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는 왜 협주곡을 출판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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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9월 30일, 빈에서 도나우에싱겐으로 소포 하나가 떠났습니다. 받는 사람은 제바스티안 빈터입니다. 소포에는 교향곡 세 곡과 협주곡 세 곡의 필사 악보가 들어 있었고 편지 끝에는 모차르트가 직접 적은 청구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 청구서에는 교향곡에는 붙지 않고 협주곡에만 붙은 항목이 하나 있습니다. 이 글은 그 한 줄에서 시작합니다.

모차르트가 손으로 쓴 피아노 협주곡 23번 K.488 악보 첫 장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K.488 자필 악보 첫 장. 오른쪽 위에 「모차르트의 친필」이라 적어 둔 뒷사람의 메모가 보입니다.

모차르트의 수입 구조 전체와 예약 연주회·마술피리로 이어지는 흐름은 다시채의 모차르트 통장으로 본 음악 경제학 글에 있습니다.

청구서 한 장에 적힌 숫자

모차르트가 적어 보낸 계산은 이렇습니다. 협주곡 세 곡의 총보 필사가 109장에 장당 8크로이처로 14플로린 32크로이처, 파트 악보가 33장 반에 장당 10크로이처로 5플로린 35크로이처였습니다. 교향곡 세 곡은 116장 반에 장당 8크로이처로 15플로린 32크로이처였습니다. 여기에 관세와 우편이 3플로린 붙습니다.

그리고 한 줄이 더 있습니다. 협주곡 세 곡에 대한 사례금 18두카트, 환산해서 81플로린. 합계는 119플로린 39크로이처입니다.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이 청구서의 성격이 드러납니다. 필사에 들어간 돈은 교향곡과 협주곡을 다 합쳐 35플로린 39크로이처입니다. 그런데 협주곡에만 붙은 사례금 81플로린은 그 두 배가 넘고 청구서 전체의 3분의 2를 넘습니다. 종이와 필경사의 품삯이 아니라 다른 무엇에 대한 값이 이 거래의 본체였다는 뜻입니다.

교향곡 세 곡에는 그 항목이 없습니다. 같은 소포에 실려 같은 궁정으로 가는데도 한쪽에는 붙고 한쪽에는 붙지 않았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이었는지는 같은 편지 앞부분에 적혀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자기 악보를 두 종류로 나눠 두었습니다

편지에서 모차르트는 자기 작품을 두 무리로 갈라 설명합니다. 한쪽은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곡들, 그의 표현으로는 자신이 의도적으로 세상에 나가도록 허락한 곡들입니다. 다른 한쪽은 자기 자신을 위해, 또는 소수의 애호가와 감식가를 위해 남겨 둔 곡들입니다. 그리고 그 소수에게는 조건이 붙습니다. 그 악보를 자기 손에서 내놓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모차르트는 이 두 번째 무리에 속한 곡은 이 나라 밖에서 알려질 수가 없다고 썼습니다. 이유가 매섭습니다. 이 나라 안에서조차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유통을 막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유통시키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덧붙입니다. 지금 보내는 협주곡 세 곡이 바로 그 두 번째 무리에 속한다고. 그래서 필사 비용과 별도로 곡당 6두카트의 사례금을 매길 수밖에 없었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작에게 부탁합니다. 이 협주곡들을 손에서 내놓지 말아 달라고.

앞의 청구서에 협주곡에만 붙어 있던 81플로린이 이것입니다. 곡당 6두카트씩 세 곡, 18두카트. 필사비가 종이값이라면 이 돈은 비밀값이었습니다.

왜 협주곡만 그런 대접을 받았나

교향곡과 협주곡을 가른 기준은 장르의 격이 아니라 그 곡이 무엇으로 쓰이느냐였습니다.

교향곡은 악보가 퍼져도 모차르트가 잃을 것이 적습니다. 다른 도시의 악단이 연주하면 오히려 이름이 퍼집니다. 그러나 피아노 협주곡은 사정이 다릅니다. 그 곡들은 그가 직접 건반 앞에 앉아 연주하려고 쓴 곡이었습니다. 악보가 돌면 누구나 그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고 그 순간 그가 팔 수 있는 것이 하나 사라집니다. 아직 아무도 들어 보지 못한 새 곡을 작곡가 본인의 손으로 듣는다는 경험 말입니다.

그래서 협주곡의 값은 두 겹이었습니다. 악보를 옮겨 적는 값과, 그 악보가 더 퍼지지 않는다는 조건의 값. 앞의 것은 필경사에게 가고 뒤의 것은 모차르트에게 갔습니다. 그가 빈에서 연 예약 연주회가 어떤 사업이었는지는 다시채의 모차르트 통장으로 본 음악 경제학 글에서 따로 다루었습니다. 여기서 볼 것은 그 사업이 악보를 어떻게 다루게 만들었는가입니다.

도나우에싱겐으로 간 세 곡 가운데 하나는 가 장조 협주곡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그 곡에 클라리넷 두 대가 들어간다고 알려 주면서 궁정에 그 악기가 없으면 솜씨 좋은 필경사에게 필요한 조로 옮겨 적게 하되 첫 번째 성부는 바이올린으로, 두 번째는 비올라로 연주하라고 일러 둡니다. 악보를 넘기면서도 그 악보가 어떻게 소리 날지를 끝까지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정 수입을 제안했고, 그 제안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이 거래에는 앞선 편지가 하나 있습니다. 같은 해 8월 8일, 모차르트가 같은 사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거기서 그는 작품 목록을 보내면서 제안을 하나 붙입니다.

후작에게 악단이 있으니, 오직 그 궁정만을 위해 자기가 작곡한 곡들을 소유할 수 있게 하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해마다 교향곡과 사중주와 여러 악기를 위한 협주곡을 일정한 수만큼 받고 그 대가로 일정한 연간 보수를 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후작은 더 빨리 더 알맞게 받아 볼 수 있고 자신은 확실한 일이 생기는 셈이니 더 평온하게 작업할 수 있다고 그는 썼습니다.

이어지는 문장이 이 제안의 속내를 보여 줍니다. 한쪽에서라도 뒷받침이 있으면 더 하찮은 일을 덜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하찮은 일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편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원한 것이 더 많은 수입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수입이었다는 것은 문장 안에 그대로 있습니다.

이 제안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비평판의 주석은 짧게 적어 두었습니다. 그 제안은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9월 편지에서 모차르트는 다시 한번 그 이야기를 꺼내며 후작이 어느 장르를 가장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각각 얼마나 원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계산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답은 오지 않았습니다.

남은 것은 건별 거래였습니다. 곡을 쓰고, 필사하고, 값을 매기고, 손에서 내놓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방식. 프리랜서가 벌 수 있었던 것은 이 건별 수입이었고 벌 수 없었던 것은 다음 달에도 들어올 것이 정해진 수입이었습니다.

그 선택이 악보 자체에 남긴 자국

연주를 자기가 독점하는 곡이라면 악보는 어디까지 적혀 있어야 할까요. 답이 남아 있는 악보가 있습니다.

1788년에 쓴 라장조 협주곡, 흔히 대관식 협주곡이라 불리는 곡에는 피아노 왼손이 비어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전문 해설과 판본 서술에서는 느린 2악장의 왼손이 처음부터 끝까지 적히지 않은 것으로 설명합니다. 오른쪽 선율만 적혀 있고 그 아래를 받칠 화음은 종이에 없다는 것입니다.

연주가 불가능한 악보였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 공백이 왜 남았는지는 이 글의 자료만으로 특정할 수 없습니다.

이 곡이 활자로 세상에 나온 것은 모차르트가 죽고 3년 뒤인 1794년입니다. 판본 서술에 따르면 1794년 안드레 초판은 비어 있던 왼손을 채워 실었습니다. 그 보충이 오늘 쓰이는 판본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이 조사 범위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지는 않겠습니다. 남을 못 치게 하려고 일부러 비워 두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확인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그는 자기가 칠 협주곡의 악보가 퍼지지 않도록 값을 매겨 가며 관리했고 그가 남긴 악보 가운데는 자기가 연주자라는 전제 위에서만 완결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둘이 같은 사람의 같은 시기에 나란히 있었다는 것까지가 자료가 말해 주는 범위입니다.

필사본 유통은 그 시대의 관행 아니었나

여기에 반론이 가능합니다. 18세기에 악보가 필사본으로 도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인쇄 출판은 비쌌고 필사본 유통은 널리 쓰이던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니 모차르트가 협주곡을 인쇄하지 않은 것은 전략이 아니라 그저 그 시대의 보통 방식이었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반론은 진지하게 볼 만합니다. 실제로 그는 협주곡을 아예 출판하지 않은 사람도 아닙니다. 1780년대 초에 쓴 세 곡은 뒤에 인쇄본으로 나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니 출판을 거부한 작곡가라는 그림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관행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청구서의 두 가지가 나오지 않습니다. 첫째, 관행이라면 같은 소포에 든 교향곡에도 같은 사례금이 붙어야 합니다. 붙지 않았습니다. 둘째, 관행이라면 손에서 내놓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차르트는 그것을 편지에 명시했습니다. 필사본 유통이라는 관행만으로는 이 편지의 차이를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 거래에서 모차르트는 협주곡에 별도 값을 매기고 비유통을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입니다. 그는 어떤 곡은 세상에 내보내고 어떤 곡은 붙잡아 두었으며 붙잡아 두는 쪽에 값을 매겼습니다. 그 구분선이 지나간 자리가 하필 피아노 협주곡이었습니다.

무엇을 들으면 이 이야기가 들리나

첫 번째는 도나우에싱겐으로 실려 간 그 가 장조 협주곡입니다. 모차르트는 이 곡에 클라리넷 두 대가 들어간다는 것을 굳이 짚어 알려 주었고, 궁정에 그 악기가 없으면 어떻게 대신할지까지 편지에 적어 보냈습니다. 악보를 넘기면서도 그 악보가 어떤 음색으로 울릴지를 끝까지 챙긴 것입니다. 편지 한 줄이 음색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고 들으면 이 곡이 다르게 들립니다.

두 번째는 대관식 협주곡 2악장입니다. 이 곡의 녹음을 들을 때는 먼저 어떤 판본을 쓰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전문 해설과 판본 서술에서 언급하는 왼손의 처리를 판본별로 비교해 보십시오.

세 번째는 카덴차입니다. 협주곡에서 관현악이 멈추고 독주자 혼자 남는 자리로, 원래는 연주자가 그 자리에서 만들어 내는 구간이었습니다. 오늘날 연주되는 카덴차 가운데 어떤 것은 모차르트가 적어 둔 것이고 어떤 것은 후대의 것입니다. 작곡가와 연주자의 몫이 갈리는 자리가 여기입니다. 협주곡 자체를 좀 더 따라가며 듣고 싶으시면 다시채의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글이 도움이 됩니다.

1786년의 그 청구서는 사실 실패한 협상의 부산물입니다. 모차르트가 원한 것은 해마다 정해진 보수였고 받은 것은 곡당 6두카트였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한 협상 덕분에 우리는 그가 자기 악보를 어떻게 나누어 두었는지를 그가 남긴 문면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돈 이야기가 악보 이야기와 만나는 지점이 거기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18두카트는 당시 어느 정도 금액이었나요?

지금 화폐로 단순 환산하면 오히려 감이 흐려집니다. 물가 구조와 생활비 항목이 달라 같은 기준으로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같은 청구서 안에서 견주는 편이 정확합니다. 협주곡과 교향곡 여섯 곡을 통째로 옮겨 적는 필사 비용이 35플로린 39크로이처였고 협주곡 세 곡에만 붙은 사례금이 81플로린이었습니다. 옮겨 적는 노동보다 퍼지지 않는다는 조건에 두 배 넘는 값이 매겨진 셈입니다.

모차르트는 피아노 협주곡을 한 곡도 인쇄하지 않았나요?

아닙니다. 빈에 자리 잡던 무렵에 쓴 협주곡 세 곡은 처음에 예약을 받아 파는 방식으로 내놓았고 몇 해 뒤에는 활자로도 나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장르를 두고 두 방식을 다 겪어 본 셈입니다. 그러니 물어야 할 것은 인쇄를 했느냐가 아니라 어느 곡을 어느 쪽에 놓았느냐입니다.

이 편지와 악보의 원본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도나우에싱겐으로 보낸 편지의 원본은 독일 카를스루에의 바덴 주립도서관 음악부가 소장하고 있습니다. 대관식 협주곡의 자필 악보는 뉴욕의 모건 도서관 소장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글에서는 디지털 소장기록을 직접 대조하지 못했습니다. 편지 쪽은 모차르테움이 공개한 영문 전사본으로 문면과 청구서 계산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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