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these first

Latest on the blog

지휘하다 발을 찍어 죽은 작곡가? 지휘봉의 기원과 역할 총정리

  오늘날 지휘봉 사용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지만 현재와 같은 지휘자의 위상 정립과 지휘봉의 사용은 인류 역사 속에서 보면 비교적 최근에 해당한다. 과연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와 그들의 상징인 지휘봉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 흥미로운 여정을 따라가려고 한다. 

Key Takeaways
  • 지휘는 키로노미(손짓) → 지팡이 → 현대 지휘봉으로 진화했다.
  • 륄리의 ‘지팡이 사고’는 도구 전환의 상징적 사건으로 회자된다.
  • 지휘봉 확산: 베버(1817), 슈포어(1820 주장), 멘델스존(1835)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 베를리오즈·바그너가 근대 지휘법을 체계화했고, 한스 폰 뷜로가 전업 지휘자 위상을 확립했다.
  • 해석의 스펙트럼: 토스카니니(악보 충실) ↔ 푸르트벵글러(직관·가변).
  • 대편성·짧은 리허설 환경에서 지휘자의 조율 능력은 특히 결정적이다.

지휘봉이 없던 시절, 손으로 빚어낸 음악

  19세기 이전 지휘자의 역할은 여럿이 함께 연주할 수 있도록 시작을 알린다거나 박자를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에서 시작된 키로노미 지휘법(손으로 선율의 움직임을 지시)은 중세 그레고리오 성가 지휘로 이어졌는데, 악보도 박자 체계도 없었던 시기에 손으로 음의 고저와 발음상의 뉘앙스를 표현하였다.

지휘봉의 비극적인 탄생: 장 바티스트 륄리 이야기

  17세기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 장 바티스트 륄리는 안타깝게도 지휘 도중에 일어난 사고 때문에 사망했다. 당시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로 활동하던 륄리는 종종 지휘대에 섰다. 당시의 지휘봉은 커다란 지팡이 같았는데, 지휘자는 이것을 바닥에 쿵쿵 내려쳐 박자를 맞추었다. 륄리는 지휘 도중 지팡이로 자신의 발을 찍었는데, 이 상처가 감염되어 결국 사망했다. 이런 지팡이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성가대라는 '양떼'를 인도하는 목자임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대 지휘법의 시작, 글룩과 멘델스존

  18세기에 들어와 화성음악이 시작되고 오페라가 발달하며 오케스트라의 구성이 확대되어 더 이상 연주와 지휘를 동시에 감당하기가 어려워지게 되자 지휘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작곡가들은 직접 연주에 동참하던 것에서 벗어나 오케스트라 정면이나 측면에서 연주의 시작이나 빠르기, 리듬의 통일, 강약 등을 지시하는 역할, 즉 지휘를 했다. 이런 형태의 지휘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Orfeo ed Euridice>의 작곡가 글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글룩은 오페라의 내용을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를 연습시키는 한편 효과적인 연주를 위하여 지휘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목제 지휘봉에 대한 기록은 이미 18세기 말 이전에도 등장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저항으로 인해 이러한 도구는 쉽게 정착되지 못했다. 지팡이 대신 지휘봉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베버, 멘델스존, 슈포어다. 1817년 베버는 종이를 둘둘 말아 한가운데를 쥐고 지휘했다. 루이 슈포어는 자신이 1820년 런던 필하모닉 협회에서 객원 지휘를 할 때, 연주자들이 무대에 넓게 퍼져 있었기 때문에 지휘봉을 처음 도입했다고 주장했다. 1835년에 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에서 지휘봉을 사용했다. 멘델스존은 자신의 작품을 지휘하던 형태에서 벗어나 곡의 해석을 지휘의 역할에 포함시킨 최초의 지휘자였다.

지휘에 사용된 다양한 지휘봉들을 보여주는 이미지

다양한 지휘봉들(출처 metmuseum.org)

  그 이후 베를리오즈와 바그너에 의해 근대 지휘법 체계가 확립되었다. 한스 폰 뷜로가 베를린 필 상임지휘를 맡게 되면서 최초의 직업적 지휘자가 생겨났다. 지휘자는 어떤 악기도 연주하지 않고, 노래도 부르지 않으며, 오로지 지휘라는 행위를 맡게 되었다.

해석의 차이: 토스카니니 vs 푸르트벵글러

  지휘계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토스카니니와 독일의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왜 6분 정도의 시간 차이가 있을까? 왜냐하면 지휘자들이 같은 악보를 사용하지만 악상 기호, 음표와 쉼표의 길이를 조금씩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연주 시간뿐만 아니라 곡에 대한 해석도 지휘자에 따라 달라진다. 푸르트벵글러는 직관적인 성격으로 때와 장소에 따라 곡 해석을 달리하며 새로운 음악의 창조를 주장했지만, 토스카니니는 주관적 해석을 철저하게 배제하며 절대적으로 작곡가의 의도를 재현하고자 악보에 충실했다. 흥미롭게도 두 지휘자는 서로를 매우 싫어했고 만나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로가 추구하는 음악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두 거장의 차이는 오늘날에도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뜨거운 주제이며, 아래 두 영상을 통해 베토벤 5번 교향곡 '운명'을 두 사람의 연주로 비교해 들어보면 그 극명한 차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Arturo Toscanini)의 객관적 해석

  토스카니니의 지휘는 작곡가의 의도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집중한다. 정확하고, 빠르며, 군더더기 없이 절도 있는 움직임이 특징이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Wilhelm Furtwängler)의 주관적 해석

  푸르트벵글러는 악보를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깊은 해석을 더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유기적이고 철학적이며, 몸 전체를 사용하는 크고 유려한 움직임이 특징이다.

지휘자의 역할, 오케스트라에 정말 필요할까?

  하지만 지휘자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휘자가 하는 역할이 거의 없다는 글을 읽으며 충격을 받은 적도 있다. 실제로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처럼 지휘자 없이 단원들의 협의로 음악을 만들어가는 세계적인 악단도 존재한다. 불성실하고 무능력한 지휘자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휘자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한 것 같다.

  일반적으로 지휘자는 오른손으로 박자를 맞추고, 왼손으로는 강세나 구체적인 표현을 지시한다. 지휘자의 표정 또한 음악의 내용과 흐름을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러한 지휘를 통해 여러 연주자들로부터 합일된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지휘자의 역할이다.

  개인적으로 지휘자가 곡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하여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여 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지휘자는 전체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물론이고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등 각 악기 그룹의 음향까지 조화롭게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오케스트라의 안내자이며 오케스트라에 관한 모든 실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곡을 해석할 권한도 지휘자가 가진다.

  보통 대규모의 교향곡을 지휘하기 위해서는 3년 정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지휘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총보에서 갖가지 정보를 읽어내어 동시에 해석해야 하며, 자신이 원하는 음악적 표현을 연주자에게 전달하고,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에서 나오는 음향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능력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거장들의 개성 넘치는 지휘 스타일

  지휘자마다 지휘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일본의 오자와 세이지는 맨손으로 지휘를 하지만, 러시아의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이쑤시개 정도 되는 길이의 지휘봉을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정명훈은 직접 나무를 깎아 만든 지휘봉을 사용한다. 이들 외에도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로 유명한 레너드 번스타인, 서정적인 해석의 대가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 수많은 거장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상임 지휘자와 객원 지휘자의 차이점

  지휘자는 크게 상임 지휘자와 객원 지휘자로 구분한다. 상임 지휘자는 일정한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으며 오케스트라 단원 채용 등 행정 운영 전반을 직접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반면 객원 지휘자는 상임 지휘자가 자리를 비울 때 등 특별한 경우 일회성으로 초청하는 지휘자를 뜻한다.

댓글

  1. 음악 전문 블로그이시군요. 오늘 처음 블로그 스팟에 작성에 도전해봅니다

    답글삭제
    답글
    1. 새로운 도전 잘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삭제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