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14번 D.810>, 통칭 '죽음과 소녀'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그 비극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곡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슬픈 멜로디의 집합이 아니다. 이것은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의 모든 고통과 철학을 쏟아부은 한 천재의 치밀하게 계산된 예술적 유언이자, 음악사적 전환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1. 절망의 한가운데서 피어난 걸작
이 곡이 완성된 1824년, 슈베르트는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였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비참한 사람"이라고 고백할 만큼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죽음과 소녀'는 바로 이 시기,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슈베르트가 남긴 처절한 자화상과도 같다.
7년 전인 1817년, 그는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죽음과 소녀>를 작곡했다. 죽음의 공포에 떠는 소녀와, 자신은 '잠의 형제'라며 부드럽게 위로하는 죽음의 대화는 7년 후, 현악 4중주라는 거대한 서사의 씨앗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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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베르트의 작곡하는 모습 |
2. 2악장을 넘어, 전 악장을 지배하는 '죽음의 리듬'
흔히 이 곡의 부제는 2악장이 가곡 선율을 주제로 한 변주곡이기 때문에 붙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독일어권의 심층 분석에 따르면 이는 일부에 불과하다. 가곡에서 죽음이 노래하는 장엄하고 차분한 코랄 풍의 리듬(따-따따)은 2악장뿐만 아니라 1, 3, 4악장 전체를 유기적으로 지배하는 핵심 모티브다.
이 '죽음의 리듬'은 각 악장의 성격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1악장에서는 격렬한 투쟁으로, 3악장 스케르초에서는 기괴하고 악마적인 모습으로, 마지막 4악장에서는 광적인 질주로 변형되며 작품 전체에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는 슈베르트의 천재적인 '주제 변형(Thematic Transformation)' 기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3. 고전적 형식의 파괴: 내면의 투쟁을 담다
1악장의 강렬한 시작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베토벤이 '고뇌를 넘어 환희로' 나아가는 구조를 선호했다면, 슈베르트는 정반대의 길을 간다. 그는 안정적인 고전주의 소나타 형식을 의도적으로 파괴하여 끝없는 비극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특히 1악장은 제시부와 재현부에 비해 발전부가 극단적으로 확장되어, 삶과 죽음, 장조와 단조가 끊임없이 충돌하며 싸우는 내면의 전쟁터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는 안정된 형식미를 넘어, 낭만주의 시대의 주관적이고 격렬한 감정을 표출하는 음악사적 전환점이 된다. 전 악장이 단조로 구성된 것 역시, 한순간의 위안이나 희망도 없이 비극적 세계관을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슈베르트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다.
4. 마지막 질주: 광란의 '죽음의 춤(Totentanz)'
마지막 4악장은 이탈리아의 춤곡 '타란텔라' 형식이다. 하지만 이 춤은 결코 즐겁지 않다. 독일 평론가들은 이 악장을 '죽음의 춤(Totentanz)'으로 해석한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혹은 이미 죽음에 사로잡힌 채 미친 듯이 질주하는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다. 구원의 희망이 완전히 좌절된 상태에서 펼쳐지는 이 광란의 질주는 결국 죽음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굴복하며 곡의 막을 내린다.
5. 후대에 미친 영향과 감상 포인트
이 곡의 혁신성은 후대 작곡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현대 작곡가 조지 크럼은 그의 실험적인 현악 4중주 <검은 천사들>에서 이 곡을 인용하며 전쟁의 공포와 허무함을 표현했다.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서는 암살자가 소녀를 조준하는 장면에 2악장이 흐르며 죽음의 숙명이라는 아이러니를 극대화한다.
슈베르트 사후 5년이 지난 1833년에 초연된 이 곡은 약 40분의 연주 시간 동안 듣는 이를 압도한다. 알반 베르크 4중주단(Alban Berg Quartett)의 연주는 현대적인 세련미와 정교한 앙상블로 유명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녹음된 부슈 4중주단(Busch Quartet)의 연주도 들어보길 권한다. 거칠지만 심장을 파고드는 듯한 격렬한 해석을 통해 이 곡에 담긴 실존적인 공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알반 베르크 4중주단(Alban Berg Quartett)의 연주
'죽음과 소녀'는 슈베르트가 남긴 친근하고 아름다운 선율 너머에 숨겨진, 그의 가장 깊고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