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메라이〉라고 하면 대개 조용한 피아노 소리를 떠올리십니다. 여리게 시작한 선율이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오고, 끝날 무렵에는 거의 멈출 듯 느려지는 곡입니다. 첼로로 연주한 것을 먼저 들어 본 분도 많을 것입니다. 이 곡은 오래전부터 「꿈꾸듯 느린 곡」으로 기억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슈만이 펴낸 악보를 펴 보면 첫머리에 「느리게」라는 말이 없습니다. 빠르기를 말로 적은 지시가 아예 없고, 메트로놈 숫자 하나만 적혀 있습니다. 이 글은 그 숫자에서 출발해 〈트로이메라이〉를 다시 들어 보려 합니다.
• 원제: Träumerei(트로이메라이), 뜻은 낮에 꾸는 꿈, 몽상
• 곡집: 로베르트 슈만 〈어린이 정경〉(Kinderszenen) Op.15, 13곡 가운데 7번
• 작곡: 1838년 2월. 슈만은 2월 24일 일기에 「작은 곡 트로이메라이를 작곡했다」고 적었습니다
• 출판: 1839년 2월 말 라이프치히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메트로놈 숫자는 1839년 3월에 고쳐 찍은 판에서 처음 들어갔습니다
• 조성과 박자: 바장조, 4분의 4박자
• 길이: 악보에는 24마디가 적혀 있고, 앞 8마디를 되풀이하면 모두 32마디를 연주합니다
• 빠르기 표시: 말로 된 지시 없이 4분음표 = 100
트로이메라이 뜻, 꿈이 아니라 몽상
트로이메라이(Träumerei)는 독일어로 꿈을 뜻하는 트라움(Traum)에서 온 말이지만, 꿈과 같은 말은 아닙니다. 끝에 붙은 「-에라이」가 뜻을 가볍게 만듭니다. 그림 형제의 독일어 사전은 이 말을 공상, 엉뚱하지만 때로는 진지하기도 한 생각으로 풀이합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잠들어 꾸는 꿈보다는 깨어 있는 채 잠깐 딴생각에 빠지는 몽상, 낮에 꾸는 꿈에 가깝습니다. 이 곡의 악보를 펴내는 독일 헨레 출판사의 편집자는 연애 장난이 사랑과 다르듯 트로이메라이는 꿈과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꿈」으로 옮기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원래 낱말은 그보다 가볍고 짧은 순간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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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제프 크리후버, 〈로베르트 슈만〉, 1839년, 석판화, 빈 메케티 출판, 프랑스 국립도서관. 〈어린이 정경〉이 출판된 해에 빈에서 만든 초상이다. |
〈트로이메라이〉는 혼자 떨어져 있는 곡이 아니라 〈어린이 정경〉이라는 피아노 소품 13곡 가운데 일곱째, 곧 한가운데 곡입니다. 1838년 3월, 슈만은 훗날 아내가 되는 클라라 비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이 언젠가 내가 때로 아이처럼 보인다고 써 보낸 말의 여운 같은 기분으로 서른 개쯤 되는 작은 곡을 썼고, 그 가운데 몇 곡을 골라 〈어린이 정경〉이라 이름 붙였다는 내용입니다. 클라라의 말이 계기였다는 것은 슈만 자신이 쓴 것이지만, 곡집은 누구에게도 헌정되지 않고 출판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클라라 슈만, 일곱 아이의 가장이 된 피아니스트에서 따로 다루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곡집은 어린이를 위한 곡일까요. 슈만의 말은 두 방향으로 남아 있습니다. 출판 직후인 1839년 4월에는 한 지인에게 이 곡들이 아이들에게 아주 쉽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9년 뒤인 1848년에는 〈어린이 정경〉이 나이 든 사람이 나이 든 사람을 위해 돌아본 회상이고, 뒤에 낸 〈어린이를 위한 앨범〉은 젊은 사람을 위한 앞날의 예감을 담았다고 견주어 적었습니다. 아이가 칠 수 있을 만큼 쉽게 썼지만, 슈만 자신은 어른이 어린 시절을 돌아본 음악이라고도 말한 셈입니다.
제목에 대해서도 슈만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한 평론가가 이 곡집을 아이를 앞에 세워 놓고 쓴 음악처럼 다루자, 슈만은 옛 스승에게 보낸 편지에서 거꾸로라고 반박했습니다. 작곡할 때 몇몇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른 것은 맞지만, 제목은 곡을 다 쓴 뒤에 붙였고 연주와 이해를 돕는 작은 손짓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트로이메라이〉라는 이름도 몽상을 그리려고 먼저 정한 주제가 아니라, 다 쓴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건네는 힌트였습니다. 슈만의 생애 전체는 슈만의 생애와 작품에서 정리해 두었습니다.
악보로 듣는 트로이메라이, 되풀이되는 선율과 세 번의 리타르단도
〈트로이메라이〉는 짧습니다. 악보에는 한 박짜리 못갖춘마디(곡이 마디의 첫 박이 아닌 곳에서 시작하는 것) 뒤로 24마디가 적혀 있고, 앞 8마디를 한 번 되풀이하므로 실제로는 32마디를 연주합니다. 이 짧은 곡에서 들어 둘 것은 하나의 흐름입니다.
곡은 낮은 도 하나로 시작해 곧바로 파로 뛰어오릅니다. 네 음 간격의 도약입니다. 선율은 거기서 계단을 밟듯 위로 올라가 높은 음에 닿았다가 천천히 내려옵니다. 올라갔다 내려오는 이 짧은 곡선이 이 곡의 전부라고 해도 됩니다. 같은 모양의 선율이 아래에 깔린 화음을 바꿔 가며 곡이 끝날 때까지 여러 번 되풀이되기 때문입니다. 처음 들을 때는 같은 말을 여러 번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화음이 바뀔 때마다 같은 선율의 색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 되풀이 가운데 선율이 평소보다 높이 올라가 같은 높은 라음에 닿는 자리가 악보에 두 곳 있습니다. 한 곳은 곡이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여섯 번째 마디이고, 다른 한 곳은 곡의 맨 끝, 마지막 되풀이 안의 스물두 번째 마디입니다. 처음 여덟 마디는 한 번 더 되풀이되므로 실제 연주에서 이 라음은 세 번 들립니다. 앞의 두 번은 흐름을 타고 지나가듯 닿지만, 마지막은 악보가 점점 느리게(리타르단도)라고 지시하는 구간 안에서 느려지며 닿습니다. 같은 음이 마지막에는 훨씬 길게 들리는 까닭입니다.
악보에서 「점점 느리게」는 세 곳에만 나옵니다. 처음 부분이 끝나는 자리, 가운데 부분이 끝나 처음 선율이 돌아오기 직전, 그리고 곡이 끝나기 직전입니다. 곡의 부분과 부분이 만나는 자리에서만 숨을 고르라는 지시입니다. 이 세 곳을 알고 들으면 곡이 어디서 나뉘고 어디서 처음으로 돌아오는지가 귀로 들립니다. 처음과 끝은 모두 여리게 연주하라고 적혀 있습니다.
빠르기의 수수께끼, 4분음표 100
〈트로이메라이〉 악보의 첫머리에는 「M.M. ♩=100」이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메트로놈이 1분에 100번 똑딱일 때 그 한 번이 4분음표 하나라는 뜻입니다. 「느리게」도, 「아주 느리게」도, 「꿈꾸듯」도 없습니다. 〈어린이 정경〉 13곡이 모두 그렇습니다. 곡마다 제목과 메트로놈 숫자만 있습니다.
숫자를 시간으로 바꿔 보면 감이 옵니다. 1분에 100박이면 한 박이 0.6초입니다. 맨 앞의 못갖춘마디 한 박과 마지막 마디를 합쳐 한 마디로 세면 4분의 4박자 32마디는 128박이고, 이것을 0.6초씩 세면 약 77초, 1분 17초쯤입니다. 세 번의 리타르단도와 마지막에 늘이는 음은 길이가 정해져 있지 않아 이 계산에 넣지 않았습니다. 실제 연주는 그만큼 길어지지만, 악보에 적힌 숫자만으로 셈하면 1분 20초가 채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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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이메라이〉 첫머리 선율 도식, 2012년, 위키미디어 커먼즈 사용자가 그린 도식(CC0). 위 줄은 1839년 초판의 박자대로 옮긴 것이고, 아래 줄은 음악학자 아르놀트 셰링이 선율의 마디를 다시 나눠 본 것이다. 두 줄 모두 맨 위에 4분음표 100이 적혀 있다. |
그런데 이 숫자를 슈만이 직접 정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1839년 2월 말에 나온 첫 인쇄본에는 메트로놈 숫자가 없었고, 3월에 오류를 고쳐 다시 찍은 판에서 처음 들어갔습니다. 첫 인쇄본을 가지고 있던 슈만의 친구 오토 뵈메는 그 책에 메모를 남겼는데, 메트로놈 숫자는 슈만이 붙인 것이 아니고 슈만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붙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이 숫자가 슈만의 뜻을 거슬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곡집의 원전판을 펴낸 헨레 출판사의 비평 보고에 따르면, 슈만은 1839년 1월 말 빈에서 메트로놈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수소문했고 곧 하나를 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슈만 연구자 미하엘 슈트루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슈만이 이후의 판에서 다른 잘못은 고치면서도 이 숫자는 고치지도 지우지도 않았으니 승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숫자가 붙은 경위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슈만이 이후의 판에서 이 숫자를 지우지 않았다는 것은 확인됩니다.
숫자를 둘러싼 의견은 지금도 갈립니다. 메모를 남긴 뵈메 자신은 같은 곡에 4분음표 132라는 더 빠른 숫자를 적었고, 클라라 슈만이 뒷날 펴낸 지도용 악보에는 4분음표 80이 적혀 있습니다. 독일의 한 피아니스트는 100으로 칠 때에야 세 번의 리타르단도가 제자리를 찾는다며 원래 숫자를 지지합니다. 헨레 출판사의 편집자는 이 곡이 세월이 흐르며 무겁게 늘여 치는 곡이 되었다고 아쉬워했습니다. 어느 쪽이 옳은지 이 글이 판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느리고 꿈꾸는 곡」이라는 우리의 기억이 악보에 적힌 말에서 온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 느림은 연주자들이 이 곡을 쳐 온 방식과, 그 연주를 들어 온 우리의 기억이 함께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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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어린이 정경, 피아노를 위한 쉬운 곡들〉 Op.15 표제지, 판번호 6016, 연도 미상, 인쇄본. 첫 인쇄본은 가격이 20그로셴으로 적혀 있는데 이 지면은 25노이그로셴이어서, 같은 판을 뒤에 다시 찍은 것으로 보인다. |
트로이메라이 자주 묻는 질문
Q. 호로비츠의 트로이메라이는 어떤 연주인가요?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연주 기록에 따르면 1965년 5월 9일 뉴욕 카네기홀에서 12년 만에 연 독주회의 앙코르 네 곡 가운데 마지막 곡이 〈트로이메라이〉였습니다. 1925년 소련을 떠난 호로비츠가 1986년 4월 20일 모스크바 음악원 대강당에서 연 귀국 독주회에서도 첫 앙코르로 이 곡을 연주했습니다. 이 공연은 영상과 음반으로 나와 있습니다.
Q. 첼로로 많이 듣는데 원래 첼로 곡인가요?
원래는 피아노 독주곡입니다.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하는 판은 독일의 첼리스트 프리드리히 그뤼츠마허가 편곡해 1873년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에서 펴낸 판이 있습니다.
Q. 트로이메라이는 치기 어려운가요?
음표가 많거나 손이 빨리 움직여야 하는 곡은 아닙니다. 다만 오른손이 위의 선율과 그 아래 화음을 함께 잡아야 하는 대목이 많고, 선율을 노래하듯 이어 가면서 페달로 소리를 붙여야 합니다. 출판된 1839년 당시 한 평론가는 이 곡집이 손이 셋이 아닌 아이에게는 무리라고 비꼬았고, 슈만은 아이들에게 아주 쉽다고 했습니다. 음표를 짚는 것은 어렵지 않아도 소리를 고르게 다듬는 데 공이 드는 곡입니다.
다시 틀기 전에 켜 둘 메트로놈
다음에 〈트로이메라이〉를 트실 때는 휴대전화의 메트로놈을 100에 맞춰 한번 켜 두시기를 권합니다. 듣고 있는 연주가 그 똑딱임보다 앞서가는지, 한참 뒤처지는지만 들어도 그 연주자가 이 곡을 어떤 몽상으로 읽었는지가 드러납니다. 가지고 계신 녹음의 길이를 1분 17초와 견주어 보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높은 라음 세 번을 기다려 보십시오. 앞의 두 번은 흘러가듯 지나가고, 마지막에는 느려지며 닿습니다. 빠르게 치든 느리게 치든 이 차이는 악보가 정해 둔 것입니다. 슈만의 노래가 궁금하시다면 가곡집 〈시인의 사랑〉 첫 곡을 다룬 슈만 시인의 사랑 첫 곡 해석으로 이어 가셔도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