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 조지 거슈윈 (George Gershwin, 1898~1937). 본명은 제이컵 거슈윈(Jacob Gershwine)입니다
• 출생: 1898년 9월 26일, 뉴욕
• 활동: 미국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브로드웨이와 콘서트 음악을 오감
• 대표작: 《랩소디 인 블루》, 《피아노 협주곡 F장조》, 《파리의 아메리카인》, 《포기와 베스》
• 별세: 1937년 7월 11일
• 처음 듣기 좋은 곡은 《랩소디 인 블루》입니다. 클라리넷의 미끄러지는 도입에서 시작해 빠른 당김음 구간과 폭넓은 서정 주제가 번갈아 나오는 이 곡에서, 거슈윈이 대중음악의 리듬과 콘서트 음악의 규모를 한 작품 안에서 어떻게 엮었는지 들을 수 있습니다.
1898년에 태어난 스물다섯 살의 브로드웨이 노래 작곡가가 콘서트홀 무대에 섰습니다. 1924년 2월 12일 뉴욕 에올리언 홀, 클라리넷 하나가 낮은 음에서 미끄러지듯 위로 솟구치는 소리로 한 곡이 시작되었습니다.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 초연이었습니다. 브로드웨이와 콘서트홀 사이를 오간 거슈윈의 이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무대였습니다.
형성기, 이민자 가정의 피아노
조지 거슈윈은 1898년 9월 26일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제이컵 거슈윈이었습니다. 부모는 러시아 제국 출신의 유대계 이민자였고, 아버지 모리스는 여러 작은 사업을 옮겨 다녔습니다. 가정을 단순히 극빈층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거슈윈이 음악에 끌린 계기로는 열 살 무렵 친구 맥시 로젠츠바이크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은 일이 널리 전합니다.
1910년경 형 아이라 거슈윈을 위해 집에 들인 피아노를 정작 더 적극적으로 연주한 사람은 조지였습니다. 그는 1913년경 찰스 햄비처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에드워드 킬레니와 루빈 골드마크에게 이론과 작곡을 배웠습니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거슈윈은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 못한 작곡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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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거슈윈 |
생애의 전환점
거슈윈은 열다섯 살 무렵 학교를 떠났고, 1914년 5월 음악 출판사 제롬 H. 레믹(Jerome H. Remick & Co.)에서 송 플러거(song plugger)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막연한 거리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출판사의 새 노래를 손님에게 시연해 판매를 돕는 일이었습니다. 1919년에는 어빙 시저가 가사를 붙인 《Swanee》를 작곡했고, 이 곡이 알 졸슨에게 채택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후 그는 형 아이라와 함께 브로드웨이 무대의 노래를 잇달아 썼습니다.
거슈윈의 이름을 콘서트홀로 넓힌 것은 1924년의 《랩소디 인 블루》였습니다. 밴드 지휘자 폴 화이트먼이 재즈를 콘서트 형식으로 선보이는 무대를 기획했고, 거슈윈은 초연을 위해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악보를 썼습니다. 이것을 화이트먼 악단의 편곡자 퍼디 그로페가 재즈 밴드 편성으로 관현악화했습니다. 이듬해인 1925년 12월에는 지휘자 월터 댐로시의 위촉으로 《피아노 협주곡 F장조》를 발표했는데, 이번에는 거슈윈이 직접 관현악까지 맡았습니다. 1928년에는 파리를 방문해 모리스 라벨에게 가르침을 청했으나 라벨이 정중히 거절했다는 일화가 전합니다. 다만 그 자리에서 오갔다는 유명한 대화는 전기마다 세부가 달라 따옴표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해 그는 《파리의 아메리카인》을 초연했고, 1935년에는 오페라 《포기와 베스》를, 1936년에는 형과 함께 할리우드로 가 영화 음악을 썼습니다.
스타일의 진화
거슈윈의 음악은 여러 제작 현장을 오가며 자랐습니다. 초기에는 서른두 마디 노래 형식의 대중가요와 브로드웨이의 리듬을 다루었고, 이어 그 어법을 콘서트 음악의 규모로 확장했으며, 마지막에는 인물과 장면을 그리는 오페라 음악으로 나아갔습니다.
그의 콘서트 음악을 소리로 확인하기 좋은 작품이 《랩소디 인 블루》입니다. 곡은 클라리넷의 트릴 뒤로 열일곱 음이 위로 솟아오르는 상승 선율로 시작합니다. 악보에는 이 음들이 하나하나 적혀 있지만, 오늘날 익숙한 미끄러지는 글리산도 소리는 초연을 준비하던 클라리넷 주자 로스 고먼이 리허설에서 만들어 낸 연주 관행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악보에 적힌 음과 이 글리산도 효과의 역사는 구분해서 들어야 합니다. 곡 안에서는 빠른 당김음 중심의 구간과 넓게 노래하는 서정 주제가 뚜렷하게 대비되고, 피아노 독주와 앙상블이 같은 재료를 주고받으며 곡을 이어 갑니다.
관계망
거슈윈의 작업은 여러 사람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형 아이라 거슈윈은 그의 노래에 가사를 붙인 평생의 동반자였고, 어빙 시저는 《Swanee》의 작사가였습니다. 폴 화이트먼은 《랩소디 인 블루》의 무대를 기획했고, 퍼디 그로페는 그 곡을 관현악화했습니다. 월터 댐로시는 《피아노 협주곡 F장조》를 위촉했습니다. 《포기와 베스》에서는 소설가 듀보스 헤이워드가 원작 소설과 대본을 쓰고 헤이워드와 아이라 거슈윈이 가사를 맡았으며, 소프라노 앤 브라운이 베스 역을 맡아 초연했습니다.
당대의 평가와 후대의 재평가
《랩소디 인 블루》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재즈와 클래식을 뒤섞었다는 논쟁도 함께 불러왔습니다. 《포기와 베스》는 1935년 초연 당시 뉴욕에서 124회에 이르는 공연을 이어 가 오페라로서는 이례적인 성과를 냈습니다. 다만 평단의 평가는 엇갈렸습니다. 또한 제작비를 회수하지는 못했는데, 이 상업적 결과와 작품에 대한 예술적 반응은 구분해서 보아야 합니다. 거슈윈이 1936년 할리우드로 간 것도 이 작품의 실패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매체와의 계약과 형제의 작업 기회라는 확인 가능한 사정 때문이었습니다. 《포기와 베스》는 이후 오페라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고, 흑인 공동체를 백인 작곡가가 그렸다는 점을 둘러싼 재현의 문제는 오늘날까지 논의됩니다.
거슈윈의 음악을 재즈가 비로소 진지한 예술로 인정받게 만든 사건처럼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재즈는 본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 전통에 뿌리를 둔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거슈윈이 한 일은 뉴욕의 상업 노래 제작, 재즈와 블루스의 어법, 유럽식 관현악과 협주 형식을 한 작품 안에서 연결한 것이며, 그 결합에는 성취와 함께 문화적 차용을 둘러싼 논쟁도 따랐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 20세기 작곡가로, 탱고를 클래식·재즈와 결합한 아스토르 피아졸라와 나란히 놓고 들을 수 있습니다.
꼭 들어야 할 거슈윈의 작품들
• 《Swanee》(1919): 어빙 시저 작사, 알 졸슨의 노래로 큰 성공을 거둔 초기 대표곡입니다.
•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1924): 재즈의 어법을 콘서트 형식으로 확장한 작품으로, 퍼디 그로페가 관현악화했습니다.
• 《피아노 협주곡 F장조(Concerto in F)》(1925): 거슈윈이 직접 관현악까지 맡은 협주곡입니다.
• 《파리의 아메리카인(An American in Paris)》(1928): 파리의 인상을 담은 관현악 작품입니다.
•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1935): 거슈윈이 포크 오페라라 부른 작품으로, 듀보스 헤이워드의 소설과 희곡에서 나왔습니다.
• 아이라와 함께 쓴 뮤지컬과 노래들: 브로드웨이와 대중가요에 남긴 방대한 유산입니다.
거슈윈 시작하기
거슈윈으로 들어가는 문은 《랩소디 인 블루》입니다. 먼저 곡 첫머리의 클라리넷 도입을 듣고, 이어지는 앙상블의 짧은 응답과 피아노 독주의 진입, 넓게 노래하는 서정 주제, 그리고 다시 합주로 돌아오는 흐름을 따라 들어 보십시오. 대중음악의 리듬과 콘서트 음악의 규모가 한 곡 안에서 어떻게 만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포기와 베스》의 한 장면입니다. 예컨대 여는 노래 서머타임(Summertime)을 들으면, 거슈윈이 노래와 오페라, 그리고 미국 남부의 음악적 색채를 한 장면으로 어떻게 엮었는지 만날 수 있습니다. 거슈윈의 자리는 장르의 경계에 있다기보다, 브로드웨이와 콘서트홀, 오페라와 영화라는 서로 다른 음악 산업과 청중을 연결한 데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