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가 먼저 한 마디를 젓습니다. 아주 짧게 쉬었다가 세 음이 위로 달리고, 그것이 쉬지 않고 되풀이됩니다. 목소리는 그 위에 낮은 자리에서 슬쩍 올라탑니다. 제목이 약속한 날개는 이 흔들림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에는 흔들리는 것이 둘 있습니다. 날개를 젓는 피아노가 하나이고, 그 위를 나는 선율이 다른 하나입니다. 2024년에 세상에 나온 종이 한 장이 이 둘을 갈라 놓았습니다. 하나는 처음부터 지금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멘델스존이 고쳐 쓴 끝에 지금 모습이 되었습니다.
• 작품번호: 작품 34의 두 번째 곡
• 시: 하인리히 하이네 〈노래의 책〉 가운데 「서정적 간주곡」 아홉째 편(제목 없음)
• 작곡: 1835년 4월 22일, 뒤셀도르프
• 초판: 1837년 라이프치히,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 연주 시간: 대체로 2분 20초에서 3분 30초 사이
2024년에 사들인 낱장
베를린 국립도서관이 2024년에 개인 소장자에게서 앞뒤로 쓴 낱장 한 장을 사들였습니다. 그때까지 알려져 있지 않던 종이였습니다.
거기 이 노래가 멘델스존의 손글씨로 적혀 있고, 곡이 끝나는 자리에 한 줄이 덧붙어 있습니다. 「뒤셀도르프 1835년 4월 22일」. 이 한 줄로 작곡한 날과 장소가 정해졌습니다. 그전까지는 작곡 자필보가 알려져 있지 않아 언제 이 노래가 생겼는지를 간접 증거로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날짜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위쪽입니다. 성악 선율이 지나가는 줄에 고친 자국이 빽빽합니다. 도서관은 이 낱장이 노래 선율에 대한 집중적인 수정 작업을 보여 준다고 기술합니다. 그리고 원래 적혀 있던 선율이 지금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들쭉날쭉했으며, 멘델스존의 수정을 거치고 나서야 날갯짓을 떠올리게 하는 흔들리는 진행이 생겼다고 적었습니다. 악보를 직접 판독한 소장 기관의 설명입니다.

멘델스존이 손으로 쓴 〈노래의 날개 위에〉 첫 면이다. 성악 선율이 지나가는 줄에 고친 자국이 몰려 있다. 베를린 국립도서관 소장, 청구기호 55 MS 224.
같은 종이에서 반주는 사정이 다릅니다. 처음부터 오른손이 짧게 쉬었다가 세 음을 위로 달리고 왼손이 낮은 음을 짚는 꼴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인쇄된 악보와 같은 모양입니다. 다시 말해 날개를 젓는 쪽은 처음부터 완성돼 있었고, 그 위를 나는 목소리만 손을 봐야 했습니다.
그 낱장 뒷면 아래쪽에는 짧은 메모가 남아 있습니다. 「이 낱장은 내 사랑하는 벗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손에서, 그 자신이 써 준 것을 받은 것이다.」 서명한 사람은 목사 율리우스 슈브링입니다. 멘델스존과 함께 〈파울루스〉와 〈엘리야〉의 대본을 만든 친구입니다.

같은 낱장의 뒷면이다. 곡이 끝나는 자리에 뒤셀도르프와 1835년 4월 22일이 적혀 있고, 아래쪽에 이 종이를 받았다는 슈브링의 메모가 있다. 베를린 국립도서관 소장.
읽고 본 것으로 세운 인도
노래가 데려가는 곳은 갠지스입니다. 붉게 꽃핀 정원이 달빛 아래 있고, 연꽃이 기다리고, 제비꽃이 별을 올려다보고, 장미가 서로 귀에 옛이야기를 속삭이고, 가젤이 다가와 귀를 기울입니다. 마지막에는 야자나무 아래 몸을 눕히고 꿈을 꾸자고 합니다.
이 시는 하이네의 〈노래의 책〉 안에 있는 「서정적 간주곡」의 아홉째 편입니다. 원래는 제목이 없습니다. 우리가 제목으로 알고 있는 말은 그 시의 첫 행입니다.
첫 연을 독일어로 읽어 보면 한 가지가 걸립니다. 첫 행 끝은 노래를 뜻하는 게장에스(Gesanges)이고, 셋째 행 끝은 갠지스를 뜻하는 강에스(Ganges)입니다. 두 낱말이 소리로 맞물립니다. 노래가 데려가는 곳의 이름이 노래라는 말과 닮아 있는 셈입니다.
하이네는 갠지스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자기 글에 직접 써 놓았습니다. 〈르 그랑의 책〉이라는 산문의 한 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부인, 저는 당신을 속였습니다. 저는 갠지스의 백작이 아닙니다. 평생 그 거룩한 강을 본 적이 없고, 그 경건한 물결에 제 모습을 비추는 연꽃들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인도의 야자나무 아래 꿈꾸며 누워 본 적도 없다고 덧붙입니다.
같은 대목에서 그는 자기가 무엇을 읽었는지를 스스로 댑니다. 발미키의 노래 숲에서 편안하다고 했고, 신적인 라마의 고난이 낯익은 아픔처럼 마음을 움직인다고 했고, 칼리다사의 꽃노래에서 달콤한 기억들이 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베를린에서 어떤 부인이 보여 준 인도 그림들을 본 일도 적어 놓았습니다. 그 부인의 아버지가 오랫동안 인도에서 총독을 지냈다고 했습니다.
그 독서와 그림이 곧바로 이 시의 원천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스스로 댄 것이 거기까지입니다. 다만 가 보지 않은 곳을 읽은 것과 본 것으로 세워 가는 과정은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시가 덜한 것이 되지도 않습니다. 가 보지 않고도 세울 수 있는 자리가 있고, 이 시가 그렇습니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하이네의 시는 다섯 연입니다. 멘델스존은 그 가운데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붙였습니다. 가젤이 나오는 연도 노래 안에 그대로 있습니다.
두 층으로 듣기
큰 흐름은 단순합니다. 조용히 시작해서 같은 길을 두 번 지나고, 마지막 절에서 한 번 크게 올랐다가 잦아들며 멎습니다. 삼 분 안팎의 짧은 노래입니다.
들을 때 층을 둘로 나누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아래층에서는 피아노가 계속 같은 몸짓을 되풀이합니다. 짧게 쉬고 세 음을 밀어 올리는 그 동작이 노래 내내 바탕을 이룹니다. 위층에서는 선율이 그 위를 갑니다. 크게 뛰지 않고 가까운 음들 사이를 오르내리며 흔들립니다. 그 흔들림이 고쳐서 얻은 쪽입니다.
짚어 들을 자리는 둘입니다.
하나는 맨 앞입니다. 노래가 들어오기 전에 피아노가 혼자 젓는 그 한 마디는 딱 한 번만 나옵니다. 되풀이는 그다음 마디부터라서, 둘째 절은 전주 없이 곧바로 목소리가 들어옵니다. 첫 한 마디를 귀에 담아 두시면 되풀이될 때 무엇이 빠졌는지 바로 들립니다.
다른 하나는 마지막 절입니다. 앞의 네 연은 가는 길과 그곳의 풍경이고, 마지막 연에서 비로소 두 사람이 야자나무 아래 내려앉습니다. 음악도 거기서 길을 바꿉니다. 앞에서 두 번 지났던 그 길로 가지 않습니다. 「축복된 꿈을 꾸자」는 대목에서 목소리가 이 노래에서 가장 높은 음까지 올라갔다가, 한 번 밀고 곧바로 힘을 빼고, 두 번 잦아들며 늘임표에서 멎습니다. 이 노래에서 소리가 가장 크게 움직이는 곳이 여기입니다.
이 곡은 목소리를 가리지 않습니다. 멘델스존이 처음 적은 자필보는 인쇄된 악보보다 낮은 목소리를 위해 쓰여 있습니다. 남아 있는 옛 녹음을 보아도 콘트랄토가 부른 것, 소프라노가 부른 것, 바리톤이 부른 것이 모두 있습니다. 어느 성부의 노래라고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세 녹음으로 듣기
오래된 음반 셋을 들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셋 다 온라인 아카이브에서 들을 수 있고, 아래 시간은 그 음원을 실제로 재생해 잰 것입니다.
엘리자베트 슈만(소프라노), 관현악 반주, HMV, 1934년. 2분 55초입니다. 피아노가 아니라 관현악이 반주를 맡아서, 젓는 음형이 여러 악기에 나뉘어 들립니다.
하인리히 슐루스누스(바리톤), 프란츠 루프(피아노), 1932년. 2분 21초입니다. 셋 중 가장 짧습니다. 남성의 목소리로 들으면 같은 선율이 어떻게 자리를 옮기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야샤 하이페츠(바이올린), 이지도르 아흐론(피아노), HMV. 3분 40초입니다. 노랫말이 사라지고 선율만 남으면 무엇이 남는지 들어 보실 수 있습니다. 바이올린용으로 고친 편곡인데, 편곡자의 신원은 음반 표기만으로는 갈리지 않습니다.
고쳐서 얻은 흔들림
다시 들어 보시면 두 층이 따로 들립니다.
아래층의 날갯짓은 멘델스존이 처음 종이에 적을 때부터 거기 있었습니다. 위층의 흔들리는 선율은 그가 고쳐 쓴 끝에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노래가 데려가는 강은 시인이 가 보지 않은 강입니다.
이 노래에서 저절로 생긴 것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그것을 알고 들으면 같은 소리가 조금 다르게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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