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로엔그린〉 혼례의 합창 · 결혼식 입장곡이 된 그 노래는 신방으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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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장에서 그 선율이 시작되면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오르간이거나 현악 몇 대이고, 사람 목소리는 대개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선율뿐입니다.

그런데 이 곡은 원래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네 성부로 나뉘어 함께 부르고, 그 노래에는 가사가 붙어 있습니다. 악보를 펼치면 그 가사 위에 무대지시가 한 문단 적혀 있고, 거기에 이 노래가 어디에서 울리는 노래인지가 그대로 쓰여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가사와 그 자리를 따라갑니다.

신부가 들어올 때 나오는 그 곡은 무엇인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3막 첫머리에 나오는 합창입니다. 오늘날 「혼례의 합창」이라 부르는 대목인데, 악보에 적힌 이름은 혼례의 노래(Brautlied)이고 Treulich geführt는 그 첫 구절입니다. 대본을 쓴 사람도 바그너 본인입니다. 초연은 1850년 8월 28일 바이마르 궁정극장에서 있었고 프란츠 리스트가 지휘했습니다. 그날은 괴테가 태어난 날이었고, 리스트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리스트가 바그너에게 보낸 편지에 첫 공연 날짜를 그날로 정했다는 말과 함께 그날이 괴테의 생일이라는 말이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정작 바그너 자신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수배 중이라 독일에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 오페라의 무대를 처음 본 것은 11년이 지난 1861년 빈에서였습니다.

결혼식에서 쓰이는 클래식 두 곡을 헷갈리는 분이 많은데, 구별은 자리로 하면 간단합니다. 오늘날 흔히 신부가 들어올 때 쓰는 쪽이 이 곡이고, 식이 끝나고 나갈 때 쓰는 쪽은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입니다. 오페라 안에서 보면 둘의 성격은 아예 다릅니다. 이쪽은 사람이 부르는 합창이고, 저쪽은 연주만 하는 행진곡입니다. 다만 예식장에서는 그 차이가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듣는 것은 대개 목소리가 빠진 편곡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것이 최근 일이 아닙니다. 초연으로부터 14년 뒤인 1864년에 미국에서 이 곡의 피아노 편곡이 나왔습니다. 그 뒤 런던에서 오르간 편곡 악보가 두 종 나왔습니다. 한 종은 웨스트브룩이, 다른 한 종은 르메어가 옮겼습니다. 웨스트브룩 판의 첫 쪽을 보면 보표가 세 단입니다. 손으로 치는 두 단 아래에 발로 밟는 단이 하나 더 있고, 조와 박자는 원래 합창과 같습니다. 노래에서 사람만 빠진 형태가 이미 인쇄되어 팔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노년의 남자가 벨벳 깃이 달린 상의를 입고 정면을 조금 벗어난 방향을 바라보는 흑백 초상 사진.
리하르트 바그너. 1871년 뮌헨에서 찍은 초상이다.

그 합창이 실제로 부르는 말

악보의 3막 첫 쪽은 무대지시로 시작합니다. 장소는 신방입니다. 오른쪽에 창이 열린 퇴창탑(Erkerturm)이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벽에서 바깥으로 내밀어 쌓은 탑입니다. 그다음 문장이 이 곡의 성격을 정합니다. 음악은 무대 뒤에서 나며, 노래는 처음에 멀리 있다가 점점 가까워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노래 중간에 무대 뒤 좌우의 문이 열리고, 오른쪽에서는 엘자를 이끄는 여인들이, 왼쪽에서는 왕과 함께 로엔그린을 이끄는 남자들이 들어옵니다. 불을 든 시동들이 앞장섭니다.

즉 이 노래는 사람들이 무대에 서서 관객을 향해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두 줄의 행렬이 신방으로 들어오는 동안 그 행렬과 함께 다가오는 노래입니다. 곡의 길이가 곧 데려다주는 데 걸리는 길이입니다. 결혼 예식 자체는 이 오페라에 나오지 않습니다. 2막 끝에서 이미 있었던 일로 처리되고, 무대에 보이는 것은 그 뒤의 행렬입니다.

악보는 이 대목을 연주할 악대를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와 따로 적어 둡니다. 무대 쪽에 두는 것은 플루트 셋, 오보에 둘, 클라리넷 둘, 바순 둘, 호른, 트럼펫 둘, 트라이앵글과 하프입니다.

가사는 첫 줄부터 방향을 말합니다. 충실히 인도되어 저리로 가라, 사랑의 축복이 그대들을 지키는 곳으로. 그다음이 이 글의 자리입니다. 잔치의 소란에서 이제 벗어났으니 마음의 기쁨을 얻으라고 하고, 이어서 이렇게 부릅니다. 사랑을 위해 꾸민 향기로운 방이, 저 화려함에서 떨어진 곳으로 이제 두 사람을 맞아들인다고. 그리고 첫 줄이 끝만 바뀌어 되돌아옵니다. 처음에는 충실히 인도되어 저리로 가라(Treulich geführt ziehet dahin)였는데, 이번에는 충실히 인도되어 이제 들어가라(Treulich geführt ziehet nun ein)입니다. 나오는 노래가 아니라 들어가는 노래입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부르는 이 후렴 사이에 두 행이 나란히 지나갑니다. 덕의 투사여 앞으로 나아가라, 젊음의 자랑이여 앞으로 나아가라. 앞의 행은 신랑을, 뒤의 행은 신부를 가리키는 말로 읽힙니다. 대본이 받는 사람을 적어 두지는 않지만, 옛 영어 대역본도 두 행을 각각 남자를 부르는 말과 여자를 부르는 말로 옮겼습니다. 예식장에서 우리가 듣는 도막에도 이 두 행의 선율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다만 가사가 없으니 그것이 두 사람을 각각 부르는 말이라는 사실이 들리지 않을 뿐입니다.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무대에서는 여덟 여인이 두 사람 둘레를 천천히 돕니다. 악보는 그들이 한 바퀴를 돈 뒤에 부르기 시작한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여기서 남자 성부가 빠지고 여자 목소리만 남습니다. 하느님이 두 사람을 거룩하게 맺어 주셨듯 우리도 기쁨으로 축복한다고, 사랑의 행복이 함께하는 동안 이 시각을 오래 기억하라고 부릅니다. 그러고 나서 혼성 후렴이 한 번 더 돌아옵니다. 그다음 시동들이 행렬을 재촉하고, 남자들은 오른쪽으로 여자들은 왼쪽으로 방을 빠져나갑니다. 무대지시는 마지막 시동들이 문을 닫는 것까지 적어 둡니다. 노래는 그 닫힌 문 너머로 점점 멀어집니다.

그리고 오페라에서 이 합창 바로 다음에 오는 것이 로엔그린의 첫마디입니다. 그 달콤한 노래가 잦아든다, 우리는 단둘이다. 우리가 결혼식에서 아는 그 선율은 이 문장 앞에서 끝나는 노래입니다.

연극 무대를 그린 흑백 도면. 돌벽으로 둘러싼 방 안쪽에 휘장을 드리운 문이 있고 오른쪽에는 기둥이 선 아치 창이 있다.
알프레트 롤러가 1905년 6월에 그린 3막 무대 도면이다. 이듬해 2월 빈 궁정오페라 공연에 쓰였고, 리하르트 슈페히트의 〈구스타프 말러〉(1913)에 실렸다. 그림 위쪽에 이 장면의 이름이 「BRAUTGEMACH」, 곧 신방이라고 적혀 있다.

노래가 잦아든 다음

둘만 남은 방에서 엘자는 금기를 건드립니다. 이 사람은 자기 이름도 어디서 왔는지도 묻지 말라는 조건으로 그와 맺어졌는데, 엘자가 결국 그것을 묻습니다. 물음이 떨어지는 순간 텔라문트가 사람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이닥칩니다.

이 장면이 끝나는 자리에 무대지시가 한 줄 붙어 있습니다. 날이 서서히 밝아 오기 시작했고 촛불은 꺼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노래가 울린 것은 밤이었고, 그 밤이 새기 전에 이 방의 일은 끝납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로엔그린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이름과 출신을 밝히고 떠납니다. 그는 먼 나라의 성에서 온 사람이었습니다. 엘자는 되찾은 동생 고트프리트의 팔에 안겨 숨이 끊긴 채 바닥으로 쓰러집니다.

오페라가 어떻게 닫히는지도 함께 적어 둡니다. 마지막에 노래로 남는 말은 축복이 아닙니다. 왕과 남녀 사람들이 함께 「Weh」라고 부릅니다. 우리말로 아아에 가까운 탄식입니다. 무대지시는 로엔그린이 점점 멀어져 간다는 한 줄입니다. 향기로운 방으로 데려다주던 합창이 울린 그 무대가 이 한 마디로 닫힙니다.

줄거리를 여기까지만 적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 합창이 약속한 향기로운 방이 실제로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고 나면, 같은 선율이 다르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노래는 두 사람을 어딘가로 데려다주고 잦아들었습니다. 데려다준 곳에서 벌어진 일이 그 노래의 다음 장면입니다. 예식장에서 우리가 듣는 도막은 그 노래의 앞부분이고, 곡 자체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실내에서 긴 머리의 여인이 갑옷 차림의 남자에게 몸을 기대고 있는 판화. 왼쪽에 침상이 있고 오른쪽 창밖으로 강과 성이 보인다.
신방의 엘자와 로엔그린을 그린 판화다. 1917년에 나온 빅트롤라 오페라 책에 실렸다. 오른쪽 열린 창 너머로 강과 성이 보인다.

쓰지 말라고 한 것은 누구이고, 어떤 문서인가

이 곡을 예식에서 쓰지 말라고 적어 둔 문서가 실제로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교회가 금지했다」로 뭉뚱그리면 사실이 아닙니다. 성격이 서로 다른 문서 둘입니다.

하나는 미국 샌디에이고 교구가 2000년에 개정해 낸 예식 음악 지침입니다. 이른바 전통 결혼행진곡이라 불리는 바그너와 멘델스존의 두 곡은 쓰지 않는다고 적고, 그 이유를 곧바로 답니다. 이 합창은 신랑과 신부를 제단이 아니라 침실로 데려다주는 음악이라는 것입니다. 결혼을 앞둔 신랑신부에게 건네는 안내 책자이자 그 교구의 공식 예식 음악 지침이고, 가톨릭 전체의 규정은 아닙니다.

다른 하나는 루터교 미주리 시노드의 문답입니다. 이쪽은 교단 규정이 아니라 질문에 대한 답변이고, 마지막 판단은 개별 교회의 목사에게 있다고 밝혀 둡니다. 곧 하나는 교구가 낸 공식 예식 음악 지침이고, 다른 하나는 참고하라고 내놓은 설명입니다. 근거의 급이 다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금지 여부가 아니라 지적의 내용입니다. 교구 문서가 든 이유는 이 곡이 세속적이라거나 오페라 곡이라는 것만이 아니라, 이 노래가 데려다주는 자리가 예식의 자리와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위에서 악보 판면이 적어 둔 것과 같은 이야기의 앞 절반입니다.

그러면 어쩌다 결혼식 노래가 됐는가

계기로 자주 지목되는 것은 1858년 1월 25일 영국 빅토리아 공주의 결혼식입니다. 그런데 그날 신부가 들어올 때 울린 것은 이 곡이 아니었습니다. 예식 음악을 책임진 채플 로열 수석 오르간 주자 조지 스마트가 남긴 기록에는 신부 행렬이 예배당에 들어설 때 악대가 연주한 것이 헨델의 〈유다스 마카베우스〉 행진곡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바그너의 음악이 그날 울리기는 했습니다. 자리가 예식이 아니라 저녁에 버킹엄궁에서 열린 축하 음악회였을 뿐입니다. 퇴장곡 쪽 이야기는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을 다룬 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러면 실제 결혼식에서 이 곡이 쓰인 것은 언제부터인가. 지금까지 확인된 가장 이른 기록은 1875년입니다. 그해 9월 리버풀 근교 페어필드의 한 결혼식에서 오르간 주자가 이 곡과 멘델스존의 행진곡을 나란히 연주했다는 지역 신문 보도가 있습니다. 다만 그 자리는 신부 입장이 아니라 혼인 서명 중과 퇴장 때였습니다. 신부가 들어올 때 이 곡이 울렸다는 것이 분명히 확인되는 기록은 그 2년 뒤입니다. 1877년 8월 말 런던 하노버 스퀘어의 세인트조지 교회에서 열린 결혼식 보도에 신부 일행이 들어올 때 오르간 주자가 바그너의 혼례 행진곡을 연주했다고 적혀 있고, 식이 끝나고 나갈 때는 멘델스존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아는 두 곡의 배치가 여기서 이미 보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앞의 교구 문서가 그 답의 나머지 절반을 스스로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문서는 이 두 곡이 셀 수 없이 많은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게임 쇼에서 결혼식 장면에 쓰였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연상은 감상에 속하지 예배에 속하지 않는다고 적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개신교회나 종교와 무관한 예식에서는 자주 쓰이지만 가톨릭 성당에서는 드물게 쓰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 교구의 진단이고 우리의 단정이 아닙니다. 다만 순서는 짚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가 이 곡을 결혼식으로 데려온 것은 아닙니다. 영화보다 한참 앞서 이미 결혼식에서 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890년에 미국의 음악 평론가 구스타프 코베는 바그너를 다룬 책에서 이 합창이 「이제 거의 모든 결혼식에서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과 짝을 이룬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선율만큼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도 비참하게도 만든 곡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니 순서는 이렇게 됩니다. 19세기 후반에 실제 결혼식에서 쓰이기 시작했고, 그 무렵 목소리가 빠진 편곡 악보가 함께 팔리면서 선율만 널리 퍼졌습니다. 20세기의 영화와 텔레비전은 그 위에서 「신부가 들어오는 음악」이라는 연상을 굳혔습니다. 어느 단계에서도 독일어 가사는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온 것은 처음부터 선율이었습니다. 영어권에서는 그 빈자리에 새 가사가 여러 번 붙었고, 그중 미국에서 붙은 「신부가 들어옵니다(Here Comes the Bride)」가 남아 오늘날 이 곡의 별명이 되었습니다. 원래 가사가 말하는 방향과는 정반대입니다.

예배당 안에서 예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인 결혼식 장면을 그린 유화. 가운데 흰 드레스의 신부와 제복을 입은 신랑이 서 있다.
존 필립, 〈빅토리아 공주의 결혼, 1858년 1월 25일〉, 1860년, 캔버스에 유채, 로열 컬렉션. 예식이 열린 곳은 세인트제임스 궁전의 채플 로열이다.

듣기 안내

가장 좋은 방법은 3막을 전주곡부터 한 흐름으로 듣는 것입니다. 악보가 이 전주곡에 매우 활기차게라고 적어 둔 그 대목이 지나가고 막이 오르면, 노래가 처음에는 무대 뒤 먼 곳에서 들립니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동안 행렬이 방으로 들어옵니다. 예식장에서 익숙한 도막은 바로 이 대목입니다.

거기서 멈추지 말고 그대로 두시면 됩니다. 여덟 여인의 축원이 지나가고 후렴이 한 번 더 돈 뒤, 문이 닫히고 노래가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악보에도 점점 더 멀어지게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방에서 나가며 점점 멀어지는 소리로 적혀 있는 것입니다. 그 소리가 사라지는 자리에서 남자 목소리 하나가 들어옵니다. 그 달콤한 노래가 잦아든다는 그 첫마디입니다. 이 이어짐을 한 번 들어 두면 예식장에서 잘려 나온 도막이 어디에서 잘려 나왔는지가 자리를 잡습니다.

두 가지 연주를 견주어 들으실 생각이라면 볼 곳은 한 군데입니다. 노래가 사라지는 마지막 대목에서 멀어지는 공간감을 어떻게 만드는가입니다. 어떤 연주는 소리를 고르게 줄여 합창이 하나의 곡으로 닫히게 하고, 어떤 연주는 노래가 문 너머로 물러나는 것처럼 들리게 합니다. 대본이 적어 둔 것은 노래가 점점 더 먼 곳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니, 두 번째 쪽이 그 지시에 더 가깝습니다.

다음에 예식장에서 그 선율이 나오면 한 가지가 더 들릴 것입니다. 그 노래는 신부를 데리고 나오는 노래가 아니라 두 사람을 어딘가로 데리고 들어가는 노래였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끝에 가서는 멀어지며 사라지는 노래였다는 것입니다. 식이 끝나고 나갈 때 울리는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 쪽도 원래 자리가 예식장이 아니었습니다. 두 곡 다 우리가 붙여 준 자리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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