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르그스키가 1874년 6월에 쓴 피아노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에는 곡과 곡 사이에 같은 선율이 자꾸 돌아옵니다. 악보에 프롬나드라고 적혀 있는 대목입니다. 흔히 전시장에서 다음 그림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라고 설명하는 자리인데, 작곡가 자신은 그것을 조금 다르게 불렀습니다. 곡을 쓰던 그 여름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간주 속에 자기 얼굴이 보인다고 적었습니다.
이 글은 1886년에 나온 초판 악보를 직접 펴 놓고 씁니다. 초판에는 악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열 곡이 각각 무슨 그림을 보고 쓴 것인지 적어 둔 해설면이 앞에 붙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무소르그스키가 자기 원고에 손으로 써 넣었다는 문장까지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림이 대부분 사라진 지금, 그 인쇄면이 남아서 알려 주는 것이 적지 않습니다.
이 곡은 유작 전시를 보고 스무 날 만에 쓰였다
건축가이자 화가였던 빅토르 하르트만이 1873년에 서른아홉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 봄 비평가 블라디미르 스타소프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의 유작 전시를 열었습니다. 무소르그스키도 그 자리에 갔고, 하르트만에게서 받아 두었던 그림 두 점을 전시에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이 어떤 사이였는지는 무소르그스키의 생애와 작품에 따로 적어 두었으니, 여기서는 곡으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작곡은 그해 6월 2일에 시작해 22일에 끝났습니다. 스무 날입니다. 초판 악보의 첫 장을 펴면 첫 곡 오른쪽 위에 1874라는 숫자가 작게 인쇄되어 있어서, 출판이 열두 해 뒤에 이루어졌는데도 작곡 연도만은 악보에 남아 있습니다.
초판 해설면의 첫 문단은 이 곡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한 문장으로 적어 두었습니다. 건축가 하르트만의 유작 전시가 계기였고, 무소르그스키는 여러 해 동안 그와 가까이 지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한 줄이 이어집니다. 도입부는 프롬나드라는 이름을 가진다는 문장입니다. 곡을 처음 펴 든 사람이 가장 먼저 읽게 되는 안내가 그것이었습니다.
작곡가는 간주 속에 자기 얼굴이 보인다고 적었다
곡을 쓰던 1874년 6월에 무소르그스키는 스타소프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지금 네 번째 곡을 쓰고 있는데 이음매가 좋다고, 그 이음매가 프롬나드에 붙는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간주 속에 자기 얼굴이 보인다는 문장입니다.
이 편지에는 날짜가 없습니다. 편지 표제로 전하는 것은 수요일이라는 요일과 74년 6월이라는 달까지이고, 며칠인지는 무소르그스키 자신도 비워 두었습니다. 저희가 확인한 것은 러시아 음악사 연구서의 주석에 인용된 그 표제이고, 편지 실물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 편지를 특정한 날짜로 부르는 자료를 보게 되면 그 날짜는 편지에 적힌 것이 아니라 나중에 붙은 추정입니다.
같은 방향의 문장이 하나 더 있습니다. 초판 해설면의 여덟 번째 항목, 그러니까 카타콤 곡에 관한 대목입니다. 초판은 무소르그스키가 원 사본에서 그 곡의 느린 부분 위에 손으로 써 넣은 문장을 그대로 인쇄해 두었습니다. 죽은 하르트만의 창작 정신이 자기를 해골들에게로 이끌고 그것들을 부르니, 해골들이 조용히 빛나기 시작했다는 내용입니다.
두 문장은 성격이 다릅니다. 앞의 것은 사적인 편지에 흘리듯 적은 말이고, 뒤의 것은 출판된 악보에 인쇄되어 누구나 읽게 된 말입니다. 다만 두 문장이 하는 일은 같습니다. 둘 다 곡 안에 작곡가 자신을 집어넣습니다. 앞의 것은 간주에, 뒤의 것은 해골들 앞에 선 사람의 자리에 넣습니다.
그러니 프롬나드를 관람객의 발걸음이라고만 부르면 절반만 말한 것이 됩니다. 그 발걸음에는 이름이 붙어 있고, 이름을 붙인 사람이 그것을 자기 얼굴이라고 불렀습니다. 같은 선율이 매번 다른 표정으로 돌아올 때, 그림이 바뀐 것이 아니라 그림을 보는 사람이 바뀐 것처럼 들립니다.
프롬나드는 박자가 흔들리는 자리다
초판 악보를 펴 보면 프롬나드가 나올 때마다 그 자리에 PROMENADE라는 제목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눈으로 찾기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제목을 보지 않고도 알아볼 수 있는 표지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박자표입니다.
맨 앞의 프롬나드는 다섯 박과 여섯 박을 한 마디씩 번갈아 갑니다. 마디마다 박자표가 바뀌어 인쇄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프롬나드도 같은 방식이고, 세 번째도 그렇습니다. 네 번째에 이르면 일곱 박까지 들어옵니다. 열 마디가 다섯, 여섯, 일곱, 여섯, 다섯, 일곱, 다섯, 여섯, 다섯, 셋으로 이어집니다. 이 곡에서 마디마다 박자가 바뀌는 대목은 프롬나드뿐입니다.
다만 이것은 1886년 초판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초판은 다섯 곳 모두에 PROMENADE라는 제목을 인쇄해 두었지만, 무소르그스키의 자필보에서는 그 가운데 세 곳이 제목 없는 간주로 되어 있다고 전합니다. 자필보는 저희가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조표도 프롬나드마다 같지 않습니다. 조표가 붙어 있는 것은 맨 처음 프롬나드와 여섯 번째 곡 다음에 오는 다섯 번째 프롬나드, 이 둘뿐이고 둘 다 내림표가 두 개입니다. 가운데 놓인 세 번은 조표가 없습니다. 빠르기말도 네 번째만 다릅니다. 나머지 넷이 빠르기를 지시하는 말을 달고 있는 데 비해 네 번째에는 조용하게라는 한 마디만 적혀 있습니다.
처음 프롬나드와 마지막 프롬나드는 조표도 빠르기말도 거의 같습니다. 걸음이 열 곡을 지나 처음 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들립니다.
네 번째 프롬나드가 놓인 자리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소를 맨 짐수레 곡이 아주 작은 소리로 사라지듯 끝나고 나서 이 프롬나드가 나오고, 그다음에 병아리들의 발레가 시작됩니다. 무거운 것이 지나간 직후이고 가벼운 것이 오기 직전입니다. 조표가 없어지고 조용하게라는 말이 붙은 자리가 하필 거기입니다. 걸어가던 사람이 방금 본 것 앞에서 잠깐 말을 잃은 것처럼 들립니다.
남은 것은 그림이 아니라 도안에 가깝다
초판 해설면은 그 전시를 소묘의 전시라고 부릅니다. 러시아어로는 рисунков, 프랑스어 단에는 dessins라고 적혀 있습니다. 회화만 걸린 자리는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하르트만이 건축가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해설면이 곡마다 붙여 놓은 설명을 읽어 보면 그 성격이 더 분명해집니다. 아홉 번째 곡의 바탕이 된 것은 닭발 위에 선 오두막 모양으로 만든 시계 도안입니다. 그런데 같은 해설면은 곧바로 한 줄을 더 답니다. 무소르그스키가 절구를 탄 바바야가의 질주를 거기에 덧붙였다는 문장입니다. 초판이 스스로 그림과 음악 사이의 간격을 적어 둔 셈입니다. 열 번째 곡의 바탕은 키예프에 세울 시문의 설계안이고, 지붕이 슬라브 투구 모양이라는 설명까지 붙어 있습니다. 다섯 번째 곡은 발레 트릴비의 한 장면을 무대에 올리려고 그린 그림입니다. 적어도 남아 있는 것 가운데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그린 것이 여럿입니다.



사람을 그린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 초판이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슈뮐레라는 이름을 붙인 여섯 번째 곡의 바탕은 두 폴란드 유대인을 그린 초상 두 점이고, 초판은 한 사람은 부유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다고만 적어 두었습니다. 아래 두 도판은 그 두 사람으로 전해지는 그림인데, 초판이 가리킨 원화와 같은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여덟 번째 곡의 바탕이 된 그림에는 하르트만 자신이 들어가 있습니다. 초판 해설면은 그가 등불 빛으로 파리의 카타콤 안을 살피는 모습으로 자기를 그려 넣었다고 적습니다. 그림에는 하르트만과 동행자, 그리고 등불을 든 안내인이 함께 있습니다. 그 곡 위에 무소르그스키가 해골들이 조용히 빛나기 시작했다고 써 넣은 것을 함께 놓고 보면, 어둠 속에 서 있던 사람과 악보에서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간 사람이 겹쳐 읽힙니다.

문제는 나머지입니다. 옛 성과 튈르리 정원과 소를 맨 짐수레, 이 세 곡의 바탕이 된 그림은 남아 있지 않다고 전합니다. 첫 곡 난쟁이는 초판이 굽은 다리로 어색하게 걷는 난쟁이를 그린 소묘라고 적어 두었는데, 정작 그 소묘가 어느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리모주 시장을 그린 스케치가 남아 있기는 한데 그것이 일곱 번째 곡이 보고 있던 그 그림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열 곡 가운데 그림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절반 남짓입니다.
사라진 이유를 두고는 분실이 아니라 팔려 나간 것이라는 서술이 있습니다. 유작 전시가 끝난 뒤 상당수가 팔렸고 그래서 대부분의 소재를 알 수 없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다만 이 이야기의 1차 근거를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을 알고 나면 다섯 번째 곡이 조금 달리 들립니다. 껍질을 덜 벗은 병아리라는 제목만 보면 새를 흉내 낸 곡 같지만, 바탕이 된 것은 아이에게 껍질 모양 의상을 입혀 무대에 세우려던 도안입니다. 뒤뚱거리는 그 음형이 새의 걸음이 아니라 옷을 뒤집어쓴 아이의 걸음처럼 들립니다.
초판은 처음부터 국경 밖을 보고 찍혔다
이 곡이 출판된 것은 1886년입니다. 작곡가가 죽고 다섯 해 뒤이고, 곡을 쓴 지는 열두 해 뒤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베셀 사에서 냈고 편집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맡았습니다.

표지를 보면 이 출판이 러시아 안만 보고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표제가 러시아어와 프랑스어로 나란히 인쇄되어 있고, 스타소프에게 바친다는 헌정도 두 언어로 각각 적혀 있습니다. 열 곡짜리 모음이라는 표시 역시 두 언어 모두에 들어가 있습니다. 표지 아래쪽에는 베를린과 브뤼셀, 라이프치히, 런던, 뉴욕이 나란히 찍혀 있고 바르샤바의 대리점 이름도 함께 있습니다. 값은 두 가지로 적혀 있습니다. 하나는 루블이고 하나는 마르크입니다.
앞에서 읽은 곡 해설면이 러시아어와 프랑스어 두 단으로 짜여 있는 것도 같은 방향입니다. 러시아 밖의 연주자가 이 악보를 사서 펴 들었을 때 각 곡이 무슨 그림을 보고 쓴 것인지 바로 읽을 수 있게 해 둔 것입니다. 표지 맨 아래에는 검열 허가가 1886년 9월 11일에 났다는 한 줄이 남아 있습니다.
판본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이 곡에는 뒤에 나온 교정판도 있고 초판이 원고를 얼마나 손질했는지를 두고 논의도 있지만, 그것은 이 글이 다루려는 자리가 아닙니다.
원곡을 먼저 듣는 편이 낫다
오늘날 이 곡은 라벨이 1922년에 만든 관현악 편곡으로 더 자주 연주됩니다. 처음 접하는 자리도 대개 그쪽입니다. 그런데 라벨은 다섯 번째 프롬나드를 편곡에서 뺐습니다. 라벨 관현악판만 듣고 원곡으로 오면 없던 걸음 하나가 더 있는 셈입니다.
원곡을 들을 때 짚어 볼 자리를 세 군데만 적어 두겠습니다.
첫째는 맨 처음 프롬나드입니다. 마디마다 박자가 바뀌는 것을 세면서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섯 박과 여섯 박이 번갈아 오기 때문에 발걸음이 고르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둘째는 네 번째 프롬나드입니다. 소를 맨 짐수레가 아주 작은 소리로 사라진 직후에 나옵니다. 조표가 없어지고 조용하게라는 지시만 붙은 자리입니다. 앞의 세 번과 소리의 결이 다릅니다.
셋째는 여섯 번째 곡이 끝난 뒤입니다. 여기에 원곡에는 있고 라벨 관현악판에는 없는 걸음이 한 번 더 놓여 있습니다. 있다가 없어진 것을 알고 들으면 그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도 들립니다.
이 곡이 나온 배경을 더 넓게 보고 싶다면 러시아 5인조를 함께 읽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무소르그스키가 혼자 서 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남은 그림이 절반뿐이라는 사실은 이 곡을 듣는 데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엇을 듣게 되는지를 분명하게 합니다. 그림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 앞을 걸어간 사람은 악보에 남았습니다. 작곡가가 간주 속에 자기 얼굴이 보인다고 적은 말은 이 걸음과 겹쳐 읽힙니다. 프롬나드가 돌아올 때마다 우리가 듣는 것은 그림이 아니라 그림을 보고 나온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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