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공연장에서 들으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3악장이 행진곡으로 치달아 관현악 전체를 쏟아붓고 끝나면, 객석 한쪽에서 박수가 터집니다. 그럴 만합니다. 교향곡은 오래도록 마지막 악장을 가장 크게 끝내는 음악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지휘자는 팔을 내리지 않습니다. 한 악장이 더 남아 있습니다.
그 마지막 악장은 느리고, 낮고, 소리를 하나씩 꺼 가다가 멈춥니다. 큰 화음으로 문을 닫지 않습니다. 소리가 사라지는 것이 이 곡의 마지막 사건입니다.
이 뒤집힘은 작곡가가 첫 줄을 쓰기 전에 정해 둔 것입니다. 그 편지가 남아 있습니다. 뒤에서 보겠습니다.
그런데 이 곡에는 뒤집히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름입니다. 우리가 곡보다 먼저 아는 그 두 글자, 비창(悲愴)은 듣기 전부터 슬픔을 예고합니다. 그런데 이 제목이 어디서 왔는지를 따라가 보면 짚이는 것이 생각보다 얇습니다. 출처는 사실상 한 사람의 회고 하나이고, 그 사람 자신이 같은 책 각주에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증거도 다른 증언도 없다.」
이 글은 그 회고를 따라가 봅니다. 그리고 악보로 돌아와, 앞서 말한 그 뒤집힌 끝이 어떻게 적혀 있는지 봅니다.
•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
• 작품: 교향곡 6번 나단조 작품 74 〈비창(Патетическая · Pathétique)〉
• 작곡: 1893년 2월 착수 · 총보 완성 8월 19일(구력)
• 초연: 1893년 10월 16일(구력) / 10월 28일(신력) · 상트페테르부르크 귀족회관 홀 · 작곡가 본인 지휘
• 헌정: 조카 블라디미르 리보비치 다비도프
• 악장: 아다지오~알레그로 논 트로포 / 알레그로 콘 그라치아(5박자) /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 / 아다지오 라멘토소
• 연주 시간: 43분~58분(녹음에 따라 15분 넘게 갈립니다)
• 처음 듣는 분께: 2악장(5박자 왈츠) → 3악장(행진곡) → 4악장 순서를 권합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초연과 그 아흐레 뒤
1893년 10월 16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귀족회관 홀에서 러시아음악협회 시즌 첫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그날 프로그램에는 새 교향곡 말고도 라로슈의 오페라 서곡, 차이콥스키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모차르트 〈이도메네오〉의 무곡, 리스트의 〈스페인 랩소디〉가 들어 있었습니다. 지휘대에는 작곡가 본인이 섰습니다.
반응은 갈렸습니다. 동생 모데스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교향곡은 마음에 들었다. 박수가 있었고 작곡가를 무대로 불러냈다. 그러나 그의 다른 곡들을 연주한 뒤보다 더 열광적이지는 않았다.」 신문 평도 대체로 찬성이었지만 언제나 단서가 붙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신보』는 「주제 면에서 특별한 독창성이 없다」고 쓰면서도 마지막 악장을 가장 높이 쳤고, 『조국의 아들』은 반대로 3악장을 꼽으면서 「우아함과 외적 기교가 창작의 깊이를 이긴다」고 적었습니다. 두 신문이 좋다고 지목한 악장이 서로 달랐습니다.
이 평들은 모두 모데스트가 1902년에 자기 책에 옮겨 실은 것을 통해 전해집니다. 그가 어느 대목을 고르고 어느 대목을 버렸는지는 지금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차이콥스키 본인은 이틀 뒤 출판업자 유르겐손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이 교향곡에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싫어한 것은 아닌데 어떤 당혹감을 불러일으켰다. 나 자신으로 말하자면 내 다른 어떤 작품보다 이 곡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아흐레 뒤인 10월 25일 새벽,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쉰셋이었습니다.
이 아흐레가 이 곡의 운명을 바꿉니다. 느리게 사라지는 마지막 악장이 작별 인사처럼 읽히기 시작한 것도, 곡에 붙은 이름이 슬픔 쪽으로 기울어 굳은 것도 이 아흐레 뒤의 일입니다. 그 이름부터 보겠습니다.
비창이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형의 회고
제목의 출처로 늘 인용되는 것은 동생 모데스트가 1902년에 낸 전기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생애』 3권입니다. 644쪽에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이튿날 아침 차를 마시러 나가 보니 표트르 일리치는 이미 오래전에 일어나 6번 교향곡 총보를 앞에 놓고 있었다. 그는 유르겐손과의 약속대로 그날 안에 그것을 모스크바로 보내야 했는데 어떤 제목을 붙여야 할지 몰랐다. 번호만 달아 두기도 싫었고, 처음 생각했던 대로 〈표제적〉이라 부르는 것도 싫었다. 〈표제를 줄 생각이 없는데 무슨 표제적인가!〉 나는 〈비극적〉이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망설이는 채로 두고 방을 나왔다. 그때 문득 патетическая라는 제목이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돌아와서, 어제 일처럼 기억나는데, 문간에 서서 그 말을 했다. 〈훌륭해, 모쟈, 브라보, патетическая!〉」
이어지는 문장은 이렇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보는 앞에서 총보에 영원히 남게 된 그 제목을 적어 넣었다.」
장면이 구체적입니다. 차를 마시러 나간 아침, 문간에 선 자세, 형이 한 말까지 옮겨져 있습니다. 백 년 넘게 이 대목이 그대로 인용되어 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만 장면이 구체적이라는 것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별도 증거가 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이 책은 사건으로부터 아홉 해 뒤에 나왔습니다.
형이 같은 쪽 각주에 적어 둔 것
그런데 모데스트는 같은 쪽 아래에 각주를 하나 달았습니다. 그 각주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 제목을 내가 붙였다는 증거도 다른 증언도 없다.」
이어지는 문장은 이렇습니다. 「다만 그것이 10월 16일 이후에 생겼다는 것은, 연주회 프로그램에 그 제목이 없다는 점과, 자필 원고의 표제지에 그것이 나머지와 함께 쓰인 것이 아니라 덧붙여 적힌 것이 분명히 보인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한 줄을 더 붙였습니다. 「내 이름을 이 작품에 갖다 붙이려고 이 사실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그 유명한 명명 장면의 목격자는 모데스트 한 사람이고, 뒷받침할 다른 문서가 없다는 것을 모데스트 자신이 밝혀 두었습니다. 그가 근거로 든 것은 두 가지인데 둘 다 정황입니다. 연주회 프로그램에 제목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자필 표제지에 제목이 나중에 덧붙여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뒤의 것은 원고를 직접 본 그의 관찰이고, 필적을 따로 감정한 기록은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를 갈라 두어야 합니다. 그가 든 두 가지는 제목이 언제 표제지에 올랐는지를 말해 줍니다. 그러나 그 낱말을 누가 처음 골랐는지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모데스트 자신이 그 차이를 각주에 남겼습니다.
자필 총보는 지금 모스크바 러시아국립음악박물관에 있습니다. 그 표제지에는 조카 다비도프에게 바친다는 문구와 함께 「Pathétique 교향곡 6번」이 적혀 있습니다. 이 표기는 제목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해 주지만, 그 제목을 누가 제안했는지까지 확인해 주지는 않습니다.
이 각주는 회고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회고가 거짓이라고 판정할 자료도 없습니다. 다만 그 회고가 어디까지 버티는지를 쓴 사람이 직접 표시해 둔 것입니다.
초연 넉 주 전에 이미 쓰이던 그 낱말
모데스트의 이야기와 어긋나 보이는 문서가 하나 있습니다. 출판업자 유르겐손이 차이콥스키에게 보낸 편지인데, 날짜가 1893년 9월 20일입니다. 초연보다 넉 주쯤 앞섭니다. 거기에 이런 줄이 있습니다. 「pathétique와 W. Davidoff 또는 Dawidow는 어떻게 할까요?」
표제지에 들어갈 두 항목, 곧 제목과 헌정 대상의 표기를 묻는 말입니다. 초연 다음 날 제목이 정해졌다는 이야기와는 날짜가 맞지 않습니다. 차이콥스키 연구 자료를 모아 온 전문 사이트도 이 편지를 근거로 모데스트의 주장이 의문시된다고 적고 있습니다.
다만 밝혀 둘 것이 있습니다. 이 줄은 영어 번역으로 확인한 것이고, 러시아어 원문 전체를 직접 펼쳐 보지는 못했습니다. 앞뒤 문맥에서 이 낱말이 어떤 자격으로 쓰였는지까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두 이야기가 반드시 부딪히는 것도 아닙니다. 연주회 프로그램에 제목이 없었다는 모데스트의 설명과, 출판을 준비하던 사적인 편지에 그 낱말이 오가고 있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습니다. 인쇄물에 오르는 것과 편지에서 쓰이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초연 뒤의 문서도 있습니다. 10월 18일, 차이콥스키는 유르겐손에게 표제지 문구를 직접 불러 줍니다. 「부디, 친구여, 교향곡 표제지에 다음을 넣어 주게. 블라디미르 리보비치 다비도프에게 / Symphonie Pathétique / (6번) / op.??? / 표트르 차이콥스키 작. 늦지 않았기를 바라네!」 이 편지는 전집판 17권 205쪽에 실려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가 갈립니다. 모데스트의 1902년 책에 실린 같은 편지에는 「Symphonie Pathétique」 줄이 없습니다. 헌정 대상과 번호와 서명만 있습니다. 그리고 모데스트는 그 편지 바로 앞에 이런 설명을 붙였습니다. 「새 제목을 붙인 총보를 모스크바로 보낸 뒤 표트르 일리치는 그 제목을 주기를 그만두었다.」
두 판본의 본문이 다릅니다. 여기까지가 문서로 확인되는 것입니다. 왜 다른지, 누가 어떤 판단으로 그렇게 인쇄했는지를 말해 주는 자료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거기서 멈춥니다. 다만 독자가 알아 둘 것은 이것입니다. 〈비창〉이라는 이름의 출처를 물을 때 우리가 쥐고 있는 것은 목격자 한 사람의 회고와, 그 회고에 그 사람이 직접 단 단서와, 날짜가 어긋나는 편지 한 통입니다.
이름의 내력은 이렇게 흐릿합니다. 그러나 악보는 그렇지 않습니다.
느린 마지막 악장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도입에서 말한 그 뒤집힌 끝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마지막 악장이 느린 것은 죽음을 앞두고 붙은 우연이 아니라 착수 시점의 설계였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편지에 있습니다.
1893년 2월 11일, 곡을 쓰기 시작하던 무렵 차이콥스키는 조카 다비도프에게 편지를 씁니다. 「여행 중에 또 다른 교향곡의 착상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표제가 있는 것인데, 다만 모두에게 수수께끼로 남을 표제다. 알아맞혀 보라지.」 그리고 같은 편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형식 면에서 이 교향곡에는 새로운 것이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피날레가 요란한 알레그로가 아니라 그 반대로 가장 길게 늘어지는 아다지오가 될 것이다.」
스케치가 끝난 것이 3월 24일, 총보가 완성된 것이 8월 19일입니다. 느린 피날레는 다 쓰고 나서 붙인 해석이 아니라 첫 줄을 쓰기 전에 정해져 있었습니다. 표제의 내용은 끝내 밝히지 않았지만, 형식에 관해서는 미리 말해 둔 셈입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악보에서 눈으로 확인되는 것
1악장 첫머리에서 바순이 낮은 음을 혼자 끌고 나오는 대목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 「ppppp가 적혀 있다」는 말이 자주 따라붙습니다. 실제로 총보를 펼쳐 보면 다릅니다. 1악장 첫 마디 바순의 지시는 pp입니다. 여린 정도를 다섯 개, 여섯 개까지 쌓아 올린 자리는 따로 있습니다.
1악장 160마디입니다. 이 마디에 이르기까지 악보에는 pppp가 여러 악기에, 그다음 현에 ppppp가, 그리고 바순 독주에 p를 여섯 개 겹쳐 쓴 지시가 단계별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앞에는 「ritardando molto」가 걸려 있고, 그 직후가 알레그로 비보로 전 관현악이 ff로 터지는 자리입니다. 가장 여린 지점 바로 뒤에 가장 센 지점을 붙여 놓은 것입니다.
다만 밝혀 둘 것이 있습니다. 이 확인은 1928년 오일렌부르크 소형 총보 한 판본에서 한 것입니다. 유르겐손 초판이나 자필 총보, 전집판에서도 p가 여섯 개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오일렌부르크판에는 1악장 트럼펫의 조성이 잘못 표기된 곳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 대목은 「작곡가가 여섯 개를 썼다」가 아니라 「이 판본에는 여섯 개로 인쇄되어 있다」로 읽는 것이 맞습니다.
〈비창〉 4악장이 시작되는 쪽입니다. 위쪽 관악기와 타악기 줄은 거의 비어 있고 아래 현악기에서 음악이 시작됩니다. 3악장과 이 쪽 사이에는 이어서 연주하라는 지시가 없습니다. 에른스트 오일렌부르크 소형 총보(라이프치히, 1928).
3악장은 전 관현악이 함께 울리는 행진곡으로 끝나고, 4악장은 새 쪽에서 「Finale · Adagio lamentoso」로 시작합니다. 총보에 attacca 지시가 없습니다. 악보 자체는 두 악장 사이의 정지를 막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한 박수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인데, 1893년 초연에서 실제로 그랬는지는 1차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악장에는 평소 편성에 없는 악기가 하나 들어옵니다. 탐탐입니다. 총보에는 「Tam-tam (ad libitum)」, 곧 선택해서 쓰라고 인쇄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넣어야 하는 악기가 아닌데도 이 악장에 자리를 얻었습니다.
곡의 마지막 쪽에서는 악기가 하나씩 빠집니다. 남는 것은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뿐이고, 「ritenuto」와 「diminuendo」를 거쳐 pppp로 페르마타와 함께 끝납니다. 연주자가 활을 멈추는 순간이 눈에 보입니다.
〈비창〉의 마지막 음악 쪽입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줄이 줄어들고, 맨 아래 묶음에 남은 넷은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입니다. 에른스트 오일렌부르크 소형 총보(라이프치히, 1928).
처음 들으신다면 세 곳만 기다려 보셔도 됩니다. 1악장 160마디에서 소리가 거의 없어졌다가 갑자기 터지는 자리, 3악장이 끝나 정말 다 끝난 것처럼 들리는 자리, 그리고 4악장 마지막 1분입니다.
한 가지를 덧붙이면, 이 곡의 처음과 끝은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1악장 첫 마디에서 바순이 낮은 음을 꺼낼 때 그 아래를 받치는 것은 콘트라베이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쪽에서 모두가 빠져나간 뒤 남는 것도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입니다. 낮은 현이 이 곡을 열고 닫습니다. 1악장 첫 30초와 4악장 마지막 30초를 이어서 들어 보시면 그 대응이 그대로 들립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녹음, 15분이 갈린다
이 곡은 연주 시간이 크게 벌어집니다. 아래 셋만 놓고 보아도 전곡 기준 15분 넘게 차이가 납니다.
-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 레닌그라드 필하모닉(1960년 11월, 빈 무지크페라인 대홀 · DG) · 전곡 43분 22초. 4악장 9분 38초. 가장 빠른 축입니다.
- 테오도르 쿠렌치스 · 무지카 에테르나(2015년 2월, 베를린 푼크하우스 · Sony) · 전곡 46분 18초. 1악장이 19분 40초로 길고 4악장은 10분 21초입니다.
- 레너드 번스타인 · 뉴욕 필하모닉(1986년 8월 16일 실황, 에이버리 피셔홀 · DG) · 전곡 58분 30초. 4악장이 17분 11초입니다.
벌어지는 자리는 거의 4악장 하나입니다. 므라빈스키 9분 38초와 번스타인 17분 11초는 1.78배 차이입니다. 1악장은 17분대에서 22분대, 2악장과 3악장은 그보다 훨씬 좁습니다.
더 뚜렷한 것은 번스타인 자신의 두 녹음입니다. 1964년 컬럼비아 녹음에서 4악장은 11분 38초였는데, 1986년 실황에서는 17분 11초가 됩니다. 같은 지휘자, 같은 악단인데 5분 33초가 늘었습니다. 이 악장을 얼마나 끌 것인가는 악보가 정해 주지 않고 지휘자가 정한다는 뜻입니다.
처음 들으신다면 므라빈스키와 번스타인을 4악장만 이어서 들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같은 음표가 얼마나 다른 시간이 될 수 있는지가 그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다시 그 박수 자리로
처음에 말한 장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3악장이 끝나고 박수가 터지는 그 자리 말입니다.
그 박수는 실수가 아닙니다. 교향곡이 그렇게 끝나는 것이 오랜 관례였고, 차이콥스키는 그 관례대로 들리는 악장을 거기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한 악장을 더 붙였습니다. 그가 조카에게 편지를 쓴 것이 1893년 2월, 곡을 막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그때 이미 「피날레가 요란한 알레그로가 아니라 그 반대로 가장 길게 늘어지는 아다지오가 될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그 아다지오의 끝에서 악기가 하나씩 빠지고,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만 남고, 그것도 사라집니다. 표제가 무엇이었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도 회고 하나에 기대어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악보에 적힌 것뿐입니다. 가장 큰 소리 다음에 가장 작은 소리를 놓기로 한 결정, 그것은 처음부터 이 곡의 설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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