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서양음악사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그중 하나가 민족주의 음악이다. 작곡가들은 자기 민족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민요, 춤, 리듬 등을 고유한 민족적 정서를 반영하는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민족주의 음악의 경향이 특히 강하게 나타난 나라는 러시아였다.
자신의 작품에 러시아적 색채를 사용하여 국제적 주목을 받은 첫 번째 작곡가는 글린카(Michail Ginka, 1804-1857)이다. 1836년 초연된 오페라 <황제에게 바친 목숨>는 농부인 이반 수자닌이 폴란드군을 속여 괴멸시키고 러시아를 위기에서 구한다는 내용이다. 이오페라는 러시아 역사와 민족주의를 반영하여 후대 러시아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글린카의 첫 제자였던 밀리 발라키레프는 젊은 음악가 네 명을 모아 일명 '러시아 5인조'를 결성한다. 발라키레프는 먼저 체자르 큐이를 1856년에 만나는데, 그 이듬해인 1857년에 글린카가 베를린에서 급사했다. 같은 해, 발라키레프는 모데스트 무소륵스키를 만나고 1861년에는 니콜라이 안드레예비치 림스키코-르사코프를, 1862년에는 알렉산드르 보로딘을 그룹에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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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5인조 (출처 : slideserve.com) |
러시아 5인조는 대부분 자신의 직업이 있는 아마추어 음악가들이었지만 러시아의 민족음악적 특성을 반영하는 예술성 높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하였고, 러시아 민요, 선법적이고 이국적인 음계 등을 사용하여 자신들만의 고유의 색채를 형성하였다. 음악원(Conservatory) 출신의 전문적 작곡가들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음악적 영향력이 강력했기에 “Mighty Handful” 또는 “The Mighty Five”라 불렸다.
하지만 5인조 모두 강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이었기에 모여서 하나의 음악을 만들거나 행동을 함께하지는 않았다. 1870년대에 들어서자 이들의 결속력이 느슨해지면서 실질적으로는 해체 수순을 밟았다.
러시아 5인조는 차이콥스키, 미하일 이폴리토프이바노프,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같은 많은 후대 러시아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므로 러시아 5인조 업적은 러시아 음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미국 5인조와 프랑스 6인조의 이름은 러시아 5인조에서 차용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러시아 5인조 각자의 생애와 음악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발라키레프(Milit Alekseevich Balakirey, 1837-1910)
발라키레프는 피아니스트, 작곡가,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동양적 색채와 슬라브적 요소가 강한 낭만적 음악 어법, 그리고 러시아의 민요를 화성화한 업적이 있다. 발라키레프는 가난한 귀족의 아들로 니주니노브고로트에서 출생하였다. 10세 때부터 모스코바에서 음악을 공부하였고, 1855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클란카와 알게 되었으며, 이곳에서 러시아 5인조를 결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870년 정신병을 얻어 음악계를 떠났다가 얼마 후 복귀하였으나, 이전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1860년대 다수의 걸작을 남겼는데, 대표작으로는 <교향곡 2번>, 교향시 <타마라>, 동양적 환상곡인 피아노협주곡 <이슬라메이>, 러시아 민요집 2권 등이 있다.
2. 보로딘(Alexandr Porfirevich Borodin, 1833-1887)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생한 보로딘은 9세 때 작곡을 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의학을 전공하였다. 그는 유럽 각지로 다니며 의술과 함께 음악에 대한 관심도 커져 갔다. 1862년 발라키레프로부터 정식으로 작곡을 배워 1867년 제1교향곡을 작곡하였다. 대표적인 오페라 <이고르공>은 생전에 완성하지 못하였다. 교향시 <중앙 아시아의 초원에서>는 관현악법의 탁월함으로 19세기 러시아 음악의 지평을 넓힌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3. 큐이(César Antonovitch Cuil, 1835-1918)
리투아니아 빌뉴스 출생 큐이는 공병 장교이자 음악평론가 및 작곡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작곡을 배웠고, 발라키레프, 다르고미 시스키 등과 교제하며 러시아 민족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864년부터 1877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 <베도모스티>의 음악비평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10편의 오페라를 썼는데, 그 중 <흑사병 시대의 축제>, <대위의 딸> 등이 알려져 있다.
4. 무소르그스키(Modest Petrovich Mussorgsky, 1839-1881)
러시아 카레보 출생한 무소르그스키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사관학교에 들어가 근위 연대 장교로 임관하였으나, 다르고미시스키와의 교제를 통해 음악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22세 때 군인 생활을 중단하고 본격적으로 음악가로서의 활동 시작하였다. 그는 근대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며, 드뷔시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으로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교향시 <민둥산의 하룻밤>, 피아노 독주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 가곡 <벼룩의 노래> 등이 있다.
5.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y Andreyevich Rimsky-Korsakov, 1844-1908)
러시아 티하빈 출생한 림스키-크르사코프는 해군장교, 작곡가, 교육자로 활동하였다. 그의 음악은 색채적인 관현악법과 세련된 멜로디, 러시아 민속 선율에 근거한 화려한 화성이 특징이다. 그가 저술한 <관현악법 원리>는 베를리오즈의 관현악법과 함께 최고의 오케스트레이션 지침서로 인정받고 있다. 대표작으로 교향모음곡 <세헤라자데>, <스페인 기상곡>, 오페라 <사드코>, <금계> 등이 있다.
5인조 중에서 보로딘, 무소르그스키 그리고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더 돋보이는 사람들이며, 이들 중에서도 가장 음악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림스키-코르사코프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