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역할과 지휘봉의 역사, 오케스트라에 지휘자는 왜 필요할까 [지휘자 시리즈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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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는 연주가 언제 시작하고 어떤 빠르기로 갈지 알리고, 여러 악기군의 많은 연주자가 어떻게 맞물릴지 정하고, 그것을 리허설에서 미리 맞춰 두는 사람입니다. 무대에서 보이는 손짓은 그 일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같은 빠르기로 같은 방향을 보며 연주하려면, 누군가 그 기준을 먼저 정하고 모두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콘서트홀에서 지휘자가 단상에 올라 지휘봉을 드는 모습은 너무나 당연한 풍경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어차피 악보대로 연주할 텐데, 오케스트라에 지휘자가 진짜 필요한 걸까?」 하고 묻기도 합니다. 실제로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악단도 있습니다. 이 글은 그 물음에서 출발해, 지휘봉이 어디서 왔는지, 지휘자들이 스스로 자기 일을 어떻게 적었는지, 그리고 지휘자를 두지 않은 악단들은 그 일을 어떻게 나눴는지를 차례로 살펴봅니다.

지휘자 한눈에 보기
• 하는 일: 시작과 템포를 알리고, 악기군 사이의 균형과 맞물림을 정하고, 리허설에서 미리 맞춘다
• 지휘봉: 17세기 프랑스에는 무거운 막대로 바닥을 쳐서 박을 맞췄다고 전하고, 손에 드는 가벼운 막대는 19세기 전반에 퍼졌다
• 베를리오즈가 적은 지휘봉: 길이 반 미터쯤, 가볍고, 잘 보이도록 흰 편
• 지휘자 없는 악단: 있다. 다만 지휘자의 일을 없앤 것이 아니라 단원들이 나눠 맡았다

지휘봉의 역사

지금의 가늘고 가벼운 지휘봉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7세기 프랑스에서는 무거운 막대로 바닥을 쳐서 박자를 맞추었다고 전합니다.

그 막대에 다친 상처가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전하는 작곡가가 있습니다. 루이 14세의 궁정 작곡가 장 바티스트 륄리입니다. 1687년 1월 8일 무렵, 왕의 병이 나은 것을 감사하는 〈테 데움〉을 이끌던 륄리는 이 막대로 자기 발가락을 찧었고, 상처가 괴저로 번져 그해 3월 22일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다친 자리가 연주 중이었는지 리허설 중이었는지, 의사들이 권한 절단을 왜 거부했는지는 자료마다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 프랑스 국립고고학박물관은 그가 무용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이탈리아 트레카니 인명사전은 덜 극단적인 방법으로 회복하기를 바랐다고 적습니다.

그 무렵 많은 악단에서는 건반악기 연주자나 제1바이올린 주자가 합주를 이끌었습니다. 손에 드는 막대로 박을 보여 준 이른 기록 가운데 하나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루이 슈포어는 1820년 런던 필하모닉 협회의 리허설에서 코트 주머니에서 지휘봉을 꺼내 들었다고 자서전에 적었습니다. 단원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앉아 있어서, 박을 눈에 보이게 주는 쪽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슈포어의 회고에 따르면 이사 몇몇은 놀라서 항의하려 했지만, 단원들은 교향곡의 첫 부분이 끝나자 소리 높여 새 지휘 방식에 찬성했습니다. 다만 이것은 슈포어 자신의 회고이고, 협회 쪽 기록을 근거로 다르게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펠릭스 멘델스존이 1832년 런던에서 지휘봉을 들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처음 지휘봉을 들었는지는 자료마다 답이 갈립니다. 분명한 것은 19세기 전반에 여러 도시에서 여러 사람이 이 도구를 쓰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지휘에 사용된 다양한 지휘봉들을 보여주는 이미지
길이와 굵기, 손잡이 모양이 서로 다른 지휘봉들이다.

지휘봉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적어 둔 사람은 엑토르 베를리오즈입니다. 그가 쓴 관현악법 책에는 지휘에 관한 장이 있는데, 1855년 개정판에 덧붙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기서 베를리오즈는 이렇게 씁니다. 「지휘자는 보통 가볍고 작은 막대를 쓴다. 길이는 반 미터쯤이고, 어두운 색보다는 흰 편이 낫다(그쪽이 더 잘 보인다). 이것을 오른손에 쥔다.」

그는 바이올린 활과도 견주었습니다. 「바이올린 주자 출신 지휘자 몇몇이 쓰는 활은 막대보다 덜 알맞다. 활은 조금 휘기 때문이다.」 베를리오즈의 설명대로라면 지휘봉이 희고 가볍고 곧은 데에는 단원의 눈에 잘 보이고 끝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실용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글 : 멘델스존의 생애와 작품(음악)]

[함께 읽으면 좋을 글 : 지휘자 멘델스존]

베를리오즈와 바그너가 적은 지휘자의 일

지휘가 하나의 일로 자리 잡던 19세기에는 지휘자 자신이 그 일을 글로 남겼습니다. 두 사람의 글을 보면 지휘자가 무대에 서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베를리오즈는 지휘자의 조건부터 적었습니다. 지휘자는 곡의 짜임을 알고, 각 악기의 성질과 낼 수 있는 음역을 알고, 총보(모든 악기의 성부를 한데 모은 악보)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손을 쓰는 법도 꼼꼼히 적었습니다. 두 박으로 젓는 곡에서도 팔 전체를 내리지 말고 손목을 최대한 꺾어 지휘봉 끝을 곧게 떨어뜨리라고 했고, 박을 잘게 나눌 때는 팔은 쓰지 말고 손목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큰 팔 동작보다 막대 끝의 움직임을 또렷하게 하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랑빌의 1846년 풍자화. 오른손에 가는 지휘봉을 든 베를리오즈 앞에 금관악기와 콘트라베이스, 대포가 늘어서 있다.
그랑빌, 〈산탄 연주회와 베를리오즈〉, 1846년, 판화, 소설 『제롬 파튀로, 사회적 지위를 찾아서』 삽화본 수록,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베를리오즈의 연주회를 대포 포탄에 빗댄 풍자화로, 그가 오른손에 든 가늘고 긴 막대를 볼 수 있다. 원화 그랑빌, 퍼블릭 도메인(위키미디어 공용).

리하르트 바그너는 『지휘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지휘자의 일을 한 가지로 모았습니다. 「한 곡을 올바르게 연주하는 데 지휘자 쪽에서 해야 할 일을 모두 모아 보면, 그것은 지휘자가 언제나 올바른 템포를 주는 데 담겨 있다. 템포를 고르고 정하는 것을 보면 그 지휘자가 곡을 이해했는지 아닌지 곧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바그너는 그 예로 파리 음악원 연주회의 지휘자 하베네크를 듭니다. 바그너의 서술에 따르면 하베네크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한 겨울 시즌 내내 연습하고도 곡을 알 수 없다고 느꼈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시즌까지 연습을 이어 간 끝에 템포를 찾았습니다. 바그너는 이렇게 씁니다. 「그는 끈질긴 노력으로 악단이 이 교향곡의 멜로스를 붙잡도록 이끌었고, 그렇게 해서 올바른 템포를 찾았다. 멜로스를 올바르게 붙잡아야 올바른 박자도 나온다. 둘은 떼어 놓을 수 없고, 하나가 다른 하나를 정한다.」 멜로스는 그리스어로 노래, 선율이라는 뜻입니다. 템포를 정하는 일이 숫자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곡의 노래를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이 바그너의 생각이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글 : 베를리오즈의 생애와 작품]

[함께 읽으면 좋을 글 : 리하르트 바그너 생애와 작품]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그렇다면 지휘자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실제로 해 본 악단들이 있습니다.

1922년 모스크바에서는 레프 체이틀린이 만든 페르심판스, 곧 지휘자 없는 제1교향악단이 첫 연주회를 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아흔 명 안팎이 무대에 섰고 창단 10주년에는 150명이 함께했다고 하며, 단원 모두가 자기 성부만이 아니라 총보 전체를 익혔다고 전합니다. 이 악단은 1922년부터 1930년대 초까지 약 10년간 활동했습니다.

지금 활동하는 악단으로는 뉴욕의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 1972년 첼리스트 줄리언 파이퍼가 뉴욕의 프리랜서 연주자들을 모아 시작했고, 악단 스스로 지휘자와는 한 번도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었다고 소개합니다. 이름 그대로 체임버, 곧 실내 관현악 규모의 악단입니다.

이탈리아의 스피라 미라빌리스는 2007년 9월 스스로 전문가의 실험실이라 부른 모임을 열었습니다. 단원 모두가 첫 리허설에 오기 전에 총보 전체를 공부해 오고, 토론으로 해석을 함께 정합니다. 그런데 이 단체는 자신들이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로 불리는 것을 거부합니다. 단체 밖에서는 여러 지휘자와 함께 일한다고도 밝힙니다.

세 악단은 모두 지휘자 한 사람에게 모이던 일을 연주자들이 나눠 맡았지만, 그 방식은 달랐습니다. 스피라 미라빌리스는 모든 단원이 총보를 공부하고, 오르페우스는 작품마다 고른 핵심 연주자 그룹이 해석을 먼저 준비한 뒤 전체 악단과 함께 맞춰 갑니다. 지휘자의 일은 없앨 수는 없지만 나눌 수는 있습니다.

리허설에서 일어나는 일

지휘자의 일 가운데 관객이 보지 못하는 부분이 리허설입니다. 이 장면을 녹화해 분석한 연구들이 있습니다.

일본인지과학회 학회지에 2004년 실린 마루야마 신의 연구는 지휘자 이노우에 미치요시와 도쿄 필하모닉의 리허설 영상을 분석했습니다. 지휘자의 손짓과 악장(첫 번째 바이올린의 대표 주자)의 활 움직임 사이의 시간차를 쟀더니, 리허설 첫날에 가장 컸고 날이 지날수록 줄어들었습니다. 이 연구는 첫날 지휘자의 몸짓을 하나하나 분류해 기록하는 분석도 함께 했습니다. 연구자는 첫날의 큰 시간차가 박을 정확히 맞추기보다 음악의 의도를 전하는 데 힘을 쏟은 결과일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한 지휘자와 한 악단의 사례라는 점은 함께 기억해 둘 만합니다.

2024년에 나온 모니카 메스너의 연구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오케스트라 리허설 녹화를 살폈습니다. 지휘자들은 말로 설명하는 대신 직접 노래하거나 리듬을 입으로 소리 내어 빠르기와 프레이징(선율을 끊고 잇는 방식), 음을 끊어 내는 정도를 전했고, 그 소리를 손짓과 눈길에 함께 실었습니다. 무대에서는 소리를 내지 않는 지휘자가 리허설에서는 손짓만이 아니라 목소리로도 지휘하는 셈입니다.

같은 악보, 다른 지휘

바그너의 말대로라면 템포를 고르는 순간 지휘자가 곡을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같은 악보로 연주해도 지휘자가 바뀌면 소리가 달라집니다. 템포가 조금만 달라져도 같은 선율이 서두르는 듯 들리기도 하고 넉넉하게 숨을 쉬는 듯 들리기도 합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그 차이를 이야기할 때 자주 나란히 놓이는 두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한 편씩 따로 다뤘습니다. 두 사람이 남긴 베토벤 교향곡 5번 녹음은 명반 비교 글에서 이어 들어 볼 수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글 :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함께 읽으면 좋을 글 :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함께 읽으면 좋을 글 : 베토벤 교향곡 5번 명반 비교]

지휘자 시리즈에서 만날 사람들

다음에 공연장에 가면 지휘자의 팔보다 지휘봉 끝을 보시기 바랍니다. 베를리오즈가 흰 막대를 권한 까닭은 그쪽이 단원들 눈에 더 잘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첫 소리가 나기 직전 악장의 활이 지휘봉을 어떻게 따라가는지도 함께 보시면, 리허설에서 미리 맞춰 둔 것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보입니다.

지휘자 시리즈는 한 사람씩 그 지휘자가 템포와 소리를 어떻게 다뤘는지를 따라갑니다. 지금까지 다룬 지휘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없이 연주할 수 있나요?

할 수 있습니다. 1920년대 모스크바의 페르심판스, 1972년에 시작한 뉴욕의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그런 예입니다. 다만 그런 악단에서는 단원 모두가 총보를 익히고 토론으로 해석을 정하는 등 지휘자가 하던 일을 나눠 맡습니다.

Q. 지휘봉은 언제부터 썼나요?

손에 드는 가벼운 지휘봉은 19세기 전반에 퍼졌습니다. 1820년 런던의 슈포어, 1832년 런던의 멘델스존 같은 기록이 있지만, 누가 처음이었는지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그 이전에는 건반악기 연주자나 제1바이올린 주자가 합주를 이끌기도 했고, 17세기 프랑스에서는 륄리처럼 무거운 막대로 바닥을 쳐 박자를 맞추는 방식도 쓰였습니다.

Q. 지휘봉은 왜 희고 가벼운가요?

베를리오즈는 지휘봉이 반 미터쯤 되는 가볍고 작은 막대여야 하고, 어두운 색보다 흰 편이 더 잘 보인다고 적었습니다. 바이올린 활은 조금 휘기 때문에 막대보다 덜 알맞다고도 했습니다. 단원의 눈에 잘 띄고 끝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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