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는 가사 없이 모음만으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보칼리제라는 말이 곧 그런 뜻이고, 작곡가가 이 곡에 붙인 제목도 그 한 낱말이 전부입니다. 작품번호로는 작품 34의 14번이고, 마디 수로는 서른여덟 마디밖에 되지 않는 짧은 곡입니다.
이 곡의 작곡 연도와 첫 출판 연도, 초연 날짜를 두고 문헌과 인터넷에 놀랄 만큼 많은 오류가 돌아다닌다고 헨레 악보의 편집자 도미니크 라머는 적었습니다. 1912년에 썼다, 1916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1916년 1월 24일 피아노 반주로 초연했다는 이야기가 그런 오류입니다. 편집자는 라흐마니노프의 자필 악보와 초판 실물을 직접 맞대어 보고 다른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론을 날짜와 함께 따라가 보고, 가사 없는 노래를 어떻게 들을지로 이어 가겠습니다.
열네 번째 곡, 1915년
〈보칼리제〉는 라흐마니노프의 가곡집 작품 34의 마지막 곡입니다. 앞의 열세 곡은 1912년에 쓰였고, 이 곡은 3년 뒤인 1915년에 가곡집의 마지막 곡으로 덧붙었다고 헨레 악보 서문은 적습니다.
| 베인 뉴스 서비스(Bain News Service), 〈스타인웨이 피아노 앞에 앉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1915년, 유리 원판 사진,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이다. 〈보칼리제〉가 쓰인 해의 사진이다. |
날짜는 자필 악보에 적혀 있습니다. 1915년 4월 1일이라고 적힌 첫 원고는 지금보다 온음(음계의 한 계단) 높은 조였고, 9월 21일 모스크바에서 날짜를 적은 최종 원고가 지금의 조입니다. 초고의 가장 높은 음이 매우 높아서, 편집자는 조를 낮춘 것이 가수의 바람이었으리라고 봅니다.
최종 원고에는 출판사가 적은 「인쇄용 9월 23일」이라는 메모가 있습니다. 원고가 완성되고 이틀 뒤입니다. 그래서 편집자는 초판이 1915년 10월이나 11월 초에는 이미 나왔을 것이라고 봅니다. 초판은 모스크바의 구트하일 출판사가 냈고 저작권 표기가 1915년입니다. 1916년에 찍은 다음 인쇄본은 같은 판형에 저작권 표기만 1916년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1912년에 썼다는 이야기는 세르게이 베르텐손과 잔 레이다가 1956년에 낸 라흐마니노프 전기에 나옵니다. 헨레 편집자는 이것을 가곡집의 나머지 열세 곡 날짜와 혼동한 것으로 봅니다.
이 곡은 소프라노 안토니나 네즈다노바(1873~1950)를 위해 쓰였고 그에게 바쳐졌습니다. 네즈다노바는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활동한 콜로라투라(높은 음역에서 빠르고 장식적인 선율을 부르는) 소프라노입니다. 곡의 처음 형태는 높은 목소리와 피아노를 위한 것이었고, 영국판 표지에는 소프라노 또는 테너를 위한 곡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가사가 없는 노래
자필 악보의 맨 위에는 「네즈다노바에게. 보칼리제.」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곡에 붙은 이름이 가사가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말해 줍니다. 헨레 서문은 이 곡을 라흐마니노프의 가곡 가운데 유일한 가사 없는 노래라고 적습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살아 있던 1934년에 나온 회고록 영어판에서 전기 작가 오스카르 폰 리제만은 이 곡을 「문자 그대로 가사 없는 노래」라고 불렀습니다. 소박한 제목이 곡을 제대로 말해 주지 못하며, 단순한 연습곡이 아니라 노래, 곧 아리아라고 적었습니다.
헨레 서문이 독일어로 옮겨 싣는 네즈다노바의 회고에 따르면, 라흐마니노프는 인쇄 전에 〈보칼리제〉를 가져와 자주 쳐 주었고 두 사람은 더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세부를 함께 고쳤으며 프레이즈(선율의 한 마디 말) 사이에 숨 쉴 자리를 표시했습니다. 리허설 때마다 다른 화성이 떠올라 여러 곳을 고쳤다고도 합니다. 자필 악보에 남은 노래선의 수정과 숨표도 가수의 제안을 반영한 것이라고 편집자는 봅니다.
그렇다면 가사는 왜 붙이지 않았을까요. 이 질문에는 러시아어 자료가 전하는 답이 있습니다. 네즈다노바가 가사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자 라흐마니노프가 「말이 무슨 필요입니까, 당신이 목소리와 표현으로 어떤 말보다 더 잘, 더 많이 나타낼 수 있는데」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소콜로바가 1984년에 낸 책을 인용한 러시아어 온라인 백과사전에 실린 말이고, 네즈다노바 회고의 원문에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전승으로 읽어 두시기 바랍니다.
끊기지 않는 한 줄의 선율
악보는 「Lentamente」(느리게)와 「molto cantabile」(아주 노래하듯)로 시작합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빠르기 지시는 조금 활기 있게(poco più animato), 늦추며(ritenuto), 조금 빠르게(poco più mosso), 한 번 더 조금 늦추며(un poco ritenuto), 본래 빠르기로(a tempo), 이어서 표정을 담아(espressivo) 순서로 적혀 있습니다. 악보의 지시만 보면 서른여덟 마디 안에서 빠르기가 크게 뒤집히는 대목은 없고, 느린 노래가 조금씩 빨라지고 늦춰지며 이어집니다.
이 곡의 특징을 리제만은 선율에서 찾았습니다. 곡선을 그리는 선율의 아치가 고른 고요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끊기지 않는 한 줄로 곡을 가로지른다고 썼습니다. 음이 닮지는 않았는데도 바흐의 에어(Air, 노래하듯 흐르는 느린 곡)와 닮은 데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느리게 노래하라는 지시와 조금씩만 움직이는 빠르기, 끊기지 않는 선율이 겹치면서 이 곡은 사건이 벌어지는 음악보다 한 호흡으로 따라가는 노래에 가깝게 읽힙니다. 이 인상은 악보의 지시어와 리제만의 평에 기댄 읽기이니, 귀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초연 두 번
〈보칼리제〉의 첫 공개 연주는 두 번으로 나뉩니다. 먼저 1915년 12월 7일 모스크바 네즐로빈 극장의 교향악 연주회가 있습니다. 지휘는 피텔베르크가 맡았고, 독주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쿠세비츠키가 직접 콘트라베이스와 관현악을 위해 옮긴 편곡으로 했습니다. 헨레의 콘트라베이스판 악보 서문은 남아 있는 드레스 리허설 프로그램을 근거로 이 날짜를 듭니다.
가수가 부른 〈보칼리제〉의 초연은 1916년 1월 25일 같은 극장에서 열렸습니다. 지휘는 쿠세비츠키, 독창은 네즈다노바였습니다. 반주는 피아노가 아니라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편곡한 관현악이었다고 헨레 서문은 바로잡습니다. 처음 형태인 피아노 반주판이 언제 처음 공개 연주되었는지는 이 글이 본 자료에 나오지 않습니다. 객석에 있던 라흐마니노프는 연주회가 끝날 무렵 「깜짝 손님」으로 무대에 올라 자신의 가곡 몇 곡을 피아노로 반주했습니다.
본인이 옮긴 두 편곡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만든 편곡은 둘뿐이라고 헨레 서문은 정리합니다. 하나는 1916년에 나온 성악과 관현악판입니다. 다른 하나는 1919년에 나온 관현악 단독판으로, 성악 파트를 독주 바이올린 열여섯 대에서 스무 대가 맡습니다. 1915년에 구트하일 출판사에서 나온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판들은 본인의 편곡이 아닙니다.
1918년에 라흐마니노프는 지휘자 모데스트 알트슐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헨레 서문이 독일어로 옮겨 싣는 그 편지에서 라흐마니노프는 〈보칼리제〉를 바흐의 에어 같은 방식으로 연주하자는 알트슐러의 생각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쓰고, 바이올린 열 대가 같은 선율을 한목소리(유니즌)로 연주한 것이 훌륭하게 울렸다고 적었습니다.
리제만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이 곡을 자기 것으로 삼았다고 쓰고, 현악기의 활은 콘트라베이스의 것이라 해도 뛰어난 성악가의 목소리보다 이 노래의 울림을 더 잘 낸다고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리제만의 의견입니다.
들어볼 만한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 연주
라흐마니노프 지휘, 필라델피아 관현악단, Victor 7221, 1929년 녹음. 1929년 4월 20일에 녹음한 관현악판으로, 작곡가가 직접 지휘했습니다.
쿠세비츠키 지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RCA Victor, 1945년 녹음. 1945년 4월에 RCA Victor로 녹음했고, 같은 해 3월 31일 보스턴 심포니 홀에서 방송된 연주도 악단 아카이브에 남아 있습니다. 1915년에 콘트라베이스로 이 곡을 처음 연주한 쿠세비츠키가 지휘한 음반입니다.
두 음반 모두 관현악 편성입니다. 가사 없는 노래를 현이 어떻게 한 호흡으로 잇는지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들을 때
다음에 이 곡을 들을 때는 선율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로 이어지는지, 숨 쉴 자리가 어디에서 오는지 귀를 두어 보십시오. 네즈다노바와 라흐마니노프가 인쇄 직전에 프레이즈 사이에 숨표를 넣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면, 같은 선율이 노래로도 현으로도 어디서 숨을 쉬는지가 들립니다. 라흐마니노프의 다른 곡들과 생애는 라흐마니노프의 생애와 작품을 다룬 글에서 이어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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