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르그스키(Modest Petrovich Mussorgsky, 1839-1881)는 러시아 프스코프 주의 카레보라는 마을에서 부유한 귀족 집안의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에 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유년기 유모의 영향으로 러시아의 전설과 러시아 민속 음악, 러시아 민중들의 삶과 정신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 훗날 그의 민족주의 음악의 밑바탕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7세 때 이미 프란츠 리스트의 소품들을 연주하였으며, 9세 때에는 집에 모인 청중들 앞에서 존 필드의 협주곡을 연주할 정도의 재능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를 상트테페르부르크의 성 베드로-바울 학교에 입학시켰는데, 이곳에서 안톤 헤르케(Anton Herke)에게 피아노 교습을 받게 되었다. 당시 러시아 귀족은 군인이 되는 것이 전통이였기에 185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근위대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 역사, 종교, 문학 등의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였다. 그때 무소르그스키는 즉흥 연주에 흥미를 보여 음악적 기량이 향상되었고, 독학으로 작곡 공부를 하여 작곡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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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레핀의 무소르그스키의 초상화 (출처 : en.tchaikovsky-research.net) |
1856년에는 소위로 앨리크 근위 연대에 임명되었는데 그곳에서 군의관으로 있던 보로딘을 만나게 된 이후 다르고미즈키, 군장교인 세자르 큐이, 발라키레프, 스타소프 등과 연속적으로 친교를 맺으며 ‘러시아 5인조’라고 불리는 모임을 함께 하게 된다.
무소르그스키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발라키레프에게 작곡을 배우게 되었고, 1958년 무소르그스키는 마침내 음악에 전념하게 위해 친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교직을 사임하였다. 그는 모스크바를 여행하면서 러시아의 민족적인 애착과 민족에 대한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1861년 러시아 황제가 농노 해방을 선포하면서 귀족인 무소르그스키도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자 하급관리로 취직하여 거의 죽을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무소르그스키는 집을 나와서 친구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면서 예술, 정치, 철학, 종교 등에 대한 다양한 교감을 나누게 되고, 이 시기부터 무소르그스키의 작품에서 사실주의적인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1863년 그는 지식인 공동체(Commune)에서 거주하였는데, 그곳에서도 사실주의적 영향을 받았다.
1864년 무소르그스키는 첫 주요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가독들을 내놓았지만 이음해인 1865년 어머니의 죽음으로 알코올 중독과 정신 착란 증세까지 더해져 집에서 요양을 해야 했다. 글린카의 여동생인 류드밀라(1816–1906)의 돌봄으로 인해 건강을 회복한 그는 1867년 교향시 <민둥산의 하룻밤 Night on Bald Mountain>를 작곡하였다. 하지만 그의 생전에는 출판되거나 연주되지 못하다가 림스키-코르사코프에 의해 크게 손질된 버전이 세상에 나왔다.
그가 푸슈킨의 비극에 바탕을 둔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Boris godunov>을 발표했는데, 러시아 왕립 오페라는 1869년 공연을 거부당하였다. 그 이유는 리드하는 스프라노와 테터가 없고 중요한 사랑의 장면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작품을 수정하였음에 거절 당하였다가 1874년에 상연되어 대중들에게는 환영을 받았으나 비평가들에게는 혹평을 받았다. 심지어 러시아 5인조에게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그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1874년 화가이자 건축가인 빅토르 하르크만의 추모전을 본 모소르스그키는 그의 회화 작품 10점을 소재로 한 피아노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 Pictures at an exhibition>이란 걸작을 선보여 작곡가로서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이 작품은 후대에 와서 여러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라벨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그의 출근 기록이 점점 불규칙해지자 1881년 1월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게 되었고, 알코올 중독과 간질병으로 입원하였다가 그해 3월 42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무소르그스키의 작품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의해 수정되거나 완성된 작품이 그의 사후 출판되었다가 20세기에 들어와 그의 원본 악보가 발굴되자 그의 작품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교향적 환상곡 <민둥산의 하룻밤>, 피아노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코반치나> 등이 있다.
무소르그스키의 삶에는 양면적인 요소가 공존한다. 귀족 출신이지만 농노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부유한 지주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가난과 외로움 속에 인생을 마감했다. 또 작곡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 당대에 다소 아마추어 취급을 받았으나 후세에는 가장 독창적인 러시아 민족주의 작곡가로 평가 받게 된다.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은 러시아 민요에서 비롯되었다. 유럽 음악적 전통적인 화성진행이 익숙하지 않았던 그는 러시아 언어의 리듬과 강세, 음높이를 반영하였고 민속음악과 모험적인 화성 사용, 러시아인들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독창적인 표현을 보여주었다. 그로 인해 그는 20세기의 사실주의와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언급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