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 계주가 시작될 때, 광고에서 무언가 우스꽝스럽게 바빠질 때 흔히 깔리는 선율이 있습니다. 발을 높이 차올리는 그 춤곡입니다. 관현악 연주회에서는 그 대목이 10분쯤 되는 서곡의 마지막에 몰아치는 형태로 나오고, 프로그램에는 대개 오펜바흐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그런데 그 서곡을 오펜바흐는 쓰지 않았습니다.
흔히 〈천국과 지옥〉이라 불리는 이 곡의 본디 제목은 〈지옥의 오르페〉(Orphée aux enfers)입니다. 1858년 10월 21일 파리 부프파리지앵 극장에서 초연된 2막 4장의 오페라부프이고, 오르페우스 신화를 뒤집어 놓은 희극입니다. 지금 연주회장에서 들리는 그 긴 서곡은 이 초연본에 없었습니다.
그 서곡은 1860년 빈에서 카를 빈더라는 지휘자가 새로 쓴 것입니다. 빈더가 만든 그 무대는 1863년을 끝으로 다시 오르지 않았지만, 거기서 떨어져 나온 서곡만은 오늘도 오펜바흐의 곡으로 연주됩니다.
•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
• 작품명: 〈지옥의 오르페〉(Orphée aux enfers) · 한국에서는 흔히 〈천국과 지옥〉
• 초연: 1858년 10월 21일, 파리 부프파리지앵 극장
• 대본: 엑토르 크레미외, 뤼도비크 알레비
• 1874년 개정: 4막 12장의 오페라페에리로 확대, 파리 게테 극장
• 연주회용 서곡: 카를 빈더 작곡, 1860년부터 빈에서 연주
처음 들을 곳
• 서곡 마지막의 빠른 춤곡. 흔히 캉캉이라 부르는 그 대목이고, 이것은 오펜바흐가 쓴 것이 맞습니다.
| 자크 오펜바흐. 펠릭스 나다르가 찍은 사진이다. 1858년 그는 이 작품을 올린 부프파리지앵 극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었다. |
서곡 없이 시작한 오페라
오펜바흐는 자기 작품 앞에 긴 서곡을 붙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지옥의 오르페〉도, 〈아름다운 엘렌〉도, 〈파리의 생활〉도 짧은 도입부로 시작해 곧바로 다음 곡으로 이어집니다. 비평판을 만든 장크리스토프 케크는 그 도입부들이 다음 대목으로 곧장 넘어가도록 짜여 있어서 연주회에서 따로 떼어 연주하기에는 맞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오펜바흐가 택한 것은 지휘자들이 좋아하는 박수가 아니라 극의 속도였다는 것입니다.
1858년 도입부의 재료는 두 개뿐입니다. 제3곡 아리스테의 목가 도입부와 제15곡 미뉴에트의 앞부분. 그것으로 문을 열고 바로 무대가 시작됩니다.
여기에는 사정도 있었습니다. 오펜바흐가 운영하던 부프파리지앵은 허가 조건이 등장인물 수를 묶어 두고 있었고, 그 제한이 풀린 1858년에야 이만한 규모의 작품에 착수할 수 있었습니다. 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도 서른 명 남짓이 들어가는 크기여서, 초연 편성은 플루트 둘에 오보에 하나, 클라리넷 둘, 바순 하나, 호른 둘, 코르넷 둘, 트롬본 하나에 타악기와 현이 전부였습니다. 큰 서곡을 쓰지 않은 것은 취향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가진 무대의 크기이기도 했습니다.
대본에는 또 하나 비어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이 작품의 대본은 엑토르 크레미외와 뤼도비크 알레비가 함께 썼는데, 초연 때 알레비는 자기 이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외교 쪽에서 자리를 잡아 가던 참이라 희극 대본에 이름이 붙는 것을 피한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이름이 빠지거나 다른 이름으로 붙는 일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초연 두 달 뒤의 지면 싸움
초연은 1858년 10월 21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6일 자 『주르날 데 데바』에 이 작품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연재 비평이 실립니다. 그 지면에는 이 오르페가 글루크에게서 빼앗아 온 것이라는 문장과, 사람들이 오르페를 두고 천박한 익살이라 부른다는 문장이 나란히 있습니다.
엿새 뒤인 12월 12일, 『피가로』 5면에 반박문이 실립니다. 대본을 쓴 엑토르 크레미외가 직접 쓴 글이고 말미에 그의 서명이 있습니다. 그는 상대를 쥘 자냉이라고 지목하면서, 베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를 할퀴는 쪽은 오히려 그들을 진지하게 흉내 내겠다는 사람이라고 받아쳤습니다. 라틴어를 아는 척한다는 구절도 있습니다.
다만 12월 6일 기사 자체에는 서명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크레미외가 자냉을 상대로 지목했다는 것까지가 지면으로 확인되는 범위입니다.
같은 12월 6일 자 지면 한쪽에는 공연란도 실려 있습니다. 오르페가 곧 몇십 번째 공연을 맞는데 여전히 같은 기세로 연주되며 만원을 이어 간다는 짧은 문장입니다. 공격하는 기사와 흥행을 알리는 줄이 같은 신문 안에 들어 있었던 셈입니다. 이 작품은 초연 시즌에만 228회를 올렸습니다.
총보 없이 올린 빈 무대
1860년 3월 17일, 빈의 카를테아터가 이 작품을 올립니다. 극장을 이끌던 요한 네스트로이가 직접 번안했고 유피테르 역도 자신이 맡았습니다.
이 공연에는 오펜바흐의 허락이 없었습니다. 뒷날의 자료들은 이 상연을 두고 무단이라고도 하고 당시 오스트리아법으로는 문제가 없었다고도 해서 판단이 갈리는데, 어느 쪽이든 작곡가와 상의하지 않고 올린 무대였다는 것은 같습니다.
문제는 허락만이 아니었습니다. 빈에는 총보가 없었습니다. 극장은 파리에서 피아노 축약보를 들여왔고, 카펠마이스터였던 카를 빈더가 그것을 재료로 관현악을 다시 입혔습니다. 피아노 두 줄로 압축된 악보를 펴서 오케스트라의 소리로 되돌리는 작업입니다. 당시 빈에서 나온 한 잡지는 오펜바흐의 다른 작품을 두고 이미 이렇게 적었습니다. 총보를 주문하지 않고 피아노 악보를 사는 데 그친 것은 유감이고, 오펜바흐는 관현악에서 특히 뛰어나 새롭고 희극적인 음향을 자주 만드는데 그것들이 여기서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빈더 씨가 자기 과제를 제법 잘 해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빈더는 하나를 더 했습니다. 오페라 본편을 되살리는 일과 별개로, 연주회장에 어울리는 서곡을 새로 썼습니다. 없던 곡을 만든 것이지 원래 있던 것을 복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 서곡이 1860년부터 빈에서 연주되기 시작합니다.
빈더 서곡의 편성은 오펜바흐의 1858년 파리 편성과 견주면 훨씬 큽니다. 호른 넷에 트롬본 셋, 하프까지 들어갑니다. 서른 명 남짓 들어가는 파리의 피트를 위해 쓴 음악이 아니라, 큰 홀에서 문을 여는 음악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 카를 빈더, 1841년 석판화, 대영박물관 소장, P 1870-1008-1100. 요제프슈타트 극장 카펠마이스터 시절의 모습이다. 오늘 연주되는 서곡을 쓴 사람이지만 그 이름이 프로그램에 오르는 일은 드물다. |
카를 빈더가 남긴 것
카를 빈더는 1816년 빈에서 태어났습니다. 1839년 무렵부터 요제프슈타트 극장의 카펠마이스터였고, 1850년대 초에 카를테아터로 옮겨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 있었습니다. 무대를 위해 쓴 작품이 약 200편입니다. 네스트로이와 함께 일했고 오페라 패러디로 이름이 났습니다. 오스트리아 음악사전은 그를 빈 오페레타의 선구자로 적으면서, 그 근거로 오펜바흐 작품의 편곡을 듭니다.
그는 이 서곡을 쓴 해에 죽었습니다. 1860년 11월 5일, 빈에서였습니다.
여기서 이 이야기의 모양이 한 번 뒤집힙니다. 빈더와 네스트로이가 만든 그 무대는 1863년 이후로 공연되지 않았고 녹음도 남지 않았습니다. 악보와 대본 필사본은 남아 있으니 자료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소리로는 끊겼습니다. 빈더가 남긴 총보는 2019년에 빈 시립도서관이 쾰른의 경매에서 사들였습니다. 그전에 없던 자료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흩어져 있던 것이 공공 기관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 무대에서 떨어져 나와 계속 연주된 것은 서곡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가 세계로 퍼졌습니다.
오펜바흐가 남기지 않은 말
케크는 오펜바흐가 이 서곡의 연주를 반대하지 않았다고 두 차례 적었습니다. 그리고 빈더의 서곡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오펜바흐가 14년 뒤에 직접 쓴 대형 서곡보다 훨씬 자주 연주되게 되었다고 덧붙입니다. 그 명성의 일부는 프랑스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인 독일 쪽 출판 유통 덕분이었다고도 했습니다.
여기서 멈추는 편이 정확합니다. 오펜바흐가 왜 막지 않았는지를 말해 주는 편지나 계약서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반대하지 않았다는 진술은 비평판 편집자의 후대 서술이고, 그 근거가 될 당대 문서는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록이 없다는 것과 그가 기꺼워했다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다만 그가 빈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한 줄 전합니다. 1877년 파리에서 나온 한 책이 그의 말을 이렇게 옮겨 두었습니다. 나는 내 음악을 파리를 위해 쓰지만, 그것을 빈에서 듣는다.
1874년 2월, 오펜바흐는 이 작품을 4막 12장으로 크게 늘려 파리 게테 극장에 다시 올립니다. 이때는 자기 손으로 대형 서곡을 썼습니다. 그러나 지금 연주회에서 더 자주 울리는 것은 그쪽이 아닙니다.
비평판이 붙인 이름
오펜바흐 비평판을 만든 케크는 빈더의 서곡을 빈 판본 부록으로 실으면서 한 단어를 붙였습니다. 아포크리팔, 곧 외전입니다. 정경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이 오스트리아 카펠마이스터의 솜씨는 의심할 여지가 없고, 뒤에 나온 다른 편곡들과 달리 원작의 정신에 충실하다고 적었습니다. 비난이 아니라 자리를 정해 준 것입니다.
그가 붙인 권고는 이렇습니다. 이 서곡은 연주해도 좋지만 오펜바흐의 원래 도입부를 대체하지 말고 그 앞에 덧붙여 연주하라는 것입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둘 다 제자리에 두라는 뜻입니다. 실제 연주회에서 이 권고대로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 쥘 셰레가 그린 〈지옥의 오르페〉 포스터. 1874년 게테 극장 재연을 위한 것이다. 1858년 초연 포스터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했다. |
갈롭이 캉캉이 되기까지
서곡 끝에 몰아치는 그 춤곡의 이름은 갈롭 앵페르날, 지옥의 갈롭입니다. 이것은 오펜바흐가 쓴 것이 맞습니다.
다만 초연 때 이 곡이 캉캉이라 불린 것은 아닙니다. 캉캉은 따로 있던 춤이었고, 이 오페라보다 먼저 있었습니다. 1820년대 파리 무도회의 정해진 춤이 카드리유였는데, 남자들이 그 동작을 즉흥으로 흐트러뜨린 것을 소란이라는 뜻의 샤위라 불렀습니다. 1850년 무렵부터는 여성 무용수들이 그것을 가져가면서 무도장의 간판이 되었습니다. 오펜바흐의 갈롭이 그 춤의 반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868년의 일이라고 물랭루주 쪽은 적고 있습니다. 초연으로부터 10년 뒤이고, 오펜바흐가 살아 있을 때입니다.
연도를 맞춰 보면 흔한 오해 하나가 정리됩니다. 물랭루주가 문을 연 것은 1889년입니다. 〈지옥의 오르페〉 초연으로부터 31년 뒤이고, 오펜바흐가 세상을 떠나고 9년 뒤입니다. 이 곡은 그 무대를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 그 무대가 이미 있던 곡을 가져다 쓴 것입니다.
어느 서곡을 듣고 있는가
다른 곡이라면 지휘자와 악단을 보고 고르면 됩니다. 이 곡은 하나를 더 봐야 합니다. 그 녹음이 어느 서곡을 연주하는가입니다. 같은 제목이 붙어 있어도 길이부터 크게 다릅니다.
하워드 그리피스,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 cpo, 2019년 베를린 녹음
이 음반의 마지막 트랙이 빈더의 연주회용 서곡이고, 트랙 크레디트에 작곡자가 카를 빈더로 찍혀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 서곡을 그 이름으로 확인하며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미셸 플라송, 툴루즈 카피톨 관현악단, EMI, 1978년
첫 트랙의 서곡이 2분 53초입니다. 빈더판이 아니라 오펜바흐 쪽 서곡이고, 그것도 전곡이 아니라 뒷부분입니다. 앞의 음반과 이어서 들으면 길이 차이가 먼저 귀에 들어옵니다.
마르크 민코프스키, 리옹 오페라 관현악단, EMI, 1997년 리옹 녹음
첫 트랙이 3분 05초이고 트랙 정보에 빈더의 이름은 없습니다. 빈더판이 아니라는 것까지는 분명합니다.
고르실 때는 트랙 길이와 작곡자 크레디트를 함께 보시는 편이 확실합니다. 10분에 가까우면 빈더 쪽, 3분 안팎이면 오펜바흐 쪽일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길이만으로 판을 확정할 수는 없으니, 크레디트에 빈더의 이름이 있는지를 마지막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천국과 지옥과 지옥의 오르페는 같은 곡인가요?
A. 같은 작품입니다. 원제는 〈지옥의 오르페〉(Orphée aux enfers)이고 한국에서는 흔히 〈천국과 지옥〉으로 불립니다. 1858년 파리에서 초연된 오페라부프입니다.
Q. 운동회에서 틀던 그 곡이 맞나요?
A. 서곡 마지막에 나오는 빠른 춤곡이 그것입니다. 본디 이름은 갈롭 앵페르날이고 오페라 안에 있는 춤곡입니다.
Q. 캉캉 선율도 오펜바흐가 쓴 것이 아닌가요?
A. 캉캉 선율은 오펜바흐가 쓴 것이 맞습니다. 오펜바흐가 쓰지 않은 것은 그 앞에 놓인 10분짜리 연주회용 서곡이고, 그것을 쓴 사람은 1860년 빈의 카를 빈더입니다.
Q. 서곡이 음반마다 길이가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서로 다른 곡을 연주하기 때문입니다. 빈더가 쓴 연주회용 서곡, 오펜바흐의 1858년 짧은 도입부, 오펜바흐가 1874년에 쓴 대형 서곡이 각각 따로 있습니다. 해석 차이가 아니라 곡 자체가 다릅니다.
Q. 오펜바흐는 빈더가 쓴 서곡을 알고 있었나요?
A. 비평판 편집자는 오펜바흐가 그 연주를 반대하지 않았다고 적었습니다. 다만 그 판단의 근거가 될 편지나 계약서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확인되는 것과 전해지는 것을 나누어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다시 틀 이유
다음에 이 곡을 틀 때는 시작부터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트럼펫이 문을 열고, 독주 악기가 혼자 한참을 노래하고, 느린 대목이 지나간 뒤에야 그 춤곡이 옵니다. 그 앞의 10분 가까운 시간이 빈의 한 극장이 총보 없이 무대를 올리던 사정에서 나온 음악입니다.
그 무대는 다시 오르지 않았습니다. 번안도 다시 입힌 관현악도 1863년에 멈췄고, 유피테르를 연기하던 네스트로이는 그보다도 앞선 186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계속 울린 것은 문을 여는 음악 하나이고, 그것이 작곡가의 이름을 달고 160년을 더 연주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이름이 비는 자리가 여럿입니다. 초연 대본에서 한 사람이 자기 이름을 빼고, 빈에서는 허락 없이 무대가 올라가고, 거기서 나온 서곡은 작곡가가 아닌 사람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작품은 온전한 채로만 전해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다시 오르지 않은 무대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 하나가 대신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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