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샤인〉의 사운드트랙 음반에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이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그 옆에 트럼펫과 합창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2분 26초짜리 트랙이 하나 끼어 있습니다. 비발디의 〈글로리아〉, 그중 첫 곡 「높은 곳에 하느님께 영광」입니다.
이 곡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1939년까지 아무도 이 곡을 연주한 적이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연주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그 존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소장한 사람은 있었습니다.

안토니오 비발디를 새긴 18세기 판화. 프랑수아 모렐롱 라 카브의 작품이다.
어떤 곡인가
〈글로리아〉 D장조 RV 589는 미사 통상문의 「글로리아」 한 대목을 열두 개의 악장으로 나눠 붙인 곡입니다. 편성은 현악과 통주저음에 트럼펫과 오보에가 하나씩 얹히고, 독창은 소프라노 둘과 알토, 거기에 합창입니다. 독창이 전부 여성 성부인 것이 이 곡의 특징이고, 뒤에 나올 이 곡의 자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작곡 시기는 1715년 무렵으로 봅니다. 비발디가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에 있던 시기이고, 독창이 전부 여성 성부인 것도 그곳을 위해 썼을 가능성을 가리킵니다.
첫 곡 「Gloria in excelsis Deo」에서 관현악이 먼저 나와 두 가지 재료를 세웁니다. 하나는 한 옥타브를 뛰어오르는 동기이고, 다른 하나는 8분음표와 16분음표가 붙어 달리는 짧은 음형입니다. 이 둘이 곡 전체에 되풀이해 돌아오는 틀, 곧 리토르넬로가 됩니다.
이 방식은 낯설지 않습니다. 비발디가 기악 협주곡에서 즐겨 쓰던 리토르넬로를 합창곡에 그대로 옮겨 온 것입니다. 악기를 전부 쓰는 것은 열두 악장 가운데 첫 곡과 열한째, 열두째뿐이고, 나머지는 골라 씁니다. 오보에는 늘 나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대목에서 색을 내는 쪽으로 쓰이는데, 여섯째 곡에는 오보에 독주가 따로 놓여 있습니다.

베네치아의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합창의 딸들」이 되었다.
이 곡이 울리던 자리
비발디는 베네치아의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와 오래 엮여 있었습니다. 1703년부터 1740년까지인데 한 줄로 이어진 재직은 아닙니다. 도중에 몇 차례 끊겼고, 만토바 궁정에 가 있던 시기도 있으며, 1723년 이후로는 상주하지 않고 악보를 보내는 방식으로 관계가 이어졌습니다.
피에타는 버려진 여자아이를 받던 시설이었습니다. 아기를 넣을 수 있게 벽에 낸 작은 구멍을 스카페타(scaffetta)라 불렀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받았습니다.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음악을 배웠고, 그중 뽑힌 이들이 「합창의 딸들」(figlie di coro)이었습니다. 규모는 40명에서 60명 사이였고, 예배당 연주 편성은 규정상 가수 열여덟, 현악 열둘, 오르간 둘, 독창 둘이었습니다.
이들의 연주를 들으려고 유럽 각지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다만 무대에 선 모습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연주자들은 격자 뒤에 있었습니다.
마지막 곡은 남의 것에서 왔다
열두 번째 곡 「Cum Sancto Spiritu」는 두 개의 주제가 얽히는 이중 푸가로 끝납니다. 옛 교회음악의 문법을 그대로 쓴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 끝부분은 비발디가 처음부터 쓴 것이 아닙니다. 같은 베네치아의 작곡가 조반니 마리아 루제리가 1708년에 쓴 〈두 합창을 위한 글로리아〉의 마지막 부분을 비발디가 편곡해 가져온 것입니다. 다만 지금 「비발디의 글로리아」로 듣는 마지막 몇 분이 엄밀히는 다른 사람의 설계라는 것은 짚어 둘 만합니다.
악보가 사라졌다가 돌아온 경위
비발디는 죽은 뒤 오래 잊혔습니다. 그의 자필 악보 뭉치가 다시 나타난 것은 1926년 가을 토리노에서였습니다.
살레시오회 쪽에서 소장하고 있던 악보 뭉치의 값을 알아보려 했고, 감정을 맡은 사람이 토리노 대학의 음악사 교수 알베르토 젠틸리였습니다. 상자를 열자 비발디의 악보 수백 점이 나왔습니다. 협주곡과 오페라, 소나타와 교회음악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두라초 백작 가문에서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뭉치가 둘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쪽은 사업가 로베르토 포아가 1927년에 사들여 국립도서관에 기증했고, 다른 한쪽은 필리포 조르다노가 사들여 같은 곳에 넘겼습니다. 오늘날 이 자료를 「마우로 포아 컬렉션」과 「렌초 조르다노 컬렉션」이라 부르는 것은 두 사람이 각각 세상을 떠난 아들의 이름을 붙여 기증했기 때문입니다. 흩어졌던 두 묶음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1930년 10월 30일이었습니다.
〈글로리아〉가 처음으로 다시 울린 것은 1939년 9월 20일 시에나에서였습니다. 지휘는 알프레도 카젤라가 맡았습니다.
그 자리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카젤라가 그해에 만들어 예술감독을 맡은 제1회 세네세 음악주간의 무대였고, 잊힌 옛 작곡가를 다시 꺼내 놓는 것이 그 축제의 목적이었습니다. 비발디만이 아니라 스카를라티·페르골레시·갈루피 같은 이름이 같은 자리에서 되살아났습니다. 다만 시점이 좋지 않았습니다. 9월 1일에 전쟁이 터졌고, 이 연주는 그 열아흐레 뒤에 열렸습니다.
무엇을 되찾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카젤라가 정리한 악보는 이후 오래 표준처럼 쓰였습니다. 그런데 그 판이 비발디의 자필보와 여러 군데 어긋난다는 지적이 뒤에 나왔습니다. 폴 에버렛, 마이클 톨벗, 클레이턴 웨스터먼 같은 이들이 토리노의 악보를 근거로 다시 손본 판을 내놓은 것이 그 때문입니다.
지금 시중의 녹음이 어느 판을 따르는지는 음반마다 다릅니다. 같은 곡의 다른 녹음을 나란히 들었을 때 세부가 어긋난다면 연주자의 해석 차이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느 악보를 펴 놓고 연주했느냐가 이미 다를 수 있습니다.
사운드트랙에 실린 2분 26초
〈샤인〉은 1996년 스콧 힉스가 연출한 영화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을 그렸고, 제프리 러시가 제69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사운드트랙 음반에는 〈글로리아〉가 리키 에드워즈와 데이비드 허슈펠더의 편곡으로 2분 26초 길이로 실려 있습니다. 같은 음반에 비발디가 한 곡 더 있습니다. 〈세상엔 참 평화 없어라〉 RV 630입니다.
영화가 어느 대목에서 이 곡을 썼는지는 이 글에서 특정하지 않습니다.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사운드트랙 음반에 실려 있다는 것은 분명하고, 그 트랙을 입구 삼아 원곡 열두 악장을 처음부터 들어 볼 만합니다.
어떻게 들으면 좋은가
처음 듣는다면 첫 곡만 반복해서 들어 보기를 권합니다. 관현악이 먼저 옥타브를 뛰어오르고, 합창이 그 도약을 뒤따라 같은 꼴로 터뜨립니다. 이 짧은 재료 하나가 곡을 끌고 가는 방식이 비발디의 방식입니다.
그다음에 마지막 곡 「Cum Sancto Spiritu」로 건너뛰어 보면, 첫 곡과 결이 다른 것을 알게 됩니다. 앞서 적었듯 그 대목의 설계는 루제리에게서 왔습니다. 같은 곡 안에서 두 사람의 손이 갈리는 자리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비발디가 쓴 〈글로리아〉는 몇 곡인가요?
기록상 셋인데 그중 둘이 남아 있습니다. RV 588과 RV 589이고, RV 590은 목록에만 이름이 있고 전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그냥 「비발디의 글로리아」라고 하면 RV 589를 가리킵니다.
RV 589는 몇 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나요?
열두 개입니다. 「Gloria in excelsis Deo」는 그중 첫 곡입니다.
이 곡은 언제 작곡되었나요?
1715년 무렵으로 봅니다. 확정된 연도가 아니라 추정이며, 당시 비발디는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와 밀접하게 활동하고 있었고, 이 작품도 그곳의 연주자들을 위해 쓴 것으로 흔히 추정됩니다. 다만 그가 외부에서 종교음악을 의뢰받기도 했으므로 단정할 일은 아닙니다.
왜 1939년에야 처음 연주되었나요?
잊힌 채 개인 소장으로 남아 있다가 1926년 토리노에서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구매와 정리에 몇 해가 더 걸렸습니다. 자료가 정리된 뒤 1939년 9월 20일 시에나에서 알프레도 카젤라의 지휘로 연주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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