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 〈포도주의 문〉과 당글베르의 프렐류드, 악보에 적힌 것과 적지 않은 것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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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9년 파리에서 나온 어느 클라브생 악보집의 표제면은 맨 아래 두 줄이 다른 책과 다릅니다. 서점 이름이 없습니다. 대신 「파리, 저자의 집에서, 생트안 거리, 생로슈 근처」라고 적혀 있습니다. 원문은 「Chez l’Autheur Rüe S.te Anne près S.t Roch」입니다. 1689년 안에 발행 상태가 둘이고, 나중 것은 주소를 생토노레 거리로 적습니다. 그 책을 낸 장앙리 당글베르는 스물일곱 해 전 궁정의 클라브생 자리를 전임자에게서 돈을 주고 샀고, 그 뒤에도 전임자 몫의 연봉은 전임자 측에 계속 지급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24년 뒤, 파리의 출판사 뒤랑이 클로드 드뷔시의 〈전주곡집〉 둘째 권을 찍어 냅니다. 드뷔시는 그 책의 계약 기한을 아홉 달 넘긴 참이었습니다. 두 책 안에 든 악보는 정반대로 적혀 있습니다. 한쪽에는 박자표가 없고, 다른 쪽에는 90마디 안에 문자 지시가 65건 들어 있습니다.

두 악보 한눈에 보기
• 당글베르 〈클라브생 작품집〉 제1권 프렐류드: 파리, 1689년, 저자 자비 출판. 인쇄 2쪽. 박자표 없음
• 드뷔시 〈전주곡집〉 제2권 제3곡 〈포도주의 문〉: 파리, 뒤랑, 1913년 4월 19일. 90마디. 2/4박자, 내림표 다섯 개가 붙은 조표
• 당글베르 특허: 1689년 6월 6일 베르사유, 기간 8년, 같은 해 12월 1일 등록
• 드뷔시 초연: 1913년 3월 5일 살 에라르, 작곡가 본인 연주
• 두 인쇄본 모두 프랑스국립도서관 디지털 도서관에서 쪽 단위로 열람 가능

자리를 산 사람

당글베르 1689년 클라브생 작품집 인쇄면. 세로줄이 드물고 긴 곡선이 여러 음을 묶고 있다

장앙리 당글베르, 〈클라브생 작품집〉 제1권 프렐류드, 파리 1689년, 저자 자비 출판, 프랑스국립도서관. 보표를 위아래로 관통하는 세로줄이 몇 개인지 세어 보라.

1662년 10월 23일에 공증인 앞에서 문서 하나가 작성됩니다. 자크 샹피옹 드 샹보니에르가 자기 직책의 계승권을 장앙리 당글베르에게 넘긴다는 내용입니다. 직책 이름은 「국왕 실내악 상임 연주자, 클라브생 담당」이었습니다. 값은 2,000리브르였고 그중 500리브르가 현금으로 지급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지금 프랑스 국립고문서보관소에 남아 있고, 그것을 옮겨 실은 연구서에 조항까지 인용되어 있습니다.

계승권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당글베르가 산 것은 자리 그 자체가 아니라 「전임자가 죽거나 스스로 물러난 뒤에 그 자리를 넘겨받을 권리」였습니다. 그런데 같은 문서에 붙은 조항이 특이합니다. 당글베르는 「샹보니에르 씨를 대신하여 그가 수행해 왔고 지금도 수행하는 모든 직무를 수행하며, 오늘부터 그 직무를 시작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일은 그날부터 새 사람이 하고, 연봉을 받을 권리는 전임자가 그대로 쥔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궁정 회계 문서에는 1689년까지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올라 있습니다. 샹보니에르는 1672년에 죽었으므로 그 뒤의 지급은 그의 상속재산 앞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서가 보여 주는 것은 한 사람만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두 쪽이 각각 연 600리브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연봉이라 해도 큰 액수는 아니었습니다. 실내악 상임 연주자의 연봉은 연 600리브르였고, 여기에 부양 수당 900리브르와 이동비 80에퀴가 따로 붙었습니다. 이 숫자만 보면 감이 오지 않으니 눈금을 하나 놓겠습니다. 같은 시기에 세비녜 부인이 가족과 함께 파리의 저택 한 채를 빌리며 낸 연 임차료가 1,800리브르였습니다. 기본 연봉만 놓고 보면 클라브생 담당자의 몫은 그 저택 임차료의 삼분의 일이었던 셈입니다.

당글베르는 부수입도 하나 더 사들입니다. 궁정에는 「에피네트 운반」이라는 별도의 직책이 있었습니다. 악기를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을 받는 자리인데, 클라브생이 에피네트를 밀어내면서 없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당글베르는 그 자리가 폐지된 적이 없고 왕실 재정 담당자가 1662년부터 「재원이 없다는 이유로 그 몫을 없는 것으로 처리해 왔을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1668년 10월 25일자 문서에 따르면 샹보니에르는 이 자리를 900리브르에 당글베르에게 팔았고, 1662년부터 밀린 금액은 두 사람이 나누기로 했으며, 대신 당글베르가 앞으로 악기 운반비를 부담하기로 합니다.

1674년에는 당글베르가 자기 계승권을 아들 장바티스트 앙리에게 넘깁니다. 넘기는 문서에도 같은 방식의 조항이 붙습니다. 국왕 재정 담당자는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 아버지에게 계속 지급하고, 아버지가 죽거나 생전에 동의한 뒤부터 아들에게 지급한다는 것입니다. 루이 14세의 치세 전체에 걸쳐 이 클라브생 자리를 가진 사람은 샹보니에르, 당글베르, 그리고 당글베르의 아들 세 사람뿐이었습니다.

샹보니에르가 왜 물러났는지에 관해서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숫자가 붙은 저음부를 보고 반주하는 일을 그가 못 했거나 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이야기의 근거는 궁정 문서가 아닙니다. 그 일이 있고 26년이 지난 1688년에, 전혀 다른 논쟁을 벌이던 사람이 편지 속에서 지나가듯 언급한 대목입니다. 근거의 나이와 성격이 그렇다는 것만 적어 둡니다.

왕의 딸에게 바친 책

당글베르가 이 책을 바친 사람은 후원자이면서 제자였습니다. 헌사면 맨 위에는 「지극히 고귀하신 전하, 콩티 공녀 마님, 왕의 딸」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마지막 줄이 그대로 신분 표시입니다. 마리안 드 부르봉은 루이 14세와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 사이에서 태어나 왕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딸이었습니다.

헌사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저는 전하께 제 클라브생 작품집을 바칩니다. 이보다 더 정당하게 바쳐진 헌정은 없었습니다. 저는 이 곡들을 거의 전부 전하를 위해 작곡했습니다. 그리고 이 곡들이 지닌 주된 아름다움을 전하께 빚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그는 그녀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연주해 온 방식을 언급하고, 자기가 몇몇 곡을 보여 드렸을 때 그녀가 연주에 섞어 넣은 것들이 자기에게 새로운 착상을 주었다고 적습니다. 헌사가 관습적으로 겸손한 문투를 쓴다는 점은 감안해야 하지만, 상대가 제자였다는 사실은 이 문장들이 서 있는 자리를 알려 줍니다.

마리안 드 부르봉은 1689년에 스물세 살이었습니다. 남편이 천연두로 죽어 열아홉에 과부가 되었고, 그 뒤로 재혼하지 않았습니다. 당글베르가 죽은 뒤에는 프랑수아 쿠프랭에게 레슨을 이어받았고, 평생 자기 저택에서 음악 모임을 열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앞붙이 한 장은 특허 문서입니다. 국왕이 「장앙리 당글베르, 우리 실내악의 클라브생 담당 상임 연주자」에게 자기 클라브생 작품집을 판각하고 인쇄하고 「팔고 유통시킬」 권리를 준다는 내용입니다. 기간은 여덟 해이고, 그 여덟 해는 「인쇄를 마친 날부터」 시작합니다. 인쇄업자는 그가 고르고, 판형과 부수도 그가 정합니다. 발급일은 1689년 6월 6일, 발급 장소는 베르사유, 조합 장부에 등록된 날짜는 같은 해 12월 1일입니다.

특허가 판매권까지 저자에게 주었다는 대목과 표제면 맨 아래 두 줄은 한 벌입니다. 서점 이름이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의 집에서 팔렸습니다. 참고로 당글베르는 1629년 4월 1일에 바르르뒤크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세례 기록이 전합니다. 흔히 도는 1635년은 결혼 당시 나이에서 거꾸로 셈한 값입니다.

기한을 넘긴 사람

클로드 드뷔시의 사진 초상

펠릭스 나다르가 찍은 클로드 드뷔시, 1908년경. 〈전주곡집〉 둘째 권 계약을 맺기 네 해 전이다.

드뷔시 쪽 사정은 문서의 종류부터 다릅니다. 궁정 공증문서 대신 출판사와 맺은 계약서와 편지가 남아 있습니다. 1912년 1월 31일에 그는 뒤랑과 피아노 〈전주곡집〉 둘째 권 계약을 맺습니다. 받은 금액은 12,000프랑이었고, 그중 삼분의 이를 먼저 받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공연권 몫이었습니다. 첫째 권 때 받은 금액이 7,000프랑이었으니 상당히 올라간 셈입니다. 계약서에는 납품 기한도 적혀 있었습니다. 1912년 4월 1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곡집이 완성된 것은 1913년 1월입니다. 아홉 달을 넘겼습니다. 비평판 서문은 그 사정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작곡은 1911년에 이미 진행 중이었고 드뷔시는 1912년 말에 사실상 끝났다고 여겼는데, 두 곡이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1913년 1월 7일에 출판인 뒤랑에게 그 사정을 알립니다. 편지에 제목이 적히지 않은 한 곡은 마지막 곡 〈불꽃〉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그가 끝까지 붙들고 있던 다른 한 곡의 제목은 〈코끼리 몰이꾼 투마이〉였습니다. 러디어드 키플링의 〈정글북〉 첫째 권에 나오는 장 제목입니다.

그 곡은 결국 버려집니다. 대신 들어간 곡이 무엇인지는 서문도 확정하지 않고 「아마도」라는 말을 붙여 〈엇갈리는 3도〉를 지목합니다. 이 곡만 제목의 성격이 다른 곡들과 다르고, 뒤에 올 〈연습곡집〉 쪽에 가깝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곡집을 마무리한 뒤 인쇄는 빠르게 진행되어 같은 해 4월 19일에 뒤랑에서 나왔습니다.

둘째 권 셋째 곡 〈포도주의 문〉의 제목이 그라나다 알람브라의 문에서 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드뷔시는 그 문을 찍은 채색 엽서를 한 장 가지고 있었고, 그 엽서에는 빛과 그늘의 대비가 강하게 나와 있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정확히 적어 두겠습니다. 첫째, 엽서를 받은 시점입니다. 비평판 서문은 「1910년 새해를 맞아」라고 적습니다. 파야의 자료를 보관하는 재단이 펴낸 글도 같은 사건을 가리키며, 파야가 1909년 말에 성탄과 새해 인사를 겸해 스페인 풍경 엽서 여러 장을 보냈고 그중 한 장이 알람브라의 이 문이었다고 적습니다. 두 자료가 같은 시점을 말합니다. 흔히 붙는 1912년이라는 연도는 이번에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둘째, 보낸 사람입니다. 비평판 서문은 이 엽서를 드뷔시가 「마누엘 데 파야에게서 받았거나, 리카르도 비녜스에게서 받았다」고 두 사람을 나란히 적어 둡니다. 한 사람으로 좁히지 않은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시점은 같습니다. 엽서는 이 곡의 작곡보다 한 해 넘게 앞서 있었습니다.

팔린 자리와 들린 자리

두 책이 세상에 나간 방식은 판매 창구부터 다릅니다. 1689년 책의 판매 창구는 저자의 집 한 곳이었습니다. 예약 구매자 명단이 실려 있었다면 누가 이 책을 샀는지 알 수 있었겠지만, 이 책의 앞붙이는 일곱 장뿐이고, 거기에 든 것은 표제면·헌사면·서문·권두 도판·장식음 표·특허문입니다. 명단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이 책이 얼마나 나갔는지 짐작하게 하는 숫자는 딱 하나 남아 있습니다. 당글베르는 1691년 4월 23일에 생트안 거리의 집에서 죽었고, 보름 뒤에 작성된 사후 재산 목록에 「고인이 작곡한 〈클라브생 작품집〉 가죽 장정 41부」가 적혀 있습니다. 책이 나온 해가 1689년이고 그가 죽은 것이 1691년 4월이니 그 사이는 두 해가 채 되지 않습니다. 인쇄를 언제 마쳤는지는 기록에 없습니다. 다만 이 숫자로 알 수 있는 것은 그때 집에 남아 있던 부수뿐입니다. 전체 몇 부를 찍었는지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41이라는 숫자만으로 이 책이 잘 나갔는지 아닌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같은 목록의 다른 값을 옆에 놓으면 눈금이 생깁니다. 미냐르가 그린 성모자 유화 한 점이 600리브르, 뤼커스가 만든 소형 클라브생 한 대가 100리브르로 매겨져 있습니다.

당대에 이 책을 언급한 글은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1732년에 나온 티통 뒤 티에의 〈프랑스의 파르나소스〉는 샹보니에르의 자리 이야기도 싣고 다른 클라브생 연주자들의 전기도 실었는데, 당글베르 항목은 없습니다. 확인되는 후대 언급은 독일 쪽 둘입니다. 같은 1732년에 독일에서 나온 발터의 〈음악 사전〉이 이 책을 한 문단으로 소개하고, 여러 항목에서 당글베르의 장식음 표를 참고 자료로 인용합니다. 그가 죽고 100년쯤 지난 뒤 게르버의 〈음악가 사전〉(1790~92)에도 항목이 실립니다. 곡들은 필사본으로도 돌았습니다. 영국 필사본 두 종과 독일 필사본 두 종에 그의 작품이 들어 있고, 그중 하나는 바흐 주변에서 만들어진 큰 필사본입니다. 국제 악보 총목록에는 암스테르담에서 나온 별개의 인쇄본도 한 건 올라 있습니다. 다만 그 책 표제면의 연도 표기는 손으로 적힌 것이고 총목록이 그 값을 부정확하다고 판정해 두었으므로, 언제 나온 책인지는 여기서 말할 수 없습니다.

1913년 책의 사정은 정반대입니다. 이 곡집은 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무대를 거쳤습니다. 3월 5일에 살 에라르에서 드뷔시 본인이 첫 세 곡을 칩니다. 〈안개〉와 〈마른 잎〉과 〈포도주의 문〉입니다. 4월 5일에는 국민음악협회 연주회에서 리카르도 비녜스가 넷째, 일곱째, 열두째 곡을 칩니다. 4월 8일에는 다시 살 에라르에서 영국 피아니스트 노라 드루엣이 다섯째와 여섯째 곡을 칩니다. 그리고 4월 19일에 책이 나옵니다. 열두 곡 가운데 여덟 곡이 인쇄된 악보보다 먼저 소리로 나간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한쪽 책에 관해 남은 것은 집에 쌓여 있던 41부라는 숫자와, 이름이 빠진 명부와, 국경 밖 사전 두 권입니다. 다른 쪽 책에 관해 남은 것은 출간 전 여섯 주 사이에 세 번 열린 연주회와 그 자리에서 곡을 친 세 사람의 이름입니다.

악보를 여는 대목

이제 악보를 열겠습니다. 먼저 못박아 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박자표 없이 적는 프렐류드는 당글베르가 고안한 것이 아닙니다. 17세기 프랑스 클라브생 음악에 그런 갈래가 따로 있었고, 루이 쿠프랭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적었습니다. 당글베르가 한 일은 그 갈래의 표기를 자기 집에서 파는 인쇄본에 담아 낸 것입니다.

그의 프렐류드는 인쇄본에서 두 쪽에 걸쳐 있고, 여섯 개의 단으로 짜여 있습니다. 이 여섯 단 전체에서 보표를 위아래로 관통하는 세로줄은 아홉 개입니다. 다만 그 아홉 개가 고르게 흩어져 있지 않습니다. 어떤 구간은 짧게 끊기고 어떤 구간은 그보다 일곱 배 넘게 길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인쇄 둘째 쪽 첫째 단에는 세로줄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단 전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매듭 없이 지나갑니다.

드뷔시의 〈포도주의 문〉은 반대편 끝에 있습니다. 90마디에 문자 지시가 65건 들어 있습니다. 65건은 오선 위아래에 적힌 낱말과 셈여림 문자를 한 덩어리에 하나씩 센 값이고, 음자리표와 조표와 박자표, 곡 제목과 곡 번호는 빼고 셌습니다. 셈여림 기호가 대부분이지만, 그중 소리를 실제로 갈라 놓는 것들이 있습니다. 곡머리에는 「하바네라의 움직임으로」와 함께 두 줄짜리 성격 지시가 붙어 있습니다. 「극도의 격렬함과 열정적인 부드러움이 갑작스럽게 맞부딪치도록」이라는 지시입니다. 곡이 시작하자마자 「거칠게, 세게」가 나오고, 뒤로 가면서 「루바토」, 「빈정거리듯」, 「원래 빠르기로」, 「조금 늦추어」, 「아주 여리게, 아득히」가 차례로 나옵니다. 지시가 말로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덧붙여 두 가지가 눈에 띕니다. 이 곡에는 박자표나 조표가 바뀌는 자리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처음에 적힌 2/4박자와 내림표 다섯 개가 붙은 조표가 끝까지 갑니다. 그리고 소리를 한 옥타브 올려 치라는 표시는 곡 전체에서 딱 한 번, 마지막 쪽에 나옵니다.

문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 읽기입니다. 저는 두 악보가 연주자에게 남겨 둔 빈자리의 종류가 다르다고 읽습니다. 당글베르의 악보는 어떤 음을 누르고 어떤 장식음을 붙이고 어떤 음을 붙들고 있을지를 정해 두고, 그 음들이 놓일 시간의 정확한 값은 상당 부분 열어 둡니다. 드뷔시의 악보는 시간과 셈여림과 성격까지 적어 두고, 그 지시들을 어떻게 부딪히게 할지를 비워 둡니다. 앞의 책은 헌사면에 적힌 대로 자기가 가르친 사람의 연주 습관을 알고 쓴 악보이고, 뒤의 책은 계약서에 적힌 기한을 지켜 출판사에 넘겨야 하는, 누가 칠지 모르는 악보였습니다. 여기까지가 제 읽기이고, 두 사정이 두 표기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를 따라 들으면 되는가

당글베르의 프렐류드를 들을 때는 박을 세려고 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셀 수 있게 적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소리가 어디서 한 번 멈추고 다시 시작하는지를 따라가 보십시오. 악보에는 첫 세로줄이 이르게 나오고 그다음 구간이 그보다 두 배 가까이 길게 적혀 있습니다. 짧게 한 번 매듭이 지어진 뒤 그다음이 길게 이어지는 배치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그 단, 인쇄 둘째 쪽의 첫째 단에서는 매듭이 아예 없이 한 줄이 통째로 지나갑니다. 어디서 끊으라는 표시가 종이 위에 없는 자리입니다.

클라브생 연주와 피아노 연주를 한 번씩 들어 보면 차이가 더 잘 잡힙니다. 클라브생은 음이 빨리 잦아드는 악기라서, 긴 곡선이 붙잡아 두라고 지시한 음들이 얼마나 남아 울리는지를 따라가 보실 수 있습니다. 피아노에서는 손가락으로 음을 유지하고, 해석에 따라 페달을 보탤 수도 있습니다.

드뷔시의 〈포도주의 문〉에서는 왼손을 먼저 잡으십시오. 같은 리듬 꼴이 계속 도는 것이 들리면 그것이 하바네라입니다. 그 위에서 오른손이 갑자기 거칠어졌다가 다시 부드러워지도록 악보에 적혀 있습니다. 곡머리의 성격 지시가 그대로 실행되는 자리입니다.

한 자리만 미리 짚어 두겠습니다. 곡이 끝나기 전에 소리가 한 번 멀어지도록 적어 둔 대목이 있습니다. 악보에서는 그 자리에 세 가지가 겹쳐 있습니다. 「조금 늦추어」라는 지시, 「아주 여리게, 아득히」라는 지시, 그리고 이 곡을 통틀어 하나뿐인 옥타브 올림 표시입니다. 소리가 느려지고 작아지면서 동시에 위로 올라갑니다. 바로 다음에 「원래 빠르기로」가 오면서 아주 센 셈여림이 한 번 터졌다가, 몇 마디 만에 다시 여리게 내려앉으며 끝납니다. 처음에 적혀 있던 「갑작스럽게 맞부딪치도록」이 마지막에 한 번 더 실행되는 자리입니다.

이 곡을 다 듣고 나면 마지막 쪽 아래에서 제목을 만나게 됩니다. 인쇄본에서 실제로 그렇게 배치되어 있듯이, 이 곡은 제목을 알고 듣기 시작하는 곡이 아니라 다 듣고 나서 제목을 확인하는 곡에 가깝습니다. 당글베르의 프렐류드도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마디를 세어 가며 듣는 곡이 아니라, 다 듣고 난 뒤에 어디가 매듭이었는지를 되짚어 보게 되는 곡입니다. 두 악보가 남겨 둔 빈자리는 서로 다르지만, 그 빈자리를 채우는 사람은 양쪽 다 건반 앞에 혼자 앉은 연주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포도주의 문〉의 엽서는 1912년에 온 것 아닌가요?
그 연도는 이번에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확인된 두 자료는 같은 시점을 가리킵니다. 비평판 서문은 「1910년 새해를 맞아」라고 적고, 파야의 자료를 보관하는 재단이 펴낸 글은 1909년 말 성탄과 새해 인사에 딸려 보낸 엽서 묶음 가운데 한 장이었다고 적습니다. 보낸 사람에 관해서는 비평판 서문이 마누엘 데 파야와 리카르도 비녜스 두 사람을 나란히 적어 두었고, 한 사람으로 좁히지 않았습니다.

〈전주곡집〉 둘째 권의 초연은 누가 했나요?
곡마다 다릅니다. 출간 전에 여덟 곡이 세 사람의 손으로 따로 나갔습니다. 1913년 3월 5일 살 에라르에서 드뷔시 본인이 첫 세 곡을, 4월 5일 국민음악협회에서 리카르도 비녜스가 넷째와 일곱째와 열두째 곡을, 4월 8일 살 에라르에서 노라 드루엣이 다섯째와 여섯째 곡을 쳤습니다. 〈포도주의 문〉은 셋째 곡이므로 작곡가 본인이 처음 연주한 곡에 들어갑니다. 열두 곡을 한자리에서 처음 연주한 것은 1913년 6월 12일 런던 에올리언 홀에서였고, 연주자는 발터 럼멜이었습니다.

박자표가 없으면 연주자는 무엇을 보고 치나요?
정해지지 않은 것은 시간의 정확한 값입니다. 다만 아주 비워 둔 것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음표꼴과 드문 세로줄, 곡선이 상대적인 시간 관계와 구획의 단서를 줍니다. 어떤 음을 누를지, 어떤 장식음을 붙일지, 어떤 음을 붙들고 있을지는 종이 위에 정해져 있습니다. 세로줄도 아주 없는 것이 아니라 드물게 놓여 있어서 큰 매듭을 표시합니다. 연주자가 정하는 것은 그 매듭들 사이를 어떤 속도와 어떤 호흡으로 지나갈지입니다. 참고로 이 갈래가 즉흥에 가까운 전통에서 나온 것은 맞지만, 1689년 인쇄본의 표기는 박자를 아예 적지 않던 방식을 한 걸음 정리한 혼합 표기입니다.

드뷔시가 어떤 길을 지나 이 곡에 이르렀는지는 클로드 드뷔시의 생애와 작품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당글베르의 악보를 채우고 있는 장식음 기호들을 실제로 어떻게 치는지는 바로크 장식음 연주법에서 다루었고, 프렐류드라는 같은 이름이 뒷시대에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쇼팽 빗방울 전주곡 해설에서 이어집니다.

당글베르 인쇄면 이미지의 출처는 Source gallica.bnf.fr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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