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오페라 <카르멘>을 작곡한 프랑스의 조르주 비제의 생애와 음악적인 특징에 대하여 알아보자.
프랑스 파리에서 가수이자 작곡가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비제(Georges Bizet, 1838-1875)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음악적재능과 풍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1848년 비제는 9세 때 파리음악원에 이례적으로 입학하여 침머만(1785-1853)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알레비(1799-1862)에게 작곡을 배웠다. 비제는 구노와 알레비라는 두 스승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1856년에 있었던 로마대상 작곡 콩쿨에 칸타타 <다윗>을 출품하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최우수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위에 그치고 만다. 그 다음 해인 1857년에는 로마 대상을 획득하여 로마에서 3년간 공부하였다. 파리로 귀국한 비제는 오페라 창작에 몰두하여 1863년 <진주 조개잡이>를 완성했다. 그러나 당시 비제는 여러 작품을 작곡했지만 모두 크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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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비제의 모습 |
1869년 비제는 스승이었던 알레비의 딸 주네비에브(1849-1926)와 결혼했다. 이후 1872년, 알퐁스 도데(1840-189)의 소설을 극화한 <아를르의 여인>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 작픔은 오페라가 아니라 연극에 딸린 부수음악이었다.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1803-1870)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카르멘>은 오페라 역사상 불후의 명작으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 중 하나이다. 하지만 1875년 3월에 파리의 코미크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될 당시에는 싸늘한 평가가 적지 않았다. 당시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여주인공 카르멘을 부도덕하고 반사회적인 악녀라고 비난했으며, 즐겁고 흥겨운 해피엔딩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은 비극적이고 파멸적인 결말에 당황하였다.
이렇게 <카르멘>의 초연이 실패로 끝나자 비제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앓고 되는데, 빈 오페라극장에서 상연의뢰가들어오자 크게 고무되었다. 하지만 초연후 3개월이 지난 6월에 아직 수온이 낮은 센 강에서 수영하다가 지병인 만성편도염이 악화되어 3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친구인 작곡가가 빈 공연을 위해 <카르멘> 다소 수정했는데, 이 공연이 대성공으로 끝나면서 <카르멘>은 당당히 오페라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짧은 생을 살았던 비제는 <카르멘>, <진주 조개잡이>, <아를의 여인> 등 소수의 대표곡을 남겼지만 아름답고 수준 높은 작품을 많이 만들어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비제의 음악적 특징은 등장인물이 정확하고 치밀한 표현과 구성이라든지 작곡 기법의 새로운 점에서 19세기의 오페라에 큰 업적을 남겼다. 19세기 낭만파에 속하는 비제의 음악들은 굉장히 감정표현에 자유로우며 기악적 요소를 많이 사용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오페라 작곡가들이 바그너를 모방하던 시기였지만 비제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음악을 만들었다. 바그너의 오페라는 주로 신화를 소재로 하며 웅장한 관악기 중심의 관현악 편성인데 반해 비제는 사실적이고 실생활에 가까운 이야기를 소재로 하였으며, 바그너에 비해 비교적 소규모로 관현악을 편성하는 등 비제는 바그너와는 다른 독창적인 오페라를 작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