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마태수난곡, 초연이 언제였는지는 종잇조각 하나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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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마태수난곡(BWV 244)은 합창단도 둘, 관현악도 둘로 짜인 곡입니다. 두 개의 합창단, 두 개의 오케스트라, 그리고 합창단마다 따로 배정된 독창 성부가 마태복음 26~27장의 수난 이야기를 약 3시간에 걸쳐 펼쳐냅니다. 독창 성부는 합창단마다 넷씩 모두 여덟인데, 그것이 곧 독창자가 여덟 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늘날 흔히 그렇게 배역할 뿐이고, 바흐 당대에는 독창을 맡은 사람이 합창 성부도 함께 부르는 것이 통상이었습니다. 단순한 성경 낭독이 아닙니다. 성경 본문을 읽어 나가는 사이사이로 아리아와 코랄이 끼어들어, 이야기를 듣는 자리와 그 이야기에 반응하는 자리를 갈라 놓습니다.

이 곡을 처음 만나면 질문이 먼저 생깁니다. 왜 이중합창인가? 「Aus Liebe」아리아에서 저음부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초연은 1727년인가, 1729년인가? 멘델스존의 공연은 순수한 예술적 부활이었는가, 아니면 문화적 기획이었는가? 이 글은 그 질문들에 답하면서 마태수난곡의 내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걷습니다.

1885년 개축 전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내부. 신랑 뒤쪽에서 동쪽 제단 쪽을 바라본 모습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내부. 1885년 개축 전 모습이고, 신랑(身廊) 뒤쪽에서 동쪽 제단 쪽을 바라본 자리다.

바흐는 이 곡을 왜 쓰게 되었을까요

1723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학교의 칸토르, 즉 음악 감독으로 취임했습니다. 이 직책은 단순한 연주 일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라이프치히 주요 교회 네 곳의 음악을 모두 책임져야 했고, 취임 초기에는 예배와 축일에 맞춰 거의 매주 새 칸타타를 썼습니다. 수많은 칸타타와 주요 수난곡·오라토리오가 이 시기에 나온 배경입니다.

루터교 전통에서 성금요일에는 수난곡 연주가 관행이었습니다. 다만 이것은 연주회가 아니었습니다. 마태수난곡은 성금요일 저녁기도 순서 안에서 불렸고, 1부와 2부 사이에는 설교가 들어갔습니다. 세 시간을 한자리에 앉아 듣는 오늘의 공연과 달리, 당시 회중에게 이 음악은 예배의 일부였습니다. 작품이 왜 두 부분으로 나뉘는지도 여기서 설명됩니다. 바흐는 이미 요한수난곡(BWV 245)을 1724년에 초연한 상태였습니다. 마태수난곡은 그 후속작이고, 규모는 요한수난곡보다 훨씬 큽니다. 다만 바흐가 어느 쪽을 더 높이 겨냥했는지를 알려 주는 기록은 없습니다. 대본은 피칸더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시인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헨리치(1700~1764)가 썼습니다. 텍스트는 세 층으로 짜여 있습니다. 성경의 내러티브 부분(복음사가의 낭독과 예수·군중의 대화)은 루터가 옮긴 독일어 성경의 마태복음을 따르고, 피칸더는 그 사이에 들어가는 아리아와 합창의 시적 텍스트를 담당했으며, 곳곳에 끼어드는 코랄은 데키우스·헤르만·게르하르트 같은 루터교 찬송가에서 가져왔습니다. 다만 성경 부분이 루터 성경과 한 글자까지 같지는 않습니다. 마태복음 26장 40절에서 루터 성경이 「sprach zu Petro」(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라고 적은 자리를 이 작품의 대본은 「sprach zu ihnen」(그들에게 말씀하셨다)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바흐와 피칸더의 협업은 단순한 분업이 아니었습니다. 피칸더의 텍스트는 특정 감정 상태를 명확히 지정하고, 바흐는 그 감정을 화성과 선율로 번역했습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한 직후에 등장하는 알토 아리아 「Erbarme dich」(주여, 긍휼히 여기소서)는 피칸더의 텍스트가 자비를 구하는 간청과 눈물을 노래하고, 바흐는 단조의 선율과 쉬지 않고 이어지는 바이올린 독주로 그 간청에 소리를 입혔습니다.

초연은 1727년일까요, 1729년일까요

오랫동안 음악사 교과서는 마태수난곡의 초연을 1729년 4월 15일 성금요일,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토마스키르헤)로 기록해 왔습니다. 그러나 바흐 아르히프 라이프치히를 중심으로 한 현대 연구는 1727년 4월 11일을 유력한 초연 날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종잇조각 하나입니다.

핵심 물증은 이렇습니다. 1727년 4월 13일 자 「상투스」의 비올라 원본 파트에, 마태수난곡 한 악장의 제1바이올린 선율이 한 마디 반만큼 적혀 들어가 있습니다. 파트보를 베끼던 사람의 책상에 그날 마태수난곡 악보가 함께 놓여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이틀 전인 4월 11일이 성금요일이었습니다. 방금 연주한 악보가 아직 손 닿는 자리에 남아 있던 셈입니다.

방증이 둘 더 있습니다. 하나는 1729년 쾨텐 레오폴트 공의 추도음악입니다. 이 음악은 악보가 전하지 않고 대본으로만 남았는데, 그 대본이 마태수난곡 열 악장과 대응합니다. 두 곡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이 대응만으로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정해지지 않습니다. 악장마다 어느 쪽 가사에 곡이 먼저 붙었는지가 갈린다는 연구가 있고, 두 곡이 같은 시기에 나란히 만들어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바흐가 슈바이드니츠의 제자 베커에게 보낸 1729년 3월 편지입니다. 「청하신 수난곡을 기꺼이 보내 드리고 싶으나, 올해는 저희 자신에게 필요합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1729년 연주가 초연이 아니라 재연이었다고 읽게 하는 문장입니다.

그러고도 이 설은 닫히지 않습니다. 이 논증을 세운 요슈아 리프킨이 1975년 연구에서 스스로 설득력은 있으나 단편적이라고 적었고, 바흐 아르히프가 운영하는 데이터베이스 Bach Digital도 지금까지 초연 연도를 「1727?」로, 물음표를 달아 적어 둡니다. 학계에서 완전한 합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날짜 자체보다도, 이 논쟁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사실입니다. 마태수난곡은 오랜 시간에 걸쳐 수정과 개정을 거쳤으며(초기 판을 BWV 244.1, 1736년의 새 판을 BWV 244.2로 구분합니다), 바흐는 완성된 작품을 반복 공연하면서 계속 손질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듣는 마태수난곡은 그 오랜 퇴고의 결과물입니다.

1736년 판은 무엇이 달라졌나

그러면 지금 연주되는 것은 어느 판인가. 1736년 3월 30일 성 토마스 교회에서 올린 개정판이 오늘날 악보의 바탕입니다.
이때 바흐는 통주저음 성부를 두 합창단에 나누어 배정했습니다. 17번 악장도 이때 들어왔습니다. 초기 판을 옮겨 적은 사본에는 16번 다음이 곧바로 18번이어서 17번 자리가 아예 없고, 1736년 자필 총보에는 그 자리에 음표 대신 「Ich will hier bey dir stehen」 2절을 앞 코랄에서 조옮김해 부르라는 지시가 여백에 적혀 있습니다. 57번 「Komm, süßes Kreuz」의 독주 악기도 바뀌었습니다. 초기 판 사본에는 그 악장 첫머리에 류트(Liuto)라고 적혀 있는데, 1736년 자필 총보의 같은 자리 표제는 비올라 다 감바 독주(Aria Viola da Gamba solo)입니다. 1부를 닫는 29번 악장은 통째로 갈아 끼웠습니다. 초기 판에서 그 자리를 지키던 코랄의 제목은 「Jesum lass ich nicht von mir」이고, 그 자리에 대규모 코랄 합창 「O Mensch, bewein dein Sünde groß」가 들어왔습니다. 「Meinen Jesum lass ich nicht」는 그 코랄이 쓰는 선율의 이름이지 곡의 제목이 아닙니다.
총보도 새로 정서했습니다. 그날 연주를 지켜본 토마스 교회 관리인 요한 크리스토프 로스트는 「두 대의 오르간으로」 연주했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바흐는 그 뒤로도 손을 놓지 않아, 자필 총보 앞부분에는 1743~46년 무렵의 수정이 남아 있습니다.

합창단이 왜 둘일까요

마태수난곡을 처음 들으면 소리가 두 겹으로 옵니다. 합창단이 둘, 관현악이 둘 있기 때문입니다. 바흐는 이 배치를 단순한 음향 효과로 쓰지 않았습니다.

바흐가 붉은 잉크와 검은 잉크로 나누어 쓴 마태수난곡 BWV 244 자필 악보
1736년 무렵의 바흐 자필 총보 한 쪽. 붉은 잉크로 적힌 것은 성경 본문의 가사이고 음표는 검은 잉크다. 개막 합창의 정선율에도 붉은 잉크를 썼다. 베를린 국립도서관 소장(Mus. ms. Bach P 25).

이 작품에서 예수의 말에는 통주저음 위에 제1관현악의 현악 전체가 길게 겹쳐 붙습니다. 성경 이야기 속 다른 개인이 말하는 레치타티보에는 통주저음만 붙습니다. 예수에게만 얹히는 이 현악을 흔히 후광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십자가 위에서 외치는 마지막 말, 위 사진에 붉은 잉크로 적힌 바로 그 대목, 「Eli, Eli, lama lama asabthani」에서 그 현악이 빠집니다. 남는 것은 통주저음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처음부터 받아 온 것과 똑같은 반주입니다. 이 대목에서 예수는 목소리를 잃는 것이 아니라 구별 표시를 잃습니다. 두 합창단을 갈라 세운 것과 같은 발상입니다. 바흐는 목소리를 구별하기 위해 공간과 음향을 함께 썼습니다.

개막 합창 「Kommt, ihr Töchter, helft mir klagen」(오라, 딸들이여, 함께 슬퍼하자)에서 합창단 I은 시온의 딸들에게 탄식을 촉구하고, 합창단 II는 「누구를(Wen)? 어떻게(Wie)? 무엇을(Was)? 어디로(Wohin)?」 네 가지를 되물으며 응답합니다. 두 무리가 엇갈리고 맞물리는 동안, 제3의 소프라노 파트(소프라노 리피에노)가 코랄 선율 「O Lamm Gottes, unschuldig」(죄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여)를 높이에서 흘려보냅니다. 세 개의 층위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탄식하는 군중, 묻고 따르는 군중,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신학적 시선.

이 이중합창 구조는 작품 전체에서 신학적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수난 이야기를 따라가는 내러티브의 목소리와, 그 이야기를 묵상하며 반응하는 회중의 목소리. 바흐가 이 두 층위를 음악적으로 갈라 놓은 결과, 듣는 사람은 구경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건 안쪽에 놓입니다. 바흐가 그것을 노리고 그렇게 썼다고 적어 둔 기록은 없습니다. 이렇게 읽는 것은 후대가 이 구조를 들어 온 방식입니다.

어느 악장부터 들으면 될까요

전체가 세 시간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기 어렵다면 다섯 대목만 짚어 보셔도 됩니다. 아래는 곡이 흘러가는 순서대로입니다.

먼저 알토 아리아 「Erbarme dich」입니다. 베드로가 닭 울음소리에 예수를 세 번 부인했음을 깨닫는 장면 바로 뒤에 놓입니다. 이 아리아를 부르는 것은 베드로가 아닙니다. 그 장면을 뒤에서 바라보는 묵상의 목소리입니다. 알토 독창자가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나의 눈물을 보소서」를 노래하는 동안, 바이올린 독주가 쉬지 않고 흐릅니다. 그 선율은 아래로만 내려가지 않고 오르내리며 굽이치는데, 노래가 쉬는 자리에서도 그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말을 멈춘 뒤에도 무언가 계속 흐르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 아리아만 따로 떼어 연주하는 일이 흔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b단조라는 조성도 중요합니다. 마테존 이래의 조성 정서론과 후대 분석이 공유하는 이해에서 b단조는 깊은 슬픔과 회한의 색채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바흐가 그렇게 쓰겠다고 적어 둔 기록은 없습니다. 그의 여러 작품에서 b단조가 이런 정서에 거듭 쓰인다는 점을 근거로 음악학계가 공유하는 추정입니다. 이 아리아는 베드로 개인의 후회를 넘어, 인간이 신 앞에서 느끼는 보편적 수치와 간청을 표현합니다.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소프라노 아리아 「Aus Liebe will mein Heiland sterben」이 옵니다. 이 아리아에는 좀처럼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통주저음이 빠집니다. 통주저음이 빠지는 자리가 이 작품에 여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27a번 소프라노·알토 이중창 「So ist mein Jesus nun gefangen」도 통주저음 없이 갑니다. 다만 그 곡은 합창 II 가 끼어드는 대목에서 통주저음이 들어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통주저음 없이 가는 것은 이 아리아입니다. 바흐가 자필 총보의 이 악장 첫머리에 직접 적어 둔 표제가 「Travers solo. due Hautb. da Caccia. Soprano. e senza Organo」입니다. 플루트 한 대, 오보에 다 카치아 두 대, 소프라노, 그리고 오르간 없이. 그 쪽을 펼치면 오선이 넷뿐입니다. 낮은 소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보에 다 카치아가 아래 성부를 맡습니다. 다만 화음을 짚어 주며 바닥을 대는 통주저음이 없어서,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딛는 자리가 다른 곳과 다르게 들립니다.

텍스트는 「사랑으로 내 구주는 죽으려 하신다, 그는 아무 죄도 알지 못하시는데」입니다. 죄 없음을 노래하는 자리에서 바닥을 대는 저음이 빠진다는 것은 듣는 사람에게 그대로 다가옵니다. 다만 바흐가 그 뜻으로 그렇게 적었다고 남긴 기록은 없습니다. 악보가 보여 주는 것은 「senza Organo」라는 지시까지이고, 그 뒤를 잇는 것은 우리가 듣는 방식입니다.

이 선율은 두 아리아 사이에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수난 코랄이라 부르는 「O Haupt voll Blut und Wunden」이 작품 전체에 걸쳐 다섯 번 돌아옵니다. 자필 총보의 악장 차례로 보면 1부에 두 번(15번 「Erkenne mich, mein Hüter」, 17번 「Ich will hier bei dir stehen」), 2부에 세 번(44번 「Befiehl du deine Wege」, 54번 「O Haupt voll Blut und Wunden」, 62번 「Wenn ich einmal soll scheiden」)입니다. 「Erbarme dich」가 39번이고 「Aus Liebe」가 49번이니, 두 아리아 사이에 오는 것은 44번 한 번뿐입니다. 매번 같은 가사로 오지는 않습니다. 파울 게르하르트의 수난 찬송의 절이 붙는 곳도 있고, 같은 선율에 다른 찬송 가사가 얹히는 곳도 있습니다. 원 선율은 한스 레오 하슬러가 쓴 세속 노래에서 왔습니다. 파울 게르하르트는 여기에 얹힐 수난 찬송시를 썼고, 그 가사와 하슬러에서 온 선율을 묶어 1656년에 처음 펴낸 사람은 요한 크뤼거입니다. 바흐는 이 선율이 돌아올 때마다 같은 자리에 두지 않았습니다. 화성을 바꾸어 놓기도 하고, 화성은 그대로 둔 채 조만 옮기기도 합니다. 1부의 15번과 17번이 뒤쪽 경우입니다. 네 성부의 화성이 같고 조가 마장조에서 내림마장조로 한 걸음 내려앉습니다. 장면에 따라 조성과 화성이 달라지고, 예수가 숨을 거둔 직후에 오는 마지막 한 번은 눈에 띄게 어둡고 불안정합니다.

이 반복은 음악적 편의가 아닙니다. 루터교 예배에서 회중은 이 코랄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친숙한 선율이 다른 화성을 입거나 다른 조로 옮겨 돌아올 때마다, 회중은 그 차이를 통해 수난 이야기의 깊이가 점점 달라진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바흐는 회중의 음악적 기억을 드라마의 도구로 삼은 것입니다.

곡이 끝에 가까워지면 바스 아리아 「Mache dich, mein Herze, rein」이 나옵니다. 2부 후반, 예수의 시신이 무덤에 안장되기 직전입니다. 텍스트는 「내 마음아, 깨끗해져라. 내가 예수를 내 안에 묻으려 한다」입니다. 마음을 예수를 뉘일 무덤으로 준비하라는 말입니다. 죽음을 다루지만 곡의 색채는 의외로 밝고 온화합니다. 흔들리듯 되풀이되는 리듬이 이 온화함을 만드는데, 이 움직임은 「요람」 또는 「안식」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적어도 이 아리아에서 죽음은 공포보다 안식에 가깝습니다. 루터교 신앙에서 죽음을 잠이자 안식으로 보는 관점과 이어 읽기도 합니다. 슬픔은 있지만, 그 슬픔 너머에 평화가 있다는 신학적 확신이 이 대목의 정서를 지탱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악장 「Wir setzen uns mit Tränen nieder」입니다. 두 합창단이 합쳐져 노래합니다. 「우리는 눈물 흘리며 앉아, 무덤에 계신 당신께 편히 쉬소서 하고 부릅니다.」 흔들리는 리듬, 낮고 느린 선율. 이 종결부는 큰 마무리 없이 조용히 닫힙니다. 슬픔을 풀어 놓는 대신 그 자리에 앉은 채로 곡이 끝납니다.

순수한 발굴이었을까요, 문화적 기획이었을까요

1829년 3월 11일. 스물 살의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가 베를린 징아카데미에서 마태수난곡을 지휘했습니다. 바흐 사후 약 79년 만에 이루어진 대규모 공개 연주였습니다.

이 사건은 「바흐 부흥」의 상징으로 기록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좀 더 복잡한 맥락이 있습니다. 멘델스존이 손에 든 것은 바흐의 자필보가 아니었습니다. 1820년대 초 외조모가 선물한 필사 총보였습니다. 연주된 것 역시 원곡 그대로가 아니라 줄이고 손본 판이었습니다. 또한 이 공연은 독일 낭만주의가 바흐를 「독일 정신의 원천」으로 재구성하는 과정과 깊이 연루되어 있었다는 것이 현대 음악사학자들의 분석입니다. 바흐는 부활했지만, 그것은 18세기 라이프치히의 바흐가 아니라 19세기 낭만주의가 필요로 했던 바흐였습니다.

이 해석이 멘델스존의 공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없었다면 마태수난곡이 오늘날 이 자리에 있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하는 「전설적인 부활」에는 단순하지 않은 역사의 결이 함께 있다는 것, 그것을 아는 것도 감상의 일부입니다.

같은 곡인데 연주가 왜 이렇게 다를까요

20세기 중반까지 마태수난곡 공연은 대규모 합창단과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동원하는 낭만주의적 전통이 지배했습니다. 수백 명의 합창단이 장엄한 음향으로 채우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역사주의 연주 운동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습니다.

역사주의 연주는 바흐 시대의 악기(거트현 악기, 바로크 활, 바로크 관악기)와 소규모 앙상블을 쓰고, 당시의 편성·프레이징·아티큘레이션을 연구해 가볍고 선명한 음향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대한 벽화 대신 세밀화처럼 섬세하고 명확한 마태수난곡이 나타났습니다. 어느 쪽이 「옳은」 연주인지는 논쟁이 계속되지만, 두 전통 모두 이 작품의 다른 층위를 드러냅니다.

🎧 처음 감상하는 분을 위한 입문 루트

  • 개막 합창 「Kommt, ihr Töchter」(1번). 두 합창단이 갈라 서는 자리입니다.
  • 「Erbarme dich」(39번, 알토 아리아). 부인 뒤에 놓인 묵상입니다.
  • 「Aus Liebe」(49번, 소프라노 아리아). 통주저음이 빠지는 자리입니다.
  • 「Wir setzen uns」(68번, 마지막 합창). 조용히 닫히는 끝입니다.
  • 수난 코랄 선율이 다섯 번 돌아오는 것(15·17·44·54·62번)을 세며 들어도 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위 「어느 악장부터 들으면 될까요」에 있습니다.

왜 이 곡은 지금도 해마다 연주될까요

당대 청중이 이 작품을 어떻게 들었는지 알려 주는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바흐 자신은 이 곡을 놓지 않았습니다. 1736년에 전면 개정해 다시 올렸고, 1742년에도 다시 올린 것으로 봅니다. 바흐 사후 전곡을 공개 연주하는 전통은 끊겼지만 악보는 살아남았습니다. 자필 총보는 아들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를 거쳐 베를린으로 옮겨 갔고, 1829년에 연주된 것은 그 자필보가 아니라 징아카데미가 갖고 있던 사본 계열이었습니다.

오늘날 마태수난곡은 해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성금요일 전후로 연주됩니다. 신자가 아닌 청중이 「Erbarme dich」의 바이올린 독주 앞에서 자세를 고쳐 앉는 것도 그 자리에서입니다.

음악사에서 이 작품의 전환점은 18세기에 끼친 영향보다 1829년 이후의 수용사에 있습니다. 헨델은 바흐와 같은 시대를 살았고, 하이든과 베토벤은 1829년의 부활 공연 이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개 연주가 끊긴 동안에도 악보를 통한 접촉이 있었는지는 따로 따져야 할 문제입니다. 다만 이 곡이 그들에게 길을 열었다는 직접적인 영향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멘델스존의 공연은 지나간 시대의 작품을 되살려 현대의 연주회에 올리는 문화, 곧 바흐 부흥과 역사주의적 음악 문화를 촉발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음악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극단적 사례입니다. 신학을 악보에 쓰는 것,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번역하는 것, 그리고 3시간의 음악이 끝날 때 청중이 무언가 달라진 사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것.

📋 마태수난곡 BWV 244 · 핵심 사실 요약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1685~1750)
작품번호 BWV 244
대본 마태복음 26~27장 + 피칸더(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헨리치)의 자유시 + 루터교 코랄
초연 (추정) 1727년 4월 11일설이 유력하다(Bach Digital은 「1727?」로 표기 · 학계 합의는 아직 없다) · 이 설을 따르면 1729년 4월 15일은 재연이다
초연 장소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수난곡을 올리는 교회가 해마다 번갈았으므로 장소는 초연 연도에 딸린다)
편성 이중합창단 + 이중 오케스트라 + 독창 성부(합창단 I·II에 각각 소프라노·알토·테너·바스) + 소프라노 리피에노
※ 복음사가(테너)와 예수(바스)의 배역이 따로 있다. 성부 수와 실제 독창자 인원은 다르며, 위는 오늘날 흔한 배역 방식이다
연주 시간 약 2시간 40분 ~ 3시간 (판본·템포·생략 여부·휴식 포함 여부에 따라 상이)
부활 공연 1829년 3월 11일, 베를린 징아카데미, 멘델스존 지휘

마태수난곡을 처음 듣는다면, 전체를 한 번에 완주하려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Erbarme dich」 하나로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그 한 곡이 세 시간짜리 작품의 문이 되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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