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트라비아타〉라는 제목은 몰라도 「축배의 노래」는 들어 본 사람이 많습니다. 잔을 들고 흔들리는 왈츠 박자에 맞춰 부르는 그 노래가 이 오페라의 1막에 나옵니다. 그런데 극장에서 막이 오르기 전 맨 처음 들리는 것은 흥겨운 건배가 아닙니다. 아주 여린 현악기 소리가 느리게 흘러나오는데, 이 첫 소리는 3막에서 병든 주인공이 누워 있는 방에서 다시 들리는 음악입니다. 베르디는 화려한 파티를 보여 주기 전에 이야기의 끝을 먼저 들려줍니다. 이 글은 「트라비아타」라는 제목의 뜻에서 시작해 줄거리와 아리아, 처음 들을 때 귀를 기울일 대목, 그리고 이 오페라가 한국 오페라의 첫 무대가 된 사연까지 따라갑니다.
라 트라비아타 뜻과 춘희라는 이름
「트라비아타(traviata)」는 이탈리아어 동사 「트라비아레(traviare)」에서 온 말입니다. 「길(via)」에서 「벗어나게 하다」라는 뜻이고, 비유적으로는 바른 길에서 벗어나 타락한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탈리아어 사전은 이 말이 형용사로 쓰일 때 흔히 「도덕적인 뜻으로」 쓰인다고 적고, 예로 「길을 벗어난 처녀들」 같은 표현을 듭니다. 앞에 붙은 「라(la)」는 여성 정관사이니, 〈라 트라비아타〉는 「길을 벗어난 그 여인」 정도가 됩니다. 그 시대에 도덕적으로 길을 벗어난 여성을 가리키던 낙인 섞인 말을 그대로 제목으로 삼은 셈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말이 오페라 안에서 쓰이는 자리입니다. 대본 전체에서 「traviata」라는 낱말은 3막에 나오는 비올레타의 아리아 「지난날이여, 안녕(Addio del passato)」의 후렴에만, 그것도 두 번 나옵니다. 비올레타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쓰지 않습니다. 죽음을 앞둔 비올레타가 「아, 길을 벗어난 이 여인의 바람에 미소 지어 주소서. 그녀를 용서하시고 받아 주소서, 하느님」이라며 자기 자신을 이 이름으로 부를 뿐입니다. 세상이 그런 여인에게 붙이던 이름을 마지막에 스스로 받아 드는 셈입니다.
베르디가 처음부터 이 제목을 정했던 것은 아닙니다. 1853년 1월 1일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베네치아에서 〈동백꽃 여인〉을 만드는데, 제목은 아마 〈트라비아타〉가 될 것」이라고 썼고, 같은 편지에서 이 작품을 「동시대의 이야기」라고 불렀습니다. 그보다 앞서 생각했던 제목은 〈사랑과 죽음(Amore e morte)〉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이 오페라를 오랫동안 〈춘희〉라고 불렀던 것은 원작 소설의 제목 때문입니다. 프랑스 작가 뒤마 피스의 소설 〈동백꽃을 든 여인(La Dame aux camélias)〉이 일본에서 「동백 아가씨」라는 뜻의 「椿姫(쓰바키히메)」로 번역되었고, 그 이름이 오페라에도 붙었습니다. 「춘희」는 이 한자를 우리 음으로 읽은 것입니다.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는 1903년에 나온 이 번역 소설이 남아 있습니다.
| 에두아르 비에노, 〈마리 뒤플레시의 초상〉, 1845~1847년 무렵, 퍼블릭 도메인. 뒤마 피스의 소설과 베르디 오페라의 실제 모델이다. |
라 트라비아타 줄거리와 등장인물, 대표 아리아
〈라 트라비아타〉는 세 막으로 되어 있고, 2막이 두 장면으로 나뉩니다. 대본은 1막을 8월, 2막을 이듬해 1월, 3막을 2월로 정해 두어서 반년 남짓한 이야기입니다. 무대는 파리와 그 근교입니다.
| 인물 | 목소리 | 누구인가 |
|---|---|---|
| 비올레타 발레리 | 소프라노 | 파리 사교계의 이름난 여인 |
| 알프레도 제르몽 | 테너 | 비올레타를 사랑하는 시골 출신 청년 |
| 조르조 제르몽 | 바리톤 | 알프레도의 아버지 |
| 플로라 베르부아 | 메조소프라노 | 비올레타의 친구 |
| 가스토네 자작 | 테너 | 알프레도의 친구 |
| 두폴 남작 | 바리톤 | 비올레타의 후원자 |
| 안니나 | 소프라노 또는 메조소프라노 | 비올레타의 하녀 |
| 그렌빌 | 베이스 | 의사 |
1막, 비올레타의 집. 비올레타가 연 파티에 가스토네가 친구 알프레도를 데려옵니다. 손님들이 건배의 노래를 청하자 알프레도가 일어나 「축배의 노래(Libiamo ne’ lieti calici)」를 부르고 비올레타가 받습니다. 손님들이 옆방으로 춤추러 가려는 순간 비올레타는 갑자기 창백해져 주저앉고, 혼자 남은 알프레도는 1년 전부터 그녀를 사랑해 왔다고 고백합니다. 모두가 돌아간 뒤 비올레타는 「이상해(È strano)!」라고 혼잣말을 하고, 진짜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아, 그이였던가(Ah, fors’è lui)」로 노래합니다. 이 노래의 후렴에는 조금 전 알프레도가 고백할 때 부른 사랑의 선율이 그대로 들어옵니다. 그러다 곧 「언제나 자유롭게(Sempre libera)」, 기쁨에서 기쁨으로 날아다니며 살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데, 그 화려한 노래 사이로 창밖에서 알프레도의 사랑 노래가 들려옵니다. 원작에도 대본에도 없던 이 창밖의 목소리는 베르디가 처음 스케치할 때부터 구상한 장치입니다.
2막 1장, 파리 근교의 시골집. 이듬해 1월, 두 사람은 이곳에서 석 달째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알프레도는 하녀 안니나에게서 비올레타가 살림을 꾸리려고 몰래 재산을 팔고 있다는 말을 듣고 돈을 마련하러 파리로 떠납니다. 그 사이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찾아옵니다. 그는 「천사처럼 순결한 딸」이 있는데, 아들이 이런 관계를 끊지 않으면 딸의 혼사가 깨진다며 비올레타에게 알프레도를 떠나 달라고 요구합니다. 비올레타는 결국 받아들이고, 영문을 모르는 알프레도에게 「나를 사랑해 줘요, 알프레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Amami, Alfredo)」이라고 외친 뒤 떠납니다. 버림받았다고 믿는 아들을 아버지는 「프로방스의 바다와 땅(Di Provenza il mar, il suol)」으로 달래며 고향으로 데려가려 합니다.
2막 2장, 플로라의 저택. 가면 무도회가 열린 플로라의 집에서 알프레도는 노름판에서 돈을 따고, 남작과 함께 나타난 비올레타를 모욕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딴 돈을 그녀에게 던지며 빚을 갚았다고 외치는 장면입니다. 남작은 결투를 신청하고, 뒤따라 온 제르몽은 아들을 꾸짖습니다.
3막, 비올레타의 침실. 비올레타는 병이 깊어 누워 있습니다. 의사는 안니나에게 몰래 「결핵이 몇 시간밖에 남겨 주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비올레타는 제르몽의 편지를 꺼내 다시 읽습니다. 결투가 있었고, 남작은 다쳤지만 나아지고 있으며, 그녀의 희생을 알프레도에게 다 털어놓았으니 아들이 용서를 빌러 돌아갈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편지를 다 읽은 비올레타는 한마디만 합니다. 「늦었어요(È tardi)!」 그리고 오보에가 쓸쓸하게 앞을 여는 「지난날이여, 안녕」을 부릅니다. 창밖에서는 카니발 행렬의 노랫소리가 지나갑니다. 마침내 돌아온 알프레도와 비올레타는 「파리를 떠나요(Parigi, o cara)」라며 둘이 살 날을 꿈꾸지만, 비올레타는 일어설 힘이 없습니다. 그녀는 자기 초상화를 알프레도에게 건네고, 갑자기 아픔이 사라졌다며 「이상해!」라고 말한 뒤 쓰러집니다. 1막에서 사랑을 처음 알아챈 순간과 마지막 순간에 같은 말을 하는 셈입니다.
라 트라비아타 전주곡에 먼저 들어 있는 3막
처음 이 오페라를 들을 때 가장 먼저 귀를 기울일 곳은 막이 오르기 전의 전주곡입니다. 높은 음역의 바이올린들이 아주 여리고 느린 화음을 길게 이어 가는데, 숨이 가늘게 떨리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 첫 주제가 3막이 시작될 때 병든 비올레타의 방에서 음 높이만 조금 올라간 채 다시 나옵니다. 그런데 3막에서는 이 첫 주제 뒤에 사랑의 선율이 이어지지 않고, 음악이 다른 길로 꺾여 짧은 새 선율로 넘어갑니다. 전주곡에서 들은 사랑의 노래가 3막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다음 바이올린이 넓게 노래하는 선율은 2막에서 비올레타가 「나를 사랑해 줘요, 알프레도」라고 외치는 바로 그 선율입니다. 오페라는 1막에서 3막으로 흘러가지만, 전주곡은 3막의 병실에서 2막의 사랑 고백 쪽으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비올레타의 삶을 끝에서부터 되짚는 이야기라고 해석하는 해설가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오페라에는 두 가지 소리가 번갈아 나옵니다. 하나는 1막 파티와 2막 무도회를 채우는 사교계의 왈츠 박자입니다. 「축배의 노래」도, 2막 노름판 장면 아래 깔린 반주도 이 춤의 리듬에서 나옵니다. 다른 하나는 전주곡과 3막의 여리고 느린 현악입니다. 3막 한가운데 창밖으로 지나가는 카니발 행렬의 흥겨운 노래는 원작에 없던 장면으로, 베르디와 대본가 피아베가 마지막 막의 때를 원작의 새해 첫날에서 카니발 기간으로 옮기면서 새로 넣었습니다. 죽어 가는 방 안과 들뜬 거리가 한 무대에서 들리도록 한 것입니다. 전주곡을 들은 귀로 3막을 들으면, 두 시간 전에 들은 그 여린 소리가 어디로 돌아오는지 알게 됩니다.
비올레타가 1막 끝에 부르는 「언제나 자유롭게」는 이와 정반대입니다. 높은 음으로 빠르게 굴러가는 장식음이 이어지고, 「자유롭게」를 외칠 때마다 목소리가 더 높이 튀어 오릅니다. 그런데 그 사이로 창밖의 알프레도가 느린 사랑 노래를 끼워 넣습니다. 한 사람은 빨리, 한 사람은 느리게 부르는 이 대목에서 비올레타가 무엇을 애써 밀어내고 있는지가 들립니다.
동백꽃 여인 마리 뒤플레시와 1853년 초연, 1854년 개정판
비올레타에게는 실제 모델이 있습니다. 1824년에 태어나 1847년 스물세 살로 세상을 떠난 파리의 쿠르티잔(상류층 남성의 후원을 받던 사교계 여인) 마리 뒤플레시입니다. 본명은 로즈 알퐁신 플레시였습니다. 작가 뒤마 피스는 그녀의 연인이었고, 그녀가 죽은 이듬해인 1848년 소설 〈동백꽃을 든 여인〉을 냈습니다. 1852년 2월 2일에는 이 이야기를 직접 희곡으로 고쳐 파리 보드빌 극장에 올렸습니다. 베르디는 그해 2월과 3월 파리에 머물렀고, 그때 이 연극을 한 번 보았다는 증언이 그와 가까웠던 파리의 음악 출판업자 레옹 에스퀴디에가 1856년에 쓴 글에 남아 있습니다. 베르디 자신의 기록은 없습니다.
베르디는 앞의 편지에서 말한 대로 이 작품을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오페라 무대에 동시대 파리의 사교계 여인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1853년에 인쇄된 대본은 시대를 「1700년 무렵」으로 정해 두었습니다. 검열을 피하려는 뜻이었다는 설명도, 의상 같은 현실적인 사정이었다는 설명도 있어서 이유는 한 가지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초연은 1853년 3월 6일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열렸습니다. 다음 날 베르디는 친구 무치오에게 짧게 썼습니다. 「어젯밤 〈트라비아타〉는 실패였네. 내 잘못인가, 가수들 잘못인가? 시간이 판단해 주겠지.」 이틀 뒤 다른 친구에게는 「결과는 실패, 분명한 실패」라고 썼습니다. 이 편지들 때문에 〈라 트라비아타〉의 초연은 오랫동안 크게 실패한 공연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오페라의 비평판 악보를 편집한 음악학자 파브리치오 델라 세타의 설명은 조금 다릅니다. 초연이 성공은 아니었지만, 베르디가 아마 일부러 믿게 하려 한 만큼 파국적인 실패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반응이 냉담했던 데는 남자 주역들의 상태가 컸고, 비올레타를 맡은 파니 살비니 도나텔리는 오히려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 시즌에 이 오페라는 모두 아홉 번 공연되었고, 델라 세타는 라 페니체 극장의 프로그램북에 쓴 글에서 흥행이 부진했던 그 시즌을 받쳐 준 작품이 〈라 트라비아타〉였다고 평가했습니다.
| 1837년 무렵 라 페니체 극장 내부, 베네치아 코레르 미술관 소장. 1853년 3월 6일 〈라 트라비아타〉가 이 극장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다. |
이듬해인 1854년 5월 6일, 〈라 트라비아타〉는 같은 베네치아의 더 작은 산 베네데토 극장에서 마리아 스페치아가 비올레타를 맡아 다시 무대에 올랐고, 이번에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베르디는 친구에게 「그때는 실패, 지금은 열광. 판단은 당신들이 하시오!」라고 썼고, 같은 편지에서 음악은 한 곳도 바꾸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비평판을 만든 연구로 보면 그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베르디는 2막 비올레타와 제르몽의 2중창을 크게 고치고, 제르몽의 노래와 3막 죽음 장면의 반주도 손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라 트라비아타〉는 이 1854년 판입니다. 화재로 무너졌다가 다시 지은 라 페니체 극장은 2004년 11월 첫 오페라 시즌을 1853년 초연 때의 원래 판으로 열어, 두 판을 견주어 들을 수 있게 했습니다.
한국 오페라의 첫 무대 〈춘희〉, 1948년 시공관
〈라 트라비아타〉는 우리나라 오페라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 전에도 일본 가극단이 경성에 와서 오페라를 공연한 일은 있었지만, 우리 음악인들이 스스로 꾸려 무대에 올린 첫 오페라가 바로 이 작품입니다. 1948년 1월 16일부터 20일까지 서울 명동의 시공관(지금의 명동예술극장)에서 〈춘희〉라는 이름으로 공연되었고, 한국 오페라 공연의 효시로 기록됩니다. 1934년 이탈리아 밀라노로 성악 유학을 떠났던 의사이자 테너 이인선이 제작과 번역을 맡고 알프레도를 불렀고, 비올레타는 김자경이 맡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임원식이 지휘하고 서항석이 연출했습니다. 닷새 동안 낮과 밤으로 열 번 공연했고, 그해 4월에 다시 무대에 올랐습니다.
라 트라비아타 추천 음반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바이에른 국립 관현악단과 합창단, 일레아나 코트루바스, 플라시도 도밍고, 셰릴 밀른스(DG, 1976~77년 뮌헨 녹음). 템포가 빠르고 춤곡의 리듬이 가볍게 튀어서 1막 파티 장면이 들뜬 채로 흘러갑니다. 코트루바스의 목소리는 크지 않은 대신 3막에서 힘이 빠져 가는 비올레타가 그대로 들립니다.
마리아 칼라스, 알프레도 크라우스, 마리오 세레니, 프랑코 기오네 지휘(EMI, 1958년 3월 27일 리스본 상카를루스 극장 실황). 녹음 상태는 거칠지만, 칼라스가 비올레타를 무대에서 부른 마지막 해의 실황입니다. 1막의 화려한 노래보다 2막 제르몽과의 2중창과 3막 편지 장면에서 말 하나하나에 실린 표정이 또렷하게 들립니다.
안나 네트렙코, 롤란도 비야손, 토마스 햄프슨, 카를로 리치 지휘, 빈 필하모닉(DG, 2005년 잘츠부르크 축제 실황). 실황 음반과 함께 영상(DVD)으로도 나와 있어, 처음 보는 사람이 무대를 보며 줄거리를 따라가기 좋습니다. 위의 두 녹음보다 소리가 선명하고, 젊은 두 주역이 서로를 부르는 2막과 3막의 2중창이 가깝게 들립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라 트라비아타는 무슨 뜻인가요?
이탈리아어로 「길을 벗어난 여인」, 곧 바른 길에서 벗어나 타락한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오페라 안에서는 3막에서 비올레타가 자기 자신을 가리킬 때만 이 말을 씁니다.
Q. 춘희와 라 트라비아타는 같은 작품인가요?
같은 오페라입니다. 원작 소설의 일본어 제목 「椿姫」를 우리 음으로 읽은 이름이 「춘희」이고, 오페라에도 오랫동안 이 이름이 쓰였습니다.
Q. 몇 막이고 얼마나 걸리나요?
세 막이고 2막이 두 장면으로 나뉩니다. 전곡 음반은 연주에 따라 1시간 50분에서 2시간 15분 정도이고, 극장에서는 쉬는 시간이 더해집니다.
Q. 실화인가요?
뒤마 피스가 1848년에 낸 소설을 1852년 직접 희곡으로 고쳤고, 이 희곡이 오페라의 직접 원작입니다. 소설은 1847년 스물세 살로 세상을 떠난 파리 사교계 여인 마리 뒤플레시를 모델로 삼았습니다. 인물과 사건은 소설과 오페라를 거치며 많이 바뀌었습니다.
Q. 축배의 노래는 어디에 나오나요?
1막 비올레타의 파티 장면에서 알프레도가 먼저 부르고 비올레타와 손님들이 이어받습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비올레타가 창백해지며 쓰러질 뻔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Q. 얼마나 자주 공연되나요?
세계 오페라 공연 통계를 모으는 오페라베이스 집계(2026년 10월 조회)에서 〈라 트라비아타〉는 2만 5천 회가 넘는 공연 기록으로 〈카르멘〉과 함께 가장 많이 공연된 오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다음에 이 오페라를 들을 때는 막이 오르기 전 전주곡의 첫 여린 소리를 기억해 두십시오. 그 소리가 3막 첫머리에 돌아올 때, 1막의 파티와 2막의 이별이 모두 그 방을 향해 걸어온 길이었다는 것이 들립니다. 베르디의 생애는 오페라의 왕 주세페 베르디의 생애와 작품에서, 비올레타를 대표 배역으로 삼았던 소프라노 이야기는 마리아 칼라스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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