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시대 영국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은 웨스트민스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웨스티민스터 사원의 합창단장이었고 숙부 토머스 궁정의 합창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664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퍼셀은 숙부인 토머스 퍼셀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668 년경 퍼셀은 12명으로 이뤄진 왕실 예배당 소속 소년 합창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가 받은 음악 교육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1673년 변성기로 인해 성가대에서 물러나고, 같은 해 왕실의 악기 조율 담당 조수가 되었으며, 1674년에는 조율자로 임명되었다. 재직 중에 존 블로우(John Blow, 1648-1708)에게 작곡수업을 받았다.
1677년 18세의 퍼셀은 매슈 로크(Matthew Locke)의 뒤를 이어 궁정의 현악 합주단 상임 작곡가가 되었다. 2년 후에는 존 블로우가 퍼셀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의 오르간 연주자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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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퍼셀 (출처 : kennedy-center.org) |
1680년부터는 부수입을 얻기 위해 도셋가든 극장에서 상연되는 연극의 음악과 노래를 쓰기 시작하면서 극음악의 작곡가로도 활동했다. 이 시기에 퍼셀은 프란시스(Frances)라는 여성과 결혼하였다. 그는 6명의 자녀를 얻었으나 성장한 것은 두 명 뿐이었다.
23살이 되던 1682년 퍼셀은 왕실 예배당의 오르간 연주자 3인방 가운데 하나가 되어 주로 화이트홀 궁의 예배당에서 활동하면서 수많은 앤섬(Anthem)을 작곡했다. 이러한 앤섬은 영국 합창음악을 대표할 만한 음악형식이었으며 영국 왕실 예배당에서 앤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였다.
1683년 런던에서 최초의 공적 축제를 갖게 된 성(聖) 세실리아 날을 위하여 오우드(Ode, 송가)를 작곡했고, 같은 해 1월에는 존 히스턴(John Hingeston)의 후계자로서 오르간 제작자와 왕의 악기들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1684년 템플교회에 새로 설치될 오르간을 결정하기 위하여 두 대의 오르간의 우열을 시험연주하게 되었는데, 한쪽 오르간을 퍼셀과 블로우가 맡고, 다른 쪽을 드라기(Antonio Draghi)가 연주했다. 결과는 4년 후인 1688년 퍼셀과 블로우의 승리로 끝났다. 퍼셀은 뛰어난 오르가니스트였다.
1685년 26살이 된 퍼셀은 제임스 2세의 대관식을 위해 작곡한 <내 마음이 말하고 있네 My heart is Inditing>는 그의 앤섬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다. 그해 연말에는 챔발로 주자로 임명되었다.
1689(1690)년 작곡한 오페라 <디도와 에네아스 Dido and Aeneas>는 철두철미하게 가창만으로 곡이 전개되는 소규모 실내 오페라 형식으로 최대의 극적 효과를 만들어 내었다. 그 이후 퍼셀은 이탈리아식 오페라보다는 혼성 장르를 좋아하는 런던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서 세미 오페라 쪽으로 관심을 가져 <아더 왕 King Arthur>, <요정의 여왕 The Fairy Queen>, <템페스트 The Tempest> 등을 작곡하였다. <요정 여왕>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개작한 것으로 퍼셀의 세미 오페라 가운데 가장 호화찬란한 작품이다. 극적인 변신 장면으로 가득한 이 작품을 제작하는데 거액을 투자하고 적자를 보았으나 왕실과 런던은 이 작품을 매우 흡족해하였다.
퍼셀이 왕실의 의뢰로 작곡한 마지막 대형 작품은 1694년 12월에 사망한 메리 여왕의 진혼곡이었다. 퍼셀 자신도 다음 해 11월에 사망하여 웨스트민스터에 안장되었다. 그 후 200년 동안 영국에는 퍼셀에 필적할 만한 작곡가가 태어나지 않았으니 그의 요절은 영국 음악에 큰 손실이었다.
퍼셀은 36세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찰스 2세, 제임스 2세, 윌리엄 3세와 여왕 메리 1세까지 네 왕의 곁에서 영국음악을 작곡하였다. 그의 작품은 1편의 오페라와 5편의 세미오페라를 포함한 53편의 극음악, 69편의 앤섬, 24곡의 송가와 웰컴 송(Welcome song), 서비스 및 다수의 판타지아와 실내소나타 이외에 건반악기용 작품 등이 있다.
그의 앤섬들은 영어로 된 가사의 의미를 음악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영어가사에 대한 퍼셀의 작곡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게 하였다. 퍼셀 음악의 특색을 살펴보면 그의 멜로디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오페라 전통들에 의해 선율 작법에 영향을 받았고, 가사와 프레이즈들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반복되어 사용되었다. 화성의 짜임새는 반복되는 지속저음들이 주로 사용되었고, 극적이거나 정서적인 효과를 위해 공통적인 관계조에서 반음계를 사용하여 가사를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