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 Op.1, 초판 악보가 적어 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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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한 대가 반주 없이 혼자 연주하는 곡집이 있습니다. 니콜로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 Op.1입니다. 스물네 곡이 들어 있고, 그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은 마지막 스물네 번째 곡입니다. 짧은 선율 하나가 먼저 나오고 그 뒤로 같은 뼈대가 모습을 바꾸며 되풀이되는 곡입니다.

이 곡집의 초판 악보는 지금도 펼쳐 볼 수 있습니다. 표지 한가운데에 한 낱말이 다른 글자보다 크고 굵은 대문자로 인쇄돼 있습니다. 예술가들이라는 말입니다. 그 위아래를 함께 읽으면 이렇게 됩니다. 지어서 바친다, 예술가들에게, 니콜로 파가니니가.

이 글이 리코르디 초판 악보에서 확인한 것은 셋입니다. 첫째, 표지의 헌정은 특정 후원자가 아니라 예술가들을 가리킵니다. 둘째, 그 표지에 출판 연도는 인쇄돼 있지 않습니다. 셋째, 스물네 번째 곡은 주제와 열한 개의 변주와 맺음 곡으로 짜여 있고, 제9변주 머리에 활 대신 손가락으로 줄을 뜯으라는 지시가 인쇄돼 있습니다.

필기체로 24 Capricci 라 인쇄된 리코르디 초판의 표지
리코르디가 낸 초판의 표지다. 한가운데에 지어서 바친다, 예술가들에게, 니콜로 파가니니가라는 세 줄이 있고 그 가운데 예술가들이라는 낱말만 큰 대문자로 인쇄됐다. 아래 판권 줄에 작품 번호와 가격 9 이탈리아 리라, 도판번호 403이 적혀 있다. 출판 연도는 이 표지 어디에도 인쇄돼 있지 않다.

예술가들에게 바친다는 문구

표지는 위에서부터 이렇게 읽힙니다. 숫자 24가 맨 위에 크게 있고, 그 아래로 카프리치,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이라는 말이 이어집니다. 그다음이 헌정 줄입니다. 지어서 바친다는 말과 니콜로 파가니니가라는 서명 사이에, 받는 이가 놓여 있습니다. 예술가들입니다.

이 헌정 줄에서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글자 크기입니다. 지어서 바친다는 말도, 받는 이 앞에 붙는 조사도, 파가니니가라는 말도 모두 작은 필기체입니다. 그런데 예술가들이라는 한 낱말만 크고 각진 대문자로 따로 서 있습니다. 표지를 짜면서 그 낱말에 자리를 내준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작곡가의 이름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철자와 다릅니다. 지금은 대개 c를 둘 쓰지만 이 표지에는 하나만 있습니다. 본인의 초판 악보에 인쇄된 철자가 그렇습니다.

표지 아래쪽에는 판권 줄이 있습니다. 출판인 소유라는 표시, 작품 번호, 제국왕립 도서관에 납본했다는 문구, 그리고 가격이 9 이탈리아 리라라고 적혀 있습니다. 맨 아래에는 밀라노의 출판인 조반니 리코르디를 소개하는 긴 한 문장이 붙어 있습니다. 악보를 파는 상인이자 제국왕립 음악원의 출판인이고, 스칼라 극장 악보의 소유자이며, 인쇄소와 악보 문서고를 두고 있고, 빈과 뮌헨에서 들여온 건반악기 창고까지 가지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 곡집을 세상에 내놓은 쪽이 어떤 규모의 업체였는지가 표지 한 줄에 다 들어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이 표지에 적힌 대로라면 이 곡집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닙니다. 연주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구까지를 가리켜 예술가라고 했는지, 왜 그렇게 적었는지는 표지가 말해 주지 않습니다. 표지가 말해 주는 것은 거기에 그렇게 인쇄돼 있다는 사실까지입니다. 이 곡집을 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니콜로 파가니니의 생애와 작품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연도가 적히지 않은 표지

바이올린과 활을 들고 서 있는 파가니니를 연필로 그린 앵그르의 전신 소묘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파가니니의 초상〉, 1819년, 종이에 연필. 바이올린과 활을 들고 서 있다. 이 곡집이 인쇄돼 나오기 한 해 전의 얼굴이다.

표지에서 한 가지가 비어 있습니다. 출판 연도입니다. 출판인 이름도, 주소도, 가격도, 도판번호도 인쇄돼 있는데 연도만 어디에도 없습니다. 같은 판의 다른 사본을 나란히 놓고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곡집의 출판 연도는 자료마다 다르게 적힙니다. 1818년이라 적은 곳이 있고, 1819년이라 적은 곳이 있고, 1820년이라 적은 곳이 있습니다. 악보 자체가 뒷받침해 주는 값이 없으니 전부 뒷날 붙인 연대입니다. 다만 그중 하나는 근거가 다릅니다. 자필 원고를 펴 놓고 만든 원전판의 서문이 이 초판을 1820년으로 적습니다. 자필 원고에는 다른 사람 손으로 1817년 11월 24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고, 그 원고가 바로 이 초판을 찍을 때 쓴 판본이라는 것입니다. 악보를 쓴 뒤 세 해가 지나서야 인쇄된 셈입니다.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 서문은 파가니니가 이 초판의 교정을 보지 않았다고 적습니다. 뒤에 나온 여러 나라의 판본들이 모두 이 초판을 베꼈기 때문에, 초판에 있던 틀린 음과 빠진 임시표가 백칠십 년 동안 판을 거듭하며 함께 옮겨 다녔습니다. 우리가 지금 펴 보고 있는 것은 파가니니가 손수 확인한 악보가 아니라, 그가 확인하지 않은 채 세상에 나간 첫 인쇄물입니다.

그 세 해 사이에 어떤 판단이 있었는지를 말해 주는 기록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기교를 아껴 두려고 출판을 미뤘다는 식의 설명이 자주 붙어 다니지만, 그렇게 말한 당대의 기록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곡이 쓰인 시기 자체도 1802년부터 1817년 사이로 넓게 적힙니다. 그러니 여기서는 쓴 때와 찍은 때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사실까지만 적어 두겠습니다.

표지 가운데 줄에는 작품 1번이라는 표시가 있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쓴 그 곡집이 출판에서는 첫 번째 작품 번호를 받은 것입니다. 그 앞에 인쇄돼 나온 작품이 있었는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24번이 스물네 번째인 이유

가장 많이 찾는 그 곡은 초판에서 44쪽부터 46쪽까지 세 쪽을 씁니다. 44쪽 왼쪽 여백에 곡 번호 24가 있고, 그 아래에 주제라는 말과 거의 프레스토로라는 빠르기말이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프레스토는 아주 빠르게라는 뜻이고, 거의라는 말이 앞에 붙었으니 그 근처까지 몰아가라는 뜻입니다.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의 주제 선율을 오선에 옮긴 악보 발췌
스물네 번째 곡의 주제다. 이 짧은 선율 하나에서 열한 개의 변주와 맺음 곡이 자라 나온다. 뒷날 다른 작곡가들이 가져다 쓴 것도 이 선율이다.

주제는 짧습니다. 악보에서 두 줄이면 끝납니다. 그 두 줄이 지나가면 곧바로 제1변주가 시작되고, 같은 44쪽 안에서 제3변주까지 이어집니다. 45쪽에 제4변주부터 제8변주까지가 들어가고, 46쪽에 제9변주부터 제11변주까지와 맺음 곡이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짜임은 이렇습니다. 주제 하나, 변주 열하나, 그리고 맺음 곡입니다.

이 점은 한 번 짚어 둘 만합니다. 이 곡의 변주가 열두 개라고 적은 설명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것은 맨 끝의 맺음 곡을 열두 번째 변주로 세는 방식입니다. 초판 악보에 인쇄된 표기는 열한 개까지이고, 그 뒤는 변주 번호 없이 맺음 곡이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게다가 이 맺음 곡은 새 줄에서 시작하지도 않습니다. 제11변주가 끝나는 그 줄에 그대로 이어 붙어 있습니다.

변주마다 악보가 연주자에게 시키는 일이 다릅니다. 제3변주는 머리에 3번과 4번 줄로라고 적혀 있습니다. 바이올린의 네 줄 가운데 낮은 쪽 두 줄만 쓰라는 뜻입니다. 같은 선율을 굳이 낮고 두툼한 줄에서 끌어내라는 주문입니다.

가장 알아듣기 쉬운 자리는 제9변주입니다. 변주 번호 바로 아래에 뜯어서라는 뜻의 낱말 하나가 인쇄돼 있습니다. 활로 줄을 긋는 대신 손가락으로 줄을 뜯으라는 지시입니다. 그 변주에서는 음표마다 작은 동그라미가 줄줄이 찍혀 있기도 합니다. 뜯어야 할 음을 하나하나 짚어 둔 표시입니다. 눈여겨볼 것은 동그라미가 모든 음에 붙어 있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한 마디 안에서 동그라미가 붙은 음과 붙지 않은 음이 번갈아 나옵니다. 그러니 이 변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뜯기만 하는 대목이 아니라, 활로 켜는 음과 뜯는 음이 엇갈리는 대목입니다. 오른손이 활을 놓을 수 없다는 뜻이고, 그래서 뜯는 쪽은 왼손이 됩니다. 이 변주가 왼손 피치카토의 대표 자리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곡이 왜 스물네 번째, 곧 곡집의 마지막 자리에 놓였는지는 어떨까요. 작곡가가 그 이유를 적어 둔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놓인 자리입니다. 스물네 곡 가운데 맨 끝에 있고, 주제를 한 번 내놓은 뒤 그것을 열한 번 고쳐 보이는 방식으로 짜여 있습니다. 한 곡 안에서 연주 방식이 열한 번 바뀌니, 이 곡 하나만 들어도 꽤 여러 가지를 지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 들으실 때는 이렇게 잡아 두시면 편합니다. 맨 앞에 짧게 지나가는 선율이 주제이고, 그 뒤부터는 같은 뼈대가 열한 번 옷을 갈아입습니다. 도중에 소리가 갑자기 얇고 톡톡거리는 것으로 바뀌는 자리가 한 번 옵니다. 그것이 제9변주입니다.

악보가 흉내 내라고 적은 소리

초판 악보에는 이런 식의 지시가 곳곳에 인쇄돼 있습니다. 그중 가장 말이 많은 쪽이 아홉 번째 곡입니다. 18쪽 한 쪽 안에 지시가 네 번 나옵니다.

유리 진열장 안에 놓인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일 칸노네
파가니니가 쓰던 바이올린으로 일 칸노네라 불린다. 제노바 팔라초 도리아투르시에 있다. 사진 bibbilo, CC BY-SA 4.0. 9번의 지시문이 가리키는 지판과 네 줄이 이 악기의 것이다.

첫 단 위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지판 위에서 플루트를 흉내 내어. 지판은 왼손이 줄을 눌러 짚는 그 긴 나무판입니다. 평소에는 활을 그 끝과 다리 사이에서 긋는데, 활을 지판 쪽으로 옮겨 그으라는 주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오는 소리를 어떤 쪽으로 몰아가야 하는지도 같은 줄에 적혀 있습니다. 플루트입니다. 그리고 그 뒤로 점선이 길게 이어집니다. 어디까지 그렇게 하라는 표시입니다.

둘째 단 위에는 다른 주문이 있습니다. 3번과 4번 줄에서 호른을 흉내 내어. 이번에는 악기도 바뀌고 쓰라는 줄도 바뀝니다. 바이올린의 네 줄 가운데 낮은 쪽 두 줄입니다. 셋째 단에 가면 다시 지판 위에서 같은 식으로라고 적혀 있고, 같은 줄 가운데쯤에 지판이라는 말이 한 번 더 나옵니다.

이 곡에는 사냥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호른을 흉내 내라는 지시를 생각하면 어디에서 나온 별명인지 짐작이 갑니다. 다만 그 별명이 초판 악보에 인쇄돼 있지는 않습니다. 이 쪽에 인쇄된 것은 플루트와 호른, 그 두 낱말입니다.

다섯 번째 곡은 다른 종류의 지시를 보여 줍니다. 10쪽을 펴면 맨 위 두 줄에 박자표가 없습니다. 조표도 없습니다. 잘게 쪼갠 음들이 길게 한 덩어리로 묶인 채 쪽을 가로질러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옵니다. 음 위에는 어느 손가락을 쓰라는 번호가 인쇄돼 있습니다. 그러다 셋째 줄 머리에 격하게라는 뜻의 말이 붙고, 바로 거기서부터 박자표가 나타납니다. 서두는 박자 밖에 있고 본체부터 박자 안으로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협주곡에서 독주자가 혼자 남아 박자를 벗어나는 대목을 카덴차라고 부르는데, 이 서두가 놓인 자리도 그와 비슷합니다.

이 쪽에는 인쇄된 것 말고도 남은 것이 있습니다. 뒷날 이 악보를 쓴 누군가가 파란 연필로 손가락 번호를 여기저기 덧적어 두었습니다. 인쇄된 운지 옆에 자기 운지를 적어 놓은 것입니다. 이 악보가 서가에만 있지 않았다는 흔적입니다.

여기까지가 초판 악보에 인쇄된 것들입니다. 표지에는 예술가들에게 바친다고 적혀 있고, 본문에는 활을 어디에 두고 어느 줄에서 무엇을 흉내 내라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둘 다 같은 인쇄물 안에 있습니다.

뒤에 온 사람들이 가져간 것

스물네 번째 곡의 주제는 뒷날 다른 작곡가들의 손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리스트가 1838년부터 1840년 사이에 피아노곡으로 만들었고 1851년에 그것을 다시 손봤습니다. 브람스가 1862년부터 1863년 사이에 피아노를 위한 변주곡을 썼고, 이자이가 1883년 무렵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변주곡을 남겼습니다. 시마노프스키가 1918년에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옮겼고, 라흐마니노프가 1934년에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작품으로 썼습니다. 처음에 바이올린 한 대를 위해 쓰인 그 두 줄짜리 선율이 백 년에 걸쳐 이렇게 옮겨 다닌 것입니다. 리스트가 파가니니의 협주곡에서 가져온 라 캄파넬라도 같은 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가니니 카프리스 듣기 안내

스물네 곡 전부를 한자리에서 들으면 한 시간 열몇 분이 걸립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들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글에서 본 세 곡만 순서대로 들어 보셔도 이 곡집이 어떤 것인지는 충분히 잡힙니다.

먼저 24번입니다. 주제가 어떤 것인지 귀에 넣어 두고, 그 뼈대가 열한 번 바뀌는 것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다음이 9번입니다. 악보가 플루트를 흉내 내라고 적은 자리에서 소리가 어떻게 얇아지는지, 호른을 흉내 내라고 적은 자리에서 어떻게 두툼해지는지 견주어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이 5번입니다. 첫 몇 초 동안 박자를 셀 수 없다가 어느 순간부터 박자가 잡히는 것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녹음은 세 가지를 들어 두시면 됩니다.

  • 이차크 펄먼, 이엠아이, 1972년 1월 런던 녹음. 전곡이 한 시간 십이 분 남짓으로 셋 가운데 가장 빨리 지나갑니다. 9번을 2분 33초에 끝냅니다.
  • 살바토레 아카르도, 도이체 그라모폰, 1977년 5월 뮌헨 헤르쿨레스잘 녹음. 전곡이 한 시간 십오 분 가까이 됩니다. 같은 9번에 3분 24초를 씁니다. 펄먼보다 거의 1분이 깁니다. 흉내 내라는 지시가 붙은 자리를 훨씬 느긋하게 끌고 가는 쪽입니다. 반면 24번은 두 사람이 거의 같습니다. 펄먼이 4분 26초, 아카르도가 4분 23초입니다.
  • 루지에로 리치, 데카, 모노 녹음. 음반사가 복각반에서 1950년 녹음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전곡을 담은 이른 녹음 가운데 하나입니다. 소리가 한 갈래로만 나오기 때문에 울림이 좁게 들립니다. 음질을 기대하고 들을 것은 아니고, 이 곡집이 음반으로 처음 돌아다니던 때의 소리를 들어 보는 쪽에 뜻이 있습니다.

한 번 더 트실 때는 악보가 적어 둔 자리를 찾아가 보시기를 권합니다. 9번에서 소리의 결이 두 번 바뀌는 자리, 그리고 24번에서 활 소리 대신 뜯는 소리가 나오는 자리입니다. 두 자리 모두 연주자가 알아서 넣은 것이 아니라, 이백 년 전 악보에 그렇게 하라고 인쇄돼 있는 것입니다. 표지의 헌정 한 줄과 이 지시들은 같은 인쇄물 안에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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