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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의 생애와 음악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문학에서 대작가를 다수 배출한 나라다. 하지만 음악 분야에서는 18세기 전반에 활약한 독일 출신 헨델 이후 국제적 수준의 작곡가를 배출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이후 에드워드 엘가의 등장으로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

 

  엘가(Edward Elgar, 1857-1934)는 영국 우스터 근교 브로드히스에서 악기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악기점을 운영하면서 피아노 레슨과 교회 오르간 연주자로도 활동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엘가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친숙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전문적인 음악교육은 받지 못하였지만 어린 시절부터 어려 악기를 다룰 줄 알았다. 피아노와 작곡 모두 독학으로 공부했다.

 

  16살 때 경제적인 문제로 런던의 법률사무소에서 잠시 일을 하다가 고향에 되돌아와 바이올린과 피아노 교사가 되어 생활비를 벌면서 음악활동을 이어갔다. 22세 때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기 위하여 1년 동안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연주자의 꿈을 접고 다시 우스터로 돌아와 연주, 편곡, 작곡, 지휘 등으로 일을 하다가 1885년에는 버지의 뒤를 이어 조지 성당의 오르간 주자가 되었다.


엘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미지입니다.
 엘가의 모습 (출처 : dallassymphony.org)


  벨번에서 음악교습소를 운영하던 엘가는 피아노를 가르치던 캐롤라인 앨리스 로버츠(1848-1920)1889년에 결혼하여 런던으로 이주했다. 참고로 로버츠는 육군 소령의 딸이자 작가로서 엘가보다 여덟 살 연상이었는데, 그녀의 부모는 신분의 차이로 두 사람의 결혼을 결사반대했다. 의절로 내쳐지기까지 했지만,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녀는 엘가의 부인이자 매니저로서 그의 음악 활동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1890년대 엘가가 지역 음악제에 올리기 위한 서곡 <프루아사르>, 대규모 칸타타 <카락타쿠스> 등이 호평을 받았다. 1899년에는 <수수께끼 변주곡 Enigma Variation>이 성공하면서 엘가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1901년에 작곡한 <위풍당당 행진곡 Pomp and Circumstance Marches>으로 엘가의 명성은 확고해졌다. 이 곡에서 관현악법의 대가임을 보여줬으며, 특히 1번 곡은 에드워드 7(1841-1910, 재위 1901-1910)의 대관식에서 의전음악으로 사용되었으며, 이 곡의 제2주제의 선율을 사용하여 합창곡 <희망과 영광의 나라 Land of Hope and Glory>를 작곡하였는데, 이것은 영국에서 '2의 애국가'로 애창되고 있다.

 

  1905년에는 웨일스의 민요를 인용한 <서주와 알레그로>을 발표했으며, 같은 해 옥스포드 대학과 예일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버밍험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며 3년간 봉직했다.

 

  1908년에는 <교향곡 1>, 1910년에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여 협연자인 오스트리아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인 크라이슬러(1875-1962)에 헌정하였고, 1903년에는 <교향곡 2번>을 작곡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에서는 <희망과 영광의 나라>가 인기가 있었고, 교향합창곡(Orchestral choral) <영국 정신> 등의 영국적인 음악을 작곡하여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그후 엘가는 바이올린 소나타, 현악4중주, 피아노5중주, 첼로협주곡을 작곡하지만 1920년 사랑하는 배우자이자 유능한 매니저였던 앨리스가 사망하자, 엘가는 실의에 빠져 거의 작곡을 하지 않았다.


  엘가는 영국 음악을 부흥시킨 공적을 인정받아 1904년 기사의 칭호를 받았고, 1924년 왕실음악 담당자로 임명되고, 1931년에는 국왕 조지 5세로부터 준남작 작위를 수여받았다. 국민적인 존경과 찬사 속에서 명예로운 말년을 보낸 엘가는 세번째 교향곡을 완성하지 못하고 77세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엘가는 교향곡, 바이올린 협주곡, 첼로 협주곡, 합창곡, 실내악곡, 가곡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작곡하였지만 오페라는 전혀 손대지 않았다. 유명한 실내악곡 <사랑의 인사>는 앨리스와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1888년에 작곡한 것이다. 이밖에 자클린 뒤 프레의 불꽃 튀는 명연으로 유명한 첼로 협주곡, 원래 피아노곡이지반 바이올린 소품으로 더 유명한 <아침의 인사>가 인기곡이다.

 

  엘가는 일반적으로 민족주의 작곡가로 분류되지만 다른 나라의 민족주의 음악에 비해 민속춤이나 민요의 흔적이 두드러지지 않고, 풍부한 화성에 의한 충실한 음향, 넓은 도약과 급격한 하행에 의한 선율을 특징으로 하는 엘가만의 영국적인 음악을 창출하였다. 비록 새로운 음악적 어법을 창조하거나 많은 실험을 펼치지 못하였으나 웅장하면서도 막힘이 없어 청중들에게 어필하는 감성을 담아낸 작곡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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