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10월 22일, 런던 퀸스 홀의 프롬스 연주회에서 헨리 우드가 새 행진곡 두 곡을 지휘했습니다. 그날 저녁을 우드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중 한 곡이 끝나자 청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드는 같은 곡을 다시 연주했지만 결과는 같았고, 청중은 다음 순서로 넘어가는 것 자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 곡이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1번입니다. 이 곡은 오늘날 미국 졸업식의 행진 음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곡이 졸업식과 엮인 것은 그 저녁으로부터 3년 8개월 뒤, 대서양 건너편에서였습니다. 이 글은 곡 한 편의 이력을 따라갑니다. 태어난 자리, 졸업식과 엮인 자리, 그리고 엮은 쪽이 이 곡을 놓아 버린 자리입니다.
우드는 세 번 연주했다고 기억했다
런던 초연은 사흘 뒤인 1901년 10월 22일 퀸스 홀의 프롬나드 콘서트였고, 지휘봉은 프롬스를 이끌던 헨리 우드가 잡았습니다. 청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고 다시 연주해도 같았습니다. 우드는 질서를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이 행진곡을 세 번째로 연주했다고 1938년 회고록에 적었습니다. 프롬나드 콘서트에서 관현악 곡이 앙코르를 두 번 받은 것은 그때 한 번뿐이었다는 말도 함께 남겼습니다. 그날을 이렇게 전하는 곳은 그 회고록입니다.
다섯 달 전, 사람들을 자빠뜨릴 곡조
그해 5월 10일 금요일, 엘가는 친구 도라 페니를 위층으로 불렀습니다. 〈수수께끼 변주곡〉에서 도라벨라로 그려진 사람입니다. 얘야 올라오너라, 사람들을 자빠뜨릴 곡조가 생겼다, 아주 자빠뜨릴 곡조다, 하고 그가 소리쳤습니다. 그러고는 그 곡을 쳤습니다.
그 자리에서 엘가가 부른 이름은 〈위풍당당 행진곡〉이 아니었습니다. D장조 군대 행진곡 1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제목은 아직 붙기 전이었습니다.
이어진 대화가 도라 페니의 회고록에 옮겨져 남아 있습니다. 결혼 뒤 이름인 리처드 파월 부인으로 1937년에 낸 〈에드워드 엘가, 어느 변주의 기억〉입니다. 이건 D장조 군대 행진곡인데 첫 음이 무슨 음이냐고 엘가가 물었습니다. E♭이요, 하고 도라 페니가 답했습니다. 그러자 엘가가 바로 그게 농담이라고 했습니다. 농담 이야기가 나왔으니 여기 트롬본은 어떠냐고, 한 대목을 가리키며 재미 좀 볼 거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의 말대로라면 D장조 행진곡이 그 조에 속하지 않는 음으로 시작하는 셈이고, 작곡가 본인이 그것을 농담이라고 짚은 것입니다. 1902년 부지 사 초판 총보를 보면 실제로 그렇습니다. 조표는 D장조인데 첫 소리 나는 음에 ♭ 임시표가 붙어 있습니다. 그 한 음만이 아니라 도입부 자체가 E♭ 쪽으로 기웁니다.
세계 초연의 지휘자는 헌정받은 그 친구가 아니었다
세계 초연은 사흘 앞선 10월 19일 리버풀에서 이미 끝나 있었습니다. 이 연주회의 지휘자는 오래 알프레드 로데발트로 알려져 왔습니다. 엘가의 가까운 친구이고, 리버풀 오케스트라 협회 단원들과 함께 이 곡을 헌정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엘가 협회는 엘가 생가의 조사를 근거로 두 행진곡의 지휘대에 선 사람이 엘가 본인이었다고 정정했습니다. 로데발트는 같은 연주회의 나머지 곡목을 지휘했습니다. 헌정을 받은 것과 초연을 지휘한 것은 다른 일이었습니다.
제목은 셰익스피어에게서 왔다
이 D장조 행진곡은 엘가가 〈위풍당당 행진곡〉이라 이름 붙인 다섯 곡 연작(작품 39)의 첫 곡이 되었습니다. 그 이름은 셰익스피어 〈오셀로〉 3막 3장의 대사에서 왔습니다. 오셀로가 히힝거리는 군마와 날카로운 나팔, 마음을 흔드는 북과 귀를 찢는 피리, 왕의 깃발을 하나씩 부르며 작별을 고하는 대목이고, 그 나열을 끝맺는 줄이 영광스러운 전쟁의 긍지와 위풍과 당당함이여, 입니다. 대사는 그 뒤로도 세 줄이 더 이어집니다. 원문의 pomp and circumstance가 그대로 곡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대사에서 circumstance는 「상황」이 아니라 의례나 의전에 가까운 뜻입니다. C. T. 어니언스의 셰익스피어 용어 사전이 바로 이 구절을 예문으로 들어 그렇게 풀이합니다.
표어도 하나 더 붙어 있습니다. 엘가는 처음 두 곡에 로드 드 테이블리의 시 〈영광의 행진〉에서 딴 구절을 얹었습니다.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어 가는 당당한 음악 같다는 말로 시작해, 그 가락이 핏줄에는 하늘을 손에는 쇠를 놓는다고 이어집니다. 제목도 표어도 축제 쪽이 아니라 전장 쪽에서 왔습니다.
졸업식과 엮인 것은 1905년, 미국에서였다
미국에서 이 곡이 처음 울린 자리는 졸업식이 아니었습니다. 1902년 11월 28일 시어도어 토머스가 지휘한 시카고 오케스트라가 시카고 오디토리엄 홀에서 연주한 것이 확인되는 가장 이른 미국 연주입니다. 졸업식이 아니라 연주회 자리였습니다. 졸업식과 이 곡이 이어지는 것은 그보다 뒤의 일입니다.
1904년 8월 예일대 응용음악 교수 새뮤얼 샌퍼드가 엘가에게 미국에 와 달라고 청했습니다. 이것은 개인 자격의 권유였습니다. 엘가는 1905년 2월 17일에 그 뜻을 받아들였고, 대학의 공식 초청장은 5월 15일에 왔습니다. 6월 28일 학위수여식에서 명예 음악박사를 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엘가는 6월 9일 도이칠란트호로 떠나 엿새 뒤 뉴욕에 닿았고, 뉴헤이븐에서는 샌퍼드의 집에 묵었습니다.
엘가 협회가 옮겨 적은 6월 28일 울지 홀(Woolsey Hall)의 식순은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멘델스존의 〈뤼 블라스〉 서곡으로 학사 행렬이 들어오고, 기도와 시편 낭독과 총장 연설이 있고, 669명에게 학위를 주었습니다. 이어 엘가의 〈생명의 빛〉에서 명상곡과 첫 합창을 뉴헤이븐 심포니와 대학 합창단이 연주했습니다. 그다음이 명예학위였습니다. 그해 명예학위를 받은 사람은 모두 열넷이었고 음악박사는 엘가 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루터의 〈내 주는 강한 성이요〉와 축도가 있었고, 사람들이 홀을 빠져나갈 때 흐른 퇴장 음악이 〈위풍당당 행진곡〉 1번이었습니다.
이 날짜를 미국 졸업식 관행의 출발점으로 적은 것은 예일 쪽 기록입니다. 예일대 도서관 수석 연구 아키비스트 주디스 시프가 2003년에 쓴 회고 기사와 2005년 예일 동문지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영국의 엘가 협회도 따로 같은 날을 적습니다. 앞의 두 글은 사건에서 백 년 가까이 지난 뒤의 정리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1905년이 미국 졸업식에서 처음이었다고 단정하는 대신, 예일과 엘가 협회가 그렇게 적었다는 데까지를 옮깁니다.
그 뒤로 이 곡은 다른 학교로 번졌습니다. 예일 동문지의 정리에 따르면 프린스턴이 1907년, 시카고가 1908년, 컬럼비아가 1913년, 배서가 1916년, 럿거스가 1918년에 졸업식 음악으로 가져갔고 1920년대에 널리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곡이 오늘날 놓이는 자리는 대개 입장 쪽입니다. 두 학교가 공개한 2026년 식순에서 확인했습니다. 베일러대학은 학위수여식 순서지 PDF, 트랜실베이니아대학은 대학 공식 식순 페이지입니다. 베일러대학은 그 주말에 열린 네 개 학위수여식 전부에서 이 곡을 입장 행진으로 지정했고, 트랜실베이니아대학은 입장에 1번을 두고 퇴장에는 4번을 두었습니다. 1905년 예일에서 이 곡이 놓였던 자리는 퇴장이었습니다.
이 무렵 미국에서 이 곡이 어느 정도로 흔했는지는 우리 쪽 글에도 흔적이 있습니다. 1924년 뉴욕에서 열린 〈랩소디 인 블루〉 초연 연주회는 열한 개 묶음 안에 스물여섯 개의 개별 악장이 이어지는 긴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마지막 곡이 이 행진곡이었습니다.

디트로이트 퍼블리싱 사, 〈울지 홀 후면〉, 1905년경, 미국 의회도서관. 1905년 6월 28일 학위수여식이 열린 건물이다. 엘가는 이 안에서 명예 음악박사 학위를 받았고, 식이 끝나 사람들이 나갈 때 그의 행진곡이 울렸다.
그런데 예일에서는 적어도 1950년 이후 이 곡이 정규 졸업식에서 들리지 않았다
관행을 시작한 학교는 그 관행을 버렸습니다. 2003년 예일 동문지에서 밴드 감독 토머스 더피는 적어도 1950년 이후 예일의 정규 학위수여식에서 이 행진곡이 연주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든 이유는 곡의 짜임이 아니라 이 곡이 어디서 얼마나 쓰였는가였습니다. 미국의 수많은 졸업식이 이 곡을 가져간 결과가 곡의 자리를 바꾸어 놓았고, 처음 가져다 쓴 학교에서는 오히려 오래전부터 이 곡을 정규 식순에서 빼 두었습니다.
위풍당당 행진곡에서 우리가 아는 그 대목은 어디인가
졸업식에서 듣는 것은 곡을 여는 행진 주부가 아니라 중간부 선율입니다. 이 중간부를 트리오라고 부릅니다.
조가 바뀌는 것만 듣지 마시고 소리의 짜임도 함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트리오 선율을 처음 내는 것은 목관이고, 현은 그 아래에서 셋잇단음표로 흔들리며 받칩니다. 큰 소리로 시작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 곡의 편성에는 오르간과 하프 두 대도 들어 있습니다.
트리오는 원래 춤곡의 가운데 부분을 가리키던 말입니다. 악기 셋이 연주해서 붙은 이름이고, 보통 그 곡의 주선율과 다른 조로 씁니다. 이 곡도 그렇습니다. 행진 주부가 D장조이고 트리오는 처음 G장조로 나옵니다. 그 선율은 뒤에서 D장조로 한 번 더, 이번에는 전 합주로 돌아옵니다. 조가 바뀌면서 소리의 성격이 함께 바뀌는데, 그 자리에서 넓게 열리는 선율이 졸업식으로 익숙해진 그 대목입니다. 초판 총보에는 그 머리가 「TRIO.(Largamente.)」로 찍혀 있습니다. 넓게 라는 뜻입니다.
이 선율은 나중에 노랫말을 얻어 노래로도 팔렸습니다. 그런데 엘가 협회는 미국의 사정을 이렇게 적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이 트리오 선율은 영국에서만큼 익숙하지만 그 노랫말은 사실상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같은 선율을 두고 한쪽은 노래로 알고 다른 한쪽은 행진곡으로 압니다.

부지 사, 〈희망과 영광의 나라〉 가곡판 표지, 1902년. 행진곡의 중간부 선율이 노래로 따로 팔려 나간 판이다. 미국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이 선율이지 이 표지가 싣고 있는 노랫말이 아니다.
일하거나 공부하면서 배경으로 틀어 두는 목록에서도 이 곡이 지목되는 자리는 중간부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을 어떻게 잡느냐를 두고 작곡가의 연주를 직접 들은 사람이 불만을 남겼습니다. 도라 페니는 회고록을 쓰던 1930년대 후반의 관현악단과 취주악단이 시작을 너무 빠르게 몰고 트리오를 너무 느리게 잡아 이 곡을 망쳐 놓는다고 적었습니다. 페니가 기억하는 엘가는 그날 저녁 거의 엄격한 속보 행진 속도로 끝까지 쳤고, 트리오 머리에 붙은 Largamente 지시를 거의 살리지 않았습니다.
희망과 영광의 땅, 가사는 나중에 붙었다
순서는 선율이 먼저입니다. 5월에 도라 페니가 들은 것도, 10월에 리버풀과 런던의 청중이 들은 것도 노랫말이 없는 행진곡이었습니다. 트리오 선율이 노랫말을 얻어 가는 과정은 엘가의 생애를 다룬 글에서 따로 정리해 두었으므로 여기서는 되풀이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한 줄만 보탭니다. 노랫말을 쓴 사람은 아서 크리스토퍼 벤슨입니다. 엘가 협회가 옮긴 벤슨의 답장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방향대로 피날레를 써 보겠습니다, 다만 그 운율이 까다롭군요. 협회를 거쳐 전해지는 인용이고 편지의 원 소장처와 날짜는 협회가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 한 줄만으로 무엇이 증명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미 있는 선율에 말을 맞추어야 했던 사람의 처지와 어긋나지 않습니다.

앨런 헤이스팅스 프라이, 〈아서 크리스토퍼 벤슨〉, 1899년경. 운율이 까다롭다고 답장을 쓴 사람이다.
엘가 위풍당당 행진곡 듣기 안내
처음부터 들으면 순서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D장조 행진 주부가 먼저 지나가고, 조가 G장조로 바뀌면서 넓게 열리는 대목이 트리오입니다. 졸업식으로 익숙한 것은 뒤쪽입니다. 앞쪽까지 함께 들어 두면 그 익숙한 선율이 원래 무엇에 얹혀 있던 것인지가 자리를 잡습니다.
연주를 두 가지 이상 골라 같은 자리를 견주어 보시면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들을 곳은 두 군데입니다. 시작을 얼마나 몰아붙이는가, 그리고 트리오에서 얼마나 늘어지는가. 도라 페니가 불만을 적은 자리가 바로 그 둘이고, 페니가 기억하는 엘가 본인의 연주는 양쪽 다 반대편이었습니다. 시작은 속보 행진에 가깝고 트리오는 늘어지지 않습니다.
우드의 회고대로라면 청중이 세 번 들은 것은 트리오 하나가 아니라 행진곡 한 곡 전체였습니다. 졸업식과 가장 강하게 결부된 것은 그 트리오 선율입니다. 앞쪽을 함께 듣고 나면 그 저녁의 소동이 조금 더 그려집니다. 엘가의 다른 얼굴을 이어 들으실 생각이라면 〈사랑의 인사〉가 같은 사람이 쓴 아주 다른 소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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