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캄파넬라, 피아니스트가 바이올린 곡을 가져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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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3월 9일, 파리 오페라 극장 무대에 니콜로 파가니니가 섰습니다. 파리에서 그를 처음 들은 밤이었습니다. 그 무렵 파리에는 열아홉 살의 피아니스트가 있었습니다. 헝가리에서 온 프란츠 리스트입니다. 이미 신동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리스트가 파가니니의 연주를 어느 날 처음 들었는지는 자료가 갈립니다. 다만 그것을 듣고 난 뒤의 그가 예전 같지 않았다는 것은 본인이 남긴 편지가 말해 줍니다.

이듬해 봄에 리스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 있습니다. 1832년 5월 2일자입니다. 거기에서 그는 미켈란젤로가 명작을 처음 보고 나도 화가라고 외쳤다는 이야기를 꺼내면서,6 파가니니의 지난 연주 이후로 자기가 그 말을 계속 되뇌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이 무슨 사람인가, 무슨 바이올린인가, 무슨 예술가인가. 그러고는 자기 형편을 이렇게 적습니다. 요 보름 동안 내 정신과 손가락은 저주받은 둘처럼 일했네. 하루 네다섯 시간씩 연습을 한다며 항목까지 늘어놓습니다. 3도, 6도, 옥타브, 트레몰로, 같은 음 반복, 카덴차. 그리고 이렇게 맺습니다. 내가 미치지만 않는다면 자네는 내게서 예술가를 보게 될 걸세.

〈라 캄파넬라〉는 그 편지 뒤에 나온 곡입니다. 피아니스트가 바이올린 곡을 가져다 자기 악기로 옮긴 곡이고, 오늘날 어렵기로 이름난 곡을 꼽을 때 거의 빠지지 않습니다. 이 글은 그 두 가지를 따라갑니다. 왜 피아니스트가 남의 악기 곡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왜 하필 이 곡에 어렵다는 소문이 붙었는지입니다.

곡 한눈에 보기
•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
• 작품: 〈파가니니 대연습곡〉 제3번 〈라 캄파넬라〉
• 조성과 박자: 올림사단조, 8분의 6박자
• 속도말: Allegretto
• 헌정: 클라라 슈만
• 원곡: 니콜로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나단조 Op.7의 마지막 악장
  1. 피아니스트는 왜 바이올린 곡을 가지고 있을까요
  2. 왜 이 곡에 어렵다는 소문이 붙었을까요
  3. 곡을 틀면 무엇이 먼저 들릴까요
  4. 손이 실제로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5. 그 시절 사람들은 이 곡을 무엇으로 알고 있었을까요
  6. 옛 음반은 이 곡을 누구의 곡으로 적었을까요
  7. 아는 사람에게만 들리는 라 캄파넬라
  8. 무엇으로 들으면 좋을까요

피아니스트는 왜 바이올린 곡을 가지고 있을까요

파가니니가 바이올린 네 줄로 해내던 일을 자기 악기로도 해내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읽은 편지가 그 마음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다만 그 하룻밤이 그를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는 식으로 읽지는 않는 편이 좋습니다. 그가 자기 연주법을 뜯어고치는 일은 그 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고 보는 쪽도 있습니다. 그때부터 리스트는 파가니니의 곡을 피아노로 옮기는 일에 매달렸고, 그 결심이 그의 연주와 생애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는 리스트의 생애를 따라간 글에 적어 두었습니다. 이 글이 따라가는 것은 그 결심이 남긴 악보 쪽입니다.

어두운 배경 앞에 검은 옷을 입고 선 남자를 그린 작은 전신 초상. 얼굴과 셔츠 앞섶, 한쪽 손만 밝게 떠 있고 나머지는 어둠에 잠겨 있다.
외젠 들라크루아, 〈파가니니〉, 1831년, 판지에 유채, 44.8 × 30.2센티미터, 필립스 컬렉션, 소장품 번호 0487. 들라크루아는 1831년 3월 9일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파가니니의 연주를 듣고 얼마 뒤 이 그림을 그렸다. 화면에서 밝은 곳은 얼굴과 셔츠 앞섶과 손 하나뿐이고, 정작 바이올린은 검은 옷에 묻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리스트가 고른 곡은 파가니니가 1826년에 쓴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의 마지막 악장이었습니다. 그 협주곡은 이듬해 여름 피렌체에서 파가니니 자신의 독주로 처음 연주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마지막 악장은 같은 가락이 몇 번이고 돌아오는 대목이고, 거기에는 진짜 종이 나옵니다. 비유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안에 종을 울리는 자리가 따로 있었습니다.3

리스트는 이 악장을 한 번만 손댄 것이 아닙니다. 편지를 쓰고 두 해쯤 뒤에 이 가락으로 큰 환상곡 한 곡을 내놓았고, 그 뒤에 연습곡집 안에 넣어 다시 썼으며, 나중에 그 곡집을 스스로 고쳐 다시 냈습니다. 이십 년 가까이에 걸쳐 이 가락을 세 차례 다른 형태로 쓴 셈입니다. 오늘 연주회와 음반에서 일반적으로 연주되는 것은 마지막 1851년 판입니다.5

그러니 이것은 남의 곡을 빌려 온 이야기가 아니라 한 피아니스트가 자기 악기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시험한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시험은 곧바로 소문을 낳았습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 고개를 든 남자와 그를 둘러싸고 앉거나 선 사람들을 그린 실내 그림. 벽에는 큰 초상화가 걸려 있다.
요제프 단하우저, 〈피아노 앞의 리스트〉, 1840년. 리스트가 살아 있던 시절에 그려진 그림이다.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둘러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화면의 중심을 이룬다.

왜 이 곡에 어렵다는 소문이 붙었을까요

이 곡이 들어 있는 곡집이 처음 나왔을 때, 그것을 지면에서 평한 사람이 로베르트 슈만이었습니다. 슈만은 자기가 만든 음악 잡지를 갖고 있었고 거기에 이 곡집을 다루는 글을 실었는데, 이렇게 적었습니다. 물론 이것을 감당할 줄 아는 이는 몇 없을 것이라고, 온 세상을 통틀어 네댓도 되지 않을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다만 이 평은 오늘 연주되는 판을 두고 한 말이 아닙니다. 슈만이 손에 들고 있던 것은 그보다 앞서 나온 판이고, 리스트는 뒷날 그 곡집을 스스로 고쳐 다시 냈습니다. 같은 글에서 그는 이 곡집이 피아노를 위해 쓰인 것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고도 했습니다. 어렵다는 말은 뒷날 연주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초판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시대 지면에 적힌 말이었습니다.

그 글은 감탄만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슈만은 여기 실린 것들을 자세히 뜯어보면 음악의 알맹이가 기교의 어려움과 비례하지 않는 대목이 적지 않다고 적었고,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연습곡이라는 말이 많은 것을 덮어 준다고, 그저 연습하라는 것이니까라고요. 칭찬과 유보가 한 문단 안에 같이 들어 있는 글입니다.

사정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곡집을 헌정받은 사람이 클라라 슈만, 그러니까 그 평을 쓴 사람의 아내였습니다. 유럽 여러 도시를 돌며 연주하던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두 사람과 리스트의 사이가 늘 좋았던 것도 아닙니다. 1848년 여름 드레스덴의 슈만 집에서 열린 저녁 모임에 리스트는 두 시간 늦게 나타났고, 그 자리에서 슈만의 피아노 오중주를 두고 라이프치히다운 음악이라는 식으로 깎아내렸습니다. 클라라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해 뒤에 나온 고친 판에도 헌정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두 사실이 그렇게 나란히 있습니다.

그러면 그 소문의 주인공을 막상 틀어 놓으면 무엇부터 들릴까요.

곡을 틀면 무엇이 먼저 들릴까요

곡이 시작되면 아주 높은 자리에서 짧은 소리가 하나씩 떨어집니다. 이어서 흐르지 않고 하나씩 뚝뚝 끊어져 나옵니다. 소리와 소리 사이에 빈틈이 있어서, 한 음이 울리고 사라진 다음에 다음 음이 옵니다.1 이 곡을 아는 분들이 기억하는 그 소리가 바로 여기입니다.

조금 더 가면 그 높은 소리가 자꾸 같은 자리로 돌아옵니다. 돌아올 때마다 그 아래에서 빠른 소리들이 달려 지나가고, 높은 소리는 그 위에 그대로 남습니다. 뒤쪽으로 가면 낮은 데서 한 번, 높은 데서 한 번, 이렇게 멀리 떨어진 두 자리를 왔다 갔다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소리만 들어도 손이 건반 위를 크게 건너뛰고 있다는 것이 짐작됩니다.2

처음 들으실 때는 두 가지만 잡으시면 충분합니다. 맨 위에서 하나씩 떨어지는 그 높은 소리를 먼저 붙잡고, 그다음에는 그 소리가 몇 번이나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지 세어 보십시오. 곡의 뼈대가 그 돌아옴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첫 문단에서 읽은 편지에도 같은 말이 있었습니다. 리스트가 하루 네다섯 시간씩 한다던 연습 항목 가운데 하나가 같은 음을 되풀이해 짚는 것이었습니다.

인쇄된 피아노 악보의 첫 면. 위쪽에 ETUDE III와 LA CAMPANELLA라는 제목이 있고, 오른손 자리 위로 점선이 길게 이어진다.
리스트 〈파가니니 대연습곡〉 제3번의 첫 악보면, 워싱턴대 세인트루이스 게일로드 음악도서관 소장. 음표 사이사이에 쉬는 표가 촘촘히 박혀 있어서, 악보를 읽지 않아도 소리가 이어지지 않고 하나씩 떨어지도록 적혀 있다는 것이 보인다.

손이 실제로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원곡에서는 종을 울리는 사람과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이 따로 있었습니다. 피아노 판에서는 그 두 사람 몫을 한 사람의 두 손이 함께 맡습니다. 특히 첫머리에서는 오른손 하나가 높은 종소리와 그 아래 음형 사이를 쉬지 않고 크게 오갑니다. 도약은 멋을 부리려고 나중에 얹은 장식이 아니라 이 배치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거기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특정 도약 대목에서는 내려앉는 자리마다 같은 손가락 번호가 되풀이해 지정되어 있습니다.2 손가락을 바꿔 가며 짚으면 훨씬 편해지는 자리인데도 그렇습니다. 빠르게 움직이면서, 멀리 건너뛰면서, 매번 같은 손가락으로 정확히 같은 자리에 내려앉아야 합니다.

한 가지를 더해야 이 곡의 평판이 설명됩니다. 앞에서 짚은 대로 슈만이 네댓 명이라고 적은 것은 오늘 우리가 듣는 판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곡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울지 모른다는 말을 들은 자리에서 한 번 다시 쓰인 뒤에 오늘의 연주 목록에 앉았습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이 곡을 무엇으로 알고 있었을까요

앞에서 인용한 슈만의 글에는 지나가듯 적힌 한마디가 있습니다. 그는 이 곡집에 실린 여섯 곡 가운데 다섯은 파가니니의 다른 작품에서 왔고 나머지 하나는 알려진 종 론도를 옮긴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알려진 종 론도라고만 적고 설명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잡지를 읽는 사람들이 그 곡을 이미 알고 있다고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이 알고 있던 것은 원곡의 총보가 아니었습니다. 원곡 협주곡의 악보가 인쇄되어 나온 것은 1851년, 파가니니가 세상을 떠나고 열한 해 뒤의 일입니다. 그보다 훨씬 앞서 이 가락은 피아노 편곡으로 인쇄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앙리 에르츠가 이 종을 주제로 쓴 행진곡과 론도가 1831년 파리에서 나왔고, 리스트가 이 가락을 피아노로 옮겨 처음 인쇄한 것은 그보다 세 해 뒤인 1834년이었습니다.

그러니 슈만이 아무 설명도 붙이지 않고 알려진 종 론도라고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원곡의 총보가 나오기 한참 전에 이미 여러 편곡이 인쇄돼 이 선율이 사람들의 건반 위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파가니니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이 가락을 만나는 길은 그쪽이었습니다. 리스트의 판은 그 여럿 가운데 하나였고, 다만 오늘까지 남아 연주되는 것은 그의 판입니다.

옛 음반은 이 곡을 누구의 곡으로 적었을까요

그렇게까지 해서 건너온 소리인데, 정작 이 곡을 누구의 것으로 적어야 하는지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오래된 음반 두 장이 그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둘 다 인터넷 아카이브에서 딱지 사진까지 볼 수 있습니다.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가 남긴 반의 딱지에는 곡명 LA CAMPANELLA 아래에 괄호가 하나 있고, 그 안에 PAGANINI 와 LISZT 두 이름이 줄표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 아래에 연주자 이름 IGNACE JAN PADEREWSKI 가 오고, 한쪽에는 매트릭스 번호 2-05617, 다른 쪽에는 카탈로그 번호 D.B. 1167 이 찍혀 있습니다. 곡명 아래에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인쇄되어 있습니다.

알렉산더 브라일로프스키가 남긴 반의 딱지는 배치가 다릅니다. 곡명 바로 아래에 오는 것이 사람 이름이 아닙니다. (No. 3 of “Grandes Etudes de Paganini”) 라고, 이 곡이 어느 곡집의 몇 번째인지가 먼저 옵니다. 작곡자 이름은 그보다 한 줄 아래에 다시 괄호를 써서 (Liszt) 로만 적혀 있고, 그다음이 연주자 ALEXANDER BRAILOWSKY, 카탈로그 번호는 DB 6716 입니다. 이쪽에서 파가니니의 이름은 작곡자 자리가 아니라 곡집 제목 안에만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리스트 자신은 이 곡을 무엇이라고 적었을까요. 앞에서 본 첫 악보면과 같은 판, 워싱턴대 세인트루이스 게일로드 음악도서관이 소장한 그 판의 표제면을 펴 보면, 곡집 제목 바로 아래 셋째 줄에 피아노를 위해 옮겨 적었다는 말이 인쇄돼 있습니다. 그리고 클라라 슈만에게 바친다는 헌정과 리스트의 이름을 지나 여덟 줄쯤 아래에, 저자가 전면 개정하고 교정한 유일한 정식판이라는 말이 인쇄돼 있습니다. 옮겨 적었다는 말과 전면 개정했다는 말이 한 면 안에 나란히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디까지가 옮긴 것이고 어디부터가 새로 쓴 것인지는 그 한 면 안에서도 딱 갈라지지 않습니다. 딱지 두 장이 서로 다르게 적은 자리도 그 언저리에 있어 보입니다. 다만 두 장이 왜 달리 적혔는지까지를 이 두 장만으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확인되는 것은 서로 다르게 적힌 딱지가 실제로 있다는 데까지입니다.

아는 사람에게만 들리는 라 캄파넬라

여기까지가 이 곡을 처음 듣는 분에게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얹겠습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는 파가니니가 손으로 쓴 악보가 남아 있습니다. 그 첫 면 맨 위, 파가니니의 글씨로 쓴 제목이 이 악장을 캄파넬로 론도, 그러니까 작은 종의 론도라고 부릅니다. 종은 후대가 붙여 준 별명이 아니라 작곡가가 쓰던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목을 읽어 내려가면 낱말이 와야 할 자리에 글자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 파가니니는 낱말 대신 음표를 하나 그려 넣었습니다. 종에 이름만 붙인 것이 아니라 그 종이 낼 소리의 높이까지 그림으로 정해 둔 것입니다. 같은 면 아래쪽에는 벗에게 준다는 말과 토요일 저녁이라는 말, 그리고 1829년 5월 2일과 베를린이 적히고 서명이 있습니다.4

손으로 쓴 악보의 첫 면. 오선 사이사이에 이탈리아어 글씨가 적혀 있고, 아래쪽에 날짜와 서명이 있다.
파가니니 자필 악보 첫 면, 1829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맨 위 제목이 이 악장을 캄파넬로 론도라 부르고, 아래쪽에 파가니니의 서명과 1829년 5월 2일, 베를린이 적혀 있다.

자필 악보 제목 줄을 확대한 부분. 이탈리아어 글씨가 이어지다가 낱말 자리에 작은 음자리표와 음표 하나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옥타브 표시가 적혀 있다.
제목 한가운데를 확대한 것이다. 캄파넬로 인, 곧 무엇으로 된 종인지를 적을 자리에 파가니니는 낱말 대신 음자리표와 음표를 그렸고 그 위에 한 옥타브 위로 올리라고 적었다.

이 사실을 알고 다시 들어 보십시오. 셋째 절에서 붙잡으시라고 한 그 높은 소리는, 모르고 들으면 리스트가 만들어 낸 화려한 손놀림의 맨 윗줄로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원래 종이 있었고 그 종이 낼 소리의 높이까지 작곡가가 정해 두었다는 것을 알고 들으면, 그 한 소리가 아래를 달리는 소리들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악기처럼 남기 시작합니다. 돌아올 때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소리가 울리는 것이 들리고, 피아노 한 대가 종이 있던 자리를 대신 맡고 있다는 것이 그 순간마다 확인됩니다.

무엇으로 들으면 좋을까요

순서를 하나 권해 드립니다. 이 가락을 바이올린으로 먼저 들으시고 피아노 판을 나중에 들으시는 것입니다. 인터넷 아카이브에는 예후디 메뉴인이 이 악장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옛 78회전 음반이 그대로 재생됩니다. 다만 이것은 오케스트라가 붙은 원곡이 아니라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옮긴 판입니다. 딱지에도 바이올린과 피아노라고 적혀 있고, 그래서 원곡 편성에 있던 종은 여기서 들리지 않습니다. 음반 딱지에는 마스터 예후디 메뉴인이라고 찍혀 있는데, 아직 소년인 연주자에게 붙이던 경칭입니다. 같은 곳에서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와 알렉산더 브라일로프스키가 남긴 피아노 판 음반도 재생됩니다.

두 음반을 잇대어 들으시면 갈리는 지점이 분명합니다. 바이올린 판에서는 가락과 반주가 서로 다른 악기에서 나옵니다. 소리의 색이 다르고 울리는 자리도 다릅니다. 오케스트라가 붙은 원곡이라면 거기에 종이 하나 더 얹힙니다. 피아노 판에서는 그 몫이 전부 한 악기 안으로 들어옵니다. 같은 나무통에서 같은 빛깔로 나오는 소리를 손의 움직임만으로 갈라 놓아야 하니, 연주자마다 그 갈라놓는 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서 처음의 편지로 돌아가면 이렇게 됩니다. 스무 살의 리스트가 하루 네다섯 시간씩 3도와 6도와 옥타브와 같은 음 반복을 연습하며 미치지만 않는다면 예술가를 보게 될 것이라고 적었을 때, 그가 바라본 것은 파가니니가 바이올린 네 줄로 하던 일이었습니다. 〈라 캄파넬라〉는 그 일을 건반 하나로 해내려고 한 결과이고, 어렵다는 소문은 그 시도의 그림자입니다. 다음에 이 곡을 트실 때 맨 위에서 떨어지는 그 짧은 소리를 들으시면, 그것은 한 사람이 두 사람 몫을 맡기로 한 자리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덧붙이는 메모

  1. 첫머리의 그 소리는 악보에도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오른손 맨 위의 음들에는 짧게 끊으라는 점이 찍혀 있고 사이사이에 쉬는 표가 많으며, 그 줄 위에는 적힌 자리보다 한 옥타브 위에서 울리라는 표시가 길게 걸려 있습니다.
  2. 그 건너뛰는 대목에는 내려앉는 자리마다 손가락 번호 3이 되풀이해 찍혀 있습니다. 같은 손가락으로 계속 짚으라는 지시입니다.
  3. 이 협주곡의 편성 목록과 낱낱의 파트 목록에 종이 악기로 올라 있습니다. 다만 이 글은 오케스트라 총보 자체를 펼쳐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4. 이 자료는 인쇄된 총보가 아니라 그날 저녁 한 사람에게 써 준 반주 파트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알려 주는 것은 이름과 소리의 높이가 정해져 있었다는 데까지입니다.
  5. 지금 연주되는 판의 표제면이 이 판을 어떻게 밝히고 있는지는 여섯째 절에서 따로 다루었습니다. 첫 악보면에 적힌 빠르기말은 흔히 붙는 매우 빠르게가 아니라 조금 빠르게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6. 리스트는 이 일화를 미켈란젤로의 것으로 적었습니다. 다만 나도 화가라는 그 외침은 일반적으로 코레조에게 돌려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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