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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퍼셀의 생애와 작품 - 영어를 노래하게 만든 영국 바로크의 거장

서른여섯. 헨리 퍼셀(Henry Purcell)이 세상을 떠난 나이입니다. 그 짧은 생애 동안 그는 찰스 2세, 제임스 2세,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까지 네 군주의 시대를 거치며 영국 왕실과 교회의 음악을 책임졌습니다.

퍼셀이 남긴 빈자리는 컸습니다. 영국 음악사가 그의 뒤를 잇는 작곡가를 이야기할 때 종종 20세기의 벤저민 브리튼까지 건너가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퍼셀의 진짜 의미는 단지 ‘영국 최고의 바로크 작곡가’라는 평가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엘리자베스 시대부터 이어진 영국의 오래된 다성음악을 마무리하면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여 영어가 가장 자연스럽게 노래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인물 한눈에 보기
• 이름: 헨리 퍼셀(Henry Purcell)
• 생몰: 1659년, 웨스트민스터 ~ 1695년 11월 21일, 런던
• 시대·국가: 바로크 시대 잉글랜드
• 주요 직책: 웨스트민스터 사원 오르가니스트, 왕실 예배당 오르가니스트
• 활동 분야: 교회음악·궁정음악·오페라·세미오페라·기악곡
• 대표작: 《디도와 에네아스》, 《아서 왕》, 《요정 여왕》, 《메리 여왕을 위한 장송 음악》
• 입문 추천곡: 〈When I am laid in earth(내가 땅에 묻히거든)〉, 흔히 ‘디도의 탄식’으로 불리는 아리아

헨리 퍼셀, 네 군주의 시대를 살다

헨리 퍼셀은 1659년 웨스트민스터에서 태어났습니다. 정확한 출생일은 확인되지 않지만, 그는 런던의 왕실과 교회 음악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통설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왕실 예배당 단원이자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음악가였던 헨리 퍼셀 시니어였습니다. 다만 가족 기록이 충분하지 않아, 숙부로 알려진 토머스 퍼셀(Thomas Purcell)이 친부였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견해도 남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린 퍼셀이 토머스의 보호를 받으며 왕실 음악계 안에서 자랐다는 사실입니다. 음악은 그에게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둘러싸여 있던 세계였습니다.

17세기 영국 바로크 작곡가 헨리 퍼셀 초상
17세기 영국 바로크 작곡가 헨리 퍼셀 초상.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

퍼셀이 활동한 시기는 영국 정치가 극적으로 흔들리던 때였습니다. 왕정복고로 돌아온 찰스 2세, 가톨릭 신앙 때문에 왕좌에서 물러난 제임스 2세, 명예혁명 이후 공동 군주가 된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까지 왕실의 얼굴은 계속 바뀌었습니다.

퍼셀은 이 변화 속에서도 자리를 지켰습니다. 왕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대관식과 환영식, 생일 송가와 장송 음악이 필요했고, 그는 국가의 중요한 순간을 음악으로 기록했습니다.

왕정복고와 프랑스 음악이 만든 형성기

퍼셀의 음악에 프랑스적인 우아함이 들어온 것은 개인 취향만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왕정복고 이후 영국 궁정 전체를 휩쓴 프랑스 문화가 있었습니다.

찰스 2세는 망명 생활 동안 프랑스 궁정을 경험했습니다. 왕좌에 돌아온 뒤에는 프랑스 왕실의 ‘왕의 24대 바이올린(Vingt-quatre Violons du Roi)’을 본떠 영국 왕실 현악 합주단을 확대했습니다.

영국 궁정은 륄리(Jean-Baptiste Lully)의 춤곡과 서곡, 장중한 리듬과 극적인 낭송조에 매료되었습니다. 퍼셀이 자라난 왕실 예배당과 궁정 악단은 이미 영국 전통과 프랑스 신양식이 부딪히는 장소였습니다.

1668년경 왕실 예배당 소년 합창단에 들어간 퍼셀은 헨리 쿠크(Henry Cooke)에게 기초를 배웠고, 이어 펠럼 험프리(Pelham Humfrey)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험프리는 대륙에서 익힌 프랑스·이탈리아 음악의 표현법을 영국에 전한 인물이었습니다.

퍼셀은 여기서 대륙의 음악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식 장식과 극적인 낭송법을 영어의 강세와 호흡에 맞게 바꾸었습니다. 이 차이가 훗날 퍼셀 음악의 가장 선명한 특징이 됩니다.

1673년 변성기로 합창단을 떠난 그는 왕실 악기 관리 책임자 존 힝스턴(John Hingeston)의 조수가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 존 블로우(John Blow)에게 작곡과 오르간을 배우며 교회음악과 대위법의 기초를 더욱 단단히 다졌습니다.

궁정·교회·극장을 잇는 음악가

퍼셀의 경력은 한 장소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궁정과 교회, 극장을 오가며 서로 다른 음악 언어를 하나의 양식으로 묶었습니다.

1677년 열여덟 살의 퍼셀은 매슈 로크의 뒤를 이어 왕실 현악 합주단을 위한 작곡가로 임명되었습니다. 1679년에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고, 1682년에는 왕실 예배당 오르가니스트 자리까지 맡았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는 오래된 영국 교회음악 전통을 지켜야 했습니다. 왕실에서는 화려한 대관식과 국가 행사를 위한 음악을 써야 했고, 극장에서는 관객을 단숨에 사로잡아야 했습니다.

퍼셀의 음악이 유난히 압축적이고 극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 사람이 교회 합창의 장엄함과 궁정 춤곡의 세련미, 연극 무대의 빠른 감정 전환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1685년 제임스 2세의 대관식을 위해 작곡한 〈My Heart is Inditing(내 마음에서 좋은 말이 넘쳐흐릅니다)〉는 이러한 능력이 결합된 작품입니다. 여러 성부의 합창과 악기가 공간을 나누어 울리며, 한 사람의 왕이 아니라 국가의 위엄을 소리로 세웁니다.

1680년 비올 판타지아, 영국 옛 음악의 황혼

퍼셀의 음악적 위치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작품은 오페라가 아니라 1680년에 쓴 비올 판타지아일지도 모릅니다.

퍼셀은 그해 여름, 서로 다른 수의 비올을 위한 판타지아와 ‘인 노미네(In Nomine — 오래된 성가 선율을 바탕으로 쓴 영국식 기악곡)’를 집중적으로 작곡했습니다.

비올 합주를 위한 판타지아는 엘리자베스 시대부터 이어진 영국 특유의 장르였습니다. 여러 선율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도 하나의 짜임을 만드는 다성음악(polyphony — 여러 선율이 동시에 어우러지는 음악)의 정교함이 핵심입니다.

그러나 1680년 무렵 유럽의 기악음악은 이미 이탈리아식 트리오 소나타와 바이올린 중심의 양식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퍼셀의 판타지아는 앞으로 유행할 음악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전통을 향해 쓰인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들은 영국 비올 음악의 마지막 위대한 결실 가운데 하나로 평가됩니다. 퍼셀은 과거의 양식을 반복한 것이 아니라, 오래된 대위법에 대담한 불협화음과 예상 밖의 조바꿈을 넣어 전통의 끝에서 새로운 감정을 끌어냈습니다.

헨리 퍼셀 4성부 비올 판타지아 자필 악보
헨리 퍼셀의 4성부 비올 판타지아 자필 악보. 1680년 여름에 집중적으로 작곡된 작품군이다.

한편으로 그는 같은 시기에 이탈리아식 소나타도 연구했습니다. 비올 판타지아가 영국 옛 음악의 황혼이라면, 이후의 트리오 소나타는 대륙의 새 질서로 들어가는 문이었습니다.

퍼셀 음악의 양식적 변화
시기 양식적 동인 대표작과 의미
초기 영국 교회음악과 비올 합주 전통 비올 판타지아 — 영국 다성음악 전통의 마지막 찬란한 결실
중기 프랑스 낭송조와 이탈리아 화성의 수용 《디도와 에네아스》 — 영어 가사와 극적 음악의 결합
후기 런던 상업극장과 혼합 장르의 요구 《아서 왕》·《요정 여왕》 — 노래·연극·춤을 결합한 세미오페라

디도와 에네아스, 영어가 음악이 되는 순간

《디도와 에네아스》는 퍼셀이 영어를 어떻게 음악으로 바꾸었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입니다.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는 트로이의 영웅 에네아스를 사랑하지만, 에네아스는 로마를 세워야 한다는 운명 때문에 그녀를 떠납니다. 홀로 남은 디도는 죽음을 택하고 마지막 아리아를 부릅니다.

이 작품의 확실한 초기 공연 기록은 1689년 런던 첼시에서 조사이어스 프리스트가 운영하던 여학교의 공연입니다. 다만 작품이 그보다 앞서 궁정 공연을 위해 쓰였다는 견해도 있어 정확한 작곡 시기와 최초 공연은 지금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절정은 〈When I am laid in earth(내가 땅에 묻히거든)〉입니다. 흔히 ‘디도의 탄식’으로 불리는 이 아리아 아래에는 반음계적으로 내려가는 짧은 저음이 반복됩니다.

이 기법을 그라운드 베이스(ground bass — 같은 저음 선율을 되풀이해 곡의 바탕을 만드는 기법)라고 합니다. 베이스는 디도의 감정과 상관없이 계속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마치 이미 결정된 운명이 그녀를 땅속으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 위에서 디도의 목소리는 자유롭게 흔들립니다. 움직이고 저항하는 목소리와 변함없이 반복되는 저음이 맞부딪치면서, 개인의 슬픔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비극으로 커집니다.

퍼셀은 영어 단어의 강세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Remember me(나를 기억해 주오)〉에서 같은 말이 반복될 때 선율은 점점 더 넓어지고 높아집니다. 디도는 죽음을 받아들이지만,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만은 거부합니다.

이것이 퍼셀이 ‘영어를 가장 잘 노래하게 만든 작곡가’로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음악이 가사를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 문장 안에 이미 들어 있는 억양과 감정을 밖으로 끌어냅니다.

디도의 탄식 감상 포인트

첫 번째에는 디도의 목소리만 따라가 보세요. 두 번째에는 첼로와 저음 악기가 반복하는 하행 선율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세 번째에는 〈Remember me〉가 반복될 때 음역과 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세미오페라와 존 드라이든의 평가 변화

퍼셀이 후기 런던 극장에서 선택한 길은 이탈리아식 오페라가 아니라 영국식 세미오페라였습니다.

세미오페라(semi-opera — 대사가 있는 연극에 노래·합창·춤·무대 장면을 결합한 영국식 극음악)는 당시 런던 관객의 취향과 공연 환경에 잘 맞았습니다. 주요 인물은 대사로 극을 이끌고, 신이나 정령·군중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음악이 무대를 압도했습니다.

《디오클레시아누스》, 《아서 왕》, 《요정 여왕》, 미완성으로 남은 《인도의 여왕》이 이 시기의 대표작입니다. 《인도의 여왕》은 퍼셀이 세상을 떠난 뒤 동생 대니얼 퍼셀이 일부를 보완했습니다.

과거 퍼셀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던 《템페스트》의 음악은 현재 대부분 존 웰던(John Weldon)의 작품으로 봅니다. 퍼셀의 진작으로 확실히 인정되는 곡은 〈Dear pretty youth(사랑스러운 젊은이여)〉 등 일부에 한정됩니다.

퍼셀과 시인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의 관계도 처음부터 완벽한 협력 관계였던 것은 아닙니다. 드라이든은 1680년대 중반까지 프랑스 출신 작곡가 루이 그라뷔(Louis Grabu)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퍼셀이 《디오클레시아누스》에서 보여 준 극적 역량은 드라이든의 판단을 바꾸었습니다. 드라이든은 이후 퍼셀이 외국 작곡가들과 겨룰 만한 영국 음악가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했고, 두 사람은 1691년 《아서 왕》에서 본격적으로 손을 잡았습니다.

《아서 왕》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추위의 정령이 떨며 부르는 〈What power art thou?(그대는 어떤 힘인가)〉입니다. 짧게 끊기는 음과 반복되는 떨림은 추위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추위에 굳어 버린 몸 자체를 음악으로 만듭니다.

드라이든의 언어와 퍼셀의 음악은 이 지점에서 서로를 밀어 올립니다. 좋은 대본이 퍼셀의 음악을 빛낸 것이 아니라, 퍼셀의 음악이 대본 속 장면을 눈앞의 사건으로 바꾸었습니다.

장송 음악과 퍼셀의 죽음

퍼셀의 생애 마지막에는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쓴 장송 음악이 자신을 배웅하는 음악으로 돌아오는 기묘한 장면이 놓여 있습니다.

메리 2세는 1694년 12월 천연두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퍼셀은 이듬해 3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여왕의 장례식을 위해 장송 행진곡과 합창곡을 작곡했습니다.

그 가운데 〈Thou knowest, Lord(주여, 당신은 아시나이다)〉는 과장된 슬픔을 피합니다. 합창은 단순한 화음으로 움직이고, 말은 거의 맨몸으로 남습니다. 국가의 장례식이지만 음악은 권력보다 인간의 죽음을 바라봅니다.

그해 11월 21일, 퍼셀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메리 여왕을 위해 쓰인 장송 음악 일부가 퍼셀 자신의 장례식에서도 연주되었습니다. 여왕을 배웅한 음악이 불과 몇 달 뒤 작곡가를 배웅한 것입니다.

퍼셀의 정확한 사인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결핵이나 다른 질환이었을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아내가 늦게 귀가한 퍼셀에게 문을 열어 주지 않아, 추위에 떨다 병을 얻어 죽었다는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동시대 기록은 없으며, 오늘날에는 후대에 만들어진 전설로 봅니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오르간 가까이에 묻혔습니다. 스승 존 블로우는 제자가 세상을 떠난 뒤 다시 웨스트민스터 사원 오르가니스트 자리를 맡았습니다. 한때 제자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던 스승이 그 빈자리를 다시 채운 셈입니다.

잊힌 작곡가가 아니라 다시 복원된 작곡가

퍼셀이 죽은 뒤 그의 음악이 200년 동안 완전히 잊혔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의 명성과 일부 작품은 18세기와 19세기에도 이어졌습니다.

미망인 프란시스는 유고를 정리했고, 성악 작품집 《오르페우스 브리타니쿠스(영국의 오르페우스)》는 헨리 플레이퍼드에 의해 1698년과 1702년 두 권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아서 왕》과 교회음악 일부도 계속 연주되었습니다. 18세기의 고음악 연주 단체들은 퍼셀의 합창곡을 레퍼토리로 삼았고, 그의 이름은 영국 음악의 상징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다만 음악 전체가 같은 방식으로 살아남은 것은 아닙니다. 극장 환경이 바뀌고 이탈리아 오페라와 헨델의 음악이 런던 무대를 장악하면서, 세미오페라는 원래 모습으로 공연되기 어려워졌습니다. 악보가 흩어지거나 일부만 연주되는 작품도 생겼습니다.

1876년 퍼셀 협회가 창립된 것은 이 흐릿해진 전승을 다시 모으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협회는 퍼셀의 작품을 찾아 교정하고 전집으로 출판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극적인 사례가 《요정 여왕》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바탕으로 한 이 세미오페라의 총보는 오랫동안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692년 헨리 퍼셀 요정 여왕 초판 표지
1692년 《요정 여왕》의 대본 표지. 작품 총보는 오랫동안 행방이 묘연했다가 20세기 초 다시 확인되었다.

총보는 1901년경 왕립음악원에서 다시 발견되었고, 1903년 출판되었습니다. 1911년에는 구스타브 홀스트(Gustav Holst)가 런던 몰리 칼리지에서 전곡에 가까운 부활 공연을 지휘했습니다. 랠프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도 이 공연을 알리고 지원하는 데 참여했습니다.

그러므로 퍼셀의 20세기 부활은 무에서 작곡가를 되살린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남아 있던 명성과 흩어진 악보, 끊어진 공연 전통을 다시 이어 붙인 복원이었습니다.

그 영향은 복원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벤저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은 퍼셀의 영어 가사 처리와 극적 감각을 자신의 음악적 뿌리로 삼았습니다.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은 퍼셀의 극음악 《압델라자르》에 나오는 론도 주제로 시작합니다. 17세기 극장의 짧은 춤곡이 20세기 관현악을 소개하는 음악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같은 영국 음악의 흐름을 더 살펴보려면 벤저민 브리튼의 생애와 작품을 함께 읽어도 좋습니다.

헨리 퍼셀의 주요 작품

오페라·극음악
  • 《디도와 에네아스》 — 디도와 에네아스의 비극적인 사랑을 압축한 영국 바로크 오페라
  • 《디오클레시아누스》 — 퍼셀의 본격적인 세미오페라 활동을 알린 작품
  • 《아서 왕》 — 드라이든의 대본과 퍼셀의 극적 음악이 결합한 대표작
  • 《요정 여왕》 — 《한여름 밤의 꿈》을 바탕으로 노래·춤·무대 장면을 결합한 세미오페라
  • 《인도의 여왕》 — 퍼셀의 죽음으로 미완성에 그친 후기 작품
교회·국가 음악
  • 《메리 여왕을 위한 장송 음악》 — 여왕과 퍼셀 자신의 장례에서 울린 음악
  • 〈My Heart is Inditing(내 마음에서 좋은 말이 넘쳐흐릅니다)〉 — 제임스 2세 대관식 앤섬
  • 〈Hear my prayer, O Lord(주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 짧은 선율이 거대한 불협화음으로 확장되는 합창곡
기악곡
  • 비올 판타지아 — 영국 다성음악 전통을 집대성한 1680년의 작품군
  • 《3성부 소나타》 — 이탈리아 소나타 양식을 영국식 대위법으로 받아들인 작품
  • 《압델라자르》 모음곡 —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에 주제를 제공한 극음악

퍼셀의 작품은 바로크 음악의 특징과 역사 속에서 들으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프랑스의 춤과 이탈리아의 화성, 영국의 합창 전통이 한 작곡가 안에서 어떻게 만났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퍼셀 음악은 어떤 순서로 들으면 좋을까

퍼셀을 처음 만난다면 작품을 연대순으로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목소리, 기악, 합창이라는 세 개의 문으로 들어가는 편이 좋습니다.

퍼셀 입문 감상 순서

1. 목소리
《디도와 에네아스》 중 〈When I am laid in earth(내가 땅에 묻히거든)〉를 들으세요. 반복되는 하행 저음과 〈Remember me〉의 변화를 따라가면 됩니다.

2. 기악
〈Fantazia upon One Note(하나의 음 위의 판타지아)〉나 4성부 비올 판타지아를 들어보세요. 한 음이 고정된 채 주변 선율이 계속 달라지는 과정을 들을 수 있습니다.

3. 합창
《메리 여왕을 위한 장송 음악》 중 〈Thou knowest, Lord(주여, 당신은 아시나이다)〉로 이어가세요. 화려한 장식 없이 영어의 말과 화음만으로 슬픔을 만드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확장 감상
《압델라자르》의 론도를 들은 뒤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을 이어 들으면, 퍼셀의 선율이 250년 뒤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지 한 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

오페라가 낯설다면 오페라 입문 가이드를 먼저 읽어도 좋습니다. 퍼셀 이후 런던 무대를 장악한 작곡가가 궁금하다면 헨델의 생애와 작품으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헨리 퍼셀은 어떤 작곡가인가요?

헨리 퍼셀은 17세기 영국 바로크를 대표하는 작곡가입니다. 영국의 오래된 다성음악 전통과 프랑스·이탈리아 양식을 영어의 억양에 맞게 결합했으며, 《디도와 에네아스》, 《요정 여왕》, 《메리 여왕을 위한 장송 음악》을 남겼습니다.

Q. 퍼셀은 왜 영어를 가장 잘 노래하게 만든 작곡가로 평가받나요?

퍼셀은 영어 단어의 강세와 말의 속도를 선율과 세밀하게 맞췄습니다. 중요한 단어에서는 음을 길게 늘이거나 화성을 흔들어 말의 감정을 음악 안에서 직접 들리게 했습니다.

Q. 《디도와 에네아스》는 어떤 작품이며 언제 작곡되었나요?

《디도와 에네아스》는 카르타고 여왕 디도와 트로이 영웅 에네아스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오페라입니다. 확실하게 확인되는 초기 공연은 1689년 런던 첼시의 여학교 공연이지만, 그보다 앞서 궁정에서 공연되었을 가능성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Q. 헨리 퍼셀은 왜 36세에 죽었나요?

퍼셀의 정확한 사인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결핵이나 다른 급성 질환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확정할 수 없으며, 아내가 문을 잠가 추위에 노출되어 죽었다는 이야기는 후대에 만들어진 전설로 봅니다.

Q. 퍼셀은 사후 200년 동안 완전히 잊혔나요?

완전히 잊힌 것은 아닙니다. 일부 작품은 18세기와 19세기에도 연주되었지만 극음악의 상당 부분은 공연 전통이 약해지고 악보도 흩어졌습니다. 1876년 퍼셀 협회 창립과 20세기 초 악보 복원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가 다시 온전한 모습으로 알려졌습니다.

맺으며 — 과거를 마무리하고 미래를 연 작곡가

헨리 퍼셀은 영국의 오래된 음악을 지킨 보수적인 작곡가도, 대륙 양식을 모방한 국제적인 작곡가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두 세계의 경계에 서 있었습니다.

비올 판타지아에서는 엘리자베스 시대부터 내려온 다성음악의 마지막 빛을 붙잡았고, 《디도와 에네아스》에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표현법을 영어의 말과 결합했습니다. 세미오페라에서는 런던 극장이 요구한 장면과 속도, 춤과 합창을 하나의 무대로 만들었습니다.

만약 퍼셀이 36세에 세상을 떠나지 않고 15년을 더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1710년 런던에 도착한 헨델과 나란히 활동하며, 영국 무대음악은 이탈리아 오페라 일변도가 아닌 다른 길을 걸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것은 역사적 가정입니다. 그러나 퍼셀의 죽음 뒤 영국어 오페라의 흐름이 약해지고, 외국에서 온 헨델이 런던 음악계를 주도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충분히 던져 볼 만한 질문입니다.

오늘 단 한 곡만 듣는다면 ‘디도의 탄식’을 권합니다. 그다음에는 1680년의 비올 판타지아와 메리 여왕을 위한 장송 음악을 이어 들어 보세요.

그 세 작품 사이에는 한 작곡가의 생애 전체가 놓여 있습니다. 사라져 가는 영국의 옛 음악, 새롭게 들어온 대륙의 양식, 그리고 무엇보다 영어라는 언어를 음악으로 만들려 했던 퍼셀의 목소리입니다.

※ 《디도와 에네아스》의 초기 공연 시기와 퍼셀의 가족관계·사망 원인처럼 연구자들의 견해가 갈리는 부분은 새로운 연구 결과에 따라 본문을 갱신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