 대위법과 확장된 형식, 재즈의 화성과 즉흥을 결합
• 대표작: 아디오스 노니노, 리베르탱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오블리비온, 탱고의 역사, 다섯 개의 탱고 센세이션
• 별세: 1992년 7월 4일, 부에노스아이레스 (71세)
처음 들을 작품
• 처음 듣기 좋은 곡: 리베르탱고(Libertango). '자유'와 '탱고'를 합친 제목처럼, 피아졸라가 만든 누에보 탱고의 독립을 선언한 작품이라 그의 음악이 무엇을 향했는지 한 곡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아스토르 판탈레온 피아졸라(Astor Pantaleón Piazzolla, 1921~1992)는 아르헨티나의 작곡가이자 반도네온 연주자, 편곡가이다. 그는 탱고의 리듬과 몸짓에 클래식 음악의 대위법과 확장된 형식, 재즈의 화성과 즉흥성을 결합해 '누에보 탱고(nuevo tango)'라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었다. 전통 탱고를 버린 것이 아니라, 탱고가 실내악과 협주곡, 현대음악의 무대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그 문법을 넓힌 음악가였다.

뉴욕의 소년, 반도네온과 가르델

피아졸라는 1921년 3월 11일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후손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선천성 내반족 때문에 어린 시절 오른쪽 다리에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고, 그 흔적으로 두 다리 길이에 약간의 차이가 남았다. 가족은 1925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아버지 비센테 '노니노' 피아졸라는 1929년 전당포에서 산 반도네온을 여덟 살 아들에게 주었다. 피아졸라는 처음부터 탱고에만 둘러싸여 자란 것이 아니다. 뉴욕 거리에서 재즈를 들었고, 1933년 헝가리 출신 피아니스트 벨러 빌다에게 배우며 바흐의 음악과 대위법에 눈을 떴다.

1934년 피아졸라는 뉴욕에서 탱고 가수 카를로스 가르델을 만났다. 영어가 서툰 가르델의 안내를 도왔고, 영화 《나를 사랑하게 될 날(El día que me quieras)》에 신문팔이 소년으로 짧게 출연했다. 가르델은 피아졸라를 남미 순회에 데려가려 했지만 아버지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가르델은 이듬해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고, 피아졸라는 그 순회에 동행하지 않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트로일로와 히나스테라

피아졸라 가족은 1937년 마르델플라타로 완전히 돌아왔고, 그는 이듬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옮겼다. 1939년에는 아니발 트로일로 악단에 들어가 반도네온을 연주하고 편곡을 맡았다. 클래식 작곡가가 되려는 열망도 컸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물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에게 자신이 쓴 초기 작품들을 보여주었고, 그 만남을 계기로 알베르토 히나스테라에게 작곡을 배웠다.

무대에서 물러나 작곡을 연구하다

1944년 피아졸라는 가수 프란시스코 피오렌티노의 악단을 이끌었고, 1946년에는 자신의 오르케스타 티피카를 조직했다. 그러나 1949년 악단을 해산한 뒤 한동안 무대의 탱고에서 물러나 작곡과 연구에 집중했다. 히나스테라에게 배운 관현악법과 대위법을 바탕으로 바르토크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연구하고, 뉴욕에서 익힌 재즈의 감각을 자신의 작곡 안으로 끌어들였다.

피아졸라가 반노네온을 연주하는 모습

파리, 불랑제가 일깨운 진짜 목소리

1951년에 작곡한 《부에노스아이레스 교향곡(Sinfonía Buenos Aires)》은 1953년 파비앵 세비츠키상을 받았고, 이 성과는 1954년 파리 유학으로 이어졌다. 나디아 불랑제는 피아졸라가 내놓은 교향곡과 소나타보다 그의 탱고에 더 강한 개성이 있다고 보았다. 피아졸라가 탱고 《트리운팔(Triunfal)》을 들려주자 불랑제는 바로 그 음악이 피아졸라 자신이라고 일깨웠다. 이 만남은 클래식과 탱고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는 대신, 두 언어를 자신의 음악 안에서 결합하게 만든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누에보 탱고의 탄생, 옥테토와 5중주

1955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온 피아졸라는 현악 오케스트라와 옥테토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만들었다. 두 대의 반도네온, 두 대의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콘트라베이스에 전기기타를 더한 옥텟은 노래와 춤의 반주가 중심이던 전통적 오르케스타 티피카와 다른 실내악적 소리를 냈다. 1958년 다시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1959년 아버지의 부고를 들은 뒤 《아디오스 노니노(Adiós Nonino)》를 썼다. 196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조직한 첫 번째 5중주는 반도네온·바이올린·피아노·전기기타·콘트라베이스 편성으로, 이후 누에보 탱고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핵심 앙상블이 되었다.

피아졸라의 음악에서는 탱고 특유의 날카로운 악센트와 싱코페이션 위로 푸가와 대위법, 불협화음, 재즈식 즉흥이 겹친다. 전기기타를 비롯한 새로운 악기를 받아들이고 짧은 춤곡을 여러 악장짜리 작품과 협주곡 규모로 확장한 점도 중요하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넘었다는 점에서는 조지 거슈윈과 비교할 수 있지만, 피아졸라는 탱고의 리듬과 음색을 출발점으로 삼아 장르 자체의 내부를 바꾸었다. 이 변화는 보수적인 탱고계의 거센 반발을 불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유럽과 북미의 클래식·재즈 연주자들에게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리베르탱고에서 말년까지

1960년대에는 시인 오라시오 페레르와의 협업이 중요한 전환을 만들었다. 두 사람은 1968년 '오페리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마리아(María de Buenos Aires)》를 완성했고, 이듬해에는 《광인을 위한 발라드(Balada para un loco)》를 발표했다. 1973년 이탈리아로 활동 무대를 옮긴 뒤에는 1974년 밀라노에서 앨범 《리베르탱고(Libertango)》를 녹음하고, 재즈 색소폰 연주자 제리 멀리건과 《서밋(Summit)》을 만들었다. '자유(libertad)'와 '탱고'를 합친 제목처럼 《리베르탱고》는 전통과 결별한다기보다 자신이 만든 누에보 탱고의 독립을 선언한 작품이었다.

1980년대 피아졸라는 국제적인 연주 무대에서 활동하며 후기의 대표작들을 남겼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르 그랑 탱고(Le Grand Tango)》, 플루트와 기타를 위한 《탱고의 역사(Histoire du Tango)》, 5중주를 위한 《라 카모라(La Camorra)》 등이 이 시기에 나왔다. 크로노스 콰르텟을 위해 쓴 《다섯 개의 탱고 센세이션(Five Tango Sensations)》은 피아졸라가 직접 반도네온을 연주한 마지막 스튜디오 녹음으로, 1990년에 녹음되어 1991년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피아졸라는 1990년 8월 4일 파리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1992년 7월 4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아디오스 노니노》, 《리베르탱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오블리비온》, 《탱고의 역사》는 오늘날 탱고 무대뿐 아니라 실내악과 관현악 공연에서도 널리 연주된다. 피아졸라의 가장 큰 업적은 탱고에 클래식과 재즈를 덧붙인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탱고가 춤의 반주를 넘어 독립된 감상 음악이 될 수 있음을 작품과 연주로 증명했다.

꼭 들어야 할 피아졸라의 작품들

• 아디오스 노니노(Adiós Nonino) — 1959년 뉴욕에서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쓴 작품
• 리베르탱고(Libertango) — 1974년 밀라노에서 녹음, 누에보 탱고의 독립을 선언한 작품
•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 오블리비온(Oblivion) — 오늘날 실내악과 관현악 무대에서도 널리 연주되는 대표작
• 탱고의 역사(Histoire du Tango) — 플루트와 기타를 위한 작품
• 르 그랑 탱고(Le Grand Tango) —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
• 다섯 개의 탱고 센세이션(Five Tango Sensations) — 크로노스 콰르텟을 위해 쓴, 그가 직접 반도네온을 연주한 마지막 스튜디오 녹음(1990년 녹음, 1991년 발매)

피아졸라 시작하기

피아졸라로 들어가는 문은 리베르탱고입니다. '자유'와 '탱고'를 합친 제목이 말해 주듯, 그가 만든 누에보 탱고가 무엇을 선언했는지를 한 곡으로 압축해 보여 줍니다. 날카로운 악센트와 싱코페이션 위에 재즈와 대위법이 겹치는 그의 어법을 여기서 가장 또렷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아디오스 노니노입니다.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쓴 이 곡에는, 탱고가 춤의 반주를 넘어 감상의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크로노스 콰르텟과 남긴 다섯 개의 탱고 센세이션까지 들으면, 피아졸라가 직접 반도네온을 잡은 마지막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