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 볼레로, 악기가 겹치며 새 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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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북이 혼자 셈을 시작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아주 여린 소리로 같은 리듬을 놓고, 그 위로 플루트가 가락을 붑니다. 그리고 15분 동안 그 리듬은 한 번도 모양을 바꾸지 않습니다. 많은 분이 〈볼레로〉를 이렇게 기억하십니다.

그런데 악보를 펴 보면 첫 마디부터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작은북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곡이 절반쯤 지났을 때, 가락을 맡은 것은 더 이상 한 대의 악기가 아닙니다.

이 글이 악보에서 확인한 것은 셋입니다. 첫째, 첫 마디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두 무리입니다. 둘째, 중간부터는 여러 악기가 같은 가락을 서로 다른 높이로 겹쳐 연주합니다. 셋째, 편성표에 적혀 있는데 들리지 않는 악기와 적혀 있지 않은데 들리는 악기가 하나씩 있습니다.

첫 마디에 있는 두 소리

파리 국립도서관에 1929년에 나온 초판 총보가 있습니다. 라벨이 가지고 있다가 도서관에 넘긴 자료입니다. 그 악보의 첫 쪽을 보면, 작은북 줄 아래에 비올라와 첼로 줄이 함께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활로 켜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현을 뜯습니다. 세기는 작은북과 같은 아주 여린 단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북소리로 듣는 그 첫 소리는 가죽만의 소리가 아닙니다. 가죽을 때리는 소리와 현을 뜯는 소리가 처음부터 붙어 있습니다. 뜯는 소리는 때리는 소리와 성질이 비슷해서, 따로 떼어 들으려 하지 않으면 잘 갈라지지 않습니다.

이 곡이 나중에 하는 일이 이미 첫 마디에 한 번 예고되어 있는 셈입니다. 다른 악기를 붙여서 하나처럼 들리게 하는 것 말입니다.

같은 쪽 맨 위에는 이다 루빈스타인에게 바친다는 한 줄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이 곡을 청한 무용가이고, 애초에 무대에서 춤과 함께 올릴 작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박자는 세 박입니다. 세 박 위에서 같은 리듬꼴이 계속 돌아가는데, 그 리듬은 곡이 끝나기 직전까지 모양을 바꾸지 않습니다.

1929년 초판 총보의 첫 쪽. 맨 위에 이다 루빈스타인에게 바친다는 헌정이 있고 그 아래 빠르기 지시가 인쇄되어 있으며 아래쪽 보표에 작은북 리듬과 현악기 피치카토가 적혀 있는 관현악 총보
모리스 라벨, 〈볼레로〉 초판 총보 첫 쪽, 1929년, 파리 뒤랑 간행,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맨 위의 헌정과, 아래쪽에서 작은북과 함께 현악기가 소리를 내고 있는 자리를 함께 보라.

혼자 나오는 악기들

가락이 처음 나오는 것은 플루트입니다. 악보에 독주라고 적혀 있고 세기는 여전히 아주 여립니다. 다음은 클라리넷이 같은 가락을 이어받습니다. 그다음에는 바순이 받는데, 이 악기가 보통 내는 낮은 소리가 아니라 높은 자리에서 부릅니다. 평소보다 조여진 소리가 납니다.

이어서 작은 클라리넷이 나오고, 오보에 다모레가 나옵니다. 오보에 다모레는 오보에보다 조금 낮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악기인데, 오늘날 관현악곡에서 자주 보기는 어렵습니다. 바로크 시대에 쓰이다가 거의 사라졌던 악기를 라벨이 불러온 것입니다.

가락은 두 가지가 번갈아 나옵니다. 하나는 비교적 곧게 뻗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음을 잘게 굴리며 도는 쪽입니다. 굴리는 쪽이 처음 나오는 것은 바순이 높은 자리에서 부를 때입니다.

여기까지는 흔히 말하는 그대로입니다. 한 악기가 부르고 다음 악기가 받습니다. 바통을 넘기듯 차례가 돌아갑니다. 라벨의 생애와 다른 작품에 대해서는 모리스 라벨의 생애와 음악에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겹치기 시작한다

그런데 중간쯤에서 방식이 바뀝니다.

플루트가 다시 가락을 맡는데 혼자가 아닙니다. 약음기를 낀 트럼펫이 같은 가락을 같이 붑니다. 다만 플루트가 한 옥타브 위에서 붑니다. 두 악기가 같은 가락을 서로 다른 높이에서 동시에 연주하는 것입니다. 세기도 다릅니다. 플루트는 아주 여리게, 트럼펫은 그보다 조금 세게 적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트럼펫의 금속성이 플루트의 숨소리에 덮여, 어느 쪽 소리라고 말하기 애매한 것이 하나 생깁니다.

그다음이 색소폰 차례입니다. 여기서 악보에 붙은 지시가 앞의 악기들과 달라집니다. 표정을 풍부하게, 그리고 소리를 떨어 가며 불라고 적혀 있습니다. 음과 음 사이를 미끄러지라는 표시도 붙어 있습니다. 앞의 악기들에게는 세기만 적어 두고 표정을 지시하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달라집니다.

조금 더 가면 호른이 가락을 맡습니다. 이때 피콜로 두 대와 첼레스타가 함께 붙습니다. 그런데 이 셋이 같은 음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피콜로와 첼레스타는 호른이 내는 소리 안에 원래 들어 있는 더 높은 성분들을 골라, 그 자리를 밖에서 덧칠합니다.

소리에는 우리가 알아채는 높이 말고도 그보다 높은 성분들이 같이 울리고 있습니다. 악기마다 그 성분들의 배합이 달라서, 같은 음을 내도 바이올린과 트럼펫이 다르게 들립니다. 라벨은 그 성분 가운데 몇 개를 골라 다른 악기로 따로 소리 내게 했습니다. 호른의 소리 안에 원래 흐릿하게 있던 것이 또렷해집니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 들리는 것은 호른도 아니고 피콜로도 아니고 첼레스타도 아닙니다. 셋 다 연주하고 있지만 귀에 도착하는 것은 하나의 소리입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내는 악기는 세상에 없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새 악기가 만들어지는 자리로 읽습니다. 악기를 바꾼 것이 아니라 없던 악기를 조립한 것이라고 보는 쪽이, 실제로 들리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제 읽기이고, 근거는 방금 말한 겹침의 방식입니다.

겹침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다음 대목에서는 층이 더 늘어나고, 그다음에는 악기들이 두 무리로 갈려 서로 다른 소리 기둥 위에 자기 성분을 얹습니다. 한 연구자는 이 곡의 플루트가 그림자처럼 오보에에 겹쳐진다고 적었습니다. 유니슨도 옥타브도 아닌 이 겹침 때문에 소리가 뒤에서 빛을 받은 것 같은 윤곽을 얻고, 사진이라기보다 음화에 가까워진다고 했습니다. 겹쳐진 소리는 원래 악기의 복사가 아니라 다른 것이 된다는 말로 읽힙니다.

이 사이에 트롬본이 혼자 가락을 맡는 대목이 한 번 있습니다. 악보에 소리를 길게 이으라고 적혀 있습니다. 층이 계속 두꺼워지던 중에 혼자 나오는 소리가 끼어 있어서, 오히려 이 자리가 귀에 남습니다.

적혀 있는데 안 들리는 악기

초판 총보 앞쪽에는 이 곡에 쓰는 악기 목록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색소폰이 세 종류 적혀 있습니다. 가장 높은 소프라니노, 그다음 소프라노, 그리고 테너입니다. 관현악곡에 색소폰이 들어가는 것도 흔치 않은데 세 종류를 한꺼번에 적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가장 높은 소프라니노 색소폰이 실제 연주에서 쓰인 적이 없다고 적습니다. 보통 두 사람이 나와서, 한 사람이 높은 쪽 두 대목을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처리하고 다른 한 사람이 테너를 맡는 식입니다. 악보에 적힌 편성과 무대에 서는 편성이 다른 것입니다.

반대 경우도 있습니다. 그 악기 목록에 큰북은 없습니다. 그런데 총보 마지막 쪽으로 가면 타악기 줄에 큰북이 적혀 있습니다. 앞의 목록만 옮겨 적으면 빠지는 악기입니다.

초판 총보 앞쪽에 프랑스어로 인쇄된 악기 목록 쪽. 목관 금관 타악 현악 순서로 악기 이름과 대수가 세로로 나열되어 있다
〈볼레로〉 초판 총보의 악기 목록 쪽, 1929년, 파리 뒤랑 간행,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색소폰이 세 종류 적혀 있는 자리를 보라.

빠르기와 길이

초판 악보 첫 쪽에는 빠르기가 두 군데 인쇄되어 있습니다. 볼레로의 빠르기로 아주 절제하여, 4분음표가 1분에 76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널리 도는 값은 72입니다. 그런데 그 값은 이 악보에 없습니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 연필로 쓴 숫자가 하나 더 있습니다. 66입니다. 인쇄된 76 위에는 사선이 한 획 그어져 있습니다. 누가 언제 썼는지는 도서관의 자료 설명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라벨이 가지고 있던 악보라는 것만 확인됩니다.

길이도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악보 서지에는 대개 15분으로 적힙니다. 그런데 라벨은 1931년에 한 대담에서 자기가 쓴 것은 17분짜리 곡이라고 말했습니다. 공개된 옛 녹음들을 재어 보면 13분 10초짜리부터 17분 50초짜리까지 있습니다. 가장 긴 것이 가장 짧은 것의 1.3배가 넘습니다.

같은 악보를 두고 이만큼 벌어집니다. 어느 음반으로 처음 들었는지에 따라 이 곡에 대한 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작곡가 자신의 설명

초연은 1928년 11월 22일 파리 오페라에서 있었습니다. 이다 루빈스타인의 무용단 공연이었고, 지휘는 발테르 스트라람이, 무대와 의상은 알렉상드르 브누아가 맡았습니다. 그날 저녁은 〈볼레로〉 한 곡만 올린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여러 발레가 이어지는 프로그램이었고 〈볼레로〉는 뒤쪽에 있었습니다.

이틀 뒤 파리 신문 두 곳의 지면을 찾아 읽었습니다. 한 곳은 「그날 공연의 압권」이라고 적었고, 다른 한 곳은 「진정한 걸작」이라고 적었습니다. 같은 지면이 무대와 의상을 맡은 브누아의 솜씨와 지휘자의 절제된 지휘봉도 함께 칭찬합니다.

다만 이것은 제가 확인한 두 지면의 이야기입니다. 그날 객석 전체가 어땠는지, 다른 신문들은 뭐라고 했는지까지 이 두 기사가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어두운 배경 앞에 서서 정면을 바라보는 무용가 이다 루빈스타인의 흑백 인물 사진
블라디미르 레브힌데르 촬영, 이다 루빈스타인, 1922년 6월, 프랑스 국립도서관. 〈볼레로〉를 라벨에게 청한 무용가이고 악보 첫 쪽의 헌정도 그를 향한다.

라벨 자신은 이 곡을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1931년 대담에서 그는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먼저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특수하고 한정된 방향에서의 실험이며, 실제로 이루는 것과 다른 무엇을 노렸으리라 의심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쓴 것은 음악 없는 관현악 조직이고 하나의 길고 아주 점진적인 크레셴도라고 했습니다. 대비도 없고, 구상과 실행 방식 말고는 고안이랄 것도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른 글에서도 비슷하게 적었습니다. 이 곡은 선율과 화성과 리듬에 관한 한 균일하며, 변화의 요소는 오직 관현악의 크레셴도가 제공한다고 했습니다.

앞에서 제가 새 악기가 만들어진다고 읽은 그 대목을, 작곡가 본인은 고안이랄 것도 없다는 쪽으로 말한 셈입니다. 둘 중 하나가 틀렸다기보다는, 만든 사람과 듣는 사람이 같은 자리를 다르게 부르는 것에 가깝다고 봅니다.

곡이 끝나기 얼마 전, 조가 한 번 바뀝니다. 처음부터 다장조 하나로만 가던 것이 갑자기 다른 조로 옮겨 갑니다. 한 기관의 해설은 그 구간이 여덟 마디뿐이라고 적습니다. 잠깐 머물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옵니다.

이 전조는 사실 앞에서 한 번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호른에 피콜로와 첼레스타가 겹치던 그 대목에서, 덧칠된 성분들이 이미 그 조를 가리키고 있었다고 연구자들은 읽습니다. 그때는 음색으로만 스쳐 갔던 것이 끝에 와서 조성으로 드러나는 셈입니다.

그 뒤 트롬본과 색소폰이 높은 자리로 미끄러져 올라가고 탐탐과 심벌즈가 그 위를 덮으며 곡이 끝납니다.

다음에 이 곡을 트실 때는 중간쯤에서 한 번만 귀를 세워 보시기를 권합니다. 가락을 맡은 소리가 어느 악기인지 이름을 대 보려다가 잘 안 되는 순간이 옵니다. 그 자리가 이 곡에서 가장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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