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 〈보아라 정복의 용사 오신다〉, 이 합창은 그 승리의 자리에 없었다

덴너의 것으로 전하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초상

작성자

카테고리:

,

1750년 3월, 런던 코번트 가든에서 〈유다스 마카베우스〉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극장에서는 대본책을 팔았습니다. 그 책에는 「추가곡」이라는 별지가 한 장 끼워져 있었습니다. 그 무대에서 추가로 불린 대목의 가사를 담은 종이입니다. 거기 실린 곡 가운데 하나가 지금 우리가 헨델의 승전 합창으로 아는 “보아라, 용사 돌아온다”입니다. 이 오라토리오는 그보다 세 해 앞서 초연되었습니다. 그러니 초연을 본 사람은 이 합창을 듣지 못했습니다.

덴너의 것으로 전하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초상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덴너의 것으로 전하는 초상이고, 1726년에서 1728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본다.
곡 한눈에 보기
•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 곡: 오라토리오 〈유다스 마카베우스〉 HWV 63 제3부의 합창 “보아라, 용사 돌아온다”
• 조성: 사장조
• 대본: 토머스 모렐
• 〈유다스 마카베우스〉 초연: 1747년 4월 1일, 런던 코번트 가든 극장
• 이 합창의 원 소속: 오라토리오 〈여호수아〉 HWV 64
• 구성: 청년들의 합창 → 처녀들의 합창 → 전원 합창

무엇을 노래하는 곡인가

이 합창은 갑자기 시작되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서 전령 한 사람이 뛰어들어 옵니다. 그는 카파르살라마에서 독수리의 날개를 타고 날아왔다고 말합니다. 적장 리시아스가 사슬 갑옷을 두른 군대를 이끌고 왔고, 금과 놋으로 된 육중한 방패가 들판 위로 번개처럼 번쩍였으며, 등에 탑을 얹은 코끼리들이 앞줄을 이루었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유다스는 겁내지 않고 맞서 싸워 그 무리를 모두 무찔렀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소식이 아직 남았다며 니카노르의 이름을 꺼냅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합창이 들어옵니다. 그러니 이 곡에서 맞이하는 사람은 유다스 마카베우스입니다. 기원전 2세기에 유대를 지배하던 세력에 맞서 싸운 지도자이고, 헨델의 오라토리오는 그의 승리를 따라갑니다.

가사는 두 무리가 나누어 부릅니다. 먼저 청년들이 부릅니다. 보라, 승리한 영웅이 온다. 나팔을 울리고 북을 쳐라. 경기를 준비하고 월계관을 가져오라. 그에게 승리의 노래를 불러라. 이어서 처녀들이 받습니다. 보라, 신 같은 젊은이가 나아온다. 플루트를 불고 춤을 이끌라. 은매화 화관과 장미를 엮어 영웅의 이마를 꾸미라. 그리고 두 무리가 함께, 처음의 말로 돌아옵니다.

여기서 하나만 미리 짚어 두겠습니다. 가사에 유다스라는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승리한 영웅”이라고만 합니다. 앞의 전령이 이름을 말해 주기 때문에 극 안에서는 누구인지 알 수 있지만, 합창만 떼어 놓으면 맞이하는 대상이 비어 있습니다. 이 빈자리가 뒤에서 여러 번 쓰이게 됩니다.

1745년, 헨델은 무너지고 있었다

이 오라토리오가 나오기 전에 헨델은 큰 손실을 겪었습니다. 1743년과 1744년 사순절 오라토리오 시즌이 잘되자, 그는 다음 시즌을 겨울까지 늘려 잡고 예약 구독을 모집했습니다. 구독자는 미리 돈을 내고 스물네 번의 공연에 들어갈 표를 받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즌이 시작부터 어긋났습니다. 첫 공연은 구독자 대부분이 아직 런던에 없어 객석이 비었고, 겨울이 지나기 전에 그는 계약한 스물네 번 가운데 여섯 번만 하고 멈춰야 했습니다. 사순절에 다시 시작해 열여섯 번까지 갔지만 결국 그 구독 사업 자체를 접었습니다.

그가 중단을 알리며 신문에 낸 글이 남아 있습니다. 기쁘게 해 드리려는 제 노력이 무익해졌는데 제 비용은 상당히 더 커졌습니다, 라고 그는 적었습니다. 그리고 손실이 감당 못 할 만큼 커지기 전에 멈추도록 허락해 달라고 구독자들에게 청했습니다. 낸 돈의 사분의 삼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안내도 함께 나갔습니다. 그 무렵 사정을 지켜본 대본가 찰스 제넌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대부분의 구독자가 돈 받기를 거절했고 그러자 헨델이 사순절에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고 적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몸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1737년부터 근육 장애를 앓았는데, 이것이 어떤 종류의 관절염이었는지 말초신경병증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납중독에서 온 통풍이었을 가능성을 드는 연구도 있습니다. 헨델이 런던에서 포트와인을 마셨다는 것은 그 자신의 필적 메모에서 추정할 수 있는데, 그 시기 포도주에 납이 섞여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든 것입니다. 다만 이것들은 모두 추정으로 적힌 것이고, 확정된 진단이 아닙니다.

헨델이 오페라를 접고 오라토리오로 방향을 바꾼 사정 전체는 무너진 오페라 시장에서 헨델은 어떻게 〈메시아〉를 만들었나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1746년 봄, 런던은 컴벌랜드로 덮였다

1746년 4월 16일 컬로든에서 자코바이트 군이 무너졌습니다. 승리한 사람은 국왕의 아들 컴벌랜드 공작이었고, 그해 봄 런던에서 그의 인기는 정점에 있었습니다. 하원은 5월 15일에 공작과 그 남계 상속인에게 연 이만 오천 파운드의 추가 수입을 지급하기로 의결했습니다. 나라를 위한 뚜렷한 공로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감사의 표시는 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해 여름 윈저 대공원 관리관이 되었고 가을에는 용기병 연대장이 되었습니다. 앞면에 그의 흉상을, 뒷면에 용을 가리키는 아폴로를 새긴 금메달이 주조되었습니다. 시인 윌리엄 콜린스가 〈용사들은 어떻게 잠드는가〉를 썼고 화가 존 우턴이 전장의 기마상을 그렸습니다. 하이드파크로 들어가는 타이번 문은 컴벌랜드 문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공작의 얼굴이 전국 술집 간판에 흔해졌습니다.

극장들이 가장 빨랐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아흐레 만인 4월 25일, 코번트 가든에서는 다른 연극 사이에 “반란군 패배에 부치는 임시 노래”가 불렸습니다. 사흘 뒤 굿맨스필즈의 한 극장은 컬로든 하우스 인근의 전투 장면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 이틀 뒤 헤이마켓 극장은 공작을 기리는 임시 프롤로그를 붙였고, 다시 이틀 뒤 드루리레인에서도 같은 성격의 새 프롤로그가 낭송되었습니다. 여드레 사이에 런던의 주요 극장 네 곳이 차례로 같은 일을 한 것입니다.

다만 이 열광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같은 해에 토바이어스 스몰렛은 “스코틀랜드의 눈물”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컬로든 이후 스코틀랜드에서 벌어진 일을 다룬 시입니다. 런던의 술집 간판과 이 시는 같은 사건의 양쪽 면이고, 이 오라토리오의 배경을 말할 때 한쪽만 옮기면 그 배경을 절반만 옮기는 것이 됩니다.

1747년 4월 1일 코번트 가든

헨델이 새 오라토리오를 준비한다는 소식은 그해 3월 초 신문에 실렸습니다. 여러 귀족과 신사의 요청에 따라 헨델 씨가 사순절에 음악 공연을 열 것이며 그를 위해 새 오라토리오를 작곡했다는 짧은 기사입니다. 그해 시즌을 앞두고 개막을 미룰지 말지가 오갔습니다. 제임스 해리스에게 보낸 그해 2월 26일자 편지가 그 사정을 전합니다. 러뱃 경의 재판이 같은 시기에 시작되니 예정대로 3월 6일 금요일에 열면 관객이 오지 못할 수 있어, 헨델이 한 주 뒤로 미룰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 편지는 스스로 이 모두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적어 두었고, 실제로 시즌은 3월 6일에 〈기회의 오라토리오〉로 열렸습니다. 재판 때문에 밀린 것은 3월 18일로 잡혀 있던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었고 그것이 3월 20일에 상연되었습니다. 자코바이트 봉기의 사후 처리 재판이 극장 일정을 실제로 움직인 것입니다.

초연 당일 신문 광고는 이렇게 나갔습니다. 코번트 가든 왕립극장에서 오늘, 새 오라토리오 〈유다스 마카베우스〉가 상연되며 새 협주곡을 곁들인다고 알린 뒤, 표는 그날 극장 사무소에서 배부하고 평토간과 박스석은 각 반 기니라고 적었습니다. 갤러리는 오후 네 시 반에, 평토간과 박스석은 다섯 시에 열고 공연은 여섯 시 반에 시작한다는 안내가 뒤따릅니다. 같은 문구가 그 봄 내내 되풀이되는데, 4월 8일 공연부터는 제목 아래에 “추가곡과 함께”라는 말이 붙기 시작합니다. 무엇이 추가되었는지는 광고가 말하지 않습니다.

왕가 사람들도 왔습니다. 다만 초연은 아닙니다. 4월 9일부터 11일까지를 다룬 한 석간신문이, 어젯밤 웨일스 공 부부와 어밀리아 공주와 어린 공주 두 사람이 코번트 가든에서 헨델 씨가 작곡한 오라토리오를 관람했다고 전합니다. 그 신문이 다룬 기간에 공연이 있던 날은 4월 10일입니다.

흥행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4월 8일 공연 다음 날, 헨델은 은행에 이백오십 파운드를 넣었습니다. 이 숫자를 그 한 번의 공연으로 번 돈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헨델의 계좌를 정리한 연구자는 뒷날 1752년의 어느 입금액을 두고 그것이 전부 특정 공연에서 온 것인지 유보를 달았습니다. 1747년의 이 숫자에는 그런 단서를 붙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그날 공연의 순익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확실한 것은 공연 다음 날 그만한 돈이 들어왔다는 사실까지입니다.

헨델 유다스 마카베우스 악보의 표지
〈유다스 마카베우스〉 악보의 표지다. 리톨프 판 성악보이고 헨델 당대의 인쇄본은 아니다.

그런데 이 합창은 그 자리에 없었다

여기까지가 이 오라토리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작품에서 가장 잘 아는 그 합창은, 지금까지 적은 어느 장면에도 없었습니다.

이 합창은 원래 헨델의 다음 오라토리오 〈여호수아〉를 위해 쓴 것이었습니다. 거기서는 성을 함락하고 돌아온 젊은이 옷니엘을 맞는 노래입니다. 〈여호수아〉는 1748년 3월 9일 코번트 가든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 합창이 처음 소리로 나간 날입니다. 그 곡이 언제 〈유다스 마카베우스〉로 옮겨 왔는지는 악보가 아니라 종이 뭉치가 알려 줍니다. 관객이 극장에서 사던 대본책 때문입니다. 공연 때마다 곡이 바뀌면 인쇄된 대본과 실제 무대가 어긋나므로, 출판업자는 바뀐 대목의 가사를 「추가곡」이라는 별지에 찍어 대본책에 끼워 팔았습니다. 그 별지를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어느 공연에 무엇이 새로 들어갔는지가 드러납니다.

이 곡을 연구한 멀린 채넌의 학위논문은 그 별지들과, 지휘용 악보 여백에 적힌 가수 과다니의 이름을 함께 읽어 1750년 3월의 두 공연을 짚습니다. 3월 9일과 14일입니다. 근거가 인쇄물과 필적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후대의 짐작이 아니라 당대의 종이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만 그 종이를 읽어 연도를 확정한 것은 연구자의 논증이고, 논증에는 반대할 여지가 남습니다.

실제로 갈립니다. 2018년에 나온 카루스 비평판(펠릭스 로이 편) 악보의 서문은 헨델이 이 곡을 〈유다스 마카베우스〉에 “아마도 1750년에, 어쩌면 이미 1748년에” 처음 썼다고 적으면서, 그 근거로 같은 연구자의 뒷날 논문을 답니다. 그런데 그 연구자의 학위논문은 1748년 도입을 두고 “매우 있을 법하지 않아 보인다”고 적습니다. 그만한 큰 추가가 있었다면 신문 광고에 따로 홍보가 실렸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두 문헌이 같은 연구자를 가리키면서 서로 다른 쪽에 무게를 싣고 있는 셈입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여기서 정하지 않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1747년 초연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헨델은 왜 옮겼을까요. 이번에 찾지 못했습니다. 학위논문 삼백스물네 쪽 전문과, 1747년 당대 신문 자료를 모아 놓은 데이터베이스와, 모렐 편지를 다룬 논문을 훑었지만 이유를 적은 문서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없다는 뜻이 아니라 여기까지 보고 못 찾았다는 뜻입니다. 흔히 붙는 설명들은 대체로 뒷사람의 정황 추론입니다.

앞에서 짚어 둔 것이 여기서 쓰입니다. 이 합창의 가사는 맞이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에서 맞이하던 사람과 〈유다스 마카베우스〉에서 맞이하는 사람이 서로 다른데도 가사를 한 글자도 고칠 필요가 없었던 것은 그 때문입니다.

30년 뒤에 쓰인 편지

대본을 쓴 토머스 모렐의 초상 판화
대본을 쓴 토머스 모렐이다. 윌리엄 호가스가 그린 것을 판화로 옮겼고, 1762년 2월 자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다.

이 오라토리오가 컴벌랜드 공작에게 바쳐졌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대본 초판에 헌정면이 인쇄되어 있으므로 그 자체는 기록입니다. 그런데 “공작에게 바치는 찬사로 구상되었다”는 창작 동기의 진술은 다릅니다. 그 진술의 출처가 하나뿐입니다. 대본을 쓴 토머스 모렐이 쓴 편지 한 통입니다.

그 편지에서 모렐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유다스 마카베우스〉의 구상은 스코틀랜드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컴벌랜드 공작에게 바치는 찬사로 고안되었다. 더 적절한 사건들을 몇 가지 넣었었지만 곡이 너무 길어진다 하여 뺐다. 그래도 공작은 포인츠 씨 편으로 내게 후한 선물을 보내 주었다.

이 편지가 언제 쓰였는지가 오랫동안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편지에는 날짜가 없고 받는 사람 이름도 없습니다. 20세기 중반에 나온 도이치의 자료집은 대략 1764년쯤으로 추정해 붙였고, 그 뒤 여러 전기가 1770년대로 미루어 잡았습니다. 2002년에 나온 루스 스미스의 연구가 그 문제를 다시 다뤘습니다. 편지 실물은 케임브리지대학도서관에 있는 낱장 한 장의 네 면짜리 문서이고, 받는 사람은 인쇄업자이자 전기 작가였던 존 니콜스로 좁혀집니다. 연대는 1776년에서 1781년 사이이며 아마도 1779년에서 1780년일 것이라는 것이 그 연구의 결론입니다.

연대를 좁힌 방법이 흥미롭습니다. 니콜스가 편지 속 정보를 써서 낸 글의 간행년이 1781년이므로 편지는 그보다 앞섭니다. 반대쪽에서는 모렐이 편지 안에서 어느 연주회의 〈입다〉 공연을 언급하는데 그 공연이 1776년이므로 편지는 그보다 뒤입니다. 여기에 필적이 더해집니다. 이 편지의 글씨는 1777년에 쓴 다른 편지보다, 그리고 1779년으로 날짜가 적힌 원고보다 더 떨립니다.

그러면 이렇게 됩니다. 컬로든은 1746년이고 초연은 1747년인데, 그 일을 설명하는 유일한 진술은 삼십 년쯤 뒤에 쓰였습니다. 그 연구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종전 추정보다 늦으므로 거기 기록된 사건들은 지금까지 여겨진 것보다 더 먼 거리에서 회상된 것이며,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도 멀다고. 다만 같은 연구자는 반대편도 적어 둡니다. 이 편지는 누구를 즐겁게 하려고 쓴 사담이 아니라 꼼꼼한 학자가 진지한 전기 작가에게 간행을 위해 넘긴 자료였다는 것입니다.

같은 편지에 돈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본가는 셋째 밤 공연의 수익을 받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모렐은 처음에 농담으로라도 서른째 밤을 달라고 할걸 그랬다고 적습니다. 그 밤에 극장에 사백 이상이 들어 있었다는 말과, 헨델이 유언으로 이백을 남겨 주었다는 말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하나 밝혀 둘 것이 있습니다. 편지 원본에는 두 숫자 옆에 화폐 단위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파운드로 읽는 것이 통례입니다. 그리고 공작이 보냈다는 선물은 금액이 아예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 뒤 이 가락이 간 자리

이 가락은 오라토리오 밖으로 일찍 나갔습니다. 다만 어디로 얼마나 갔는지는 자리마다 확인된 정도가 다릅니다. 그래서 확인된 만큼만, 확인된 수준을 밝히며 적겠습니다.

가장 단단한 것은 인쇄된 악보입니다. 1788년 글래스고에서 나온 곡집에 이 가락이 실려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곡을 모은 책인데, 영국과 아일랜드의 자원병과 방위대에 바친다는 헌사를 달고 있었습니다. 헨델이 죽고 서른 해쯤 지난 시점에 이 가락이 이미 오라토리오 밖의 곡집에 행진곡으로 실려 있었다는 뜻입니다.

행진에서 쓰인 사례도 기록이 있습니다. 1829년 워릭에서 열린 워털루 기념 행진에서, 한 참전 군인이 워털루 훈장을 단 채 옛 전우들을 이 가락에 맞춰 불러 모았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 제대한 군악대원들이 영국의 브라스밴드를 만들었다는 최근 연구에 실린 대목입니다.

교회로 간 경로도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이 오라토리오가 독일어로 옮겨지면서 이 합창에도 독일어 가사가 붙었고, 뒤에 신학자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랑케가 같은 가락에 새 노랫말을 붙여 “시온의 딸아 기뻐하라”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어권에서는 스위스 목사 에드몽 뷔드리가 첫 아내를 잃은 뒤 이 가락에 부활을 노래하는 가사를 붙였습니다. 1884년의 일이고 이듬해 찬송집에 실렸습니다. 그것을 영어로 옮긴 것이 오늘날 영어권 교회가 부르는 “Thine be the glory”입니다. 다만 뒤쪽 두 문장의 근거는 일반 백과 수준이라, 연도까지 확정된 것으로 읽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독일 찬송가 시온의 딸아 기뻐하라의 악보
같은 가락에 독일어 가사를 붙인 “시온의 딸아 기뻐하라”의 악보다. 1898년 인쇄본이다.

작곡가들도 이 가락을 가져다 썼습니다. 베토벤이 이 주제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12개의 변주곡 WoO 45(1796)를 남겼습니다. 헌정 대상을 비롯한 나머지 서지는 기관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맞이하는 사람의 이름이 비어 있는 가사가 이 이동을 쉽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성을 함락한 젊은이에서 유다스 마카베우스로,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예수로, 그리고 부활한 그리스도로 맞이하는 대상이 바뀌는 동안에도 노래는 같은 말을 했습니다. 승리한 사람이 온다, 나가서 맞으라는 말입니다.

헨델의 생애 전체는 헨델 생애와 작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디를 따라 들으면 되는가

이 곡을 따라 들을 때 필요한 것은 악보를 읽는 능력이 아닙니다. 지금 누가 부르고 있는지만 알면 됩니다. 세 번 갈아입기 때문입니다.

처음은 청년들만 부릅니다. 세 겹의 높은 목소리이고 받쳐 주는 것은 오르간뿐입니다. 되풀이되는 대목에서 호른 두 대가 슬며시 들어옵니다. 여기서는 아직 축제가 아니라 소식에 가깝습니다. 다음은 처녀들 차례입니다. 목소리가 두 겹으로 줄고, 호른은 물러나며, 그 자리에 가로 플루트 두 대가 들어와 노래를 따라다닙니다. 가사가 “플루트를 불고”라고 말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실제로 플루트가 붑니다. 마지막에 모두가 들어옵니다. 네 성부가 되고 호른과 오보에, 플루트와 현이 함께 울립니다. 악보에는 군용북을 넣어도 좋다는 지시가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 성부는 계속 늘어나지 않습니다. 셋에서 둘로 줄었다가 넷으로 열립니다. 반주도 함께 얇아집니다. 청년들 대목 후반에 들어왔던 호른이 처녀들 대목에서는 빠지고 그 자리를 플루트가 대신하므로, 악기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색이 바뀐 것입니다. 가장 얇고 조용한 대목이 가장 큰 대목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제 판단입니다. 저는 마지막 합창이 실제 인원이나 음량 이상으로 넓게 들리는 이유가 바로 앞의 얇은 자리에 있다고 봅니다.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처녀들 대목을 한 번 듣고 곧바로 마지막 합창으로 넘어가 보시고, 다음에는 처녀들 대목을 건너뛰고 청년들 대목에서 바로 마지막으로 가 보십시오. 두 번의 인상이 같다면 제 판단이 틀린 것입니다.

이 합창만 따로 듣는 경우가 많지만, 앞뒤를 붙여 들으면 장면이 살아납니다. 먼저 전령의 짧은 노래를 듣습니다. 코끼리와 방패가 나오는 그 대목입니다. 이어서 이 합창을 듣고, 합창이 끝나면 그대로 이어지는 행진곡을 듣습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걸어 나가는 대목입니다. 그다음에 감사의 합창이 옵니다. 네 곡을 이어서 들으면 소식이 도착하고, 맞이하고, 행렬이 지나가고, 감사하는 순서가 한 덩어리로 들립니다.

성부가 늘고 줄어드는 것을 귀로 따라가는 일은 합창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악기에서 성부의 수가 달라지며 소리의 폭이 바뀌는 경우는 브란덴부르크 3번과 비창 4악장에서 따로 다루었습니다. 청중이 합창에 몸으로 반응하는 다른 사례는 왜 우리는 할렐루야에서 일어서는가에서 다루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그러면 이 합창은 컴벌랜드와 아무 상관이 없나요?
그렇게까지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라토리오 자체는 대본 초판에 컴벌랜드 공작에게 바친다는 헌정면이 인쇄되어 있으므로 헌정은 기록된 사실입니다. 분리해서 보아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헌정은 작품 전체에 관한 것이고, 이 합창은 그 작품이 처음 상연될 때 안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공작에게 바치는 찬사로 구상되었다”는 창작 동기의 진술은 헌정면이 아니라 대본가가 30년쯤 뒤에 쓴 편지에서 나옵니다.

이 합창이 들어온 해는 결국 언제인가요?
하나로 확정된 값을 이 글에서는 쓰지 않았습니다. 학위논문은 대본책의 추가곡 별지와 악보에 적힌 가수 이름을 근거로 1750년 3월의 두 공연을 짚습니다. 비평판 악보의 서문은 아마도 1750년이라 하면서 어쩌면 이미 1748년일 수도 있다고 적습니다. 두 문헌이 갈리므로 어느 한쪽을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갈리지 않는 것은 1747년 초연에는 없었다는 점입니다.

〈여호수아〉의 그 곡과 같은 곡인가요?
같은 곡입니다. 이 합창은 〈여호수아〉를 위해 쓰인 뒤 〈유다스 마카베우스〉로 옮겨 왔고, 그 뒤로는 이 작품의 제3부에 자리 잡았습니다. 다만 1747년 초연판을 복원하는 공연에서는 뺍니다. 두 작품에서 맞이하는 사람이 다른데도 가사를 고치지 않은 것은, 가사가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 문의 및 쪽지함
반갑습니다!
문의사항은 이 쪽지함으로 남겨주세요!
🔒 관리자에게만 안전하게 전송됩니다.
⏰ 현재:
🚀 최초:
🕐 방금 접속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