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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르 프랑크 생애와 음악, 오르간과 순환형식으로 후기 걸작을 남긴 작곡가

인물 한눈에 보기
• 인물: 세자르 프랑크 (César Franck, 1822~1890)
• 출생: 1822년 12월 10일, 리에주(당시 네덜란드 연합왕국, 현재 벨기에). 파리에서 활동했고 1872년 파리 음악원 교수로 임용된 뒤 이듬해 프랑스 국적을 얻었습니다
• 활동: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교육자
• 대표작: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교향곡 D단조, 교향적 변주곡, 오르간 《세 개의 코랄》
• 별세: 1890년 11월 8일, 파리
처음 들을 작품
• 처음 듣기 좋은 곡은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의 4악장입니다. 피아노가 제시한 선율을 바이올린이 한 마디 뒤에 그대로 뒤따르는 카논으로 시작해, 앞선 악장의 재료가 다시 돌아오는 프랑크 특유의 순환형식을 가장 또렷하게 들려줍니다.

1886년, 벨기에의 바이올리니스트 외젠 이자이의 결혼식 날 하객으로 온 연주자들이 새 바이올린 소나타를 즉석에서 초견으로 연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 곡은 세자르 프랑크가 이자이에게 결혼 선물로 헌정한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였습니다. 이 일화는 전기마다 세부가 조금씩 다르므로 그대로 사실로 단정하기보다 분위기를 전하는 이야기로 읽는 편이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오늘날 사랑받는 프랑크의 작품 대부분은 그가 예순을 바라보던 시기에 쓰였습니다.

형성기, 신동에서 학생으로

세자르 프랑크는 1822년 12월 10일 리에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리에주는 당시 네덜란드 연합왕국에 속했고 지금은 벨기에의 도시입니다. 프랑크의 예술적 정체성을 혈통으로 판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평생 파리에서 활동했고, 1872년 파리 음악원 교수로 임용된 뒤 이듬해인 1873년 3월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피아노 신동으로 키우려는 뜻이 강했습니다. 프랑크는 리에주 음악원에서 공부한 뒤 1835년 가족과 함께 파리로 옮겨 안톤 라이하에게 배웠고, 1837년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습니다. 훗날 교수 임용 때 문제가 된 국적과 이 입학 시기의 사정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는 1838년 피아노 부문에서 특별 대상을 받았고 1840년 대위법에서 1등상을 받았습니다.

생애의 전환점, 성 클로틸드의 오르간

아버지가 기대한 피아노 신동의 길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프랑크는 결혼과 함께 아버지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립했고, 파리의 여러 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 갔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은 성 클로틸드 성당이었습니다. 그는 1858년 1월 이 성당의 악장(maître de chapelle)으로 부임했고, 1859년 아리스티드 카바예콜이 만든 새 오르간이 설치되면서 정식 오르가니스트(titular organist)가 되었습니다. 이 카바예콜 오르간은 이후 그의 즉흥 연주와 작곡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1872년에는 파리 음악원의 오르간 교수로 임용되었고, 이 임용을 계기로 이듬해인 1873년 3월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세자르 프랑크의 얼굴 초상
세자르 프랑크의 모습

스타일의 진화와 순환형식

프랑크의 창작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실내악과 오르간 작품을 썼지만, 오늘날 자주 연주되는 주요 작품의 대부분은 그가 50대에 접어든 1870년대 이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교향시, 피아노 5중주,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교향곡 D단조, 현악 4중주, 오르간 《세 개의 코랄》을 잇달아 내놓았습니다. 다만 그 이전의 작품을 실패작으로 일괄 판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프랑크의 후기 작품을 하나로 묶는 특징은 순환형식입니다. 순환형식은 하나의 선율이 여러 악장에 그대로 반복되는 단순한 구조가 아닙니다. 하나의 짧은 동기가 굴곡을 바꾸며 나타나고, 앞선 악장의 재료가 뒤 악장에서 변형되거나 회상되며 돌아옵니다.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의 피날레가 좋은 예입니다. 이 악장은 피아노가 먼저 한 선율을 제시하고 바이올린이 한 마디 뒤에 같은 선율을 그대로 뒤따르는 카논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카논 주제가 되풀이되는 사이사이에 앞선 악장에서 들었던 격렬한 재료가 다시 끼어들며 돌아옵니다. 순환형식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변형된 회상이라는 점이 이 대목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19세기 파리 성당 오르간석의 바이올린과 펼쳐진 피아노 악보를 재구성한 이미지
성 클로틸드의 오르간과 바이올린 소나타의 카논을 모티프로 한 역사적 재구성 이미지입니다.

관계망

프랑크의 음악 세계에는 여러 인물이 얽혀 있습니다. 오르간 제작자 아리스티드 카바예콜의 악기는 그의 즉흥과 작곡의 도구였고, 프란츠 리스트는 그의 오르간 즉흥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1871년 프랑스 국민음악협회가 세워지면서 그는 카미유 생상스를 비롯한 작곡가들과 함께 전쟁 이후 프랑스 기악음악의 부흥에 참여했습니다.

파리 음악원에서 그의 문하로 확인되는 제자로는 뱅상 댕디, 에르네스트 쇼송, 앙리 뒤파르크, 루이 비에른 등이 있습니다. 흔히 그의 제자로 함께 거론되는 가브리엘 포레나 폴 뒤카는 정규 제자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프랑크는 특정 민족의 본질을 구현했다기보다, 독일의 교향적 전통과 프랑스의 오르간·실내악 문화를 자신의 방식으로 결합한 작곡가였습니다.

당대의 평가와 후대의 재평가

프랑크는 생전에 무엇보다 성 클로틸드의 오르간 즉흥 연주자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반면 후기의 대작들은 초연에서 반응이 엇갈렸습니다. 그의 진가는 오히려 제자들에 의해 사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댕디를 비롯한 제자들은 스승을 페르 프랑크, 곧 프랑크 아버지라 부르며 존경했고, 그 이미지를 통해 프랑크의 음악을 프랑스 음악의 한 축으로 세웠습니다.

1894년에는 샤를 보르드, 뱅상 댕디, 알렉상드르 길망이 교회음악과 옛 음악, 음악 교육의 개혁을 위해 스콜라 칸토룸을 세웠습니다. 이 학교는 프랑크의 유산과 이어지지만 단순한 추모 기관은 아니었고, 훗날 에릭 사티도 나이 들어 이곳에서 공부했습니다. 오늘날 프랑크의 방대한 작품 가운데 실제로 자주 연주되는 것은 후기의 몇몇 대표작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꼭 들어야 할 프랑크의 작품들

•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FWV 8): 순환형식과 피날레의 카논으로 유명한 실내악의 대표작입니다.
• 교향곡 D단조: 하나의 동기가 세 악장을 관통하는 순환형식의 교향곡입니다.
• 교향적 변주곡: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작품으로, 주제와 변주를 순환형식으로 엮었습니다.
• 피아노 5중주 F단조: 정열적인 후기 실내악입니다.
• 《전주곡, 코랄과 푸가(Prélude, Choral et Fugue)》: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바흐적 짜임과 낭만적 화성을 결합했습니다.
• 오르간 《세 개의 코랄(Trois Chorals)》: 세상을 떠나던 해에 완성한 오르간의 마지막 대작입니다.

프랑크 시작하기

프랑크로 들어가는 문은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의 4악장입니다. 먼저 피아노가 제시하는 선율을 듣고, 바이올린이 한 마디 뒤에 같은 선율을 그대로 따라 들어오는 카논을 확인해 보십시오. 두 악기가 나란히 걷다가 중간에 앞선 악장의 격렬한 재료가 끼어들고 다시 A장조의 카논으로 돌아오는 흐름을 따라 들으면, 프랑크의 순환형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한 악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오르간을 위한 《전주곡, 푸가와 변주(Prélude, Fugue et Variation)》입니다. 성 클로틸드의 오르간 앞에 앉았던 프랑크의 또 다른 얼굴, 곧 노래하는 선율과 차분한 짜임을 들을 수 있습니다. 순환형식은 같은 선율의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라, 한 번 들었던 재료가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오며 곡 전체를 하나로 묶는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