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명: 하일리겐슈타트 유서(Heiligenstädter Testament)
· 작성: 1802년 10월 6일(+10일 추신), 하일리겐슈타트
· 자필 원고: 함부르크 주립·대학도서관 ND VI 4281
· 저본: Hedwig M. von Asow 전사(1957), de.wikisource 공개 전재
· 발견: 1827년 사후, 원고 뒷면에 같은 해 11월 수령 기록 남아 있음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는 베토벤이 두 형제에게 남긴 유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서는 정확히 말하면 부친 적이 없습니다. 1802년 10월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쓰였고, 1827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서류함에서 발견됩니다. 25년 동안 아무에게도 닿지 못한 채였습니다.
이 문서가 기록한 난청의 실제 증상과 그 사료적 가치는 다시채의 베토벤 이명·스메타나 이명 글에서 따로 다루었습니다.
유서라 불리지만, 부친 적이 없다
보낸 사람이 있고 받을 사람도 정해져 있는데, 정작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문서의 성격을 규정합니다. 베토벤은 이 글을 서랍에 넣어 두고 25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는 이 문서의 존재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로 좁혀집니다. 왜 부치지 못했고, 그런데도 어떻게 지금 우리가 이 글을 읽을 수 있는가.
쓰였지만 전해지지 않은 말
원고는 변명이 아니라 항변으로 시작합니다.
독일어 원문: “O ihr Menschen die ihr mich für feindselig störisch oder Misantropisch haltet oder erkläret, wie unrecht thut ihr mir ihr wißt nicht die geheime urßache von dem; was euch so scheinet”
번역: “오 너희 인간들아, 나를 적대적이고 괴팍하거나 염세적이라 여기거나 그렇게 말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에게 얼마나 부당한지, 너희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의 은밀한 원인을 너희는 모른다.”
그 ‘은밀한 원인’은 청력입니다. 6년째 앓아 온 병을 “낫지 않는 상태”라 부르며, 멀리서 들리는 플루트 소리, 목동의 노랫소리를 남들은 듣는데 자신만 듣지 못했다는 장면까지 남깁니다. 그리고 이 항변은 곧 절정에 이릅니다.
독일어 원문: “solche Ereignüsse brachten mich nahe an Verzweiflung, es fehlte wenig, und ich endigte selbst mein Leben – nur sie die Kunst, sie hielt mich zuruck…”
번역: “그런 일들이 나를 절망 가까이 몰아넣었다, 조금만 더했으면 나는 스스로 내 삶을 끝냈을 것이다. 오직 예술, 그것만이 나를 붙들었다…”
‘자살하려다 예술 때문에 마음을 돌렸다’는 통설은 원고 자신이 그대로 지지합니다.
이어 그는 나이를 언급합니다. “schon in meinem 28 jahre gezwungen Philoßoph zu werden”(이미 내 나이 28세에 철학자가 되도록 강요받다니). 실제로는 서른한 살이었지만, 원고에는 분명히 “28”이라 적혀 있어 이것이 필사 오류는 아닙니다. 다만 왜 그런 차이가 나는지는 이 원고만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이렇게까지 절박하고 사적인 고백을, 그는 왜 봉투에 넣어 부치지 않았을까요.
애초에 부칠 수 없는 상태였다
단서는 수신인 표기 자체에 있습니다. 원고 첫 쪽의 표제입니다.
독일어 원문: “Für meine Brüder Carl und [Johann] Beethoven.”
번역: “내 형제 카를과 [요한] 베토벤에게.”
대괄호 안의 “요한”은 전사자 아소가 보충한 글자입니다. 원고 자체에는 그 이름이 없습니다. 이 공백은 첫 쪽만이 아닙니다. 본문 중반의 “너희 내 형제 카를과 [요한]아”에서도, 19쪽 좌측 여백에 따로 적어 놓은 “내 형제 카를과 [요한]에게, 내가 죽은 뒤 읽고 이행할 것”에서도 똑같이 대괄호로 처리돼 있습니다. 문서 전체에서 베토벤이 요한의 이름을 직접 쓴 흔적이 한 번도 없다는 뜻입니다.
왜 비어 있었는지는 이 원고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수신인의 이름조차 세 번 모두 채우지 못한 글이라면, 봉투에 넣어 부치는 마지막 단계까지 가지 못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 문서는 완성되지 못한 채 남았고, 그래서 부쳐지지 못했습니다.
유서가 아니라, 못다 한 해명이었다
그렇다면 이 미완의 글은 정확히 무엇이었을까요. 원고에는 분명 유서다운 조항이 있습니다.
독일어 원문: “Zugleich erkläre ich euch beide hier für die Erben des kleinen Vermögens, (wenn man es so nennen kann) von mir, theilt es redlich, und vertragt und helft euch einander”
번역: “동시에 나는 이로써 너희 둘을 내 작은 재산(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의 상속인으로 선언한다, 그것을 정직하게 나누고, 서로 화합하고 서로 도와라.”
하지만 이 조항은 전체 분량 가운데 일부일 뿐입니다. 원고의 대부분은 청력 상실에 대한 항변과 오해받는 고통에 관한 고백입니다. ‘유서’라는 이름은 이 상속 조항 하나에 근거해 문서 전체에 붙은 이름이지, 문서 전체의 성격을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본문 말미에서 그는 다시 한번 예술과 자살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독일어 원문: “ihr danke ich nebst meiner Kunst, daß ich durch keinen selbstmord mein Leben endigte”
번역: “너희에게, 그리고 내 예술에게 감사한다, 내가 그 어떤 자살로도 내 삶을 끝내지 않았음을.”
서명을 마친 나흘 뒤인 10월 10일, 그는 펜을 다시 들어 형식을 버린 순수한 탄식을 추신으로 남깁니다.
독일어 원문: “so nehme ich den Abschied von dir – und zwar traurig”
번역: “그렇게 나는 너와 작별한다. 그것도 슬프게.”
재산을 나누라는 문서가 나흘 뒤에 다시 열려 이런 문장을 덧붙이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유언이 아니라, 끝내 전하지 못한 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명은, 결국 그 사람에게 갔다
부치지 못한 이 해명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 원고 자체가 답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장 뒷면에 베토벤의 것이 아닌 다른 두 사람의 손으로 짧은 수령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독일어 원문: “Erhalten am 21ten 9ber 1827 aus den Händen des Herrn Artaria et Comp. am Kohlmarkte. Jak. Hotschevar” / “Erhalten aus den Händen des Herrn Jakob von Hotschevar. Johanna van Beethoven.”
번역: “1827년 11월 21일, 콜마르크트의 아르타리아 상회 씨의 손에서 받음. 야콥 호트셰바르.” / “야콥 폰 호트셰바르 씨의 손에서 받음. 요한나 판 베토벤.”
베토벤이 죽은 지 여덟 달 만인 1827년 11월 21일, 원고는 빈의 음악 출판·거래상 아르타리아 상회에서 야콥 호트셰바르에게, 그리고 그에게서 다시 요한나 판 베토벤에게 넘어갔습니다. 요한나는 베토벤의 형 카를(1815년 사망)의 미망인입니다. 그리고 베토벤이 조카의 양육권을 두고 몇 년 동안 법정에서 다퉜던 바로 그 사람이기도 합니다. 형제에게조차 전하지 못했던 해명이, 결국 도착한 곳은 그 형제의 아내였습니다.
영역본(1866년, 레이디 월리스 역)의 각주는 이와 다른 경로를 전합니다. 자신은 원본을 본 적이 없고 1827년 라이프치히 음악신문판을 따랐으며, 원본은 런던의 바이올리니스트 에른스트가 소장하고 있다고 적습니다. 아르타리아·호트셰바르·요한나로 이어지는 경로는 이 각주 어디에도 없습니다. 원고 자신이 남긴 기록과 훗날의 번역이 전하는 이야기는, 이렇게 서로 다른 조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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