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왕벌 한 마리가 날아오르고, 16분음표가 쉬지 않고 구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왕벌의 비행〉이라고 부르는 그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의 옛 악보를 펼쳐 보면 곡 제목이 붙어 있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적혀 있는 것은 빠르기 표시와 성악보에 실린 지시문입니다. 생기 있게 빠르게라는 뜻의 비바체(Vivace)와 4분음표 = 144라는 숫자, 그리고 이런 문장입니다. 바다에서 왕벌이 날아 나와 백조새의 둘레를 돈다.
반대쪽에 아르보 패르트가 1978년에 쓴 〈거울 속의 거울〉을 놓아 보겠습니다. 피아노가 화음을 한 음씩 펼쳐 놓는 음형으로 시작하고, 한참 뒤에야 바이올린이 그 위로 들어오는 곡입니다. 두 곡은 빠르기 말고도 다른 것이 많습니다. 나라가 다르고 시대가 다르고 편성도 장르도 다릅니다. 그러니 이 글은 빠르기가 그 차이들의 결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두 곡을 나란히 놓는 것은 곡의 빠르기를 누가 어디에서 정하는지, 그것을 들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음반 한 장 안에서 같은 곡이 1분 24초 갈립니다
1995년 7월, 프랑크푸르트의 페스테부르크 교회에서 녹음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물인 음반 「Alina」에는 〈거울 속의 거울〉이 세 번 실려 있습니다. 첫 번째 트랙이 10분 36초, 세 번째가 9분 12초, 다섯 번째가 9분 48초입니다. 같은 곡, 같은 녹음 기간, 같은 장소인데 긴 쪽과 짧은 쪽 사이가 1분 24초 벌어집니다. 사이에 낀 두 번째와 네 번째 트랙은 같은 작곡가의 〈퓌르 알리나〉입니다. 음반 제목이 거기에서 왔고, 〈거울 속의 거울〉 세 번은 그 사이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연주자가 달라서라고 하기에는 걸리는 데가 있습니다. 첫 번째와 다섯 번째는 같은 두 사람이 연주합니다. 이 곡을 위촉했고 헌정받은 바이올리니스트 블라디미르 스피바코프와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베즈로드니가 음반의 처음과 끝을 맡았습니다. 같은 두 사람이 같은 곡을 같은 녹음 기간에 연주했는데 그 둘 사이만 해도 48초가 갈립니다. 편성이 다른 것은 가운데 세 번째뿐입니다. 디트마어 슈발케의 첼로와 알렉산더 말터의 피아노가 연주했습니다. 음반사는 이 녹음들을 두고 작곡가가 직접 관여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틀린 속도라서 생긴 차이가 아닙니다.
작품을 소개하는 공식 자료는 연주 시간을 10분이라고만 적습니다. 그러나 악보에는 더 적혀 있습니다. 유니버설 에디션이 낸 바이올린·피아노판 첫 쪽에는 6/4박자와 함께 4분음표 = 약 80이라는 지시가 있고, 바이올린은 세 마디를 쉰 뒤 네 마디째에 들어옵니다. 기다리는 시간까지 악보에 적혀 있는 것입니다. 그 빠르기대로라면 한 마디가 4.5초이니 바이올린이 들어오기까지는 13.5초입니다. 그런데도 같은 두 사람이 같은 곡을 48초 다르게 연주했습니다.
따라 들어 볼 자리는 곡의 맨 앞입니다. 피아노 음형만 도는 시간이 먼저 있고, 그 위로 선율 악기가 들어옵니다. 먼저 「Alina」의 첫 트랙과 다섯 번째 트랙을 견주어 보세요. 같은 두 사람이 같은 편성으로 연주한 두 판입니다. 한쪽은 아직 기다리는 중이고 다른 쪽은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트랙을 얹으면 첼로로 바뀐 소리까지 함께 들립니다. 도입부만 견주어도 세 연주의 시간 감각이 어떻게 다른지 잡힙니다. 패르트라는 작곡가와 이 곡의 만듦새 자체가 궁금해지신다면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을 따로 다룬 글이 있습니다.
왕벌의 비행은 원래 독립된 콘서트용 곡이 아니라 오페라의 한 장면입니다
〈왕벌의 비행〉은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차르 술탄 이야기〉의 3막 1장을 닫는 간주곡입니다. 간주곡은 노래와 노래 사이, 장면과 장면 사이를 잇는 관현악 대목을 말합니다. 오페라 자체는 프롤로그와 4막, 모두 일곱 장면으로 되어 있고, 대본은 블라디미르 벨스키가 푸시킨의 1831년 시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작곡은 1899년에서 1900년 사이, 푸시킨 탄생 100주년에 맞춘 작업이었습니다. 초연은 1900년 11월 3일 모스크바의 솔로도브니코프 극장에서 미하일 이폴리토프이바노프의 지휘로 열렸습니다. 작곡가가 이 오페라에서 뽑아 만든 관현악 모음곡 작품 57은 세 곡으로 되어 있는데, 그 안에 이 대목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차르 술탄 이야기〉의 왕벌 의상 도안이다. 콘스탄틴 코로빈, 1913년. 1900년 초연 무대의 것은 아니다. 무대 위에서 왕벌은 사람이 입고 나오는 배역이고, 이 대목의 빠른 음표는 그 배역이 등장하는 시간이다.
장면은 이렇습니다. 부얀 섬 해변에서 상인들의 배가 떠나갑니다. 왕자 그비돈은 그 배를 바라보며 아버지와 떨어져 있는 자기 처지를 한탄합니다. 백조새가 그를 왕벌로 바꾸어 그 배를 뒤쫓아 갈 수 있게 해 줍니다. 백조새는 앞서 그비돈이 구해 준 새이고, 훗날 공주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비돈이 바다로 내려가고, 바다에서 왕벌이 날아 나와 백조새의 둘레를 돕니다. 악보에서 붕붕거림이 시작되는 것이 정확히 이 순간입니다. 첫 화음이 세게 한 번 놓이는 것과 동시에 16분음표가 구르기 시작해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곡의 빠름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함께 적혔습니다. 벌 한 마리가 방금 사람에서 벌이 되었고, 지금 배를 쫓아가야 합니다. 작곡가는 그 움직임을 4분음표 144라는 빠르기와 쉬지 않는 16분음표의 밀도로 적어 두었습니다. 이 오페라를 쓴 작곡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생애와 음악에서, 그가 속했던 무리의 이야기는 러시아 5인조에서 따로 보실 수 있습니다.
그 빠른 음표 위에서 소프라노가 노래합니다
우리가 아는 〈왕벌의 비행〉은 노래를 지운 판입니다.
제가 펼친 것은 1901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베셀이 낸 성악보입니다. 그 판의 159쪽을 보면 처음 스무 마디 동안은 보표가 두 줄뿐입니다. 벌이 혼자 붕붕거리는 시간입니다. 스물한 번째 마디에 이르러서야 위쪽에 보표가 한 줄 늘어나고, 그 줄에 붙은 이름이 백조새입니다. 그런데 그 마디에서도 백조새는 아직 쉬고 있습니다. 노래는 그 다음 마디에서 시작됩니다. 그 판에 적힌 4분음표 144를 2/4박자에서 그대로 유지하면, 앞선 스물한 마디는 17.5초쯤 됩니다.
〈차르 술탄 이야기〉 성악보의 159쪽이다. 1901년경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베셀이 출판한 성악보이고, 아래쪽의 4849는 출판번호(플레이트 넘버)다. 위 다섯 줄은 건반 두 단뿐이고, 맨 아래 여섯째 줄에서 위쪽에 보표가 하나 늘면서 백조새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 줄의 첫 마디는 쉼표이고 노래는 다음 마디에서 시작한다. 왼쪽 위 상자의 156과 아래 줄의 157은 마디 번호가 아니라 연습번호다.
그리고 백조새가 부릅니다. 이제 가라, 나의 왕벌아. 바다의 배를 따라잡아라. 조용히 내려앉아 틈새 깊숙이 숨어라. 잘 가라 그비돈, 다녀오되 오래 머물지는 말아라. 아래에서는 16분음표가 여전히 구르는데, 위에서 소프라노는 4분음표와 8분음표가 섞인, 상대적으로 느긋한 선율을 얹습니다. 악보에는 노래가 들어오는 바로 그 자리에서 건반 축약보를 아주 여리게 치라고 적혀 있습니다.
1900년 초연에서 백조새를 부른 나데즈다 자벨라브루벨이다. 이 배역은 소프라노 역이다. 붕붕거림 위에 얹히는 선율이 이 목소리의 자리다.
노래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몇 쪽 뒤로 넘기면 성악 보표는 아예 사라지고 기악만 남아 곡이 끝까지 달립니다. 노래는 앞부분에만 있고, 그 선율을 빼도 아래의 관현악은 그대로 굴러갑니다. 이 대목이 뒤에 독립 연주곡이 된 경위까지 악보만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콘서트에서 연주되는 관현악판은 백조새를 지운 채 연주됩니다.
전곡 오페라 녹음으로 이 대목을 들어 보시면 붕붕거림 위에 여자 목소리가 하나 떠 있습니다. 같은 대목을 콘서트용 관현악판으로 들으면 그 목소리가 없습니다. 두 판을 번갈아 들으면 차이가 바로 잡힙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소리 하나가 더 있고 없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노래가 있는 판에서는 이 빠른 음악이 누군가를 배웅하는 장면 안에 놓여 있습니다. 노래가 없는 판에서도 비행의 묘사와 음색, 그 유머는 그대로 들립니다. 사라지는 것은 그 장면이 붙어 있던 자리입니다. 근거는 해설서가 아니라 그 대목의 옛 성악 악보 자체입니다.
그래서 빠르기는 어디에서 정해지는가
두 곡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자리가 보입니다. 빠르기는 한 곳에서 정해지지 않습니다. 세 겹으로 정해집니다.
첫째는 작곡가가 악보에 적은 시간입니다. 왕벌 쪽에는 4분음표 144가, 거울 쪽에는 4분음표 약 80이 적혀 있습니다. 둘 다 숫자가 있습니다. 종이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곡은 이 글에 나오지 않습니다.
둘째는 그 시간이 작품 안에서 하는 일입니다. 왕벌의 144는 배를 쫓아가는 벌의 움직임을 그리고, 거울의 80은 바이올린이 세 마디를 기다렸다가 들어오는 구조를 떠받칩니다. 왕벌 쪽에서 분주함을 만드는 것은 빠르기만이 아니라 한 박에 들어가는 16분음표의 밀도입니다. 그 위에 얹힌 백조새의 선율은 같은 빠르기 안에서 더 긴 음가로 움직입니다. 분주함과 여유가 한 시간 위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연주자가 실제로 구현한 시간입니다. 「Alina」 한 장 안에서 세 연주가 10분 36초, 9분 12초, 9분 48초로 갈렸고, 같은 두 사람이 연주한 두 트랙 사이만 해도 48초가 벌어졌습니다. 악보에 적힌 것은 약 80이고, 그 「약」을 어디까지로 읽느냐가 여기서 갈립니다.
그러니 두 곡을 들으실 때 시계를 먼저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이 시간은 무엇을 위한 시간인가. 왕벌 쪽에서는 한 사람이 벌이 되어 바다로 나가는 시간이고, 거울 쪽에서는 다음 음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답이 정해지면 빠르기가 다르게 들립니다. 오늘 밤 두 곡을 이어서 틀어 보세요. 왕벌은 전곡 오페라 녹음으로, 거울은 「Alina」의 첫 트랙과 다섯 번째 트랙으로 들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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