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빈스키의 지갑 사정, 저작권 제도와 한 작곡가의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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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4월 6일,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가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2년 1개월 뒤인 1973년 5월 27일, 소련이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소련이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했습니다. 이 글은 그 날짜와 제도 변화가 한 작곡가의 통장과 악보에 무엇을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크에밀 블랑슈가 1915년에 그린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전신 초상
자크에밀 블랑슈,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초상, 1915년. 그가 대표작 세 편을 이미 써낸 뒤이자 러시아를 떠나 있던 시기입니다.

그의 생애와 양식 변화 전반은 다시채의 스트라빈스키의 생애와 음악 글에서 다루었습니다.

그가 죽고 2년 뒤에야 저작권 관계가 생겼다

날짜부터 맞춰 보겠습니다. 이 글에서 확인한 미국 저작권청 안내문상, 소련의 세계저작권협약 제네바판 가입일은 1973년 5월 27일입니다. 그 문서의 각주가 이 날짜를 소련이 가입한 날로 못 박아 두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1971년 4월 6일에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이 글에서 확인한 소련의 세계저작권협약 가입일보다 2년 1개월 먼저 세상을 떠난 셈입니다.

공백은 한쪽만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미국이 국제 저작권의 기본 조약인 베른협약에 실제로 발을 들인 것은 1989년 3월 1일이고, 러시아연방이 같은 협약에 들어간 것은 1995년 3월 13일입니다. 각각 그가 죽고 18년, 24년 뒤입니다. 이 두 날짜는 협약이 그 나라에 대해 효력을 갖기 시작한 날이고, 가입 서류를 맡긴 날은 각각 1988년 11월 16일과 1994년 12월 9일이었습니다. 서류를 내고 효력이 생기기까지도 몇 달이 더 걸린 셈입니다.

게다가 러시아는 가입하면서 조건을 하나 달았습니다. 협약의 효력은 발효일에 이미 자국에서 보호가 끝난 저작물에는 미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뒤늦게 들어가면서 과거를 되살리지는 않겠다고 밝힌 셈입니다. 그의 초기 대표작들이 놓인 자리가 바로 그 과거였습니다.

국제 저작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는 미국 저작권청이 안내문 첫머리에 직접 적어 두었습니다. 저작자의 글을 전 세계에서 자동으로 지켜 주는 국제 저작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어떤 나라에서 무단으로 쓰이는 것을 막을 수 있는지는 그 나라의 국내법에 달려 있다는 설명이 뒤따릅니다.

이 한 문장이 스트라빈스키의 경제적 조건을 거의 다 설명합니다. 작품이 아무리 유명해도, 그 작품이 태어난 나라와 그 작품이 연주되는 나라가 서로 약속을 맺어 두지 않았다면 보호는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습니다. 파리에서 초연되고 뉴욕에서 연주되는 곡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1917년의 사건이 겹칩니다. 혁명 뒤 그는 재산과 러시아 출판사 로열티를 잃었고, 생계를 위해 계속 써야 했습니다.

그의 상황은 두 겹이었습니다. 러시아 쪽에서 들어오던 돈이 끊겼고, 서방 쪽에서는 이미 나온 대표작을 근거로 새로 받아 낼 제도적 장치가 없었습니다. 불새와 페트루슈카와 봄의 제전이 세계적으로 알려질수록, 그 유명세가 통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로열티가 끊긴 뒤 그는 무엇으로 살았나

그래서 그는 작곡가가 아닌 다른 일들을 시작합니다. 재단이 정리해 둔 그의 수입 항목을 시간 순서로 늘어놓으면 대응 방식이 보입니다.

먼저 1921년부터 약 15년 동안 연주자이자 지휘자 활동을 병행합니다. 작곡가가 자기 곡을 직접 들고 다니며 파는 일이 수입의 한 축이 된 것입니다.

1920년대 초에는 피아노 제조사 플레옐과 계약을 맺고 자기 작품을 자동피아노용으로 편곡합니다. 1924년에는 뉴욕의 에올리언 사를 위해 비슷한 작업을 합니다. 이미 쓴 곡을 새 매체에 맞게 다시 만드는 일로 돈을 받은 것입니다.

1925년에는 컬럼비아 레코드와 녹음 계약을 맺습니다. 이때 그가 남긴 말이 흥미롭습니다. 녹음이 자기 의도를 명확히 하고 확정할 기회라고 했습니다. 돈을 버는 일과 작품을 확정하는 일이 같은 계약 안에 들어 있었던 셈입니다.

1939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로는 위촉이 큰 몫을 차지합니다. 1945년 12월에는 미국 시민권을 얻습니다. 프랑스 국적을 얻은 것이 1934년 6월 10일이니, 그는 마흔이 넘어 두 번 국적을 바꾼 사람이기도 합니다.

수입 구조가 악보에 남긴 흔적

지갑 사정을 읽는 이유는 사연이 딱해서가 아닙니다. 그 구조가 악보를 바꾸기 때문입니다. 스트라빈스키의 경우 흔적이 셋 남았습니다.

첫째, 자동피아노 편곡입니다. 이 악기는 사람의 손가락 개수와 손의 폭이라는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사람이 칠 수 없는 밀도로 음을 쌓아도 기계는 그대로 재생합니다. 자동피아노 편곡은 사람이 치는 피아노와 다른 물리적 제약 안에서 관현악곡을 건반용으로 옮기는 작업이었습니다.

둘째, 녹음입니다. 악보는 연주자마다 다르게 실현되지만 녹음은 하나로 고정됩니다. 그가 녹음을 두고 의도를 확정할 기회라고 말한 것은 그래서 단순한 소감이 아닙니다. 작곡가가 자기 연주를 음반으로 남기는 순간, 그 음반은 악보와 나란히 놓이는 또 하나의 판본이 됩니다.

셋째, 개정판입니다. 그는 여러 작품을 나중에 다시 손봤는데, 그중 페트루슈카는 차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가 공개한 편성표를 보면 1910년에서 1911년 사이에 쓴 원전판과 1946년에서 1947년 사이의 개정판이 이렇게 다릅니다.

원전판은 목관이 네 겹이고 타악기 주자가 일곱 명입니다. 금관에는 코넷 두 대가 따로 있습니다. 개정판은 목관이 세 겹으로 줄고 타악기 주자가 네 명이 됩니다. 코넷은 사라지고 대신 트럼펫이 두 대에서 세 대로 늘어납니다.

타악기 주자 일곱 명과 네 명의 차이는 무대에서 바로 드러납니다. 인원이 줄면 동시에 울릴 수 있는 타악기의 종류가 줄고, 한 사람이 여러 악기를 옮겨 가며 맡아야 합니다. 목관이 네 겹에서 세 겹으로 바뀌면 같은 화음의 두께가 달라집니다. 편성표상 필요한 목관과 타악 인원은 줄었습니다. 이 차이가 실제 공연비와 난이도, 연주 횟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이 자료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저작권 때문에 고쳤다는 말은 어디까지 확인되나

여기서 조심할 대목이 나옵니다. 그가 개정판을 만든 이유가 저작권을 새로 얻기 위해서였다는 설명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옛 판본 대신 새 판본을 내면 그것은 새 저작물이 되니, 논리는 그럴듯합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확인한 범위에서는 그 동기를 못 박을 근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개정판을 펴낸 출판사의 공식 작품 페이지는 두 판본의 편성과 연도를 정확히 적어 두면서도 왜 고쳤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미국 저작권법과 스트라빈스키를 함께 다룬 한 법률 논평은, 그가 자기 작품의 새 판본을 내어 작품에 대한 통제를 다시 확인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고 쓰면서도, 저작권이 동기였다는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통설로 널리 유통되지만 확정된 사실로 다루기에는 이르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그가 실제로 벌인 법적 다툼의 결과는 이야기의 방향을 조금 바꿉니다. 그는 1945년에 불새의 세 번째 모음곡을 만들어 미국의 리즈 뮤직(Leeds Music Corporation)에 권리를 넘겼는데, 2년 뒤 그 회사가 주크박스용으로 편곡한 것을 두고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졌습니다.

보호는 그가 죽은 뒤에 왔습니다. 1994년 12월 8일에 제정된 우루과이라운드협정법에 따라, 그때까지 미국에서 보호 밖에 있던 일부 외국 저작물의 저작권이 1996년 1월 1일에 복원되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25년 뒤입니다. 이 글에서 확인한 법률 논평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복원 사례 중 하나로 듭니다. 다만 이 글에서 다루는 개별 판본의 현재 보호 여부는 별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후원자가 시간을 사 준 차이콥스키와 견주면 대비가 분명합니다. 한쪽은 살아 있는 동안 돈이 시간을 사 주었고, 다른 한쪽은 제도가 도착했을 때 당사자가 없었습니다.

두 판본을 견주며 무엇을 들을 것인가

이 이야기는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페트루슈카를 두 판본으로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음반 표지나 해설에 원전판인지 1947년 판인지가 대개 적혀 있습니다.

첫째로 들을 것은 타악기입니다. 원전판은 타악기 주자가 일곱 명이고 개정판은 네 명입니다. 인원이 많으면 여러 타악기가 동시에 울릴 수 있고, 적으면 한 사람이 악기를 바꿔 가며 맡아야 해서 겹쳐 울리는 층이 얇아집니다. 두 판본의 같은 구간을 번갈아 들으며 타악과 목관의 겹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이 글에서 자료로 확인한 것은 편성 차이이며, 특정 장면의 좌표는 별도 악보 대조 뒤에만 덧붙일 수 있습니다.

둘째는 목관의 두께입니다. 같은 선율을 네 겹으로 받쳐 주던 것이 세 겹이 되면 화음의 무게가 가벼워집니다. 목관이 화음을 받치는 자리에서 소리가 얼마나 촘촘하게 채워지는지 두 판본을 견주어 들어 보십시오.

셋째는 금관의 색입니다. 원전판에 있던 코넷 두 대가 개정판에서는 사라지고 트럼펫이 한 대 늘어납니다. 코넷은 트럼펫보다 부드럽고 둥근 소리를 냅니다. 같은 자리에서 금관이 날카롭게 서는지 부드럽게 감기는지가 갈립니다.

넷째는 작곡가 자신이 지휘한 녹음입니다. 그는 1925년부터 자기 음악을 녹음해 왔고, 그것을 자기 의도를 확정하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녹음의 템포와 균형을 다른 지휘자의 것과 견주어 보면, 악보가 다 말해 주지 않는 부분에서 작곡가가 무엇을 골랐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러니 스트라빈스키를 들을 때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듣게 됩니다. 하나는 그가 쓰고 싶어서 쓴 음악이고, 다른 하나는 보호받지 못하는 대표작을 가진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 낸 판본들입니다. 후자를 안다고 해서 음악이 작아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같은 곡을 왜 두 번 만들어야 했는지를 알고 들으면, 편성표의 숫자 하나가 사람의 사정으로 읽히기 시작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스트라빈스키의 대표작에 미국 저작권이 적용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곡이 얼마나 알려졌는지는 이 문제와 상관이 없습니다. 이 글에서 확인한 미국 저작권청 안내문상 소련의 세계저작권협약 가입일은 1973년인데, 그는 1971년에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저작권을 새로 얻으려고 곡을 고쳤다는 말은 사실인가요

널리 알려진 설명이지만 확정된 사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개정판을 펴낸 출판사의 공식 자료는 편성과 연도만 밝히고 이유를 말하지 않으며, 미국 저작권법과 그를 함께 다룬 법률 논평도 그가 새 판본으로 통제를 되찾으려 했다고만 쓰고 저작권이 동기라는 증거는 대지 않습니다.

페트루슈카는 어느 판본으로 들어야 하나요

어느 쪽이 옳다기보다 무엇을 듣고 싶은지에 따라 갈립니다. 1911년에 나온 쪽은 규모가 커서 소리가 겹겹이 쌓이고, 1947년에 손본 쪽은 인원이 줄어 윤곽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금관의 색도 두 판본이 다릅니다.

그의 음악은 지금 저작권 보호를 받나요

일부 작품은 미국에서 우루과이라운드협정법에 따라 복원되었을 수 있습니다. 1994년 12월 8일에 제정된 이 법으로 복원의 효력이 생긴 날은 1996년 1월 1일이고, 그가 세상을 떠나고 25년 뒤였습니다. 다만 이 글에서 다루는 개별 판본의 현재 보호 여부는 판본과 최초 발행, 권리관계와 나라에 따라 달라 별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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