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어머니 헨델, 이 별명은 어디서 왔을까 · 1932년 일본 책에 남은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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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아버지 바흐, 음악의 어머니 헨델.」 음악 시간에 한 번쯤 들어 본 짝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헨델이 어머니냐고 물으면 시원한 답을 듣기 어렵습니다. 둘 다 같은 시대의 남성 작곡가이고, 둘 중 누가 누구를 낳은 것도 아니니까요.

이 짝은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독일어와 영어를 비롯한 유럽 언어의 헨델 연구 자료 서른 건, 독일어판과 영어판 온라인 백과사전의 헨델·바흐 항목을 찾아보았지만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로 부른 대목은 찾지 못했습니다. 이번 조사 범위에서 이 호칭이 나온 것은 한국어와 일본어 자료뿐이었습니다. 이 사정은 헨델의 생애와 작품을 다룬 글에서 한 번 짚었습니다. 이 글은 그다음 질문을 따라갑니다. 그렇다면 이 짝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하우스만이 그린 1746년의 바흐 초상화, 손에 악보 한 장을 들고 있다
엘리아스 고틀로프 하우스만,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1746년, 캔버스에 유채, 78×61cm, 라이프치히 시립역사박물관. 손에 든 종이는 바흐가 쓴 수수께끼 카논의 악보다.
발타자르 데너가 그린 것으로 전하는 40대 헨델의 초상화
발타자르 데너(전칭),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1726~1728년경,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 NPG 1976. 런던에서 오페라를 올리던 40대 초반의 헨델이다.

1932년 레코드 책 속의 한 문장

지금까지 확인한 가장 이른 기록은 1932년 4월 메이쿄쿠도(名曲堂)에서 나온 『음악사적 레코드 수집 상권(音楽史的レコード蒐集 上)』입니다. 「바흐에서 슈베르트까지」라는 부제가 붙은, 음악사의 순서를 따라 레코드를 모으는 안내서입니다.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이 디지털로 옮겨 둔 자료에서 「음악의 어머니」를 전문 검색하면, 헨델과 이어진 용례 가운데 이 책보다 앞선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헨델을 다룬 56~57쪽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バツハを『音樂の父』と呼ぶならば、當然ヘンデルは『音樂の母』でなければならないでせう。」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 부른다면, 당연히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여야 하겠지요.

문장의 모양을 눈여겨볼 만합니다.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로 불린다」고 남의 말을 전하는 문장이 아닙니다. 「~라 부른다면 ~여야 하겠지요」라는 조건문입니다.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 부르는 말은 이미 있었고(뒤에서 다시 봅니다), 글쓴이는 거기에 짝을 맞춰 헨델의 자리를 내놓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만으로 이 사람이 말을 지어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디지털로 옮겨지지 않은 잡지나 강연에 더 이른 말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남은 기록 가운데서는 이 문장이 맨 앞에 서 있다는 데까지가 확인한 범위입니다. 원문 쪽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쓴이 あらえびす(아라에비스)는 레코드 평론에 쓰던 필명입니다. 일본의 공개 전자도서관인 아오조라 문고는 같은 필명의 1941년 책을 작가 노무라 고도(野村胡堂, 1882~1963)의 작품으로 올려 두었고, 그 책 서문 끝에는 あらえびす라는 서명이 남아 있습니다. 두 이름은 한 사람입니다.

동갑과 실명, 그리고 어머니 같은 친근함

그는 왜 헨델을 어머니라고 했을까요. 같은 문단에 이유가 적혀 있습니다. 그가 든 공통점은 셋입니다. 두 사람이 같은 해인 1685년에 태어났다는 것, 만년에 둘 다 시력을 잃었다는 것, 그리고 맹렬한 창조력과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간 비상한 정력을 지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닮은 두 사람이니 한쪽이 아버지라면 다른 쪽은 어머니라는 짝맞춤입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그는 헨델의 생활과 음악이 매우 남성적이고 장엄하다고 먼저 적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런데도 헨델에게는 「何がなし一脈の母らしき親しみ」, 곧 어딘가 어머니 같은 친근함이 느껴진다고 씁니다. 헨델을 어머니라 부른 까닭은 음악의 생김새를 따져 나눈 결과가 아니라, 글쓴이가 헨델에게서 받은 느낌이었던 셈입니다.

그 느낌의 뿌리는 9년 뒤의 책에서 더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를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헨델, 그리고 슈베르트」라고 답하겠다고 썼습니다. 이사를 하면서 1만 장이 넘는 레코드는 트럭에 실어 보냈지만, 비첨 경이 지휘한 헨델 〈메시아〉 전곡 음반 열여덟 장만은 상자 두 개에 담아 직접 품에 안고 옮겼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니 「음악의 어머니」는 음악사가 매긴 등급이라기보다 헨델을 아끼던 한 애호가가 붙인 다정한 비유로 읽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말에 기대어 두 사람의 음악을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으로 나눌 필요도 없습니다. 이 비유를 꺼낸 사람 자신이 헨델의 음악을 남성적이라고 먼저 말해 두었으니까요.

9년 뒤 달라진 설명, 이지와 감정

1941년에 나온 『악성 이야기(楽聖物語)』에서 그는 이 짝을 다시 꺼냅니다. 〈메시아〉 음반 이야기 바로 뒤입니다. 이번에는 말의 범위가 조금 넓어졌습니다.

「バッハが『西洋音楽の父』であるならば、ヘンデルは『西洋音楽の母』でなければならない。」

바흐가 「서양 음악의 아버지」라면, 헨델은 「서양 음악의 어머니」여야 한다.

문장의 틀은 그대로인데 이유가 바뀌었습니다. 이 대목에는 1932년에 들었던 실명과 정력, 어머니 같은 친근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두 사람이 우연히 같은 해에 태어났고, 바흐의 음악은 이지적이고 대위법적(여러 선율을 한꺼번에 엮어 짜는 방식)인 반면 헨델의 음악은 감정적이고 선율적이라는 대조가 이유로 나옵니다. 그는 이 대조를 「참으로 흥미롭다」고 했고, 바흐는 더없이 귀하지만 헨델이 없었다면 우리 음악의 나라가 얼마나 쓸쓸했겠느냐고 덧붙였습니다.

요즘 책과 웹에서 자주 보이는 설명, 곧 바흐는 여러 선율을 촘촘히 엮고 헨델은 선율을 앞세운다는 대조는 1932년의 이유보다 1941년의 이유와 더 닮았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닮았다는 데까지입니다. 이 책이 그 설명을 퍼뜨렸는지, 다른 길이 있었는지는 기록으로 이어 보지 못했습니다.

이 대조는 편리한 만큼 두 사람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가르기도 합니다. 헨델의 〈메시아〉 끝을 맺는 아멘 합창은 여러 성부가 같은 주제를 차례로 쫓아 들어오는 푸가입니다. 거꾸로 바흐에게는 관현악 모음곡 3번의 아리아처럼 긴 선율 하나로 기억되는 곡이 있습니다. 이지와 감정, 대위법과 선율은 두 사람의 음악 전체를 가르는 선이라기보다 한 애호가가 두 사람을 나란히 놓으며 고른 강조점이었습니다.

「음악의 어머니」라는 말의 앞선 쓰임

「음악의 어머니(音楽の母)」라는 말 자체는 1932년보다 오래됐습니다. 같은 국립국회도서관 전문 검색에서 1893년부터 1931년 사이에 아홉 번 나옵니다. 그런데 아홉 건 모두 바흐나 헨델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피리나 음계, 시가(詩歌)를 두고 쓴 표현이었습니다. 이미 있던 말이 사람에게, 그것도 헨델에게 붙은 기록으로는 1932년의 문장이 가장 앞섭니다. 이 검색에서 헨델과 「음악의 어머니」가 함께 나온 자료는 세 건이었는데, 1932년 책과 같은 저자의 1946년·1958년 재간본이었습니다. 적어도 디지털로 남은 자료만 보면, 이 짝은 한동안 한 사람의 글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같은 무렵 「음악의 어머니」가 다른 사람을 가리킨 예도 있습니다. 1938년 일본의 한 시사 연감은 일본 서양음악 교육의 초창기를 연 음악가 고다 노부(幸田延)를 「음악의 어머니」라 불렸다고 소개합니다. 헨델에게만 붙은 이름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아버지 쪽은 더 먼저 보입니다. 1922년 도쿄 제국극장에서 열린 바이올리니스트 짐발리스트의 연주회 곡목 해설은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의 대가」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보다 앞서 1915년 음악평론가 오타구로 모토오가 펴낸 『바흐에서 쇤베르크까지(バッハよりシェーンベルヒ)』에 이미 「바흐는 보통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린다」는 문장이 있다고 일본의 바흐 수용사 연표는 적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1924년에 나온 한 레코드 해설서는 헨델을 두고 「바흐와 나란히 현대 음악의 아버지로 일컬어진다」고 썼습니다. 1926년에 나온 성악 교본 번역서에는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로 불린 데 비해 헨델은 「오페라의 아버지」로 불린다는 문장도 보입니다. 헨델은 한동안 아버지 자리에도 서 있었던 것입니다. 기록에서 어머니라는 자리가 보이는 것은 그 뒤입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

이번에 찾지 못한 것도 적어 둡니다.

  • 1932년보다 이른 짝 용례. 디지털로 옮겨지지 않은 음악 잡지나 강연 기록에 있었을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 일본 음악 교과서에 이 짝이 언제 실렸는지. 1937년 소학교 창가 교재 해설에 「근대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보이지만, 「어머니」 헨델이 교과서에 들어간 시점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한국에 들어온 경로와 시점. 한국 신문과 교과서의 이른 용례는 이번에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기록으로 이어 보기 전에는 어느 쪽으로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
  • 이 별명의 기원을 다룬 일본어 학술 논문도 이번 조사 범위에서는 찾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오래된 신문이나 교과서에서 「음악의 어머니 헨델」을 보신 적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 주세요. 연도 하나가 이 글의 빈칸을 채웁니다. 말의 기원을 따라간 글로는 도레미는 누가 만들었을까도 함께 읽어 볼 만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음악의 어머니는 누구인가요?

한국과 일본에서는 헨델(1685~1759)을 가리킵니다.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 부르는 말과 짝을 이룹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가장 이른 기록은 1932년 일본의 음악 저술가 あらえびす(노무라 고도)가 쓴 레코드 안내서의 한 문장입니다.

Q. 왜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라고 하나요?

1932년 그 글쓴이는 두 사람이 같은 해에 태어났고 만년에 시력을 잃었으며 창조력과 정력이 대단했다는 공통점을 들고, 헨델에게서 어머니 같은 친근함이 느껴진다고 썼습니다. 1941년에는 바흐의 이지적이고 대위법적인 음악과 헨델의 감정적이고 선율적인 음악을 대조하는 쪽으로 설명이 바뀌었습니다.

Q. 독일에서도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라고 부르나요?

이번에 찾아본 유럽 언어의 헨델 연구 자료와 독일어·영어판 백과사전에서는 그런 호칭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번 조사 범위에서는 한국어와 일본어 자료에서만 보였습니다. 서구에서 헨델을 어떻게 불렀는지는 헨델 생애 글에서 다루었습니다.

Q. 음악의 아버지는 누구인가요?

보통 바흐(1685~1750)를 가리킵니다. 일본 자료에서는 1915년 오타구로 모토오의 책에 이미 보인다고 전하고, 1924년에는 헨델이 바흐와 나란히 음악의 아버지로 불린 기록도 있습니다. 「체코 음악의 아버지 스메타나」처럼 나라나 분야 앞에 붙는 「아버지」는 이와 다른 호칭입니다.

다음에 〈메시아〉를 틀게 되면 마지막 아멘 합창까지 들어 보세요. 성부들이 차례로 들어와 쌓이는 그 몇 분 동안, 선율의 작곡가라는 꼬리표 아래에서 대위법의 헨델이 들립니다. 그리고 그 음반을 이삿짐 트럭에 맡기지 못하고 품에 안고 옮긴 한 사람을 떠올려 보면, 이 별명이 왜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는지도 조금은 짐작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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