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음악을 듣다 보면 이상한 순간이 있습니다. 같은 곡인데 연주자마다 음의 개수가 다릅니다. 어떤 바이올리니스트는 느린 악장에서 긴 음 하나를 그대로 끌고 가는데, 다른 연주자는 그 자리에서 음을 열 개쯤 굴립니다. 악보가 다른 걸까요. 아닙니다. 악보는 같고, 한쪽이 악보에 없는 음을 넣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음들은 누구의 것일까요. 연주자가 마음대로 넣은 것이라면 그건 작곡가의 곡이 아니게 되는 걸까요. 이 질문의 답은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그것도 인쇄물로 남아 있습니다.
1710년 암스테르담, 악보에 없던 음이 인쇄되다
아르칸젤로 코렐리(Arcangelo Corelli)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5는 1700년에 나왔습니다. 느린 악장의 바이올린 선율은 대체로 긴 음으로 담백하게 적혀 있습니다. 악보만 보면 심심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10년 뒤 암스테르담의 출판업자 에티엔 로제(Estienne Roger)가 새 판을 찍으면서 느린 악장을 두 벌로 인쇄했습니다. 1700년의 담백한 원래 선율과, 음이 빽빽하게 채워진 다른 선율을 나란히 실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채워진 선율을 두고 출판업자는 코렐리가 실제로 연주하는 그대로를 옮긴 것이라고 내세웠습니다. 지금도 이 판본은 악보 표지에 장식을 붙였다는 뜻의 문구를 달고 남아 있습니다.
이 인쇄물이 왜 중요한가 하면, 그때까지 연주장에서 사라지던 것이 활자에 붙잡힌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연주자가 그 자리에서 더하던 음이 종이 위에 고정되어, 300년 뒤의 우리가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인쇄물은 곧 상품이 되었습니다. 이듬해쯤 런던의 존 월시(John Walsh)가 같은 장식을 붙인 판을 냈고, 표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판은 모든 아다지오와 저자가 적절하다고 본 다른 자리에 장식을 갖추었다는 이점이 있다고 말입니다. 장식이 붙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판매 문구였던 것입니다. 참고로 월시의 이 판은 로제의 판을 자기 이름으로 다시 찍은 무단 복제였습니다.
장식은 연주자의 자유였을까, 지켜야 할 의무였을까
장식음을 연주자의 자유로운 개성 표현으로 설명하는 글이 많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교본을 열어 보면 어조가 정반대입니다. 그것은 권리가 아니라 요구였습니다.
피에르 프란체스코 토시(Pier Francesco Tosi)가 1723년 볼로냐에서 낸 성악 교본은 이 문제를 가장 분명하게 다룹니다. 그는 서문에서 가수라는 직업의 특수함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시인이나 화가나 조각가, 심지어 작곡가까지도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 고치고 다듬을 시간이 있지만, 실수한 가수에게는 되돌릴 방법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가수를 가리켜 미리 준비하지 않은 산물에서 틀리지 않아야 할 의무를 진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미리 준비하지 않은 산물이란 바로 그 자리에서 만들어 내는 장식을 말합니다. 즉 토시에게 즉석 장식은 잘하면 좋은 재주가 아니라, 실패하면 안 되는 직무였습니다. 그는 아예 못을 박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목소리와 기교를 가졌어도 즉석에서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특별한 평가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입니다.
같은 시기 독일에서도 장식은 배워야 할 규범이었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1720년 쾨텐에서 아들 빌헬름 프리데만을 위해 시작한 건반 교습장에는, 여러 기호가 어떤 장식을 뜻하는지 설명하는 표가 바흐 자신의 손글씨로 들어 있습니다. 장식이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었다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기호표를 그려 줄 이유가 없습니다. 이 교습장은 지금 예일 대학 바이네케 도서관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크의 장식은 연주자가 원하면 넣는 것이 아니라, 넣지 않으면 실력을 의심받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넣을지는 지역과 장르와 시기에 따라 달랐고, 그래서 바로크 음악 전체를 하나의 즉흥 문화로 뭉뚱그리면 오히려 실제와 멀어집니다.
다 카포 아리아는 왜 장식을 요구하는 구조인가
바로크 오페라에서 가장 흔한 아리아 형식은 다 카포 아리아였습니다. A 부분을 부르고, 성격이 다른 B 부분을 부른 뒤, 처음으로 돌아가 A를 다시 부르는 형식입니다. 우리 블로그의 헨델의 아리아 해설에서도 이 형식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구조적인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A가 그대로 돌아온다면 청중은 같은 음악을 두 번 듣게 됩니다. 악보는 되풀이하라고만 적혀 있지, 두 번째를 어떻게 하라고는 적어 두지 않았습니다. 그 빈자리를 메우는 것이 장식이었습니다.
토시는 이 빈자리에 아예 설계도를 그려 놓았습니다. 세 부분으로 나뉜 아리아를 어떻게 부르는가가 무엇보다 먼저 살필 문제라고 하면서, 첫 부분에서는 취향이 좋으면서 수가 적은 가장 단순한 장식만을 써서 작품이 단순하고 순수하게 남게 하라고 했습니다. 둘째 부분에서는 그 순수함 위에 기교 있는 장식이 더해지기를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안목 있는 청중이 가수의 능력이 더 크다는 것을 바로 그 대목에서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리아를 반복할 때 그것을 더 낫게 변화시키지 못하는 자는 대가가 아니다.
이것이 다 카포 아리아의 진짜 작동 방식입니다. A와 B와 A의 반복은 같은 것을 두 번 놓은 게 아니라, 장식의 밀도가 낮은 데서 높은 데로 올라가는 계단이었습니다. 형식이 먼저 자리를 비워 두고, 연주자가 그 자리를 채우는 구조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다 카포 반복부를 처음과 똑같이 부르는 연주는 형식이 비워 둔 자리를 비워 둔 채로 지나가는 셈입니다.
장식음이 화성적 긴장을 만든다는 말의 뜻
장식이라는 말 때문에 오해가 생깁니다. 있으면 예쁘고 없어도 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크의 여러 장식은 음악의 뼈대 쪽에 붙어 있습니다.
가장 알기 쉬운 것이 아포자투라(appoggiatura)입니다. 우리말로는 흔히 앞꾸밈음이라고 옮기지만, 하는 일을 그대로 옮기면 기대는 음입니다. 이 음은 화성을 새로 만들지 않습니다. 이미 진행 중인 화음 위에 그 화음에 속하지 않는 음을 강박으로 얹어, 목표음에 닿는 것을 잠시 늦출 뿐입니다. 그래서 짧은 불협이 생기고 뒤따르는 해결이 그 긴장을 풀어 줍니다.
해결은 아래로 내려가기도 하고 위로 올라가기도 합니다. 방향이 핵심이 아니라 강박에 놓인 화음 밖 음이 바로 옆 음으로 풀린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비슷하게 들리는 계류음과는 이렇게 갈립니다. 앞 음을 그대로 이어 붙들고 있어서 생긴 불협이면 계류음이고, 그 자리에서 새로 짚어 소리 내면 아포자투라입니다. 이 글에서 들어 볼 예는 아래로 풀리는 쪽입니다.
이 과정을 빼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음정은 다 맞습니다. 그런데 종지에서 긴장이 만들어졌다가 풀리는 그 짧은 굴곡이 사라집니다. 장식음을 빼면 밋밋해진다는 말은 취향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화음 위에 얹히던 긴장과 그 해소가 통째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화성과의 관계는 오늘날 이본을 가려 보는 기준이 됩니다. 음악학자 닐 자슬로(Neal Zaslaw)는 1990년대에 코렐리 작품 5에 붙은 여러 장식 판본 15종을 모아 옮겨 적으면서, 어떤 경우에는 장식이 너무 자유로워 원래의 화성 구조와 맞지 않는다고 평가했습니다. 어떤 장식이 원곡의 구조를 그대로 두고 어떤 장식이 그것을 바꾸는지는 이렇게 화성과 견주어 보면 가려집니다.
박자 쪽에도 흔적이 남습니다. 코렐리의 제자였던 프란체스코 제미니아니(Francesco Geminiani)는 1751년 런던에서 낸 바이올린 연주법 책에서 장식을 상당한 분량으로 다뤘는데, 박절의 악센트를 피하라는 취지의 권고는 논쟁적이었습니다. 트릴을 강박이 아니라 약박에 놓으면 그 마디에서 힘이 실리는 자리가 옮겨 갑니다. 장식의 위치 하나가 리듬의 무게 중심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디까지가 코렐리이고 어디부터 후대의 창작인가
여기서 정직하게 갈라야 할 것이 있습니다. 1710년 판에 인쇄된 장식이 정말 코렐리가 연주한 그대로인지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코렐리의 연주라고 말한 사람은 코렐리가 아니라 출판업자였습니다. 그리고 앞서 본 것처럼 그 문구는 곧바로 경쟁 출판업자의 판매 문구로 옮겨 갔습니다. 판매에 도움이 되는 주장이었다는 사실이 그 주장을 거짓으로 만들지는 않지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이유도 없게 만듭니다.
더 결정적인 것은 남아 있는 자료의 수입니다. 코렐리 작품 5에 붙은 장식 자료는 현재 20종이 넘게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많은 장식 판본이 붙은 곡은 작품 5의 9번입니다. 한 곡의 같은 자리에 서로 다른 장식이 여러 벌 남아 있다는 것은, 고정된 악보 한 벌이 실제 연주를 대표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18세기 전반의 판본들만 비교해 봐도 접근 방식이 폭넓게 갈립니다. 어느 박을 잘게 쪼개는지, 쪼갠 음들이 어떤 모양으로 움직이는지가 판본마다 다릅니다.
제미니아니가 남긴 작품 5의 9번 장식은 존 호킨스가 1776년 런던에서 낸 음악사 책에 실려 전합니다. 스승의 곡에 제자가 붙인 장식이, 스승이 죽고 60년도 더 지나 다른 사람의 책에 실려 남은 것입니다. 이 계보를 따라가 보면 결론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당대와 그 직후 사람들이 이 자리에 무엇을 넣었는가이고,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코렐리 본인이 그날 무엇을 넣었는가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시대악기 연주자가 느린 악장에서 음을 굴릴 때, 그것은 복원이면서 동시에 선택입니다. 남아 있는 여러 벌 중에서 하나를 고르거나, 그 문법을 익혀 자기 것을 만드는 일입니다. 어느 쪽이든 근거가 있고, 어느 쪽도 코렐리의 그날 밤은 아닙니다.
바로크 연주에서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이 이야기를 알고 나면 바로크 음반을 고르는 기준이 하나 생깁니다. 다음 네 지점을 따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다 카포 아리아에서 A가 두 번째로 돌아오는 순간입니다. 처음 들었던 선율이 다시 나올 때 음이 늘어나는지, 아니면 처음과 똑같이 지나가는지를 들어 보십시오. 늘어난다면 그 연주는 토시가 적어 둔 계단을 오르고 있는 것이고, 똑같다면 형식이 비워 둔 자리를 그대로 둔 것입니다. 어느 쪽이 옳다기보다, 그 선택이 들린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코렐리 작품 5의 9번 프렐루디오입니다. 남아 있는 장식 이본이 가장 많은 곡인데, 시작하고 두 마디 안에 이미 갈립니다. 담백한 원래 선율로 가는 연주와 장식을 붙인 연주는 첫 호흡에서 이미 다른 곡처럼 들립니다. 같은 곡의 서로 다른 녹음 두 개를 앞부분만 번갈아 들어 보면 차이가 바로 잡힙니다.
셋째, 트릴이 어디에 떨어지는지입니다. 강박에 얹혀 힘을 실어 주는지, 약박으로 비껴 나가 박자의 무게를 옮기는지를 들어 보십시오. 제미니아니 이후로 이것은 취향이 아니라 입장의 문제였습니다.
넷째, 노래가 끝나는 자리입니다. 종지 직전에 목소리가 목표음으로 곧장 가지 않고 옆의 음을 먼저 짚었다가 내려오는 대목이 있는지 들어 보십시오. 그 짧은 미끄러짐이 아포자투라이고, 그것이 있고 없고에 따라 마지막 한 마디의 인상이 달라집니다.
서로 다른 시대악기 연주가 같은 악보를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지는 비발디의 사계 비교 감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악보에 없는 음은 연주자의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음들은 연주자가 당대의 문법 안에서 고른 것이고, 그 문법의 상당 부분이 종이에 남아 오늘까지 왔습니다. 그러니 바로크를 들을 때 우리가 듣는 것은 작곡가가 쓴 음과, 그 음이 비워 둔 자리에 300년 동안 사람들이 채워 넣은 선택들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바로크 시대에는 연주자가 아무 음이나 넣어도 됐나요
아닙니다. 넣을 자리와 넣는 방식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화성과 견주어 보면 어떤 장식이 원곡의 구조를 바꾸는지 가려낼 수 있습니다. 자유롭게 넣는 것이 아니라 문법 안에서 만들어 넣는 일에 가까웠습니다.
장식음을 빼고 연주하면 틀린 연주인가요
틀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다 카포 반복처럼 장식을 전제하고 만들어진 자리에서는, 장식을 빼면 작곡가가 설계한 단계 변화가 청중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바로크 장식음은 악보 어디에 표시되나요
기호로 적히는 것과 아예 적히지 않는 것이 함께 있었습니다. 트릴이나 앞꾸밈음처럼 기호로 지시되는 것이 있고, 느린 악장이나 반복부에서 선율 자체를 다시 짜는 것은 대개 적히지 않았습니다.
시대악기 연주와 현대악기 연주는 장식에서 무엇이 다른가요
악기 종류만으로 갈리지는 않습니다. 반복부를 다시 짜는 연주와 적힌 음만 연주하는 연주가 나뉘는 경향은 있으나, 실제로는 연주자와 참고한 판본에 따라 다릅니다. 궁금하면 음반별로 반복부를 직접 견주어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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