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these first

Latest on the blog

팔레스트리나 생애와 음악, 교회음악을 구했다는 전설과 다성음악의 실제

인물 한눈에 보기
• 인물: 조반니 피에를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 (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1525/26~1594). da Palestrina는 고향 팔레스트리나 출신임을 나타내는 호칭입니다
• 출생: 1525년 또는 1526년(확정되지 않음), 교황령 팔레스트리나
• 활동: 이탈리아 작곡가. 로마 악파를 대표하는 다성음악의 대가
• 대표작: 《교황 마르첼루스 미사(Missa Papae Marcelli)》, 모테트 《Sicut cervus》, 《Stabat Mater》, 《아가(Canticum canticorum)》 모테트집
• 별세: 1594년 2월 2일, 로마
처음 들을 작품
• 처음 듣기 좋은 곡은 모테트 《Sicut cervus》입니다. 네 성부가 같은 선율을 시차를 두고 주고받으며 겹쳐 가는 이 짧은 곡에서, 팔레스트리나가 여러 성부의 복잡함을 어떻게 맑게 정돈하는지 들을 수 있습니다.

《교황 마르첼루스 미사》 한 곡이 위기에 처한 교회 다성음악을 구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복잡한 다성음악을 금지하려 하자 팔레스트리나가 가사가 또렷하게 들리는 이 미사를 지어 다성음악을 지켜 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확인 가능한 역사라기보다 후대에 형성되고 강화된 전설에 가깝습니다. 조반니 피에를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는 공의회의 명령을 그대로 실행한 작곡가가 아니라, 16세기 로마의 전례와 후원, 출판 환경 속에서 다성음악의 복잡함과 가사의 명료함을 정교하게 조절한 작곡가였습니다.

전설과 사실 사이의 형성기

팔레스트리나의 정확한 출생일은 전해지지 않으며, 대체로 1525년 또는 1526년으로 봅니다. 그의 이름에 붙은 다 팔레스트리나(da Palestrina)는 로마 근교의 고향 팔레스트리나 출신임을 가리키는 호칭입니다. 1537년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성가대 기록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고, 1544년에는 고향 산타가피토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했습니다.

이 시기의 교육 과정은 로마와 프랑코플랑드르 악파가 함께 만든 다성음악 전통 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봅니다. 팔레스트리나의 음악은 이처럼 르네상스 음악의 다성 전통을 물려받아 그 위에서 자신의 양식을 다듬어 간 결과입니다.

팔레스트리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미지입니다
팔레스트리나의 모습 (출처 : 브리태니커)

로마의 직책과 전환점

팔레스트리나는 1551년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성가 조직인 카펠라 줄리아(Cappella Giulia)의 음악감독(마에스트로 디 카펠라)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카펠라 줄리아는 별도의 줄리아 성당이 아니라 성 베드로 대성당에 소속된 성가대입니다. 1555년 1월에는 교황 율리우스 3세의 후원으로 교황 성가대인 시스티나 성가대에 들어갔습니다. 율리우스 3세는 1550년에 선출된 교황이므로, 그의 즉위와 팔레스트리나의 입단은 서로 다른 해의 일입니다.

팔레스트리나는 기혼 평신도였기 때문에 성가대원 자격 규정상 예외에 해당했고 통상적인 시험 없이 입단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새 교황 바오로 4세가 규정에 따라 기혼 성가대원 세 명을 해임하면서 그도 교황 성가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1555년부터 1560년까지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1561년부터 1566년까지 다시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음악감독을 맡았고, 1566년부터 1571년까지는 로마 신학교의 음악을 책임졌습니다. 1571년에는 카펠라 줄리아로 돌아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스타일의 진화

팔레스트리나의 양식은 흔히 순수한 교회음악의 표본으로 불리지만, 그 특징을 반음계를 쓰지 않았다는 식으로 설명하면 부정확합니다. 그의 음악은 부드럽게 이어지는 선율선, 불협화음을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해결하는 방식, 여러 성부가 서로 모방하며 겹치는 구간과 모든 성부가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는 호모리듬 구간을 상황에 따라 조절하는 데 특징이 있습니다. 초기에는 프랑코플랑드르 악파의 촘촘한 모방 기법을 이어받았고, 성숙기에는 성부들의 균형과 가사의 명료함을 함께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런 조절을 소리로 확인하기 좋은 작품이 모테트 《Sicut cervus》입니다. 곡이 시작되면 한 성부가 첫 구절의 선율을 제시하고, 곧이어 다른 성부가 같은 선율을 시차를 두고 받아 들어옵니다. 앞 성부의 선율이 끝나기 전에 다음 성부가 겹쳐 들어오면서 네 성부가 층층이 쌓입니다. desiderat(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듯) 부분에 이르면 음가가 짧아지고 움직임이 활발해지며, fontes aquarum(물을 향하여)을 향해 선율이 위로 올라갑니다. 또한 ita desiderat anima mea ad te로 넘어가는 대목에서는 새로운 모방 주제가 다시 시작되어 앞 구절과 겹치며 또 다른 층을 이룹니다. 이런 변화는 막연한 영적 갈망의 표현이 아니라 음가와 음정, 성부 사이의 관계로 악보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로마 성당에서 네 성부가 대형 성가책을 보며 노래하는 장면의 재구성 이미지
《Sicut cervus》의 네 성부 모방과 르네상스 성가대 환경을 모티프로 한 역사적 재구성 이미지입니다.

관계망과 후원

팔레스트리나의 경력은 로마 교황청의 후원 구조와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교황 율리우스 3세는 그를 교황 성가대로 이끈 후원자였고, 카펠라 줄리아와 여러 대성당의 성가 조직은 그의 활동 무대였습니다. 1566년부터는 로마 신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며 다음 세대와 이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572년과 1575년에 두 아들을 잃었고, 1580년에는 첫 아내 루크레치아 고리를 잃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1581년 그는 부유한 모피 상인의 미망인이었던 비르지니아 도르몰리와 재혼했는데, 이 재혼은 그가 자신의 작품을 출판하고 안정된 재정 위에서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1577년에는 안니발레 조일로와 함께 로마 전례서의 성가인 그라두알레를 개정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다만 이 작업은 그의 생전에 완결되지 못했고, 흔히 그의 완성판으로 알려진 1614년부터 1615년 사이의 메디치판은 펠리체 아네리오와 프란체스코 소리아노 등이 참여한 별도 위원회의 후대 작업이므로 팔레스트리나 한 사람의 작업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당대의 명성과 후대의 재평가

팔레스트리나는 생전에 이미 로마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높은 명성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사후에 더 크게 자랐습니다. 17세기 작곡가들은 그의 양식을 옛 양식(stile antico)의 규범으로 삼았고, 18세기에 요한 요제프 푹스는 그의 음악을 바탕으로 대위법 교과서를 써서 이후 수백 년 동안 작곡 교육의 표준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전통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비롯한 후대 작곡가들의 훈련에도 깊이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19세기에 이르러 트리엔트 공의회가 다성음악을 금지하려 하자 《교황 마르첼루스 미사》가 그것을 구해 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습니다. 그러나 실제 공의회는 세속적인 요소와 가사가 들리지 않는 문제를 우려했을 뿐 다성음악 자체를 전면 금지하기로 결의하지는 않았습니다. 특정 미사 한 곡이 교회 다성음악을 구했다는 이야기는 확인 가능한 역사라기보다 후대에 강화된 전설로 구분해서 읽어야 합니다.

꼭 들어야 할 팔레스트리나의 작품들

• 《교황 마르첼루스 미사(Missa Papae Marcelli)》: 여섯 성부의 미사로, 가사가 또렷하게 들리도록 정돈된 대표작입니다.
• 《Sicut cervus》: 시편 42편을 가사로 한 네 성부 모테트로, 모방 기법의 맑은 표본입니다. 성부들이 서로 모방하며 쌓이는 이런 짜임은 후대의 바흐 모테트 《예수, 나의 기쁨》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 《Stabat Mater》: 두 합창이 주고받는 여덟 성부의 수난 음악입니다.
• 《아가(Canticum canticorum)》 모테트집: 구약 아가를 가사로 한 스물아홉 곡의 모테트 모음입니다.
• 다수의 미사와 모테트, 마드리갈: 100곡이 넘는 미사와 250곡이 넘는 모테트, 140곡가량의 마드리갈이 전합니다.

팔레스트리나 시작하기

팔레스트리나로 들어가는 문은 모테트 《Sicut cervus》입니다. 이 곡은 여러 성부가 함께 움직이므로 하나의 선율만 따라가기보다 층을 따라 듣는 편이 좋습니다. 먼저 맨 처음 한 성부가 시작하는 선율을 붙잡고, 그 선율이 다른 성부로 옮겨 가며 겹치는 층위를 따라가 보십시오. 그다음 desiderat 부분에서 움직임이 촘촘해지는 지점과 구절이 마무리되는 종지까지 들으면, 팔레스트리나가 복잡한 성부를 어떻게 맑게 정돈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교황 마르첼루스 미사》의 한 악장, 예컨대 글로리아나 크레도입니다. 여러 성부가 얽히면서도 가사가 또렷하게 들리도록 짜인 방식을 들어 보면, 팔레스트리나의 힘이 단순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잡함을 들리게 정돈한 데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