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아베 마리아, 이 노래에 라틴어 기도문은 한 글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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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에서, 장례미사에서, 성탄절 성당에서 이 선율이 울립니다. 성악가가 라틴어로 부르는 일이 많아서, 슈베르트가 가톨릭의 성모송 기도문에 곡을 붙였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가 1825년에 쓴 원곡의 가사에는 라틴어가 두 낱말밖에 없습니다. 맨 앞의 「아베 마리아」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독일어입니다. 우리가 아는 라틴어 기도문은 그 선율에 나중에 얹힌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곡이 종교와 무관한 노래였던 것도 아닙니다. 원래 가사도 성모에게 드리는 기도입니다. 다만 기도하는 사람이 성당의 신자가 아니라, 쫓기는 아버지를 데리고 바위굴에 숨은 딸입니다.

곡 한눈에 보기
• 원제: 〈엘렌의 세 번째 노래〉, 부제 〈성처녀에게 바치는 찬가〉
• 작품번호: D 839, 작품 52의 여섯째 곡
• 작곡: 1825년 · 출판: 1826년, 빈
• 편성: 고성 독창과 피아노
• 조성·박자: 내림나장조, 4분의 4박자, 매우 느리게
• 가사: 월터 스콧의 서사시를 아담 슈토르크가 독일어로 옮긴 것

이름은 아베 마리아가 아니었다

악보에 인쇄된 제목은 〈엘렌의 세 번째 노래〉입니다.

1825년 슈베르트는 스코틀랜드 작가 월터 스콧의 서사시 〈호수의 여인〉에서 일곱 대목을 골라 곡을 붙였습니다. 원작은 1810년에 영어로 나왔고, 슈베르트가 본 것은 아담 슈토르크가 독일어로 옮긴 번역본이었습니다. 이 일곱 곡이 이듬해 빈에서 작품 52로 묶여 나왔는데, 오늘날 〈아베 마리아〉로 불리는 곡은 그중 여섯째입니다. 제목 아래에는 〈성처녀에게 바치는 찬가〉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습니다.

초판은 독창과 피아노를 위한 가곡이었고, 독일어와 영어 가사가 나란히 인쇄돼 있었습니다. 라틴어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오케스트라 반주의 종교곡은 원래 모습이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는 짚어 두어야 합니다. 「슈베르트는 이 곡을 아베 마리아라고 부른 적이 없다」는 설명이 널리 퍼져 있는데, 그가 남긴 편지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1825년 9월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 곡을 가리켜 「제가 첫 편지에서 이미 말씀드린 아베 마리아」라고 적었습니다. 출판 표제가 아니었을 뿐, 본인도 그렇게 불렀습니다.

라틴어는 두 낱말뿐

가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베 마리아, 자애로운 동정녀여. 한 소녀의 간구를 들어주소서. 굳고 사나운 이 바위에서 제 기도가 당신께 불려 가게 하소서. 사람들이 아무리 잔인해도 우리는 아침까지 안전히 잠들겠습니다.

라틴어인 것은 맨 앞의 두 낱말뿐입니다. 그 뒤로는 독일어가 이어집니다. 우리가 아는 라틴어 기도문의 본문은 이 가사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세 절이 모두 「아베 마리아」로 열리고 다시 「아베 마리아」로 닫히는데,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기도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사정입니다.

바위굴에서 아버지를 위해 부르는 노래

가사를 알고 들으면 장면이 구체적으로 보입니다.

〈호수의 여인〉에서 엘렌 더글러스와 아버지는 쫓기는 처지입니다. 두 사람이 몸을 숨긴 곳은 벤베뉴산의 가장 어두운 협곡에 있는 굴입니다. 켈트어 이름을 가진 그곳을 색슨족은 도깨비굴이라 불렀습니다. 2절에 나오는 굳은 바위와 답답한 바위굴이 바로 이 자리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엘렌이고, 반주는 음유시인 앨런베인의 하프입니다. 시인은 노래하는 이가 누구인지 확정하지 않고 엘렌이거나 천사가 노래한다고 씁니다. 그리고 이 노래를 엿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엘렌을 사랑하지만 그날 아침 그 마음을 전쟁으로 지우겠다고 맹세한 로더릭 두입니다. 그는 노래가 끝난 뒤 칼에 기댄 채 서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세 번 중얼거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행에서 기도의 대상이 분명해집니다. 소녀는 자기를 위해 빌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빕니다. 연인을 위한 기도로 소개되는 글이 더러 있는데, 마지막 행이 가리키는 것은 아버지입니다.

신심을 말한 편지

슈베르트 자신은 이 곡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1825년 7월, 그는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던 중 슈타이어에서 부모에게 편지를 씁니다. 스콧의 시로 만든 새 가곡들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전하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신심에 몹시 놀라워했는데, 그것을 성처녀께 바치는 찬가 하나에 담아 표현했고 그것이 듣는 이들의 마음을 경건함에 젖게 하는 모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까닭을 스스로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기는 경건을 억지로 짜내지 않으며, 저도 모르게 사로잡히는 때가 아니면 그런 찬가나 기도를 결코 작곡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곡을 두고 두 가지가 모두 사실입니다. 세속 서사시에서 가져온 일곱 곡짜리 가곡집의 한 곡인 것도 사실이고, 작곡가 본인이 자기 신심의 표현이라고 여긴 것도 사실입니다. 한쪽만 말하면 어느 쪽으로든 사실이 아니게 됩니다.

라틴어는 언제 얹혔나

이 질문에는 확실한 답이 없습니다.

누가 언제 처음 라틴어 기도문을 이 선율에 붙였는지는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것은 양쪽 끝입니다. 1826년 초판에는 라틴어가 없었고, 20세기 초의 악보에는 이미 영어와 독일어와 라틴어가 세 줄로 나란히 인쇄돼 있습니다. 그 사이 어느 시점에 관행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까지가 지금 말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두 텍스트가 잘 붙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원래 가사가 이미 「아베 마리아」로 열리고 닫히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라틴어 기도문은 음절 수가 맞지 않아 단어를 되풀이하며 다시 배분해야 하지만, 후렴이 떨어지는 자리는 그대로 쓸 수 있었습니다.

덧붙이면 디즈니의 1940년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에 쓰인 가사는 라틴어도 독일어도 아닙니다. 미국 시인 레이철 필드가 따로 쓴 영어 가사입니다. 이 곡이 어느 한 언어에 매여 있지 않게 된 사정이 여기서도 보입니다.

성악가보다 피아노를 먼저

다음에 들으실 때는 목소리보다 피아노를 먼저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곡은 내림나장조에 4분의 4박자이고, 악보에 인쇄된 빠르기 지시는 매우 느리게입니다. 오른손은 쉼표 하나 뒤에 분산화음을 세 음씩 묶어 끊임없이 굴리고, 왼손은 낮은 음을 박마다 새로 내려놓습니다. 전주 두 마디 동안 목소리는 쉽니다. 노래가 들어온 뒤에도 이 반주는 한 번도 멈추지 않습니다.

그 위에서 목소리는 훨씬 느리게 움직입니다. 피아노가 계속 흔들리는 동안 사람은 그 위에서 천천히 말을 건네는 것처럼 들립니다. 「아베 마리아」라는 두 낱말에서 선율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다가 곧 다시 내려옵니다.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이는 동작에 가깝습니다.

세 절은 같은 음악입니다. 절이 바뀌어도 선율과 반주가 되풀이되고, 마지막 절의 끝맺음만 다르게 잦아듭니다. 그래서 이 곡의 핵심은 큰 변화가 아니라 같은 기도가 세 번 되풀이되며 쌓이는 데 있습니다. 목소리가 끝난 뒤에도 반주의 흔들림이 잠시 더 남습니다.

원작에서 엘렌이 하프 반주에 맞추어 부른다는 설정을 알고 들으면 이 끊이지 않는 반주가 달리 들리기도 합니다. 다만 악보에 하프를 흉내 내라는 지시가 적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극 중 설정과 악보에 적힌 것은 다른 층위의 이야기입니다.

찾아 들을 녹음 셋

가능하면 처음에는 독일어 원가사에 피아노 한 대로 부른 연주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바버라 보니가 부르고 제프리 파슨스가 반주한 1994년 텔덱 녹음은 출발점으로 좋습니다. 높은 소프라노가 음을 가볍게 이어 가고 피아노가 앞에 나서지 않아 가사와 선율의 움직임을 따라가기 쉽습니다.

같은 곡을 더 낮고 짙게 듣고 싶다면 재닛 베이커가 부르고 제럴드 무어가 반주한 1970년 이엠아이 녹음이 있습니다. 메조소프라노여서 같은 선율이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보니 쪽이 소녀의 맑은 호소에 가깝다면 이쪽은 기도의 무게가 먼저 들립니다.

라틴어로 부르는 쪽이 궁금하시면 베냐미노 질리가 1948년에 오르간 반주로 남긴 녹음이 있습니다. 음반 기록에 가사가 라틴어라고 명기돼 있고, 반주도 피아노가 아니라 오르간과 현과 하프입니다. 같은 선율이 성당의 곡으로 옮겨 간 모습을 그대로 들려줍니다.

두 낱말 다음에 오는 것

이 곡은 오늘날 교회와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원래 작품의 경계를 넘어 살고 있습니다. 제목이 바뀌었고 가사가 바뀌었고 피아노 대신 다른 악기가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825년으로 돌아가면 출발점은 훨씬 작습니다. 바위 사이에 숨은 딸이 있고 곁에 쫓기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딸은 아침까지만 무사하게 해 달라고 빕니다.

다음에 이 곡을 들으실 때는 「아베 마리아」 다음에 무엇을 부르는지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두 낱말 뒤에서 시작되는 것은 라틴어 기도문이 아니라 한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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