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 한 장에 줄이 열 개 그어져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바이올린 1, 바이올린 2, 바이올린 3, 비올라 1, 비올라 2, 비올라 3, 첼로 1, 첼로 2, 첼로 3, 그리고 맨 아래 한 줄.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 사장조 BWV 1048을 옮겨 적은 옛 사본의 첫 장입니다. 반대쪽에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나단조 작품 74의 마지막 음악 쪽을 놓아 보겠습니다. 그 쪽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줄이 줄어드는데, 맨 아래 묶음에는 줄이 넷 남아 있고 그 넷은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입니다.
두 곡은 이 차이 말고도 다른 것이 많습니다. 나라가 다르고, 한쪽은 현악기와 통주저음으로만 이루어지는데 한쪽은 관악기와 타악기까지 씁니다. 시간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브란덴부르크 3번은 초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헌정된 해로 셀 수밖에 없고 비창은 초연된 날이 남아 있는데, 그 두 날짜 사이가 백칠십여 년입니다. 그러니 이 글은 시대가 두 곡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시대는 배경이고, 이 글이 원인으로 보는 것은 성부를 나누는 방식입니다. 두 곡을 나란히 놓는 것은, 같은 현악기가 어떤 때는 여러 사람이 주고받는 소리로 들리고 어떤 때는 한 사람이 말하는 소리로 들리는 그 갈림을 들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첫 장은 열 줄인데, 처음에는 한 몸으로 움직입니다
먼저 밝혀 둘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펼쳐 볼 이 악보는 바흐가 손수 쓴 것이 아닙니다.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펜첼이 옮겨 적은 사본이고, 소장기호는 Mus. ms. Bach P 1063입니다. 사본 자체에는 날짜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RISM과 베를린 국립도서관은 바흐가 세상을 떠나고 다섯 해쯤 지난 1755년 무렵으로 봅니다. 같은 사람이 옮겨 적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1번 사본에는 끝에 1760년 4월이라고 손으로 적혀 있습니다. 날짜를 적기도 하는 필사자였는데 이 사본에는 적지 않았습니다. 이 곡들을 헌정받은 변경백의 궁정에서 그것들이 연주된 기록은 오늘날 남아 있지 않습니다. 헌정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5번을 다룬 글에서 따로 이야기했으니 여기서는 악보만 보겠습니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을 옮겨 적은 사본의 첫 장이다. 서지가 1755년 무렵으로 보는 필사본이고 베를린 국립도서관이 디지털로 공개했다. 왼쪽 가장자리의 이름표를 위에서 아래로 세어 보면 열 개다.
이름표를 하나씩 읽어 보면 바이올린이 1, 2, 3으로, 비올라가 1, 2, 3으로, 첼로가 1, 2, 3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바이올린 여러 대가 같은 것을 함께 켜는 방식과는 다릅니다. 같은 악기 안에서 성부를 셋으로 갈라 각자에게 다른 몫을 준 것입니다. 열째 줄에는 비올로네(violone)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무리에서 가장 낮은 소리를 맡는 큰 현악기인데, 오늘날 관현악에서 쓰는 콘트라베이스와 같은 악기는 아닙니다.
사본 첫 장 위쪽에는 표제가 두 줄로 적혀 있습니다. Concerto a 3. Violin. 3. Viol. 3. Violonc. tutti gli certati, et Violone. di I. S. Bach. 바이올린 셋, 비올라 셋, 첼로 셋에 비올로네라는 편성입니다. 가운데의 tutti gli certati는 앞서 적은 것이 모두 협연자라는 뜻인데, 어디까지를 가리키는지는 쉼표가 알려 줍니다. 이 말 앞에 열거된 것은 바이올린 셋, 비올라 셋, 첼로 셋으로 아홉 성부이고, 비올로네는 쉼표 뒤에 et Violone으로 따로 붙습니다. 열 자리 전부가 아니라 아홉이 협연자이고, 비올로네는 그 뒤에 별도로 놓인 것입니다. 그래도 한 무리가 앞에서 독주하고 다른 무리가 뒤에서 받쳐 주는 통상의 협주곡과는 다릅니다. 아홉 성부가 나란히 앞에 선다고, 사본이 첫 줄에서 스스로 밝혀 놓은 셈입니다. 그리고 이 사본에는 하프시코드 줄이 없습니다. 줄이 없다고 해서 하프시코드가 빠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과는 별개로, 바흐가 손수 적어 헌정한 총보에는 표제가 따로 있는데 그쪽은 이 곡을 바이올린 셋, 비올라 셋, 첼로 셋에 하프시코드가 맡는 저음이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낮은 줄에 화음을 얹어 함께 가는 통주저음은 이 시기 합주에서 당연한 전제였고, 이 사본의 필사자는 그 줄을 따로 그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첫 묶음입니다. 묶음이란 같은 시간의 음악을 여러 악기에 걸쳐 적어 놓은 단위이고, 왼쪽 세로줄로 한 번에 묶여 있습니다. 열 줄이 나란히 그어져 있는데, 처음 세 마디에서 음표가 끝까지 적힌 줄은 세 개뿐입니다. 바이올린 1, 비올라 1, 첼로 1. 나머지 일곱 줄에는 첫 몇 음을 적은 뒤에 가로로 눕힌 물결 모양 기호가 하나 그어져 있고, 그다음은 빈 오선입니다.
이 기호를 쉼표로 읽으면 안 됩니다. 이 시기의 쉼표는 오선에 매단 두꺼운 막대로 그리는데 이 기호는 그것과 모양이 다릅니다. 앞 성부와 같은 것을 그대로 연주하라는 생략 표기입니다. 오늘날 인쇄된 총보를 펼쳐 보면 그 자리가 음표로 다 적혀 있습니다. 처음 세 마디에서 쉬는 줄은 하나도 없고, 바이올린 셋이 서로 같고 비올라 셋이 서로 같고 첼로 셋과 비올로네가 서로 같습니다. 같은 음악이 판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보입니다.
그러니 이 곡의 첫머리는 열 줄이 한 몸으로 움직입니다. 첫 마디에 들어서기 전에 한 음을 열 줄이 함께 내고, 그대로 세 무리가 각각 하나의 선처럼 나아갑니다. 갈라지기 시작하는 곳은 아홉째 마디입니다. 바이올린 3과 비올라 3이 먼저 제 길로 나가고, 곧이어 아홉 성부가 저마다 다른 몫을 맡습니다. 나뉨이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생겨나는 것입니다. 곡을 틀고 맨 앞을 들어 보시면 한 덩어리로 시작한 소리가 조금 뒤에 여러 갈래로 벌어지는 것이 잡힙니다. 바로크 시기 협주곡에서 무리를 나누어 쓰는 방식 자체가 궁금하시다면 바로크 음악의 특징과 역사에 정리해 두었고, 이 곡을 쓴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바흐의 생애와 작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쪽에는 필사자의 손이 남아 있습니다
사본을 몇 장 넘기면 3번 잎 뒷면이 나옵니다. 그 쪽 위쪽 묶음에서 첼로 1과 첼로 2의 줄 두 개가 촘촘한 빗금으로 지워져 있습니다. 두 줄 사이 왼쪽 여백에는 vide infra, 곧 아래를 보라고 적혀 있습니다. 시키는 대로 내려가 보면 쪽 맨 아래에 오선 한 줄이 따로 그어져 있습니다. 그 줄 왼쪽에는 낮은음자리표와 조표를 그린 뒤 첼로 1이라고 적혀 있고, 같은 줄 가운데에서 자리표와 조표를 다시 그린 뒤 첼로 2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한 줄에 두 이름이 앞뒤로 놓여 있으니 첼로 1이 하던 것을 첼로 2가 이어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읽으면 안 됩니다. 이 줄은 음악이 흘러가는 자리가 아니라 위에서 지운 두 성부를 고쳐 적어 둔 자리입니다. 고친 것이 둘이어서 이름도 둘인데, 종이를 아끼려고 한 줄에 나란히 놓았을 뿐입니다.
그러면 이 쪽이 보여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 글이 첫머리에 밝힌 사실, 곧 우리가 펼친 악보가 바흐가 손수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여기서 눈에 보입니다. 지운 자국과 아래를 보라는 말과 여백에 다시 적은 두 줄은 전부 옮겨 적는 사람의 손입니다. 악보를 볼 때 우리는 작곡가의 결정과 필사자의 사정을 함께 보고 있습니다.
바흐가 손수 적은 총보와도 맞춰 보았습니다. 베를린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자필 총보 D-B Am.B 78 (3)에서는 첼로 1과 첼로 2와 첼로 3이 각각 제 줄에 처음부터 끝까지 적혀 있고, 한 줄을 둘이 나눠 쓴 자리가 없습니다. 사본의 그 한 줄은 작곡가가 만든 자리가 아니라 필사자가 만든 자리입니다.
가운데 악장은 화음 둘로 끝납니다
이 곡은 세 악장인데 가운데 악장이 아주 짧습니다. 얼마나 짧은지는 사본을 열면 그대로 드러납니다.
사본 6번 잎 앞면으로 가면, 아래 묶음 오른쪽 끝에서 1악장이 겹세로줄로 닫힙니다. 그리고 같은 묶음 안에서 이어집니다. 그 오른쪽에 아다지오(Adagio)라는 말이 한 번 적혀 있고, 열 줄에 각각 박자표를 새로 그린 다음, 줄마다 음표 머리가 둘씩 놓입니다. 둘째 음 위에는 늘임표가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종지선입니다. 그것이 이 악장의 전부입니다.
1악장이 닫히고 가운데 악장이 시작되는 자리다. 오른쪽 끝에 아다지오라고 적혀 있고, 그 뒤에 각 줄마다 음표가 둘씩 놓인 다음 곧바로 종지선이 온다.
이 짧음은 연주자에게 오래된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실연에서는 적힌 두 화음을 그대로 두는 연주가 대부분이고, 그 자리에 짧은 즉흥 악구를 끼워 넣거나 바흐의 다른 악장을 가져다 놓는 연주도 있습니다. 두 화음이 무슨 음인지 읽어 보면 이렇습니다. 낮은 네 줄, 곧 첼로 셋과 비올로네는 첫 화음에서 다(C)를 내고 둘째 화음에서 나(B)로 반음 내려갑니다. 맨 윗줄의 바이올린 1은 반대로 가(A)에서 나(B)로 올라가고, 셋째 줄과 넷째 줄에는 둘째 화음에만 올림표가 새로 붙습니다. 그러니 이 악장은 밑음이 반음 내려앉으면서 닫히는 화음 둘입니다. 이런 종지를 프리지아 종지라고 부르는데, 이런 자리에서 하프시코드나 바이올린이 짧은 즉흥을 얹는 것이 이 시기의 관습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사본이 보여 주는 것만 놓고 보면 이 대목의 성격은 분명합니다. 열 줄이 함께 울립니다. 두 번 울리고 멈춥니다.
그래서 이 악장은 주고받기가 멈추는 자리로 들립니다. 첫머리에서 한 몸이던 것이 아홉 갈래로 벌어졌다가 여기서 다시 한 덩어리로 돌아옵니다. 곡을 들으실 때 1악장이 끝나고 다음 악장이 시작될 때까지의 짧은 구간에서, 방금까지 갈라져 있던 소리가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을 들어 보시면 됩니다. 악보에 적힌 것은 여기까지이고, 이 화음과 3악장 사이를 어떻게 잇는지는 연주마다 다릅니다.
비창의 마지막 악장은 두 바이올린을 엇갈리게 적었습니다
이제 반대쪽입니다. 차이콥스키의 〈비창〉 마지막 악장은 아다지오 라멘토소(Adagio lamentoso), 곧 탄식하듯 느리게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악장의 첫 선율은 흔히 한 사람이 길게 내쉬는 숨처럼 들린다고 이야기됩니다. 그런데 총보를 펼치면 그 선율은 한 줄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비창〉 4악장이 시작되는 쪽이다. 위쪽 관악기와 타악기 줄은 거의 비어 있고 아래 현악기 줄에서 음악이 시작된다. 바이올린 1과 바이올린 2가 서로 다른 줄에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해 두시면 다음 이야기가 보인다. 에른스트 오일렌부르크가 라이프치히와 빈에서 펴낸 소형 총보이고, 시리즈 번호는 479, 판번호는 E. E. 3892다. 서문은 막스 웅거가 썼고 표제면에는 블라디미르 다비도프에게 바친다는 헌정이 인쇄되어 있다. 표제면에 인쇄 연도는 적혀 있지 않다.
두 바이올린 줄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렇습니다. 첫 세 마디에서 리듬이 같습니다. 셈여림도 같습니다. 두 줄에 똑같이 라르가멘테(largamente), 곧 폭넓게라는 말이 적혀 있고, 세게 시작해서 점점 여려지는 표시도 같은 자리에 같은 모양으로 붙어 있습니다. 다만 이 말과 표시는 두 바이올린만의 것이 아니라 비올라와 첼로에도 함께 붙어 있습니다. 활을 어느 쪽으로 그으라는 기호는 다섯째 마디 한 곳에만 있고, 그 앞에 보이는 곡선은 활 방향이 아니라 이음줄입니다. 넷째 마디에 이르면 두 줄의 리듬이 갈라집니다. 첫째 바이올린이 같은 높이를 짧게 되풀이하는 동안 둘째 바이올린은 긴 음 하나를 끌고 있습니다.
그 첫 세 마디 안에서 다른 것은 음의 높이뿐입니다. 그런데 그 높이가 서로 넘나듭니다. 첫 마디만 봐도 둘째 바이올린의 첫 음이 첫째 바이올린의 첫 음보다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고는 마디 안에서 두 성부의 음 높이가 서로 자리를 바꿉니다. 한 성부만 눈으로 따라가면 선율이 위아래로 튀면서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듣는 그 내려앉는 선은 어느 한 줄에도 온전히 들어 있지 않습니다. 두 무리를 이렇게 엇갈리게 적으면 각 무리는 자기 소리가 잘 나는 음역에 머물면서도 둘이 합쳐질 때 하나의 선으로 들립니다. 십구세기 관현악법이 즐겨 쓴 방식입니다.
따라 들어 보실 자리가 여기입니다. 이 악장의 맨 처음에서 둘째 바이올린만 따로 좇아 보세요. 한 성부만 따라가면 선율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악보에서는 두 바이올린군이 번갈아 맡는 음인데, 함께 울릴 때 그 이음매가 어디인지는 자리 배치와 음량 균형과 녹음에 따라 다르게 잡힙니다. 적어도 이 첫머리에 관한 한, 두 성부는 나뉘어 있는데도 하나의 선으로 들리고, 각자의 자리가 따로 들리는 나눔이 아닙니다. 이 곡이 어떤 상황에서 초연되었고 부제와 작곡가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가 어떻게 전해지는지는 차이콥스키의 생애와 작품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마지막 쪽에서는 줄이 하나씩 지워집니다
같은 악장의 끝으로 가 보겠습니다. 이 총보는 한동안 쉬는 악기의 줄을 아예 그리지 않는 방식으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활동하는 악기군이 줄어드는 것이 눈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다만 남은 줄의 수와 그 순간 소리를 내는 악기의 수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남아 있는 줄에도 쉼표가 있기 때문이고, 곧 나올 바순의 두 마디 쉼이 그런 경우입니다. 이것은 이 판의 조판 방식이기도 합니다. 모든 악기의 줄을 끝까지 그려 두는 판에서는 같은 자리가 줄의 사라짐이 아니라 쉼표로 보입니다.
줄어들기 시작하는 자리는 마지막 쪽보다 몇 쪽 앞입니다. 백서른네 마디부터 팀파니가 점점 여려지다가 백서른일곱 마디 첫 박에서 마지막 음을 내고 물러납니다. 탐탐이 들어오는 곳이 바로 그 백서른일곱 마디입니다. 팀파니가 사라진 자리에 탐탐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팀파니의 마지막 음과 탐탐의 타격이 같은 마디에서 겹칩니다. 탐탐은 한 번 치고 백마흔한 마디 첫 박까지 그 울림을 끌어 줍니다. 악보에 적힌 음표는 다섯이고 점이 붙은 이분음표 넷에 팔분음표 하나인데, 전부 붙임줄로 이어져 있어서 실제 타격은 한 번입니다. 그 붙임줄은 악보단을 넘어서까지 이어집니다. 악기 이름 자리에는 탐탐이라고 쓰고 그 아래 괄호로 아드 리비툼(ad libitum)이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반드시 쓰지 않아도 된다는 표시이고, 적어도 우리가 펼쳐 놓은 이 판에서는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탐탐의 줄은 다섯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음의 높이를 적을 일이 없는 악기여서 오선 대신 선 하나만 그어 두었습니다. 이 총보에서 줄을 셀 때 모든 줄이 같은 성격은 아닌 것입니다.
그 울림이 남아 있는 동안 음을 새로 내는 것은 트롬본과 튜바입니다. 다만 그 구간의 총보에 남는 줄이 그 둘뿐인 것은 아닙니다. 백서른일곱 마디 첫 박에는 팀파니의 마지막 음이 함께 울리고, 앞서 본 탐탐의 한 줄짜리 보표는 붙임줄이 끝나는 백마흔한 마디까지 그대로 이어집니다. 소리를 새로 내는 자리와 이미 낸 소리를 끌고 가는 자리가 다른 것입니다. 낮은 금관이 화음을 몇 마디 이어 가는데, 셈여림은 p로 시작해 pp와 ppp를 거쳐 ppppp까지 내려갑니다. 그러고 나서 음악은 한 번 더 모입니다. 그다음 쪽 첫머리에 안단테 주스토(Andante giusto)라고 적혀 있고, 같은 악보단 안에 백쉰 마디라는 번호가 찍혀 있습니다. 여기서 목관과 호른과 트롬본과 현악기가 돌아옵니다. 다만 관현악 전체가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트럼펫과 팀파니와 탐탐은 그대로 쉬고 튜바도 빠집니다. 현악기가 세게 켜는 대목이 지나가는데, 이때 현악기는 약음기를 끼고 있습니다.
줄이 하나씩 지워지는 것은 그다음부터입니다. 플루트와 오보에가 먼저 빠지고 트롬본도 물러납니다. 클라리넷과 바순과 호른이 뒤따라 잦아듭니다. 마지막 쪽으로 넘어가면 비올라가 빠지고, 그다음 바순이 두 마디를 온쉼표로 물러납니다.
마지막 쪽은 위에서부터 여섯 줄, 다섯 줄, 네 줄로 줄어듭니다. 마지막 묶음에 남는 줄은 넷입니다. 첼로가 둘로 갈라지고 콘트라베이스도 둘로 갈라져 각각 두 줄씩 차지합니다. 그 위에 리테누토(ritenuto)가 적혀 있습니다. 속도를 곧바로 붙들어 늦추라는 말입니다. 이어서 점점 여리게가 붙고, 백일흔 마디에서 네 줄에 나란히 p가 넷 붙는 자리까지 내려갑니다. 마지막 마디에는 네 줄에 각각 늘임표가 있는데, 늘임표가 놓인 자리는 음표 위가 아니라 쉼표 위입니다.
〈비창〉의 마지막 음악 쪽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오선의 수가 줄어들어 여섯 줄, 다섯 줄, 네 줄이 되고, 맨 아래 묶음에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네 줄만 남는다. 마지막 마디의 늘임표는 각 줄에 하나씩 붙어 있고, 음표가 아니라 쉼표 위에 놓여 있다.
이 끝을 들으실 때 소리가 그냥 작아진다고 듣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서는 셈여림과 함께 줄의 개수가 줄어듭니다. 타악기가 한 번 울리고 나가고, 관악기가 차례로 나가고, 비올라가 나갑니다. 남은 낮은 현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자리를 지키고 되풀이하다가 멈춥니다. 소리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하나씩 줄어드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왜 하나는 주고받기로, 하나는 한 사람의 말로 들리는가
두 악보를 나란히 놓으면 갈리는 자리가 보입니다. 양쪽 다 성부를 나눕니다. 나누는 목적이 다릅니다.
브란덴부르크 3번의 사본에서는 나뉜 자리가 악보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성부마다 번호가 붙어 있고 저마다 몫이 따로 적혀 있습니다. 첫머리에서는 그 열 줄이 한 몸으로 움직이다가 아홉째 마디부터 몫이 갈라집니다. 이렇게 적힌 음악은 들을 때도 자리가 나뉩니다. 소리가 어디서 오는지가 계속 바뀌고, 그 바뀜이 이 곡의 움직임입니다.
비창의 마지막 악장은 반대 방향으로 나뉩니다. 두 바이올린은 첫 세 마디에서 리듬도 셈여림도 같고 높이만 엇갈리는데, 그 엇갈림이 이음매를 남기지 않습니다. 나뉘어 있으되 나뉜 것이 들리지 않게 나뉜 것입니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그 줄들이 하나씩 지워지고 마지막에 낮은 두 종류만 남습니다. 첫 장 맨 아래 한 줄에 비올로네가 있었듯이, 마지막 쪽 맨 아래에는 콘트라베이스가 남습니다.
적어도 제가 악보로 확인한 이 두 대목에 관한 한, 갈림은 악기의 수나 시대가 아니라 성부를 나누는 방식에서 옵니다. 한쪽은 나눈 자리가 들리게 나뉘어 있고, 다른 쪽은 나눈 자리가 지워지도록 나뉘어 있습니다. 물론 브란덴부르크 3번에도 열 줄이 한 몸으로 움직이는 첫머리와 가운데 악장이 있고, 비창 안에도 성부가 서로 주고받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한 말의 사정거리는 이 두 자리까지입니다. 두 곡 전체를 두고 내린 판정은 아닙니다.
오늘 두 곡을 이어서 틀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브란덴부르크 3번은 맨 앞에서 한 덩어리로 시작한 소리가 언제 갈라지는지 들어 보시고, 갈라진 뒤에는 누가 무엇을 맡는지 세어 보세요. 가운데 악장에서 그 나뉨이 한 번 멈추는 것도 들어 보시면 됩니다. 그다음 비창의 마지막 악장으로 넘어가 첫 선율에서 둘째 바이올린만 떼어 내 보시고, 끝에서는 소리를 내는 악기를 세어 보세요. 앞의 곡에서는 누가 언제 나서서 무엇을 맡는지를 세고 구분할 수 있는데, 뒤의 곡에서는 악보에서 나뉘어 있어도 소리로는 그 나뉨을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그 차이가 이 글이 들려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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